아들15 아들의 배신…그래도 행복하다 몸이 으슬으슬했다. 비 탓이다, 라고 생각했다. 우기가 비를 탓하다니.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결석을 알렸다. 집에 오니 학교를 마친 아들이 컵라면 비슷한 걸 먹고 있다. 그걸 먹고 학원에 가면 일곱 시쯤 온다. 집에 오면 다시 밥을 먹을 거란다. 모처럼 마음이 동했.. 2015. 5. 18. 아들의, 딸이던 시절 건넛마을 최 진사 댁에 딸이 셋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셋째 딸이 제일 예쁘다고 소문이 나지 않았나. 예쁘다는 건 뭘 말하는가. 얼굴은 당연히 기본적으로 예쁘고 마음도 착하고 몸놀림은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나 바느질 솜씨도 어여쁘기만 하여 신붓감, 며느릿감으로 으뜸으로 친다는 말 .. 2015. 2. 5. 라면 요맘때, 그러니까 기온은 갑자기 뚝 떨어지고 어디 오라는 데는 없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심심해 죽겠는데 잠은 안 오고, 하릴없이 배가 실실 고파질 저녁 10시쯤 라면 하나를 툭 분질러 냄비에 넣고 달걀 하나 퐁당 빠뜨리고 대파 대충 썰어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라면의, 그 감격스러운.. 2014. 12. 3. 글씨를 반듯하게 쓴다는 것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글씨를 잘 쓴다는 말을 가끔 듣는 편이다. 잘 쓴다는 말은 예쁘게 쓴다는 말과 다르고 서예를 한다는 것하고도 다른데, ‘반듯하게 쓴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가령 축의금ㆍ부의금 같은 걸 내는 봉투에는 붓펜으로 내 마음을 또박또박 반듯하게 쓴다. 수첩에 적는 간단한 메모를 제외하면 대부분 글씨를 반듯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대학에 입학할 때이던 1986년에는 논술고사라는 게 있었다. 우리들은 대학 강의실에서 논술 시험을 치렀다. 다른 수험생들은 볼펜이나 연필로 글을 썼다. 하지만 나는 펜을 준비해 갔다. 당시만 해도 잉크병과 펜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감독하시는 교수님은, 잉크병을 책상에 올려놓고 잉크를 찍어가며 펜글씨로 원고지를 써 나가는 나를 유심히 보고 계셨.. 2014. 10. 30. 2000만 원 2011년 10월 말 서울 아산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경상대학교병원 경남지역암센터에서 아버지는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아산병원에서는 닷새 동안 입원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검사만 받았는데 퇴원할 때 몇 백만 원이 나왔다. 네 형제는, 처음엔 대중없이 병원비를 감당하다가 앞으로 아.. 2014. 10. 9. 아름답고 풍요로운 중년을 위하여 퇴근 후 한잔하고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 마당을 걷는다. 가로등은 어둠을 물리칠 힘이 없어 보인다. 집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는 웃음과 행복이 묻어난다.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참는다. 우리 집 현관을 통과할 때까지는 흐트러진 모습을 누구에게 들키지 않는 게 좋다. 문득 하늘을 보.. 2013. 11. 23.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