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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보다 닭 고사리를 좀 꺾고 싶었다. 아른아른 눈앞에 떠오르는 고사리를 어째볼까 싶던 터였다. 고사리는 당장 어떻게 해먹지는 못하더라도 잘 데쳐서 말려 놓으면 아버지 기일이나 추석에 요긴하게 쓰인다. 아버지 산소 아래 손바닥만한 언덕배기에 고사리가 모른 체하기엔 좀 많고 작정하고 달려들기엔 한심한 정도로 적게 돋아난다. 한번에 많이 모을 수 없으니 주말마다 신경써야 한다. 이맘때부터 5월말까지 주말마다 되도록 달려가는데 열심히 꺾어 모으면 제삿상에 올릴 만큼은 된다. 일요일 아침 꿈자리에서 벗어나니 6시 30분이다. 출근하는 날인 줄 알고 ‘지각’을 떠올렸다. 몸이 뻣뻣해졌다. 그러다가 ‘아차, 일요일이구나!’ 휴~ 한숨을 내쉰다. 뜻뜻한 등짝을 미련없이 털고 일어났다. 옷 입고 차를 몰았다. 아버지 산소까지 20.. 2020. 4. 26.
무릎 꿇으면 보이는 것들 허리를 숙였다. 무릎을 꺾었다. 이름을 모르겠는 봄풀 사이에 돌나물이 제법 물이 올랐다. 보름쯤 뒤 돌나물은 꽃을 피워낼 것인지 어느 집 밥반찬으로 고추장을 뒤집어쓴 채 생을 마감할지 궁금하다. 아름드리나무 밑에 어린 느티나무가 아등바등 자라고 있다. 겨우 네다섯 개뿐인 이파리로 햇빛을 받아들여 광합성을 해낼지 사뭇 걱정된다. 뿌리를 어디로 뻗어야 겨우 목숨이라도 부지할지 알기나 할는지…. 겨우내 습기를 잃어버린 풀숲엔 낙엽만 바스락거리는데 그 사이사이로 연초록 어리고 여린 나무들이 숨쉬고 있다. 썩어서 썩어서 마침내 거름이 되어버린 아비의 흔적을 자양분 삼아 조금씩 조금씩 커가고 있다. 바위 틈서리에 날려 온 꽃씨가 온힘을 다해 공기 속 온도와 습도를 붙잡았다. 가느다란 햇살과 엷디엷은 바람은 노랑으로.. 2020. 4. 9.
가좌천 봄 풍경 경상대학교 정문쪽엔 가좌천이 있다. 가좌천을 따라 '볼래로' 문화거리가 조성돼 있다. 정문을 지나는 개척교 아래는 연못처럼 돼 있다. 가좌천을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이맘때는 꽃이 활짝 핀다. 가좌천 건너편 이팝나무는 5월에 하얀 꽃을 틔운다. 거기에 경상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청춘 남녀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지나가다 기념사진을 찍곤 한다. 올해는, 학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벚꽃이 지기 전에, 이팝이 피기 전에 학생들이 돌아와야 할 텐데... 2020. 3. 31. 시윤 2020. 3. 31.
유채와 한옥 경상대학교 정문 오른쪽에는 예절교육관이 있다. 예절교육관 주변에 봄에는 유채를, 가을에는 메밀을 심는다. 한옥 건물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이 된다. 점심 밥 먹은 직원이나 학생들이 커피잔 들고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다. 주말에는 시민들도 자주 찾는다. 다들 사진 한두 장씩 찍으며 웃는다. 올해는, 학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는 봄이 아쉽다. 코로나19가 싫다. 2020. 3. 31. 시윤 2020. 3. 31.
입춘 입춘이다. 한자로는 ‘立春’ 이렇게 쓴다. 오래전 경남일보 교열부 기자 시절 ‘入春’ 이렇게 적었다가 혼난 적 있다. 입춘 같은 절기 이름이 한자어라고 하여 순우리말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다. 입춘을 ‘들봄’이라고 부르자 한다. ‘入春’을 번역한 듯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한자어 ‘입춘’보다는 훨씬 낫다. ‘서툰봄’이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들봄’보다는 낫지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다. 춘래불사춘이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이다. 어제까지 제법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많이 추워졌다. 진주시 가호동 아침 날씨가 영하 5도로 나온다. 어제보다 무려 6도나 낮아진 것이다. ‘출근길 입춘 한파’, ‘영하권 강추위’, ‘퇴근길엔 중부 눈’ 같은 언론기사 제목이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 2020. 2. 4.
백만년 만에 석갑산 대한이다. 큰 대(大), 추울 한(寒)이다. 일년 가운데 가장 추운 날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대한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 소한은 1월 5일이었는데 매우 추웠다. 대한인 1월 20일은 포근했다. 겨울 날씨가 퍽 따뜻한 걸 ‘.. 2018.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