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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399

'오민축제'를 기다리며 저는 운이 좋습니다. 대아고 근처에 삽니다. 우리 시절 시내버스 35번 종점 자리입니다. 그 시절엔 우시장도 있었지요. 거기에 자리 잡은 작은 맨션에 삽니다. 뒷베란다에서는 나불천 맑은 물을 사시사철 볼 수 있답니다. 앞쪽 창밖으로 보면 모교 건물이 보입니다. 10시까지 불이 켜진 날이 많습니다. 어쩌다가 한 개 층은 불이 꺼져 있습니다. 시험을 봤는지 소풍을 갔는지 모릅니다. 4월 말엔 이충무공 탄신일 기념 행군을 하겠죠.저는 5시에 퇴근합니다. 집에 차 대어 놓고 숙호산을 올라갑니다. 산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죠. 집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꼭 1시간 걸립니다. 해발 137미터 숙호산은 정겹습니다. 다리도, 허리도 아플 만합니다. 땀도 좀 납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엄살 피울 정도는 절대 아.. 2025. 4. 10.
고구마 고구마는 어린 시절 거의 유일한 간식이었다. '거의'라고 말한 건, 감자, 자두(풍개), 옥수수(강냉이) 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 여물 끓인 아궁이 숯불에 구워 먹는 고구마는 황홀했다. 13살 이전 이야기다. 진주로 이사 와서는 학교 앞 분식점에서 파는 밀가루와 설탕에 매료됐다. 고구마는 잊었다.이따금 고구마를 샀다.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꿀고구마 따위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한두 개 먹을 땐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동치미 국물도 한몫했겠지. 그러나 서너 개를 잇따라 먹지는 못했다. 찌개, 국밥, 달걀, 삼겹살, 햄에 밀려난 것이다.며칠 전부터 다시 고구마를 애써 먹기로 했다. 무슨 커다란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계기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냥 문득, 무심코,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텔레비전.. 2025. 4. 10.
점심 점심.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것이라 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라는 뜻일까. 과식하면 오후에 졸린다는 경고일까. 살빼기의 가장 큰 적은 점심이라는 가르침일까.동료들과 하루 한 끼 같이 먹는데 점 하나 찍는 건 좀 아쉽다. 김밥을 먹어도 국수를 마셔도 제대로 챙겨 먹는 게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밥 먹으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여유있게 나누는 기쁨도 필요하지.정촌에 있는 은 맛있고 맵고 많고 재미있다. 가보면 안다. 시간을 잘 맞추면 금방 먹고 올 수 있고, 일이 분 늦게 가면 일이십 분을 기다릴 수도 있다. 기다리는 시간에 양파까기 알바를 추천하는 집.그 옆집에서는 호떡 김밥 따위 먹거리를 파는데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가게 이름은 까먹었다. 호떡 구울 동안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도 나누고 이야기를 듣기.. 2025. 4. 10.
풍경 병원 가느라 1시간 조퇴했다. 운도 좋지. 10분도 기다리지 않았다. 약국도 들렀다. 의사의 진료말씀과 약사의 복약지도가 달콤했다. 자동차가 쑥쑥했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세차했다. 운도 좋지. 내 앞에 한 대도 없었다. 흙먼지와 새똥이 씻겨 나갔다. 동전 500원으로 차 안도 좀 치웠다. 차 안에서는 90년대 노래를 들었다.집에 차 대놓고 옷 갈아 입고 배낭 메고 숙호산으로 갔다. 대 작대기 하나 들고 할랑할랑 걸었다.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나불천 물소리도 듣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었다. 숙호산 여기저기 매화 진 자리에 벚꽃과 목련이 봄을 희롱한다. 멧돼지 흔적도 없다. 혼자서 개폼 잡고 사진도 찍어본다.대충 씻고 밥을 먹는다. 냉장고 안 이런 반찬 저런 반찬을 꺼낸다. 의사와 약사.. 2025. 4. 10.
일상 사 놓은 감자에 뿌리가 났다. 자잘한 뿌리가 얼기설기 뒤섞였다. 서너 달은 된 것 같다. 그래도 먹을 만하다. 돼지고기와 두부를 같은 크기로 썰어 넣었다. 풋고추, 새송이버섯, 애호박도 대충 썰었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이다. 화룡점정은 지난주에 사 놓은 달래이다. 아직 봄 향기가 향긋하다. 주방 근처에 구수한 향기가 퍼졌다. 즉석밥 데워 아침을 먹는다.그러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아침을 맞이해도 되는 것인가. 산불도, 정치도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데 모든 게 남의 일이란 듯 모른 척 된장 냄새에 취해 있어도 되는 것인가. 뭐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밥 다 먹고 설거지하고 거실에 널어놓은 빨래 개어 넣는다. 새로운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2025. 4. 10.
자판 자판 하나 바꾼다고 일이 더 잘될 것 같지는 않지만, 자판 하나 바꾸면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가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판 하나 바꾸면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듣기 싫은 소리를 조금이라도 덜 듣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자판만 물끄러미 바라봐도 재미있겠다 싶다. 사 놓고 보니 마음에 든다. 평생 데리고 다녀야겠다. 좋은 물건 추천해 준 분께 감사드린다. 그러하다. 2025. 3. 21.(금)ㅇㅇㄱ 2025.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