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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갑산14

무릎 꿇으면 보이는 것들 허리를 숙였다. 무릎을 꺾었다. 이름을 모르겠는 봄풀 사이에 돌나물이 제법 물이 올랐다. 보름쯤 뒤 돌나물은 꽃을 피워낼 것인지 어느 집 밥반찬으로 고추장을 뒤집어쓴 채 생을 마감할지 궁금하다. 아름드리나무 밑에 어린 느티나무가 아등바등 자라고 있다. 겨우 네다섯 개뿐인 이파리로 햇빛을 받아들여 광합성을 해낼지 사뭇 걱정된다. 뿌리를 어디로 뻗어야 겨우 목숨이라도 부지할지 알기나 할는지…. 겨우내 습기를 잃어버린 풀숲엔 낙엽만 바스락거리는데 그 사이사이로 연초록 어리고 여린 나무들이 숨쉬고 있다. 썩어서 썩어서 마침내 거름이 되어버린 아비의 흔적을 자양분 삼아 조금씩 조금씩 커가고 있다. 바위 틈서리에 날려 온 꽃씨가 온힘을 다해 공기 속 온도와 습도를 붙잡았다. 가느다란 햇살과 엷디엷은 바람은 노랑으로.. 2020. 4. 9.
너는 어찌 그러한 빛깔이냐 너를 무엇이라고 부르겠냐 너에게 뉘 사랑이 씌었더냐 너만한 맑음이 어디 있더냐 너만큼 밝음이 또 있겠더냐 너에게 묻지 않을 수 없구나 네게 감탄할 수밖에 없구나 너를 두고 발길이 떨어지랴 너를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너를 숲속에 두기가 애닯다 널 야생에 방치하기 아쉽다 너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다 눈에 담고 마음에 넣고 또한 사진에 새겨 오늘을 기록한다 아름다운 풀잎이여, 꽃이여 —숙호산을 지나며 2020. 4. 7. 시윤 2020. 4. 8.
숙호산 숙호산아 반갑구나 호랑이는 잠깼느냐 봄바람이 차갑구나 잰걸음을 놓아보자 꽃향기가 어지럽다 두다리에 힘을주자 주안상은 집에있고 나는이제 내리막길 서산해는 어서가자 장딴지는 묵적지근 숙호산아 잘있거라 호랑이는 달리거라 2020. 4. 6. 시윤 2020. 4. 8.
시리 아이폰을 쓴 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대략 10년은 되었지 싶다. 아이폰4로 시작하여 아이폰5를 넘어 지금은 아이폰8을 쓴다. 어떤 사람은 아이폰에서 삼성 갤럭시로 넘어가고 어떤 사람은 갤럭시 쓰다가 아이폰을 산다. 엘지만 쓰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스마트폰이라는 걸 쓰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아이폰이다. 별다른 까닭은 없다. 처음부터 맛들이고 길들여진 탓이다. 삼성 전화기를 거부하는 마음은 좀 있다. 삼성은 실력은 뛰어난 기업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다. 엊저녁 아이폰 여러 기능 가운데 ‘시리(Siri)’라는 것을 익혔다. 익혔다고 하기보다는 ‘처음 사용했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아내는 주방에서 무엇을 할 때 꼭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 2020. 3. 13.
석갑산 돌이켜보니 지난해 9월 이후 석갑산을 가지 않은 듯하다. 날씨 궂다고 안 가고 바쁘다고 빼먹고 몸이 찌뿌드드하다고 건너뛰었다. 그사이 꽃은 열매 되고 초록은 갈잎이 되어 계절을 잡도리했다. 다리는 물러졌고 배는 더 나왔다. 입춘은 상기 멀었는데 성미 급한 매화는 꽃망울을 벌렸고.. 2019. 1. 29.
하루살이하고도 싸우는데 오후 대여섯 시쯤 뒷동산에 오른다. 도심엔 햇볕이 쨍쨍한 시간이지만 산속은 서늘하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편백숲이어서 더욱 그렇다. 퇴근 후 별다른 약속이 없고 비가 오지 않으면 석갑산은 나들잇길로 제격이다. 운동화 갈아 신고 모자 눌러 쓰고 색안경 걸쳐 끼고 작은 물병 하나 들.. 2018.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