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글씨를 잘 쓴다는 말을 가끔 듣는 편이다. 잘 쓴다는 말은 예쁘게 쓴다는 말과 다르고 서예를 한다는 것하고도 다른데, ‘반듯하게 쓴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가령 축의금ㆍ부의금 같은 걸 내는 봉투에는 붓펜으로 내 마음을 또박또박 반듯하게 쓴다. 수첩에 적는 간단한 메모를 제외하면 대부분 글씨를 반듯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대학에 입학할 때이던 1986년에는 논술고사라는 게 있었다. 우리들은 대학 강의실에서 논술 시험을 치렀다. 다른 수험생들은 볼펜이나 연필로 글을 썼다. 하지만 나는 펜을 준비해 갔다. 당시만 해도 잉크병과 펜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감독하시는 교수님은, 잉크병을 책상에 올려놓고 잉크를 찍어가며 펜글씨로 원고지를 써 나가는 나를 유심히 보고 계셨다. 대학에 입학하니 논술고사 점수는 내가 가장 높았다고 선배님들이 귀띔해 주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이다. 한겨울에 눈으로 집을 만들어 놓고 노숙을 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찾았다. 대대 차트병(상황실 벽에 붙여 놓는 여러 가지 글씨를 담당하는 병사)이 휴가를 갔는데 갑자기 글씨 쓸 일이 있어 나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간혹 집으로 보내던 편지의 봉투에 쓰인 글씨를 눈여겨 본 선임병이 나를 추천한 것이다. 나는 그날부터 훈련 기간 내내 상황실에서 매직펜으로 열심히 글씨만 썼다. 장교들은 “전문 차트병보다야 못하지만 그런대로 쓸 만하다.”고 칭찬했고, 나는 동계훈련을 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신문사 입사 시험을 치르던 1992년, 나는 새 플러스 펜을 준비해 갔다. 역시 논술시험이었는데 연습장에 대강의 줄거리를 정리한 나는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천천히 원고지를 메웠다. 이미 제출한 이력서도 자필(自筆)로 정성들여 썼음은 물론이다. 며칠 뒤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 모두 나의 글씨를 보면서 “정말 본인 글씨가 맞느냐?”고 물었다.
직장을 옮기게 되어 지금의 경상대학교 홍보실로 오게 된 2004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필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쓰지 않고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쓰던 시절이다. 그러니 글씨를 잘 쓰는지 못 쓰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력서, 자기소개서만큼은 정성들여 직접 손으로 썼다. 면접을 보시던 교수님은 “정말 직접 쓴 게 맞느냐?”고 두 번이나 물으셨다. 나는 웃으며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써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세 번의 시험 즉, 대학 입학시험, 첫 번째 직장이던 신문사 입사 시험, 두 번째 직장인 현재의 홍보실 입사 시험에서 나는 글씨의 덕을 좀 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군대생활 중 아주 일부분은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명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반듯반듯하게 정자로 쓴 글씨,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연필이나 볼펜으로 흘려 쓸 때 펜이나 플러스 펜처럼 획이 굵고 진하게 쓰이는 도구로 쓴 글씨는 분명히 눈에 띄었을 것이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요직의 관리를 뽑을 때 네 가지를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바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 그것이다. ‘신’은 몸가짐을 말하는 것이고, ‘언’은 언변을 말하는 것이며, ‘서’는 글씨 즉 필적을 말하는 것이고(이때 ‘서’는 글씨뿐만 아니라 ‘독서’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판’은 판단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관리를 뽑으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언서판은 현대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취업을 하거나 승진을 하거나 배우자를 만나 상대방 부모님께 첫인사를 드릴 때도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아무튼 나는 이 네 가지 중 적어도 한 가지는 다른 사람에 견주어 좀 낫지 않나 싶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 덕분에 대학도 가고 일자리도 얻었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펜글씨 교본’이라는 게 크게 유행이었다. 취업을 하려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같은 것을 제출해야 하는데 자필로 쓰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니 글씨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펜글씨 교본과 펜을 사서 끙끙거리며 글씨 연습을 해야 했다. 그렇게 취업하여 사무원이 되고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된 분들이 이런저런 문서를 작성할 때 얼마나 깔끔하고 반듯하게 썼을지는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나는 펜과 잉크는 자주 샀지만 펜글씨 교본을 사본 적은 없다. 그냥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은 글씨를 열심히 따라 쓰고 시험 문제지에 적힌 글씨를 따라 배우고 교과서에 인쇄된 글씨(이를테면 명조체나 고딕체)를 따라 하고…. 그러면서도 내 나름대로 글씨를 만들어 나갔다. 그 시절 손에 익힌 글씨는 지금도 그대로이다.
요즘 주변 사람들 글씨를 보면 정성들여 쓴다는 생각을 별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남자 글씨는 지렁이 기어가는 듯하고 여자 글씨는 무조건 예쁘게만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자기가 써 놓고도 스스로 무슨 글자인지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깨알같이 써서 읽기 힘든 경우도 자주 본다. 글씨가 자신의 인격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것 같고 첨단 컴퓨터 시대에 웬 케케묵은 글씨타령이냐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천재는 악필(惡筆)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천재가 악필인지는 모르지만 악필이 곧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글씨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판서를 어찌나 정성들여 깔끔하게 하시던지 탄복할 정도였다. 나는 그 선생님의 글씨체를 흉내 내기 위해 애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도 마찬가지셨다. 그때는 시험 문제지를 선생님들께서 직접 손으로 써서 인쇄했기 때문에 글씨가 좋지 않은 선생님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선생님처럼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 즉, 국어 선생님의 글씨를 따라 하려고 했었다. 요즘도 선생님들은 글씨를 잘 쓰시지만, 학생들은 이미 워드프로세서에 길들여지고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있어서 글씨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이 태어나서 신언서판을 고루 잘 갖추면 아주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네 가지 중 가장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역시 ‘서’가 아닌가 싶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연습하면 글씨는 금방 고쳐진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다. 내 생각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적당한 때가 아닌가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경험도 그렇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게 조금씩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글씨를 제대로 다듬어 놓으면 기나긴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몇 번은 그 덕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3. 12. 26.
아들이 다니는 대아중학교 교지에 실은 글입니다. 중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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