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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수 없는 시간 담을 수 없는 시간 존경하는 조구호 선배님의 산문집 《담을 수 없는 시간》을 읽는다. 책 맨 앞에 “나무는 제 키만큼 그늘을 만들고, 새는 제 날개만큼 난다.”라고 써놓았다. 이 책의 내용과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한 말 같다. 즉, 우리 조 선배님의 성정과 인품을 우회적으로 잘 나타낸 말이라는 뜻이다. 선배님은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경상국립대학교와 진주교육대학교 등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나는 1986년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는데 그때 맺은 인연이 40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때 동문회 일을 함께했고, 은사님이신 신경득 교수님의 퇴임 문집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경상국립대학교 인문대학 동문회 자리 또는 아주 사적인 자리에서 가끔 뵙는다. 선배님은 늘 밝은 웃.. 2026. 9. 3.
모처럼 공부 아침 8시 서부도서관에 왔다. '노트북실'에는 벌써 3명이 와 있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노트북 전기를 꽂고 가방을 열어 공부 자료를 펼쳤다. 아득하기도 하지. 3시간가량 공부하면서 전화 한 통 받고, 화장실 세 번 갔다 오고, 그사이에 커피도 한 잔 마셨다. 공부는 핑계고 시원한 냉방기 바람을 찾아왔다고 하는 게 맞다. 내일 오전 3시간가량 "말, 글, 기사, 문장, 한글, 맞춤법, 표준어, 띄어쓰기,외래어, 외국어" 이런 말을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서너 달 동안 67쪽짜리 자료를 만들었다. 스스로 탐구하고 연구하여 만들었다기보다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를 짜깁기했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글 쓰는 일과 한두 달 떨어져 있었던 탓일까. 돌이켜보.. 2026. 8. 29.
<통영-4> 오전에 진주 갔다가 오후에 돌아왔다. 점심은 ‘시골집’에서 먹었다. 2021년 옛 경상대와 경남과기대가 통합한 뒤 옛 경남과기대 캠퍼스인 칠암동에서 4년 근무했다. 그때 참 자주 가던 점심 밥집이다. 할머니 혼자서 손님을 맞이한다. 반찬이 맛있다. 날마다 달걀이 나오고 고등어구이와 갈치구이가 번갈아 나온다. 둘이 함께 나올 때도 있다. 알맞게 잘 데친 호박잎이 나오는데 그 호박잎의 식감과 향기를 살려줄 된장이 따라 나온다. 멸치 볶음, 가지나물 등등 갖가지 집반찬들이 밥상을 가득 채운다. 배추김치는 대표 반찬이다. 노랑노랑 고소고소한 호박전은 냉장고에 시원한 막걸리가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참는다. 그렇게 차린 밥상을 앞에 놓고 보면, 숟가락 젓가락이 제 맘대로 내달리기도 하지만, 간혹 목울대가 따.. 2026. 8. 26.
오늘부터 1일 어쩌다가 배우자와 사별한 남자 셋, 여자 셋이 있다. 70년대에 미팅하고 결혼한 것으로 봐서 어느덧 70대에 이른 것 같다. 옛날로 치면 아주 늙은 사람으로 대접받았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그냥 나이 많은 사람, 어쩌면 ‘꽃중년’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여섯 사람이 미팅을 한다. 행복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용기 내어 참여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궁금하고 짜릿하다. 복지관에서는 그 사람의 본명 대신 ‘영희와 철수’, ‘선녀와 나무꾼’,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어 서먹함을 달래준다. 참 좋은 복지관이다. 짝지와 함께 3종 릴레이 경기를 하여 이기는 짝지에게는 제주도 여행권을 준다. 70대 선남선녀들은 과자 따 먹기, 코끼리 코 세 바퀴 돈 후에 신발 던져 받기, 마주 보고 빼빼로 과자.. 2026. 8. 22.
<통영-3> 달무리가 예쁘다. 통영시 인평동 어느 건물 위에서 구름을 살짝 비켜 서 있는 달무리는 아름답다. 운동장 한 바퀴 걷고 돌아오니 이번에는 구름이 달무리를 삼켰다. 달까 쓸까. 다시 한 바퀴 더 돌 시간 동안 달은 밝음과 환함을 되찾는다. 숨바꼭질 같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아프고 슬프다. 달무리가 지면 비가 온다는데, 마냥 예쁘게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8월 17일은 월요일이다. 광복절 대체휴일이다. 여느 월요일이었으면 나는 일요일 오후에 통영으로 왔을 것이고, 통영캠퍼스 숙소 앞 어느 지점에 차를 세웠을 것이고, 그러고서는 창 밖에 비가 오는지 전쟁이 나는지 모르고 월요일 아침 6시까지는 잤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내 목숨은 무사하였을 테지만, 내 자동차는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 2026. 8. 19.
<통영-2>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복돼지국밥’으로 향했다. 손님은 9명 있었다. 남녀가 마주 앉은 한 식탁을 빼고는 모두 소주병, 맥주병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혼자 앉은 손님도 좋은데이 반 병쯤 비우고 있었다. 고기와 순대가 섞여 나오는 국밥을 주문했다. 마음은 한없이 설레었다. 어떤 맛일까. 반찬은 어떻게 나올까. 국물은 어떠하고 고깃살은 어느 부위를 썼을까. 김치는, 깍두기는…. 잠시잠깐 동안 번져나가는 궁금증과 퍼덕거리는 상상의 날개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반찬이 먼저 나왔다. 별것 없었다. 마늘과 양파와 풋고추가 한 접시에 담겼고 새우젓갈이 보이고 다진 양념이 보였다. 부추 무침도 한자리하고 있다. 먼저 갖다 준 반찬통에는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함께 섞였다. 국물부터 떠먹어 보았다. 그러고서 새우젓,.. 2026.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