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33 제삿날의 짧은 생각 아버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됐다. 처음 몇 해는 제삿날 다가오면 우울하였다. ‘이제 좀 괜찮네’ 하는 마음이 생길 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슬픔과 그리움은 연장되었다. 제삿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며 제수 준비를 했다. 전 부치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은 조카가 사는 옥봉 본가 처마 밑에 전을 펼친다. 두부, 새우, 산적, 동태살 따위를 굽는다. 곁에서 형수가 거들어 준다. 주방에서는 아내가 재료를 미리 다듬어 준다. 손발이 척척 잘도 맞다. 술안주 겸 간식으로 부추전도 부친다. 올해는 양을 많이 줄였다. 간 보느라 부추전을 뜯어 먹다가 소주, 맥주를 마신다. 퍼질러 앉은 다리가 저리고 발가락에 쥐가 난다. 낮 동안 벌어질 온갖 가지 자질구레한 일이 걱정될 형제들을 위해 전 굽는 장면을 찍.. 2022. 8. 24. 꿩보다 닭 고사리를 좀 꺾고 싶었다. 아른아른 눈앞에 떠오르는 고사리를 어째볼까 싶던 터였다. 고사리는 당장 어떻게 해먹지는 못하더라도 잘 데쳐서 말려 놓으면 아버지 기일이나 추석에 요긴하게 쓰인다. 아버지 산소 아래 손바닥만한 언덕배기에 고사리가 모른 체하기엔 좀 많고 작정하고 달려들기엔 한심한 정도로 적게 돋아난다. 한번에 많이 모을 수 없으니 주말마다 신경써야 한다. 이맘때부터 5월말까지 주말마다 되도록 달려가는데 열심히 꺾어 모으면 제삿상에 올릴 만큼은 된다. 일요일 아침 꿈자리에서 벗어나니 6시 30분이다. 출근하는 날인 줄 알고 ‘지각’을 떠올렸다. 몸이 뻣뻣해졌다. 그러다가 ‘아차, 일요일이구나!’ 휴~ 한숨을 내쉰다. 뜻뜻한 등짝을 미련없이 털고 일어났다. 옷 입고 차를 몰았다. 아버지 산소까지 20.. 2020. 4. 26. 녹차씨 아버지 산소에 가서 녹차씨를 주워 왔다. 2011년 겨울에 심은 녹차나무가 제법 많은 씨를 흩어놓았다. 겨울 추위에 얼어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봄 가뭄에 말라 죽을 뻔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꿋꿋이 살아남은 녹차나무들이다. 크지 않는 녹차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한 알 한 알 씨를 주웠다. 손가락 끝이 마비될 정도로 시렸고 허리는 욱신거렸으며 장딴지와 허벅지도 쥐가 내릴 정도로 아팠다. 1시간 동안 열심히 주웠다. 어떤 건 씨알이 제법 굵고 어떤 건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중 몇몇은 지난해 떨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씨앗들의 부모는 우리 아버지 산소를 지키고 있고, 조부모는 다솔사 와불 등을 긁어주고 있다. 몇몇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몇몇은 의령으로 날아갈 것이다. 긴 인연이 또 시작.. 2020. 2. 2. 연휴 계획 실천하기 내 사랑 극단 큰들이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마당극 상설공연을 시작한다는데 안 가 볼 수 있나? 동의보감촌에서 올해 3년째 상설공연을 하는데, 그동안은 산청군 지원으로 공연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2019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단다. 즉 지방정부에서.. 2019. 5. 5. 시시한 역사, 아버지 2012년 9월 12일 돌아가신 아버지는 1936년생이다. 어머니와 1961년 결혼하셨다. 군대 있다가 휴가 나오라고 해서 나왔더니 결혼시키더라고 했다. 큰형이 63년생, 작은형이 65년생, 나는 67년생, 동생은 70년생이다. 광복되던 해에 아버지는 9살이었고 한국전쟁 때 14살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2019. 1. 13. 생일 아침입니다 생일 아침입니다. 첫 울음과 함께 세상의 빛을 처음 본 날이지요. 제 생일은 음력으로 새깁니다. 오늘은 음력 10월 20일입니다. 올해 생일은 절기로 대설입니다. 설(눈)도 넓게 보면 ‘우기’에 해당합니다. 양력으로 따져보면 대체로 11월 중순에서 12월 초순으로 왔다 갔다 합니다. ‘세상.. 2017. 12. 7.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