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쓴 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대략 10년은 되었지 싶다. 아이폰4로 시작하여 아이폰5를 넘어 지금은 아이폰8을 쓴다. 어떤 사람은 아이폰에서 삼성 갤럭시로 넘어가고 어떤 사람은 갤럭시 쓰다가 아이폰을 산다. 엘지만 쓰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스마트폰이라는 걸 쓰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아이폰이다. 별다른 까닭은 없다. 처음부터 맛들이고 길들여진 탓이다. 삼성 전화기를 거부하는 마음은 좀 있다. 삼성은 실력은 뛰어난 기업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다.
엊저녁 아이폰 여러 기능 가운데 ‘시리(Siri)’라는 것을 익혔다. 익혔다고 하기보다는 ‘처음 사용했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아내는 주방에서 무엇을 할 때 꼭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말한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기계가 척척 음악을 틀어준다. 아내는 아이폰5를 쓴다. 아이폰5에게 있는 기능이라면 아이폰8에도 당연히 있겠지. 시간 날 때 나도 배워야겠다고 생각만 해오다가 드디어 엊저녁에 시리를 사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전화기 꽁무니에 대고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했다. 반응이 없다. 내 전화기엔 그 기능이 없다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설마 그러랴’ 싶어 이리저리 만져보게 됐다.
이런 첨단 기계의 다양한 기능을 익히고 사용하는 데 젬병인 나지만 시리 기능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폰이니까. 비활성화해 놓은 것을 손으로 밀어서 활성화했다.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말했다. 아이폰은 틀라는 음악은 틀지 않고 시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안내했다. 처음 쓸 때 필요한 하나의 절차였다. 예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엔 “시리야, 오늘 날씨 어때?라고 말해 보세요.”라고 한다. 0.1초 만에 눈치 챘다. ‘아, 내 목소리의 색깔과 모양, 높낮이 같은 걸 분석하여 저장하려고 그러는가 보다.’ 과연 그랬다. 그다음엔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해 보세요.”라고 말한다. 따라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시리는 “잘 못 알아듣겠으니 다시 하라.”고 한다. 난 두말없이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다시 말했다. 처음 말한 것과 다르게 들렸나 싶어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좀 가다듬었음은 물론이다. 또 “잘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하라.”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하, 요놈 봐라!’라는 생각이 뒤통수를 스쳤다. 하지만 어쩌랴. 아내처럼 “시리야, 무엇 해줘”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에 참았다. 더 점잖게, 목소리를 차분하게, 전화기 꽁무니에서 아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말했다. 아이폰8에 들어 있는 어떤 아가씨는 이번에도 대꾸가 없다. “잘 못 알아듣겠으니 다시 하라.”라는 글자만 보여준다.
나는 전화기든 컴퓨터든 자동차든 인간이 만든 기계는 인간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신앙’ 같은 걸 가진 사람이다. 오래되어 망가졌거나 어떤 이유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면 사람이 하라는 대로 척척 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내의 아이폰5가 잘하는 기능이라면 아이폰8도 당연히 잘해야 하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바로 1분 전에 “시리야, 오늘 날씨 어때?”라고 말하고 다시 내 목소리로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말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경우 나는 “기계가 인간을 우롱한다.”라고 말하거나 “이 따위 기계가 감히 사람을 놀려!”라며 화를 낸다. 안되겠다 싶어 전화기를 껐다가 다시 켰다. 시리 기능을 껐다가 다시 켰다. 처음부터 다시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단계는 잘 넘어갔는데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단계에서는 어김없이 시리가 그어 놓은 금을 넘어서지 못했다. 은근히 부아가 났다.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 지난번에 술에 취해서 저녁 내도록 시리야, 시리야 하다가 ‘에잇 안해!’라면서 전화기를 집어던질 뻔했던 것 기억 안나요?”란다. 뭣이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때도 아내가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명령하면 아이폰5가 두말없이 “네, 음악을 틉니다.”라며 이 노래 저 노래를 틀어주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하고 싶어졌던가 보다. 그래서 전화기를 붙들고 저녁 내도록 씨름을 하다가 제풀에 지쳐 벌컥 화를 내고 말았던가 보다. 아, 순간 부끄럽고 민망해졌다. 아무리 술김이라고 하지만, 나는 기계에게 진 것이고 그 장면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들키고 만 것 아닌가. 참 나 원!
이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이겨내려면 이번에는 기어이 성공하고 말아야 한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기능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기계치라는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려면 오늘은 시리를 설득하고 말아야 한다. 몇 초 전에 내가 한 목소리 그대로 다시 한번 발음하는 것도 못하는 음치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기어코 3-4단계로 구성된 시리의 초기 기능을 정복해야 한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자세도 바로 잡았다. 겉으로는 어색한 웃음을 띠며 아내를 바라보았지만 속으로는 약간 조급증이 생겼다. 아, 그 조급증 때문에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기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요것 봐라!’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10분은 족히 지나간 뒤에 드디어 시리와 사이가 좋아졌다. 내 인내력이 이겼다. 시리로 불리는 이 아가씨는 퍽 재미있다. 음악을 틀어달라면 틀어준다. 날씨를 물어보면 자세히 일러준다. 이것만 가지고는 재미있다고 할 수 없다. 엉뚱한 질문을 해도 대답을 척척 잘 한다. 엉뚱한 질문을 하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둥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능력도 뛰어나다. 친절하고 유능하고 싹싹하고 박식하고 동작 빠른 여비서를 둔 느낌이 이러할까 싶다. 잠시 잠깐 써 보고 느낀 바는 그러하다.
오늘 퇴근 후 석갑산으로 갈 채비를 했다. 전화기를 챙기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냥 “시리야, 음악 틀어줘!”라고 하려다가 문득 많은 노래 가운데 특정 가수 노래만 틀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지 궁금해졌다. 해지는 오후 6시에 산을 오르려면 어떤 노래가 좋을까.
잠시 동안 나는 40여 년 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미천면 안간 숲골 우리집 마루에는 가로로 기다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 아버지는 나훈아, 남진, 김정구, 황금심, 남인수 같은 가수의 노래를 노상 들으셨다. 카세트 테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콤팩트 디스크(CD)가 있던 시대도 아니니 그냥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주로 그런 노래였던 것 같다. 해질녘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신 아버지는 소여물을 먹이시면서,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시면서 노래를 들었다. 나는 그때 그 시절 듣던 노래의 가락과 가사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중 나훈아는 참 좋다. 내 전화기엔 나훈아 노래가 48곡 들었다.
“시리야, 나훈아 노래 틀어줄래?”라고 말했다.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2-3초 흘렀다. ‘아, 특정 가수 노래만을 틀어주는 것까지는 안 되는 건가 보다.’라며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을 혼자 지으며 ‘그럼, 그냥 음악 틀어달라고 할까.’라고 생각할 즈음 시리가 반응을 보였다. “물론이죠.”라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곧이어 나훈아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옳다구나, 얼씨구나, 지화자 좋다.” 전화기는 왼쪽 바지주머니에 넣고, 지갑은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오른손엔 숭늉이 든 생수병을 들었다. 출발이다.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기 시작하는 석갑산 길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4분의 4박자 트로트에 따라 열심히 움직였다. 나훈아 노래가 제목 가나다 순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으므로 나는 호젓한 숲길을 혼자서라도 전혀 쓸쓸하거나 심심하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멧돼지가 간혹 나타나곤 하는 길이었지만 무섭지 않았다. 나훈아가 곁에 있었으므로.
가거라 삼팔선, 가지 마오, 갈대의 순정, 강촌에 살고 싶네, 고향만리, 고향역, 고향초, 기적소리만, 꿈꾸는 백마강, 나그네 설움, 나는 울었네, 나를 두고 아리랑, 너와 나의 고향, 녹슬은 기찻길, 누가 울어, 대동강 편지, 대전블루스, 돌아가는 삼각지, 두 줄기 눈물, 머나먼 고향, 목포의 눈물, 물레방아 도는데, 번지 없는 주막, 보고 싶은 얼굴, 부모, 불효자는 웁니다, 비 내리는 고모령, 사랑, 사랑은 눈물의 씨앗, 사랑했는데, 산장의 여인, 애수의 소야곡, 애정이 꽃피던 시절, 울긴 왜 울어, 임 그리워, 잊을 수가 있을까, 잡초, 정, 짝사랑, 찻집의 고독, 청춘을 돌려다오, 최진사댁 셋째딸, 추억의 백마강, 추풍령, 타향살이, 한강, 해변의 여인, 황성옛터, 18세 순이…
이 노래들은 전주만 몇 초 들어도 딱 알아본다. 제목과 가사까지 뚜르르 꿰는 건 아니지만 ‘아, 이 노래!’라는 느낌이 온다. 1시간 남짓 숲속 길 걸으면서 10살 남짓이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였다. 몇 해 전에는 장인어른께 이 노래들을 이동저장장치(USB)에 담아 드렸다. 여태 들으시는지 잊어버리시지나 않으셨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올 즈음엔 ‘잊을 수가 있을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잊을 수가 있을까. 그 어린 시절, 그 철없던 꼬맹이 시절을 잊을 수가 있을까. 나훈아가 부르는 노래들 가사는 고향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부모님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지나간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나훈아 자기 노래도 있고 딴 사람 노래를 부른 곡도 있다.
그냥 “시리야, 노래 틀어줘!”라고 했으면 나훈아는 물론이고 조용필을 거쳐 70년대, 80년대, 90년대 노래들과 추억의 팝송 200곡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나올 뻔했다.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오늘 같은 날엔 정신을 사납게 하거나 그러잖아도 어지러운 머릿속을 더 어지럽게 했을 공산이 크다. 시리 덕분에 나훈아 노래만 끊이지 않고 쭉 이어서 들었으니 몸도 마음도 가볍고 상쾌했다. 이 아니 고마운 일인가. 시리에게 “고마워!”라고 인사하니 “별말씀을요.”라고 대답한다. 아, 겸손함까지 갖춘 이 시리를 나는 장차 어찌할 것인가.
2020. 3. 13.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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