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대여섯 시쯤 뒷동산에 오른다. 도심엔 햇볕이 쨍쨍한 시간이지만 산속은 서늘하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편백숲이어서 더욱 그렇다. 퇴근 후 별다른 약속이 없고 비가 오지 않으면 석갑산은 나들잇길로 제격이다. 운동화 갈아 신고 모자 눌러 쓰고 색안경 걸쳐 끼고 작은 물병 하나 들고 길을 나선다. 꼭 한 시간이면 된다.
오월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유월 들어서 달라진 게 있다. 바로 숲 속에 사는 날것들이 나를 따르는 것이다. 숲으로 들어서면 까만 점 하나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부쩍 나빠진 시력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가 싶다. 눈 안에 티끌이 들어갔는가 싶다. 눈을 몇 번 깜빡여본다.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점은, 내 눈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눈앞’에 있는 그 무엇이다.
하루살이인지 모기인지 파리인지 나방인지 알 리 없다. 크기로 봐서는 나방은 아니다. 나방은 탈락. 엥~하는 특유의 소리를 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모기도 아는 것 같다. 게다가 목덜미나 팔뚝이나 노출된 곳이 많은데도 물지도 않는다. 모기도 탈락. 파리는 더욱 아니다. 크기도 그렇고 날갯짓 소리도 그렇다. 파리도 탈락. 남은 건 하루살이뿐이다.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모양새가 하루살이라고 보는 게 딱 맞겠다. 날아다니는 범위가 넓지 않다. 얼굴 왼쪽에서 오른쪽까지다. 눈알을 돌리지 않아도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마 높이에서 턱까지다. 역시 눈을 치뜨지 않아도 다 보인다. 날아다닌다기보다 ‘알짱댄다’는 게 알맞은 설명이다.
처음 이놈이 눈에 띄면 왼손으로 휘젓고 만다. 저리 가거라 하는 손짓이다. 내 손에 부딪혔는지 아닌지 모른다. 그게 느껴질 정도면 나방이나 파리다. 눈앞에서 사라졌던 하루살이는 몇 초간 두세 걸음 걸을 동안 다시 나타난다. 저리 가기 싫은 것이다. 다시 손을 내젓는다. 손을 젓다가 모자를 친다. 모자가 삐뚤어진다. 손을 휘젓다가 안경을 때리기도 한다. 안경이 떨어지기도 한다. 속으로 ‘끙~!’ 한다. 하루살이는 다시 나타난다.
처음 만난 놈과 두 번째, 세 번째 만나는 놈이 같은 놈인지 다른 놈인지 알 수 없다. 크기와 색깔과 모양을 가늠할 수 없으니 이놈이 그놈 같고 그놈이 저놈 같다. 서너 번 손사래를 치다가 생각을 바꾼다. 이번엔 아예 붙잡아서 짓이겨버려야지 생각한다. 그런 내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놈은 다시 나타난다. 손을 동그랗게 감아쥐고 잽싸게 덮친다. 놓쳤다.
짜증이라는 감정이 저 밑바닥에서 아주 천천히 밀려 올라온다. 산속 길은 점점 가팔라져 오고 덩달아 숨도 가빠지는데 한낱 미물일 뿐인 하루살이와 다투느라 라디오 음악도 놓치고 하던 생각도 놓치고, 무엇보다 상쾌하던 기분도 잡쳐버렸다. 요번에 나타나면 기필코 잡아내고 말리라, 다짐한다.
그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살이는 또 나타난다. 까만 작은 점이 눈앞에서 오락가락한다. 눈 속으로 파고들려고도 한다. 그놈이 돌진하려는 곳이 검은색 안경인지 그 안에 빛나고 있는 눈동자인지 알 길이 없다. 안경을 벗어 모자에 얹는다. 그럼 안경을 따라가겠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루살이가 노리는 목표지점은 내 눈동자이다. 그렇게 손사래를 치고 손바닥을 휘젓고 손그물을 던지고 해도 아랑곳없이 내 눈을 향하여 달려든다. 모자 위 검은색 안경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 듯하다, 눈이 있다면. 가미카제 특공대가 따로 없다. 부나방이 불을 향하여 맹목적으로 돌진하듯이 내 눈동자를 향하여 찰거머리같이 달려드는 하루살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산꼭대기에 올라 심호흡을 한다. 등에 땀이 제법 촉촉하다. 바람은 시원하고 보드랍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산속은 아직 봄이다. 어쩌면 가을 같기도 하다. 꼭대기엔 하늘이 뻥 뚫려 있어서 햇살이 내려앉는다. 음습함이 사라진 꼭대기엔 하루살이들이 살지 못하는가 보다. 잠시 동안 여유를 갖는다. 하루살이와 다툴 일이 없다. 다시 내려갈 시간이다.
등산로 초입부터 곳곳에 웅크리고 나를 기다리는 복병들이 하산길에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잠시 방심한 사이에 한놈이 눈동자에 달라붙었다. 저돌적으로 달려든 끝에 드디어 제 딴에는 목표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내 눈동자의 끈적거림에 달라붙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루살이는 그런 신세가 되었지만 나는 어떻게 되었는가. 눈알이 좀 따갑다. 머덜머덜거린다. 기분 더럽다. 한동안 눈을 비비고 나서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몇 발짝 걷다가 눈앞을 알짱대는 놈을 또 만난다. 도대체 몇 놈이야. 이번엔 작전을 바꾼다.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심호흡을 한다. 온 정신을 집중한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다짐한다. 두 손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람이 조금도 미동하지 않도록 매우 천천히 올린다. 눈앞에 물건은 제 앞에 닥쳐오는 운명도 모른 채 아등바등 날아댄다. 두 손은 얼굴 가까이까지 왔다. 그 순간, 나는 손뼉을 쳤다. 월드컵 응원할 때보다 더 힘차게, 극단 큰들 공연 볼 때보다 더 경쾌하게 ‘짝!’ 하고 두 손을 마주쳤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잡은 것 같다.
손바닥을 폈다. 조그마한 점 하나가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 붙어 있다. 그 와중에 잽싸게 달아나려다가 용케 손가락 사이에 걸린 것이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지 않나. 요따위 미물을 잡느라고 그렇게 정신을 집중했건만 그걸 놓칠 뻔하다니…. 화가 났다.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던 짜증을 겨우 내리눌러 놓았는데 그것까지 한꺼번에 다시 올라온다. 에잇! 그놈을 짓이겨버린다. 손가락 틈이라서 잘 안된다. 왼손을 동원한다. 이미 고혼이 되어버린, 가장 찬란하고 뜨겁게 하루를 마감한 하루살이를 두 번 세 번 죽인다. 그런 행동을 누군가 지나가다가 보았더라면 필시 정신병원에 신고라고 했을 것이다.
이놈을 죽이면서, 아까 올라올 때 달려들던 몇 놈뿐만 아니라 어제 만난 놈, 그제 만난 놈, 그저께 만난 놈, 지난주 만난 놈, 지난달 만난 놈, 지난해 만난 놈들에게 갖고 있던 짜증과 분노와 싫증을 모두 쏟아부었다. 제깐 놈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제 동족이 저지른 잘못을 대신 갚는다고 생각하라고 할 수밖에 더 있겠나. 속이 좀 시원해졌는가, 기분이 좀 좋아졌는가, 마음이 좀 부드러워졌는가? 아니다.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내 뒷골을 때렸기 때문이다.
그래, 이처럼 보잘것없고 하잘것없고 쓸데없는 미물에게조차 이렇게 분노에 찬 복수를 하는데, 그래, 내 삶과 내 가족의 삶과 우리 이웃의 삶과 우리 겨레의 삶을 무너뜨리고 부수고 뭉개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어느 정도였던가 싶어진 것이다. 우리의 삶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박해하고 망가뜨린 자들에게는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치밀하게 복수해줬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겨레를 팔아먹은 앞잡이들과 그의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분노하였던가. 군사독재 시절 민주나 자유라는 말만 꺼내도 잡아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던 자들에 대한 분노는 얼마나 컸던가. 권력을 쥐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댓글 공작을 하게 하고,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애매하고 모호하게 언론사 사주를 쫓아내고, 권력에서 물러나서는 아무 잘못이 없노라 강변하는 자들에 대해 얼마만 한 분노의 화살을 쏘았던가.
재벌의 아들, 딸로 태어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준 것도 증명한 것도 없이 거대 기업을 공짜로 집어삼키기 위해 온갖 협잡과 음모를 꾸민 자칭 타칭 재벌 2세, 3세들에게 나는 내가 가진 분노의 깊이와 높이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여주었던가. 자식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한 뒤 기한 없는 단식을 하는 부모 앞에서 이른바 폭식투쟁을 하는 거머리 같은 놈들을 얼마나 분노하고 증오했던가 되돌아본다.
이런 자들은 하루살이가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에 비할 수 없이 큰 죄를 지었으니 손사래를 치고 말거나 손을 휘젓고 말 정도가 아니다. 양손을 마주쳐 잡아낼 정도도 물론 아니다. 그들에게 보여줘야 할 분노는 역사적 분노이고 이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복수는 민족적 복수라야 한다. 정의와 원칙과 상식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데 걸리적거리는 것들일랑 죄다 쓸어버려야 한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깨끗하게. 우리 몸속에 들어앉아 똬리를 틀고 있는 정의로운 분노는 마땅히 이런 곳에서 그 힘을 발휘해야 한다. 한낱 하루살이와도 온 정신을 다하여 싸우는데, 저 크고도 오랜 악의 축과의 싸움임에랴.
2018. 6. 8.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의 해석 2 (0) | 2018.07.20 |
---|---|
꿈의 해석 (0) | 2018.07.19 |
이우기(李佑基) 아형(雅兄) 자설(字說) (0) | 2018.05.21 |
안과에 갔다 (0) | 2018.05.12 |
몸에 좋은 것 (0) | 2018.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