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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조준구는 몇 번 넘어지는가

by 이우기, yiwoogi 2020. 6. 28.

어울림 결의

 

5월 30일 산청군 동의보감촌에서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이 열렸다. 극단 큰들이 새롭게 창단한 2팀이 처음 공연하는 날이었다. 같지만 완전히 다른 <오작교 아리랑>을 보면서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이날 공연을 함께 본 경상대 직원 셋이 진주시 평거동 ‘어울림’에 모였다. 원래 같이 가려다가 사정상 못 간 한 명이 합류했다. 넷이 막걸리 몇 잔에 파전 안주로 즐거움을 이어갔다.

 

‘어울림’ 주인이 한국방송공사(KBS) <동네 한 바퀴>라는 방송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평거동 일대를 이틀 동안 촬영해 갔는데 6월 27일 토요일 저녁에 방송된다고 했다. 우리는 참 신기한 일도 다 있다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내가 제안했다. 6월 27일 토요일엔 하동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공연하는 날인데, 넷이 함께 공연을 본 뒤 다시 ‘어울림’에 모여서 막걸리도 마시고 <동네 한 바퀴>도 보자고 말했다. 모두 찬성했다. 주인장은 그날 다시 모이면 막걸리는 공짜로 주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다. ‘어울림 결의’다.

 

드디어 토요일이 왔다. 나는 금요일 저녁 거제에 가서 형님, 동생과 함께 실로 처음으로 4형제만의 술자리를 즐겼다. 태어나서 철들고 아버지와 함께, 또는 어머니와 함께, 또는 형수ㆍ제수 씨와 함께, 또는 조카들과 함께 밥 먹고 술 마신 일은 많아도 오로지 아들 넷만 모이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막내 동생의 제안으로 우리는 거제를 찾았다. 만나 마주보고 술 마시는 게 뭐 대수인가. 이날을 기다리는 마음, 거제로 달려가는 마음, 그저 이렇게 마주앉았다는 그것 때문에 설레고 두근거렸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4형제만 한 자리에 모여 한잔했다. 거제 성포 횟집에서 만난 이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형님, 동생 모두 건강하기를 빈다. 

토요일이 되기 전에 함께 하동으로 가기로 한 나머지 세 명과 카톡 대화를 나누었는데 미정은 확정이 아니었던 탓에 두 명은 함께 가기 어렵게 됐다. 결국 나와 친구 한 명, 이렇게 둘만 출발했다. 거제에서 해장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형제들이 헤어졌다. 진주로 오고 보니 약속 시간 11시가 한참 남았다. 급히 사무실 가서 몇 가지 일 처리하면서 시간을 맞추었다. 출발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세상 이야기, 학교 이야기, 큰들 이야기 들을 두서 없이 나누었다. 마당극 보러 가는 길은 마음이 들뜨고 설레는 것이어서 이야기에 늘 질서가 없다.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다. 금요일 제법 마신 탓에 제대로 된 해장이 절실했다. 친구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검색하더니 하동읍내에 있는 재첩국집을 찾아냈다. 길도우미(네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찾아간 집에는 손님이 많았다. 알고 보니 <맛있는 녀석들>에 나온 집이었던 것이다. 유민상, 김준현, 김민경, 문세윤의 사인이 벽에 붙어 있다.

 

재첩국이 맛있는 하동

 

머리카락을 예쁘게 염색한 젊은 여성이 카메라를 메고 들어와 재첩국을 시켜 사진을 찍었다. 무슨 동호회 회원인 듯한 대여섯 명도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고 밥을 먹었다. 부근 공사 현장에서 온 듯한 네 사람은 소주부터 시킨다. 나이 지긋한 부부도 들어와서 앉는다. 할머니, 부모, 손자 3대 가족도 온다. 맛집이 맞는가 보다. 우리는 재첩회덮밥과 재첩전을 시켰는데 결국 전을 조금 남겼다. 갖가지 반찬이 맛있었지만 다 먹을 수는 없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시 길을 나섰다. 마당극 공연 보러 다니는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는 것 아닌가.

 

<최참판댁 경사 났네> 공연장에 도착하니 시간이 여유롭다. 몸에 열이 있는지 재고 손 소독을 했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이전보다 한층 더 야무지게 챙긴다. 공연장 주변으로는 줄을 쳤다. 공연장 찾는 모든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살뜰히 챙기는 것이다. 심지어 화장실 갔다 오느라 잠시 나갔다 오면 다시 손 소독을 하란다. 그러자니 배우 말고도 극단 가족이 너댓 명 더 왔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안전하고 쾌적하게 공연을 보는 것이다.

 

후배 부부를 위한 공연

 

공연장에는 학교 후배 김동창, 성선희 가족도 찾아왔다. 부부가 모두 경상대 개척자 교지편집 기자 출신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을 보고 한 번은 가 보고 싶다고 하던 후배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는데 역시 가족 나들이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처음 공연 보러 온 후배 가족들에게 나는 한가운데 앞 자리를 권했다. 배우들의 숨소리가 잘 들리고 흘러내리는 땅방울까지 잘 보이는 곳이라야 마당극을 제대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희의 결혼 장면에서 남자 후배가 갑자기 신랑이 됐다. 그의 어머니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그의 아내는 그 장면을 놓칠세라 스마트폰에 저장하기 바빴다. 이 후배는 나중에 독립군 최고의 명사수 ‘등등동지’로 다시 등장했다. 당황한 듯 어색한 듯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후배를 보고는 나도 정신 없이 웃었다. 독립군 김길상이 검은 가방을 들고 와서 묘령의 여성에게 가방을 맡기는 장면에서는 앞줄에 앉은 여자 후배가 당첨됐다. 그러니까 이들 부부는 처음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러 와서 관객 배우가 되는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공연 끝난 뒤 나는 그들에게 “오늘 공연은 너희를 위한 공연이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공연 관람을 마친 뒤 후배 부부는 어머니 모시고 최참판댁 안채를 보러 자리를 옮겼다. 

 

독립군 가방을 숨겨준 공로로 김길상과 악수하는 후배 성선희. 실제로는 악수를 하지 않고 팔꿈치를 부딪는 인사를 한다.

우리는 다시 ‘어울림’에 모였다. <동네 한 바퀴>를 보기 위해서이다. 지난번에 ‘어울림 결의’를 했던 한 명은 빠지고 다른 한 명이 합류하여 역시 네 명이 되었다. 그런데 ‘어울림’ 주인의 말은 좀 서운했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울림’ 촬영분은 방송 끝나는 부분에 30초 정도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이 집이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인장 인터뷰도 나오고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도 보게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대가 어긋나게 됐다. 더구나 7시 10분에 시작하는 방송에서 맨 마지막에 나온다면 거의 8시는 다 되어야겠는데 우리는 5시도 되기 전에 막걸리 잔을 따르고 있었으니 뭔가 잘 안 맞는 것이었다.

 

<동네 한 바퀴>에는 어머니가 자주 가시는 진주경로당이 나왔다. 안면 있는 할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아래 사진은 우리 어머니다. 어쩌다 출연했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방송 나올 거라고 일언반구도 없었더랬다. 아무튼 귀한 사진이다. 

막걸리 4병과 소주 1병을 비우고 일어섰다. 옆집으로 옮기기로 했던 것이다. 주인장은 막걸리와 고갈비 안주 값을 받지 않았다. ‘어울림’에는 다음에 한번 더 가기로 했다. ‘지리산 찹쌀 홍화 동동주’는 시원하고 맛있긴 한데, 막걸리 한두 잔 먹은 뒤에 마시기엔 별로다. 금방 술이 취한다. 집에 온 것이 8시도 되지 않은 듯한데 대충 씻고 곯아떨어졌다. 새벽 3시 30분쯤 눈을 떴다. 냉장고에서 물 한 잔 꺼내 마시고 다시 잤다. 4시쯤엔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지리산’에서 남겨 놓고 온 가오리찜이 생각났다. 날 새기를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올해 일곱 번째 하동 나들이

 

6월 28일 일요일엔 오전 11시에 공연을 할 것이었으므로 나는 집에서 9시에 출발했다. 10시엔 도착해야 할 것 같아서이다. 평소답지 않게 속도를 내었다. 최참판댁 입장료를 지불하고 받은 관람권에는 09시 59분 50초가 찍혔다. 오늘 지나면 9월에나 오게 될 최참판댁 곳곳을 돌아다니며 꽃과 들판과 나무를 좀 찍었다. 여유로운 관광객들이 느릿느릿 오고 간다. 별당, 사랑채에 올라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이한다. 나는 올 상반기에 하동 공연을 일곱 번 보게 되었다.

 

이날 오전 11-12시 사이 경남 하동군 악양면의 기온은 섭씨 31도였다. 악양면 중에서 평사리 상평마을 최참판댁은 조금 높은 곳이니 30도쯤 되었을 것이다. 이 정도 날씨면 그늘이 없는 햇볕 아래에는 서 있지 못한다. 이 땡볕 아래서 두루마기 입고 치마 저고리 입고 공연을 한다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울 것이다. 마당에 깔아 놓은 검은 천에 손을 대어 보니 뜨겁다. 그냥 뜨거운 게 아니라 ‘매우’ 뜨겁다. ‘엄청’ 뜨겁다. 달걀을 풀면 금방 익어버릴 것 같다. 배우들은 그 위에서 앉고 뛰고 구를 것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뜨겁고 더워 미칠 지경인데 그 속에서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고 춤춰야 한다.

 

정말 신명 없이는, 사명감 없이는 못 해낼 고역이다. 배우들은 관객들의 박수 소리, 웃음 소리에 기운을 받으면 더위도 잊고 추위도 잊는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그나마 정말 다행인 것은 형제봉 쪽에서 더위를 아주 조금 식혀줄 바람이 이따금 불어 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시작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흠잡을 데 없이 이어지고 연결되고 흘러갔다.

 

공연 끝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악양초등학교 4학년 박가온 어린이. 떨지 않고 침착하게 참 잘했다. 

오늘은 어린 최서희 역할이 바뀌었다. 악양초등학교 박채린 학생이 있었는데 어느새 김연아 학생으로 바뀌었고 오늘은 박가온 학생이 등장했다. 4학년 학생이라는데 당차고 씩씩하게 연기를 해냈다. 큰들 페이스북에 따르면, 7번째 어린 서희라고 한다. 큰들은 페이스북에서 “2010년 전지원 학생을 시작으로 전새별 학생, 오은별 학생, 배주영 학생, 최선 학생, 박채린 학생, 김연아 학생, 박가온 학생까지 역대 어린 서희를 연기한 학생들의 이름이다. 보통 1-2년 정도를 함께 공연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어린 서희들 중에는 큰들 단원의 자녀도 있고 악양초등학교 학생들이 많다. 오늘 7대 어린 서희! 박가온 학생이 첫 공연을 잘 끝냈다! 어린 서희의 연기가 궁금하시다면 다음 최참판댁 공연에서 만나요!”라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일어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이 실장!” 이게 누구신가. 7-8년 전 경상대 대외협력과장을 역임하신 노규범 과장님과 사모님이시다. 과장님은 내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큰들 공연 관련 글을 몇 번 보시고는 ‘한번 보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해 오셨다. 어제 토요일 아침에는 직접 통화까지 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시간 한 번 내어보시겠다고 하셨다. 토요일엔 오시지 않았다. 일요일 공연 때도 시작할 때까지 모습이 보이지 않아 못 오시나 보다 여겼다.

 

노규범 과장님과 만남

 

과장님은 5분 정도 늦게 당도하신 모양이다. 발열 재는 데서 “이우기 씨 왔느냐?”라고 물으니 극단 큰들 단원들이 내가 앉은 자리를 가리켜 주었던가 보다. 과장님은 내 뒤에서 공연을 보셨다. 경상대 근무하시다 발령 받아 부경대로 가신 뒤 이따금 통화하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안부를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다.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지금은 정년퇴직하셨는데, 현직일 때보다 더 바쁘게 사시나 보다. 여전히 밝고 건강하고 멋지시다.

 

우리는 내 단골 가게인 ‘사랑채’로 갔다. 비빔밥을 시켰다. 막걸리가 간절했으나 참아야 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반드시 회포를 풀기로 하고 헤어졌다. 과장님과 사모님은 구례 쪽으로 가서 남원을 거쳐 함양에 가신다고 했다. 나는 다시 진주로 돌아왔다. 어제, 오늘 마당극 구경한 감상문을 쓰기 위해서다. 감상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주말을 맞아 술 마시고 돌아다니고 마당극 구경한 이야기다. 진주로 와서 보니,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사진 한 장도 안 찍고 헤어졌구나 싶어졌다.

 

과장님과 사모님은 극단 큰들의 마당극 공연을 처음 보셨다. 공연 보러 오실 때까지는 그렇게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듯했다. 공연 마치고 식당으로 가는 길에 이 두 분은 마당극 작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지방에 있는 작은, 아마추어 극단인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정말 정말 대단하다. 다음에 또 보러 와야겠다. 이 실장 덕분에 좋은 공연을 소개 받았다.”라는 게 두 분 말씀의 요지다. 나는 오늘로서 88번째 공연을 보았다고 하니 “열정이 대단하다.”라고 칭찬하신다.

 

과장님과 사모님이 보시기엔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특히 조준구의 연기가 눈에 들어왔던가 보다. 악역 조준구가 정말 나쁜 사람답게 열심히 연기한 게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일제강점기 이전의 최참판댁 이런저런 이야기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크게 나누어 본다면, 둘 다 조준구가 없이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게 돼 있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한편으로 보면 최씨 집안의 몰락과 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몰락과 재기의 과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조준구의 변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참판댁과 조준구

 

조준구는 마을 사람들이 농사 지으며 평화롭게 살던 어느날 등장한다. 그는 하인 삼월이를 눈여겨본다. 어린 서희를 농락하여 곳간 열쇠를 뺏어 자기 재물인 양 펑펑 써댄다. 만석지기 살림을 가로챈 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눈을 돌린다. 이른바 글로벌 채굴 사업. 그러나 금광에 손을 댔다가 뭐가 잘못돼 쫄딱 망한다. 그의 아내 홍씨는 빈 깡통을 냅다 찬다. ‘깡통을 찬다’는 말은 알거지가 됐다는 말이다. 알고 보니 조준구의 재산을 가로챈 사람은 다름 아니라 서희다. 서희가 길상과 작전을 잘 짠 것이다.

 

조준구와 그의 아내 홍씨의 등장으로 최참판댁에 먹구름이 낀다. 

알거지 중 상거지가 된 조준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앞잡이가 된다. 이때의 조준구는 그 전의 조준구보다 더 악랄해지고 비열해진다. 독립군 길상을 잡기 위해 일본군보다 더 설친다. 일본군을 이끌고 간도까지 길상을 잡으러 달려간다. 결국 길상이 잡힌다. “조선 사람 단 한 명이 남아 있더라도 조선은 기필코 독립을 할 것”이라는 길상의 외침과는 달리 조준구와 일본군은 조선에서 식민지 지배를 더 강화해 나간다. 어린 조선 처녀를 잡아 간다. 그러다가 일본 국왕이 핵폭탄을 원샷하고는 무조건 항복한다.

 

조준구는 이제 엿됐다. 그는 일본군 다나까에게 자기도 일본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일본군은 제 코가 석 자다. 그렇게 잘도 붙어먹던 조준구를 깨갱거리는 뒷집 강아지 걷어차듯 매몰차게 물리치고 줄행랑을 놓는다. 오갈 데 없이 된 조준구는 다시 살아나갈 방도를 찾는다. 그게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건 하릴없는 일장기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만세!”가 아니라 “반자이!”다. 일제강점기 내내 조준구의 서슬에 기죽어 살던 하동 사람들이 조준구를 응징한다. 임이네의 발차기 한 방에 조준구는 똥 마려운 개처럼 꼬리를 감추고 달아난다.

 

조준구는 강한 척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린 최서희에게도 온갖 아양을 떤다. 그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한 술책이다. 

조준구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남북전쟁의 틈바구니를 교묘하게 헤쳐나간 민족 배신자의 전형이다. 그들에겐 이웃도 없고 겨레도 없고 조국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이 최고의 가치다. 처음엔 마을사람들과 대립하고, 최서희와 갈등을 빚고, 독립군과 맞선다. 그의 등 뒤엔 악랄하게 가로챈 막대한 재산이 있었고 점령군 일본이 있었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조준구의 행적을 보여줌으로써 나라 잃은 시대에 우리를 더욱 힘들고 아프게 했던 민족 반역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그런 조준구에게 욕을 해주고 주먹을 날려준다(직접 때리려고 대드는 관객도 있다).

 

이규희 대표의 열연에 박수

 

조준구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이규희 큰들문화예술센터 대표이다. 그는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남돌이 어머니로 나온다. “남잔지 여잔지도 모르게 생긴” 외모에다 특유의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일품인 명배우이기도 하다. 또한 이규희 대표는 <남명>에서는 이방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자주 공연하지는 않지만 <역마>에서는 주인공 성기를 연기하는데, 처음엔 그가 이규희 대표인 줄 모를 정도로 연기 변신을 한 사례다. 요즘 산청에서 열리는 <효자전> 공연 때는 밀짚모자를 쓰고 공연장 주변 여기저기 소독하러 다니는 이가 바로 큰들 대표 이규희 씨다.

 

이규희 씨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한번 공연하면 몇 번이나 바닥에 주저앉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엎어질까. 대충 세어보니 7-8번은 되는 것 같다. 금광 채굴 사업을 벌일 때 광산 전체를 터뜨려 버리려고 한다. 느린 동작으로 바닥을 구른다. 그러다가 아내 홍씨를 구하러 갔다가 엉금엉금 기어나온다. 전 재산을 다 잃은 뒤 땅을 치고 통곡한다. 마누라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다. “그때 좀 말렸어야지!”라며 아내에게 지청구를 주기도 한다.

 

조준구는 최서희가 던져준 돈도 아내에게 뺏기고 알거지가 된다. 

서희가 돌아왔다. 10년 만이다. 조준구는 자기 재산을 뺏어간 사람이 서희인 줄 알고 넉장거리를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어떡하든 한목 챙겨가기 위해 갖은 아양을 떤다. 비굴함의 절정이다. 서희에게 한 푼 얻기 위해 무릎까지 꿇는다. 그렇게 얻은 목돈을 아내 홍씨와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결국 홍씨에게 돈을 뺏긴 조준구는 땅바닥에 발라당 뒤집어진다. 조준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앞잡이로 나타나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 다나까와 함께 승리에 도취해 춤을 추다가 광복을 맞는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한 다나까는 조준구를 내팽개쳐 버린다. 다시 땅바닥에 발라당 쓰러진다.

 

일본군은 짐을 싼다. 도망가기 바쁘다. 앞뒤 잴 겨를이 없고 전후사정 분간할 여유가 없다. 그런 일본군에게 조준구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자기도 일본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이다. 다나까는 그런 조준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떼내버린다. 일본군인이 조준구를 걷어찬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쓰러진다.

 

임이네가 날리는 통한의 발차기 한 방에 조준구는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쓰러지는 연기에도 명품이 있다.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하동 사람들 눈에 조준구가 들어왔다. “일본 앞잡이 조준구 잡아라!”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한다. 그러나 뛰어봤자 벼룩 아닌가. 열심히 도망하던 조준구는 땅바닥에 한 번 쓰러졌다가 기진맥진 일어나는데 임이네가 통한의 발차기를 날린다. 민족의 울분이 가득 담긴 임이네의 발차기 한방에 조준구는 패대기쳐지듯 쓰러졌다가 “조준구 살려!”라며 사라진다.

 

마당극 한 시간 내내 조준구의 악행 때문에 가슴이 쓰리고 울분이 쌓이던 관객들도 통쾌한 감정을 비로소 느낀다. 민족 앞에 죄를 지은 자를 민족의 이름으로 벌주는 장면은 두고두고 짜릿한 한방이 아닐 수 없다. 조준구가 “나 살려!”라며 꽁무니를 내빼는 장면은,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마당극을 함께한 관객들에게 주는 하나의 선물일 것이다.

 

악당은 악당답게

 

조준구 역을 맡은 이규희 씨는 마당극 공연 내내 땀에 절어 있다.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하얀 셔츠에 물기가 배어난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태양의 열기에다 마당에 깔아 놓은 검은색 천에서 반사되는 복사열까지 겹쳐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다른 배우도 물론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조준구는 종횡무진 뛰고 구르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쓰러지느라 몸을 매우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되어 돌아온 서희에게 아첨하기 위해 중절모를 벗는 장면에서 그의 머리를 적시고 있는 빗물 같은 땀을 볼 수 있다. 객석 가까이 다가올 때는 턱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을 볼 수 있다. 나는 그의 엉덩이가 뜨거운 바닥 때문에 발갛게 익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엉덩이는 또한 시퍼런 멍으로 채색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몸을 아끼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최선의 연기를 보여주는 조준구, 이규희 씨 덕분에 <최참판댁 경사 났네>가 더욱 재미있어지고 더욱 의미있게 되는 것 아닐까.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열연을 펼쳐준 극단 큰들 배우와, 무대 바깥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동분서주한 단원들, 그리고 음향을 맡은 스태프에게도 감사드린다.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더웠다. 모두 고맙다. 

영화나 연속극, 또는 마당극에서도 악역은 악역다워야 한다. 너무 착한 악역은 재미 없다. 악역이 순수하면 재미없다. 악역은 철저하게 비겁하고 비열하고 악랄하고 매몰차야 한다. 돈 앞에, 권력 앞에 굴종하는 듯하면서도 철저하게 돈과 권력을 추구한다. 이웃사촌이니 민족이니 독립이니 하는 것은 개나 줘 버리라는 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악당다워야 한다. 그래야 극이 살아난다. 그래야 다른 배우가 돋보인다. 그래야만 관객들도 더욱 깊이 빠져든다. 그런 것을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의 조준구를 통해서 본다.

 

이틀 연속 하동을 찾았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 188회, 189회 공연을 잇따라 보았다. 이제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11월에나 볼 수 있다. 상반기 공연이 끝나고 하반기 공연은 9월에 마당극 <정기룡>으로 시작한다. 악당 조준구를 만나려면 11월 11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걱정할 건 없다. 그사이에 조준구가 양심을 회복하고 회개하여 겨레 앞에, 나라 앞에 사죄할 일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여름 동안 더위 속에서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더욱 나쁜 사람으로 단련되어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조준구를 맡은 이규희 씨의 열연에 박수를 보낸다.

 

토요일 함께 하동으로 가 준 친구 이제괄이 고맙다. 저녁에 만나 막걸리로 회포를 푼 두 분 과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창원에서 먼길을 달려 공연을 보러 와 준 김동창, 성선희 후배도 고맙다. 일요일 사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마당극 보러 와 주신 노규범 과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어쩌면 큰들 덕분에 우리의 인연이 이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한다. 큰들 공연장은 만남의 광장이라고.

 

2020. 6. 28.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