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우리 가족은 큰들 팬

by 이우기, yiwoogi 2020. 7. 19.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산청 동의보감촌의 하늘과 구름과 잔디. 마당극 공연장 가면 이런 풍경 흔히 본다. 안 갈 수 없지.

 

일상이 피곤의 연속이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피곤한 까닭은 여럿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정신 자세 때문이다. 마음이 잘 다스려지면 덜 피곤할 텐데. 정신 자세를 조금만 바로 잡으면 피곤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게 잘 안 된다. 쉰네 살 살면서, 철들고 삼십삼사 년 살면서 늘 모자라고 어긋났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이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슬프게 하는 비상(砒霜)이 들었다.

 

7월 둘째 주 주말 저녁 큰형님 집 옥상에 가족이 모였다. 장어를 구워 먹었다. 돼지고기도 구웠다. 어머니 모시고 형제 셋이서 술을 마셨다. 마침 구름이 햇살을 가려주고 멀리 월아산에서 바람이 불어와 준 덕분에 참 시원하고 상쾌했다. 말 나온 김에 다음 주엔 본가에서 백숙을 해 먹자 했다. 백숙 먹으며 낮술 한잔 하고 늘어지게 잔 다음, 저녁엔 산청 동의보감촌으로 마당극 보러 가자 했다. 모두 동의했다.

 

형제끼리 떠들며 놀고 나면 일상의 피곤은 좀 잊어진다. 피곤이 완전히 사라지면 좋겠지만, 잠시 잊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다. 아버지는 8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사시지만 이렇게 주말에 한번씩 모여 지난 날과 지날 날을 이야기하는 건, 여러모로 생활의 활력이 된다. 간혹 아웅다웅하긴 하지만, 형제끼리 우애롭게 살아가는 것 또한 여러모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

 

진주시내 어느 병원 간호사로서 3교대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큰조카와, 축구 선수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경기가 거의 열리지 못해 심심하다는 미래 국가대표 조카와, 의령에 있는 여고에 입학하여 일주일에 한번씩 온다는 조카 이야기를 듣는다. 코로나19 이후 해외 수출입길이 막혀 일감이 줄어든 탓에 주 4일 근무를 한다는 큰형님 이야기까지 우리는 듣는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게 마당극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전에 안 보이던 빨간색 출렁다리가 새로 생겼다. 건너 볼까 말까 망설여진다. 나는 무섬증이 많다. 

그러고서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는 무척 바빴다. 힘들었다. 이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행사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서 있기도 버겁고 큰 행사장 여기 저기를 왔다 갔다 하는 일도 만만찮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할 수밖에 없다. 체력을 비축하고 영양제를 먹을지언정 할 일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마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슨 모임을 가면 나는 꼭 극단 큰들의 마당극 이야기를 꺼낸다. 마주앉은 이가 날더러 “너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느냐?”라거나 “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라거나 “너의 취미는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큰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작한 마당극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내가 할 말이 무척 많은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꾐에 빠져 마당극 공연장으로 달려간 이는 여럿이다. 우리 가족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나의 영양제는 큰들의 마당극이다. 내 생활의 활력소는 마당극이다. 내 몸의 아픔을 이겨내게 하고 내 정신의 혼란을 가다듬어 주며 내 마음의 어려움을 치유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곧 극단 큰들의 마당극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마당극 보러 가기 위해 꾀를 내는 일도 즐겁고 가는 길 오는 길도 즐겁다. 마당극 보는 1시간은 쉴새 없이 웃고 손뼉 치느라 혼이 다 빠져나갈 지경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일주일을 건너갈 힘을 얻는다. 마당극 공연 관람은 혼자 가기도 하고 아내와 가기도 하고 친구와 가기도 한다. 혼자 갔는데 가 보니 아는 사람이 여럿이어서 반가울 때도 있다.

 

금요일 휴가를 내었다. 괜스레 마음이 들뜨고 싱숭생숭하여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아서였다. 출근을 하면 일거리는 산더미일 테지만 그럴수록 하루쯤은 모든 것을 잊고 어딘지 모르지만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날이 꼭 그날이다. 나는 하루종일 뻗어 있었다. 영혼이 피폐해진 탓이다. 다행히 찾는 전화는 ‘거의’ 없었다. 카톡도 이따금 들여다볼 뿐 대화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누리소통망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온전히 쉬고 쉬었다. 오후에 정신을 조금 차렸다.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열리는 마당극은 저녁 7시에 시작한다. 나는 오후 4시에 집을 나섰다. 여름 햇살이 따갑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차를 몰아 극단 큰들의 산청마당극마을로 향했다. 토요일 강원도 양구 선사박물관으로 공연하러 갈 배우들이 소품을 짐차에 싣고 있다. 조심히 잘 가서 공연 멋지게 잘 하고 조심히 돌아오라고 응원했다. 내가 응원 한마디 보태지 않아도 다 알아서 잘들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그렇지 아니하여 몇 마디 보탰다.

 

이제 산청 동의보감촌으로 갔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185회째 공연을 할 배우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햇살은 왕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바람이 선선하다. 구름은 많지 않다. 주차장에서 만난 직장 동료 김동주 선생, 그의 모친과 함께 근처 식당으로 갔다. 우리 셋은 불고기전골을 시켜 놓고 이 얘기, 저 얘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화제는 한 가지에 집중됐다. ‘화제’가 ‘화재’로 번지지 않을 만큼만 이야기했다. 큰들 배우들이 미리 와서 식사를 마치고 하나 둘씩 나간다.

 

금요일 공연장 주변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관람객 동선을 알맞게 안내한다. 하늘이 맑았다. 

이번 공연을 하는 배우들은 큰들의 극단 2팀이다. 극단 2팀은 5월 30일 처음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한 데 이어 이날은 다섯 번째 공연을 하는 날이다. 토요일까지 합하면 여섯 번째까지 이어지는 날이기도 하다(동의보감촌에서 네 번 공연하는 셈이고, 두 번은 마당극마을에서 했다). 큰들의 사무국 직원, 신입 배우, 그리고 연기를 하다가 잠시 쉬던 실력파 배우들이 뭉친 것이다. 5월 30일 첫 공연과 그다음 날 두 번째 공연을 본 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오작교 오리랑>을 보았다”라고 쓴 바 있다.

 

극단 2팀 공연을 응원하기 위해 내일이면 양구로 떠날 1팀 배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버스에서 내려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나는 ‘선배, 형님, 언니, 누나’라고 불리는 이들의 여유와 관록을 엿본다. 2팀을 응원하기 위해 일부러 달려와 준 그들의 마음 씀씀이도 느낀다. 어느 누구의 응원보다 값지고 고마울 동료들의 응원 덕분에 공연은 잘 끝났다.

 

김동주 선생과 모친은 <오작교 아리랑>이 가진 흥미로움에 매료된 것 같다. 끝나자마자 “재미있습니까?”라고 물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라고 말씀하신다. 창원에서 1시간 30분이나 걸려 달려왔는데 그 시간과 노력이 전혀 아깝지 않은 표정이다. 무척 다행이다. 이 모자는 지난번에 와서 <효자전>을 한 번 본 적 있다. 그 전에는 <오작교 아리랑>을 보러 왔는데, 오후 2시에 할 공연시간을 11시로 잘못 알았던 탓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간 적 있다. 이제 두 편을 보신 것이다. 다음에 또 공연장에서 뵈면 밥은 내가 꼭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금요일 공연 끝나고 막걸리 생각이 났다. 마당극 감상한 뒤의 흥분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토요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8시 40분이다. 공연에서 본 장면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머릿속 회로는 1팀 공연과 2팀 공연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나는 애써 그 결과를 외면한다. <오작교 아리랑>의 주제곡 ‘오늘은 칠월 칠석 까막 까치 다리 놓아 견우 직녀 만나는 날’이라는 가사가 입속에서 자꾸 웅얼거려진다. 그때 나오던 음악이 오공본드처럼 뇌속에 들러붙는다. 이 노래에 대해 소개해 놓은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어디에서 봤던지 잘 모르겠다. 씻고 잤다. 편안하고 평화롭다. 꿈자리도 편안하다. 

 

닭과 문어의 환상 궁합이다. 이만한 보양식이 없겠지. 굳이 찾는다면 마당극 공연이 있지만~!

드디어 토요일이다. 큰형님은 본가로 닭을 두 마리 사 갔다. 얼마 전에 동생이 사 놓은 한 마리를 합하여 세 마리를 큰 솥에 얌전히 재웠다. 어머니는 온갖 약초를 미리 달여서는 그 물로 닭을 고으라고 했다. 큰형은 새벽같이 삼천포 용궁시장에 가서 문어를 사 왔다. 우럭도 샀다 했는데 그건 어머니와 둘이서 해치운 듯했다. 어머니는 우리들 먹으라고 수박풍개를 잔뜩 사 놨다. 소주도 사 놓았다. 어머니의 준비는 늘 넉넉하다.

 

11시에 불을 피웠다. 닭과 문어가 사이 좋게 엉겼다. 12시가 되자 모두 모인다. 닭을 먹고 술을 마셨다. 닭죽을 끓였다. 자두를 먹고 복숭아를 먹었다. 배불리 먹고서는 우리는 잤다. 큰방, 작은방, 거실에 할머니, 아들들, 며느리들, 손자들이 제멋대로 뒤엉겨 누워 코를 골았다. 이런 풍경은 흔히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방에서 드르렁, 저 방에서 드르렁….

 

4시쯤 잠을 깬다. 양구로 공연 가는 극단 1팀에서 카톡이 와 있다. 강원도 인제, 원통 같은 이정표 보이면 “이우기가 군대 생활하던 데로구나 여기시라.”라고 했더니 과연 ‘인제’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사진을 보내 왔다. 그들은 그 시간까지 이동 중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나, 멀기도 하다.

 

큰들 기획실장이 보내 온 사진에는 '인제'라는 지명이 보인다.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군대생활의 악몽을 한꺼번에 소환하는 이름이다. 

어머니는 “오작교도 보고 효자전도 보고 남명도 보고 최참판댁도 봤으니 오늘은 안 가고 다음에 갈게.”라고 말씀하신다. 큰형도 마찬가지다. 기말고사 마치고 입대를 앞둔 아들에게도 가자고 했다. “<효자전>은 아버지 스마트폰에서 봤고(그때가 고3이었는데도 감상문까지 썼다), <오작교 아리랑>은 수능 친 뒤에 진해에서 봤고, <남명>은 수능 친 뒤 생활체육관에서 보고 사천문화예술회관에서도 봤다.”며 다음으로 미루잔다. 동생 가족은 다른 약속 모두 미루고 작정하고 왔다. 그래서 토요일 마당극 관람객은 나와 아내, 동생 가족 셋이다. 동생 가족 중 막내이자 우리 집안의 최고 막내인 의령여고 1학년 학생은 시험이 다가온다고 미리부터 빠졌다.

 

하늘을 보니 곧 비가 올 듯하다. 비가 조금 오면 공연을 할 것이고, 공연을 하는 도중에 비가 오면 관객이 모두 달아나거나 떠내려가지 않는다면 공연을 이어갈 것이고, 공연 시작하기 전에 많은 비가 온다면 조금 더 기다릴 것이고,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포기할 것이다. 그건 공연장에 가서 걱정해도 될 일이다. 진주 하늘은 오후 5시도 되지 않았는데 어두컴컴하다.

 

하지만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고 조금 달리자마자 걱정은 기우에 그치고 말았다. 멀리 산청 쪽 하늘은 파랗고 하얬다. 파란 것은 하늘이요 하얀 것은 구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있나. 적어도 공연 끝나기 전에는 비가 오지 않겠구나 싶었다. 동생과 주차장에서 만나 공연장을 멀찍이서 둘러보았다. 동생네는 6년 전쯤에 동의보감촌에 가족 나들이를 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는 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다고 했다. 아마 숲속수영장에 있는 그 호랑이겠거니 싶어 그쪽으로 안내했다. 호랑이를 감상하고 건너편 출렁다리를 바라보다가 우리는 근처 국숫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을 먹자 하니 아직 배가 고프지 않고, 그렇다고 공연 다 본 뒤에 밥 먹자 하니 밥 파는 데도 없을 듯하기도 하거니와 그때쯤엔 배가 고파질 듯하여 미리 요기를 하자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찾아 들어간 '한수금'에는 큰들 배우들이 나란히 마주앉아 다정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런 풍경은 처음이다. 늘 그렇듯 내 인사는 짧다. 우리는 실외로 자리를 잡았다. 막걸리 두 병과 두루치기와 땡초부추전을 시켰다. 각각 운전할 사람이 있으니 한잔씩들 좋게 마셨다. 그 뒤쪽 배경이 절경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식사 명당을 얻었다.

 

동생 가족과 한 장 찍었다. 내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 것은, "극단 2팀 힘~!"이라는 뜻과 산청과 양구 두 쪽 모두 '승리하자'(?)라는 뜻이다.

공연장에는 원래 문이 따로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관객들의 동선을 안내하느라 줄을 쳐 놓았다. 우리는 큰들에서 정해 놓은 데로 가서 열을 재고 손을 소독하고 이름표를 작성했다. 동생네는 마당극 공연이 처음이다. 설레는 표정이었다. 동생은 큰들 후원회원에 가입했다. 밥 먹을 때 내가 ‘마당극 관람객의 자세’에 대해 잠시 이야기한 덕분일지도 모른다. 나는 딱 두 가지만 말했다. 배우들이 웃기면 웃고 손뼉 치라고 하면 열심히 쳐라. 그리고 공연 끝난 뒤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후원도 좀 해 주라. 동생은 미리 후원부터 한 것이다. 

 

이 가족은 앞으로 마당극 보러 동의보감촌에 몇 번 더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동의보감촌을 한눈으로 휘휘 둘러보면서 여차저차 하면 하루 나들이로는 충분하다고 했다. 근처 가족호텔을 확인하고는 하루 이틀 휴가 내어 놀러와도 되겠다고도 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공연일정과 겹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왜냐 하면 이날 참석지 못한 막내가 이런 유의 공연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들의 관객은 늘어나는 것이다. 다행이다.

 

동생이 남돌이로 지목됐다. 깜짝 놀랄 일이다. 오른쪽 맨 뒤에서 의자에 등을 잔뜩 기대어 손뼉치며 여유를 즐기던 동생은 나보다 더 놀랐을 것이다. “남돌이, 저기 있네!”라는 배우의 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주 잘 알지만 동생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제수씨는 즉각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조카도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나도 의자에 올라서서 찍었다. 근처에 남성 관객이 더러 있었는데 어쩌다가 맨 뒤에 있던 동생이 불려 나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거부하다가 어색해 하다가 결국은 극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남돌이 역을 무난하게 해준 덕분에 공연이 잘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신랑 얼굴을 알아보기나 하겠나. 마스크까지 알뜰하게 챙겨 썼으니. 그래도 나는 알아보겠다. ㅎㅎㅎ

공연 끝난 뒤 배우들과 사진 찍을 기회를 우연히 얻었다. 배우들이 “우리 사위, 이리 오라우 사진 찍자!”라면서 너스레를 떨자 조카가 한마디 던진다. “우리 아빠 바람 피웠어요!” 모두 웃었다. 오진우 씨가 한마디 더 던진다. “산청에서의 일은 다 잊으라우~!” 또 웃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추억의 앨범에 사진 한 장이 포개진다. 이제 우리 가족 가운데 창원 사시는 작은형님 빼고는 모두 큰들 팬이 되었다. 원래부터 계획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니다. 아무튼 큰들, 고마워요~!

 

2팀 공연을 보고 있는데 강원도에서 카톡이 온다. 우리 가족 뒷모습이 찍힌 사진도 온다. 그러니까 산청에서 우리를 찍은 사진을 큰들 단체방에 올린 듯한데 그걸 다시 나에게 보내 준 것이다. 1팀 배우들이 분장하면서 장난치며 노는 모습도 보인다. 긴장 속의 여유가 느껴진다. 실제로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누군데…. 극단 2팀 공연이 끝날 시각에 강원도 양구에서는 극단 1팀이 공연을 시작했을 것이다. 7시간 30분을 달려간 그곳에서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잊고 공연을 잘 하였을 것이다. 

 

큰들 단원들이 찍은 사진에 우리 가족 다섯 명이 찍혔다. 열심히 손뼉 치고 스마트폰으로 찍고... 관객으로서는 합격이다. 

‘후텁지근하다’와 ‘후덥지근하다’는 다른 말이다. ‘후텁지근하다’는 ‘조금 불쾌할 정도로 끈끈하고 무더운 기운이 있다’라는 뜻이다. ‘후덥지근하다’는 ‘열기가 차서 조금 답답할 정도로 더운 느낌이 있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거기서 거기지만, 자세히 보면 좀 다르다. ‘후텁지근하다’는 텁텁한 느낌이 들어 있다. ‘후덥지근하다’에는 덥다는 느낌이 들어 있다. 여름 장마철 푹푹 삶은 날씨는 ‘후텁지근하다’에 가깝다. 텁텁하다에는 ‘날씨가 몹시 후터분하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이육사는 시 <청포도>에서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7월을 ‘장마가 끝나는 시기, 태풍이 몰려오는 시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시기, 매미가 밤새도록 울어서 짜증나는 시기, 모기와 본격적으로 한판 붙어야 하는 시기’ 쯤으로 안다. 가령 7월 19일 일요일 오늘 같은 날씨는 모든 게 다 갖춰진 날씨라고 할 만하다. 덥고 습하고 끈끈하고 갑갑하다. 후텁지근한 것이다.

 

이런 즈음엔 시원한 사이다를 찾는 게 또한 인지상정이겠다. 폭포수 아래에 서서 머리로 낙하하는 물세례를 받으며 고함을 지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용광로 같은 뜨거운 열기와 일부러 마주한 뒤 얼음 동동 뜨는 냉면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음 맞는 사람과 산을 오르면서 극기를 체험하거나 축구, 테니스 같은 운동으로 우정을 쌓고 땀도 빼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마다 자신만의 피서법이 있을 것이다. 자신만 안다고 여기고 찾아간 계곡에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찬 일도 경험했을 법하다.

 

나는 7~8월 주말 밤이 되면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으로 간다. 오래 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지난해부터이다. 그 전에는 온도와 습도를 이기지 못해 에어컨을 켰다가 전기요금이 겁나 다시 껐다가를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동의보감촌으로 가면 시원한 여름 밤바람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낮에는 느낄 수 없는 어떤 기운과 도시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여유와 안정 같은 것을 거기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 모자와 마스크 사이에 동생의 웃는 표정이 보인다. 이 사진도 큰들 단원이 찍었다. 고맙다. 

극단 큰들은 7월 17일부터 8월 22일까지 6주간 매주 금요일, 토요일 저녁 7시에 동의보감촌 주제관 앞 잔디마당에서 마당극을 공연한다. 7월 17~18일에는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했다. 7월 24~25일에는 <남명>을 공연한다. 7월 31일~8월 1일에는 <효자전>이다. 그다음 주부터 3주간 다시 3작품을 번갈아가며 공연한다. 금요일 저녁을 주말이라고 해도 괜찮다면, 여름 주말마다 마당극 대잔치가 풍성하게 열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축복이라고 여긴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무더위를 식혀줄 청량제, 타 들어가는 감성을 웃음과 감동으로 적셔줄 감로주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다.

 

극단 큰들의 7~8월 저녁 공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저녁 공연은 매우 색다른 멋을 선사한다. 첫째, 시원하다. 피서로는 그만이다. 둘째, 돌아와서 막걸리 한잔하기 꼭 알맞다. 11시까지 문 여는 막걸리집을 알아뒀다. 셋째, 시간에 따라 뚜렷이 달라지는 하늘을 볼 수 있다. 환상적이다.” 이 세 가지 색다른 맛을 모두 잘 느낀 주말이었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큰들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써 놨다. 극단 2팀에서 꽃분이 이모로 나오는 박정현 씨가 올린 글이다. “오늘 하루 강원도 양구, 산청, 진주에서 큰들 식구들이 바쁜 하루를 보냈어요. 산청에서 극단 2팀이 186회째, 양구에서 극단 1팀이 187회째! 각각 <오작교 아리랑> 공연을 하면서 ‘쌍작교 아리랑’을 펼치고요. 진주성에서는 예술교육팀이 풍물놀이 수업을 하였습니다.” ‘쌍작교 아리랑’이라는 매우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재미있다. 앞으로 ‘쌍작교 아리랑’이 우리나라 두 곳에서 동시에 울려퍼질 날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큰들 마당극 공연 본 뒤 쓴 수십 마리의 후기들 가운데 가장 알맹이 없이 밋밋하고 밍밍한 글이 되어 버렸다. 쓰레기통에 버릴까 하다가 이것도 하나의 재미겠다 싶어 그냥 올려둔다. 일요일 아침 7시 30분 사무실 나가서 급하지만 영양가 적은 보도자료 하나를 비롯해 무려 7가지 자잘한 일을 처리했다. 한 장짜리 보고서 초안도 마무리했다. 금요일 쉰 탓이다. 오후엔 낮잠을 잤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숙호산을 갔을 것이다. 그래도 숙호산 가지 않은 덕분에 50장 가까운 마당극 감상문(후기)이라는 것을 쓸 수 있었다. 모든 게 다행이다. 모든 게 고마운 주말이다. 

 

2020. 7. 19.

이우기

'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세상 가장 행복할 그들에게  (0) 2020.08.16
날씨 알림  (0) 2020.08.04
극단 큰들 7월 공연 일정  (0) 2020.07.05
조준구는 몇 번 넘어지는가  (0) 2020.06.28
마당극 관객이라면…  (0) 202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