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과 14일 주말엔 비가 왔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우기다. 4계절이 뚜렷하다고 가수 정수라가 노래했는데 이제는 그 노래를 부르기 힘들게 됐다. 봄은 오는 듯하다 가 버리고 가을은 온지 만지 모르는 사이에 끝나 버린다. 비도 그렇다. 장마라고 했는데도 빗방울 구경도 못하는 날이 이어지다가 한두 번에 몰아서 물폭탄을 퍼붓곤 한다. 장마인지 태풍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돈 지 제법 됐다. 머지않아 장마라는 말은 사라지고 국지성 집중호우라는 말이 득세할 것이다. 우기와 건기로 뚜렷이 구분된다고 하는 게 맞을는지. 아무튼 지난주에는 비 소식이 있었기에 마당극은 쉬었다.
그래서 6월 20일, 21일 공연을 더 애타게 기다렸다. 낮동안은 하루 종일 일에 파묻혀 지내고 저녁엔 헛헛함과 쓸쓸함을 술로 달랬다. 예전처럼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부터 지친다. 일상에 이상이 오니 삼상(삼라만상)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틈틈이 짬짬이 책도 보고 신문도 읽고 연속극도 보고 슬기틀에 저장해둔 마당극 영상도 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러하지 못했다. 마음으로 그리움을 달래보는 게 고작이었다. 뭔가 고장난 것이다.
드디어 토요일이 왔다. 하늘은 파랗지 않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르겠다. 안개든 구름이든 먹장구름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사실 금요일부터 날씨알림을 몇 번 확인했다. 구름조금이라는 말에 안도했다. 일요일엔 그냥 맑음이다. 더 다행이다. 땡볕 아래에서 뛰고 구르는 배우들이야 고생하겠지만, 일단 마당극을 연다는 게 무척 다행이다. 하기로 했던 공연을 날씨 때문에 못하게 되면 극단 큰들도 몸과 마음이 찌뿌둥할 것이고 공연 보러 갈 것이라고 잔뜩 기대했던 관객들도 몸과 마음이 허전할 것 아닌가.
아침부터 바빴다. 일어나자마자 찌개부터 끓였다. 사나흘 먹어도 넉넉할 양이다. 맛이 별로라서 일주일 갈지도 모른다. 병원 가는 아내를 태워 주고 삼천포로 달렸다. 시내 길을 지나고 경상대 앞을 지나도 되었을 것을 그냥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삼천포에서 고성으로 가는 중간에 목적지가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부근이다. 도착하니 9시 35분이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이야기 나누고 일어서니 10시 40분이다. 진주 당도한 시각이 11시 20분이다. 12시께 다시 아내와 아들을 만나 촌국수에서 국수를 말아 먹었다. 가족을 집에 태워주고 나니 12시 45분이다. 됐다. 이만하면 넉넉하다. 널널하다. 가자.
진주에서 산청 가는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다. 검은차 하얀차가 달린다. 승용차 짐차 버스가 달린다. 모양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른 차들이 무슨 급한 일이 그리도 많은지 쌩쌩 달린다. 어디까지 가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나도 달린다. 나는 느긋하다. 주행도로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도 보고 하늘도 보고 차들도 보면서 달린다. 지난 일주일 돌아보고 다가올 일주일 생각하며 달린다. 다가올 일주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마당극 장면들 떠올리고 오늘은 어느 장면에 눈길이 머물지 기대하며 달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큰들에게 첫 마디로 무슨 말을 해줄까 생각하며 가속기를 지긋이 밟는다.
직장 동료이자 5월 24일 하동 <최참판댁 경사 났네> 공연 때 등등동지 역할을 한 김동주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타났다. 동의보감촌 들머리 분수대 앞에서 어머니 사진을 열심히 찍는 그가 참 멋져 보였다. 언제나 멋진 친구다. 지난번에 오전 11시에 공연하는 줄 알고 왔다가 오후 2시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간 적 있다. 서동하 누님이 나타났다. 얼마전에 뵈었을 때는 머리카락이 보라색이었는데 이번에는 흰색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언제나 여유롭고 언제나 다정하고 언제나 열심인 그에게서 아름답게 익어가는 것의 행복을 느낀다. 행복이 뭐 별거던가.
마당극을 보는 관객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나처럼 일정에 맞춰 일부러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다. ‘팬’으로 불리곤 한다. 개인도 있고 단체도 있다. 다른 하나는 마당극이 열리는 관광지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마당극을 보는 행운을 안는 관광객들이다. 두 종류 사람들의 비율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때 그때 다르니까. 한 해 평균을 내어 보면 반반씩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아니다. 관광객이 더 많겠구나.
‘마당극 관객이 갖춰야 할 조건’이라고 제목을 달면 그 맛이 텁텁할 것이다. 목에 가시가 든 듯 갑갑할 것이다. 마당극을 보면 보는 것이고 보기 싫으면 안 보는 것이고 운 나쁘면 못 보는 것이지 ‘조건’이란 게 무슨 말라비틀어진 개 뼈다귀란 말인가. 그리고, ‘관객이라면 갖춰야 할 일반적인 조건’이라면 몰라도 굳이 마당극 관객이 갖춰야 할 조건이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있냐는 말이다. 영화든 연극이든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아이돌 가수 공연이든 전국노래자랑이든 관객이라면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면 몰라도 콕 집어 마당극 관객이 갖춰야 할 조건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관객이라면 갖춰야 할 조건이란 대개 어딜 가든 똑같다. 무엇을 보든 똑같다. 영화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게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다. 실제 그런 관객은 별로 없다. 음악회 관객들은 정해둔 순서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고 앙코르(또소리)를 외치는 게 예의다. 그러면 음악회 출연자들이 다시 나와 한두 곡 더 불러준다. 거의 대부분 그렇다. 뭐 대충 그런저런 게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걸 미리 알고 가면 수준 높은 관객이라는 말을 듣는다. 모르고 가도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잘못 걸리면 눈총깨나 받게 될 것이다.
마당극 관객이 갖춰야 할 조건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냥 이래저래 마당극을 많이 보다 보니 문득 문득 생각난 잡생각들의 조합이라고 보면 되겠다. 서너 가지만 생각해 본다.
첫째, 마당극 보러 가기 전에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아보면 좋다. 쉽지 않은 주문이다. 현재 주로 공연 중인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남명>, 9월부터 본격 공연할 <정기룡> 등 많은 작품에 대해 어떻게 일일이 찾아본다는 말인가. 어디 가서 자료를 찾아본다는 말인가. 그렇지.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하지만 5분만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극단 큰들의 누리집에 가 보면 된다. 들머리 사이트 검색창에 마당극 제목을 치면 관련 글을 제법 만날 수 있다. 수많은 관객들이 자신만의 시각에서 찍고 해석한 사진과 글이 제법 많이 나온다. 그중 내가 쓴 글도 있다. 이런 글과 사진을 주마간산으로 흘기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공연 시작 30분 전까지 공연장에 도착하면 좋다. 공연장은 대개 관광지다. 미리 도착하여 주변을 잠시 둘러보면 무척 좋다. 맑은 공기 파란 하늘 푸른 산과 들이 폐부 깊숙이 들어차 있는 일상의 억압을 풀어줄 것이다. 공연장에 미리 가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마당극은 주로 야외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공연장 출입문도 없고 입장료도 없다. 당연하게도 지정석이라는 게 없다(나는 이게 너무나 좋다). 마당극을 여러 번 본 사람은 뒤에 앉아서 봐도 되겠지만 처음 보는 분이라면 꼭 맨 앞줄을 권한다. 가능하면 마당 한 가운데 맨 앞줄에 앉기를 권한다. 마당극이 무엇인지 다른 연희와 어떻게 다른지 배우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여 연기하는지를 보려면 맨 앞에 앉을 일이다. 관람하기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30분 전에 도착하는 건 기본에 속한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2시에 공연하는 줄 알고 1시 30분에 가면 누군가가 벌써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은 이우기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마당극 보는 동안은 마음을 내려놓으면 좋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건 무엇인가. 일상의 잡념을 버리라는 뜻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지도 않다. 영화나 연속극 볼 때 딴 생각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배우들이 노래 부르면 따라 손뼉 치게 되고 배우들이 웃기는 대사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게 된다. 극 내용이 슬퍼지면 눈물 흘리면 된다. 주위 눈치 볼 것 없다. 분위기와 상황과 내용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무척 쉽다. 웃다가 틀니 빠져도 괜찮다(나의 실제 경험). 울다가 콧물 훌쩍거려도 아무렇지 않다(나의 실제 경험). 웃다가 배꼽 빠져도 괜찮다(아직 이런 사람은 없음). 손뼉 치다가 손바닥에 불 나도 안 죽는다(실제 불은 나지 않았지만 매우 뜨거워진 적은 많음). 중간중간 “잘한다~!”라고 고함쳐도 된다. 생각해 보시라. 한 시간 동안 웃고 울고 손뼉 치고 나면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좋은 영양제가 될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멋진 추억이 될 것인지. 일상에서 얻은 정신적 억압이 얼마나 사라져 줄 것인지.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말에는 다른 뜻도 있다. 배우들이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째려보지는 말자는 뜻이다. 째려보지 않아도 매우 잘하니까. 혹시 배우들이 실수하지 않는지 감시하지 말자는 말이다. 실수를 좀처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다음 연기를 이어간다. 사실 이런 공연에서는 실수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냥 그날의 작품이 있을 뿐이다. 관객은 관객일 뿐 비평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다. 마당극 대회 심사위원이 아니라면, 아니 심사위원일수록 더욱 날카롭게 째려보지 말고 그저 흘러가는 물에 돛단배 띄우듯, 흘러가는 구름에 뭉게구름 떠가듯, 달리는 기차 소리 자장가 삼아 아기아기 잘도 자듯 그렇게 감상할 일이다.
마음을 내려 놓고 나면 배우들의 대사 중간에 자기도 모르게 끼어들 수도 있다. 다른 관객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누군가 불쑥 배우들 대사 중간에 끼어드는 수가 있다. 그 사람은 온전히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다. 낮술 한잔한 어느 관객은 자꾸 끼어들다가 다른 관객의 눈총을 받는다. 마음을 내려놓는 데는 술만한 게 없다는 뜻일까. 어린이들은 너무 심하게 대사를 ‘방해’하는 바람에 배우가 한두 마디 하기도 한다. “이건 공연이니까 그냥 넘어가자잉~” 어린이들의 천진난만 순진무구함은 곧 자신을 내려놓는 명약 아닐까.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말은 마당극을 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관대작이더라도 장삼이사라도 이때만큼은 마당극을 보고 있는 똑같은 관객이 되어야 한다. 일부러 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마음을 내려놓고 비워야 한다. 그러고 나면 극중의 주인공으로 빙의할 수 있다. <효자전>에서는 어머니도 되고 아들도 되고 치매 걸린 이웃 할머니도 될 수 있다. 아들 중 출세에 눈이 멀었다가 나중에 반성하는 큰아들 귀남도 되고 개구쟁이 말썽꾸러기였지만 나중에 깨도하는 작은아들 갑동도 될 수 있다. 극중 배우에 빙의되면 더 재미있고 더 감동받는다.
잘 모른다. 관객들이 웃고 울고 손뼉 치고 고함 지르고 휘파람 부는 것의 정도에 따라 배우들이 얼마나 힘을 받는지는 모른다. 그것을 잴 수는 없다. 하지만 안다. 유난히 관객들 반응이 뜨거운 날 배우들 눈빛이 더 빛나고 몸짓이 더 생동감 넘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느낀다. 공연장 열기가 후끈후끈 달아오른 날에는 나도 모르게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배우들도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짐작할 뿐 실제로는 잘 모른다. 나는 배우가 아니니까. 아니다, 배우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있다. 맨 처음 시작할 때 인사말 하는 배우가 “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관객들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아이고, 이래 갖고 공연을 하겠습니까? 자, 다시 한번 해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아아아~!”라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유도한다. 관객들의 즉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극을 이끌어가는 제3의 요소이기 때문이리라.
넷째, 공연이 끝나면 공연 보는 도중에 친 손뼉보다 더 힘차게 더 오랫동안 손뼉 쳐 주면 좋다. 손바닥 건강을 위해서도 좋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마지막에 한 줄로 서서 인사할 때는 “잘한다~!”라거나 “최고다~!”라는 고함을 질러주어도 된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않지만)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이 땀만 닦고 나와서 관객들과 사진을 찍는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배우들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자. 그러는 와중에도 “공연 잘 봤습니다.”라거나 “어찌 그리 잘합니까?”라거나 “정말 큰들 멋져요~!”라거나 “오늘 공연 최고였어요~!”라거나 “나 큰들 팬이 될 것 같아요~!”라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거리끼지 말고 해주자. 큰들에 더 큰 힘을 주고 싶다면 후원회원에 가입해도 된다. 큰들이 후원회원을 얼마나 지극히 섬기고 챙기는지는 후원회원이 되어 보면 안다. 큰들 후원회원이라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되어 보면 느낀다.
공연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할 일이 있다. 마당극 관객의 마지막 조건이다. 이건 아마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 같다. 후기를 쓰자는 것이다. 사진을 퍼뜨리자는 것이다. 즉, 극단 큰들의 재미와 감동을 주변에 조금씩 알려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재미난 것을 혼자만 알고 지내면 그건 죄짓는 것이니까. 자신의 누리소통망(SNS)에 글을 올리고 사진을 올리고 짧게나마 동영상을 올려보자. ‘#큰들’이라고 해시태그를 붙이자. 수천수만 명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덕분에 태어나서 마당극을 한번도 보지 못한 누군가는 그 안내글을 보고 죽기 전에 한두 번은 마당극을 보게 되지 않을까. 그 누군가는 반드시 말할 것이다. “아, 마당극을 한번도 못 보고 죽었더라면 저승에서 얼마나 후회했을까….”
생각해 보면, 이런 조건들이란 영화를 볼 때도 똑같고 연극을 볼 때도 똑같다. 하지만 조용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혼자 소리지르거나 손뼉 치면 쫓겨난다. 연극 보다가 혼자 크게 웃거나 배우들 대사 중간에 끼어들면 혼날지도 모른다. 마당극은 그런 게 다 용서된다.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효자전> 234회 공연이 끝났다. 김동주 선생의 어머니는 처음 마당극을 보셨다 했다. 재미있었는지 여쭈었더니 환하게 웃으신다. 공연 도중 멀찍이서 흘깃흘깃 보았는데 마당극에 푹 빠지신 게 분명했다. 다음주엔 하동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일정을 봐서 또 보고 싶다 하셨다. 서동하 누님은 공연 중간에 ‘아줌마 무덤’으로 잠시 출연하게 되었다. 느닷없는 상황에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을 옆에서 찍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가? 딱 보니 아줌마 무덤일세. 머리도 하얗고 말이야!”라는 대사를 하는 동안 우스워서 어쩔 줄 모르는 누님의 모습에는, 마당극 보는 관객의 즐거움과 행복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날 공연은 내 양 옆과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덕분에 더욱 재미있었다. 모르지, 내 옆 관객들은 내 웃음소리 덕분에 더 재미있게 관람하였는지도.
하늘은 맑았다. 구름은 이따금 지나갔다. 바람은 구름보다 먼저 왔다. 필봉은 푸르렀다. 왕산은 높았다. 잔디는 넓고 푸르고 얇았다. 동의보감촌 너른 잔디마당 한쪽에서 여남은 명 배우가 땡볕 아래 뜨거운 마당에서 뛰고 넘어지고 구르고 노래 부르고 춤 췄다. 천막 아래 관객 백여 명이 웃고 울고 손뼉치며 놀았다. 6월 어느 토요일 오후 한 시간 동안 참 좋은 인연들이 모여 참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끼리 신나게 놀 수 있게 장마는 주중에 오시고 햇살은 주말에 오시라. 아차, 하얀구름도 주말에 꼭 놀러 오시라.
2020. 6. 21.
이우기
*6월 20일 마당극 보면서 한 생각을 21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물 한 잔 먹고 쓰기 시작하여 다 쓰고 나니 7시다. 낱말들이 메말랐다. 밥 안치고 찌개 데워야겠다. 오늘 일요일도 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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