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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창원 방문의 해?

by 이우기, yiwoogi 2017. 12. 29.

 


창원시는 2018년을 ‘창원 방문의 해’로 정했다고 한다. 창원시는 더욱 많은 전문여행사의 관심을 유도하는 달력을 발송하는 등 ‘창원 알리기’와 ‘시민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각적인 홍보활동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2018 창원 방문의 해 추진단’은 12월 19일 미국, 아시아, 중동, 중국, 일본의 국내여행사 등 수도권 소재 외국인 전문여행사와 여행사연합회 등 500여 곳에 창원 방문의 해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는 인사와 함께 탁상용 달력을 보냈다.

 

창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무엇을 보게 될까. 창원시는 여행사 등에 보낸 달력에 저도 콰이강의 다리, 창동예술촌과 상상길, 진해 해양공원, 용지호수 무빙보트 등 40여 관광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았다고 한다. 창원에서 여섯 달 정도 살아 봤는데 일에 쫓기는 삶이어서 그런지 놀러 다닌 기억은 별로 없다. 성주사 절 구경한 일, 진해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닌 일, 번화가에서 정신줄 놓고 술 마신 일, 경남도청ㆍ경남경찰청 앞마당을 산책한 일 들이 기억난다.

 

‘한국 방문의 해’라는 것도 있었다. 이런 일을 추진하는 ‘한국방문위원회’라는 것도 있다. 그 위원회 누리집에 가 보니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0-2012 한국방문의해’ 캠페인의 성공적 추진을 통해 외래관광객 1천만 명 목표 달성에 기여한 바 있는 한국방문위원회는 지난 캠페인 경험을 지속 활용하고, 다가오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등 메가이벤트를 계기로 관광산업의 양적 성장에 부합하는 질적 발전 기반 확립을 위해 ‘2016~2018 한국방문의해’ 캠페인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써 놓았다. ‘메가이벤트’라….

 

생각해 보니 2010년부터 2012년 3년 동안도 한국 방문의 해라는 것을 정하여 놓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하여 외래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니 퍽 다행한 일이다. 이런 경험에 편승하여 창원 방문의 해라는 것도 만들어졌을 것이며, 이 덕분에 창원시에 관광객이 목표한 대로 엄청 늘어나길 기원한다. 그리하여 창원에 있는 밥집, 술집, 숙박업소, 기념품가게, 전통시장 들이 모두 돈도 많이 벌고 복도 많이 받기를 기원해 본다. 여섯 달 살아 본 인연으로, 진정으로 기원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국 방문의 해’, ‘창원 방문의 해’라는 말이 제대로 된 것인가 살펴본다. ‘방문’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가서 만나거나 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찾아가서’! 그렇다면 한국을 방문하고 창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나 창원 사람이 아니라, 외국 사람이거나 창원 아닌 지역의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창원을 방문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천천히 생각해 보자. 서울이나 부산 사람들이 모여서 내년에는 창원에 놀러가자고 의논하고 결심하면 그것을 두고 ‘2018년은 창원을 방문하는 해’, 즉 ‘창원 방문의 해’라고 이를 만하다. 그 사람들은 자기 집 거실 벽에다가 ‘2018년 창원 방문의 해’라고 써 붙여 놓고 돈을 모으고 일정을 조정하겠지. 미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 “우리 내년에는 계를 모아서 한국에 놀러가서 맛난 것도 먹고 구경도 좀 하자”고 약속하면 그것을 일러 ‘2018년 한국 방문의 해’라고 할 만하다.

 

구경 올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없지는 않겠지), 많은지 적은지, 어느 지역 사람이 얼마나 올지 모르는데 창원 사람들이 제 먼저 나서서 ‘창원 방문의 해’라고 하면 이상하게 보인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 찾아오고 싶은지 어쩐지 하는 조사부터 하지 않고 덮어놓고 ‘한국 방문의 해’라고 선언해 놓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 같다. 물론 그 마음과 정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 뭐라고 해야 할까. ‘창원으로 초대하는 해’, ‘창원에 오시는 손님 잘 모시는 해’라고 하면 어떨까. ‘창원 손님 잘 모시는 해’라고 해도 될 듯한데 그러면 ‘창원에 오는 손님’인지 ‘창원 사람 손님’인지 좀 헷갈린다. 한국 방문의 해가 아니라 ‘외국 손님 잘 모시는 해’, ‘한국에 초대하는 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말이 좀 길어져서 좀 어색하다면, ‘한국 내방의 해’는 어떤가. 내방은 ‘만나기 위하여 찾아오는 것’이니 ‘방문’과는 반대되는 뜻이다. ‘창원 내방의 해’, ‘한국 내방의 해’라고 하면 ‘방문의 해’보다는 훨씬 선명해진다. 그렇지만 내방의 주체가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흠이다.

 

다른 나라의 손님을 많이 모셔서 극진히 대접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어느 시가 다른 지역의 국민을 대대적으로 초대하여 맛난 음식과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의 관광 수익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국가 경제와 지역 경제가 나아진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사 또는 사업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 ‘한국 방문의 해’가 아니라 ‘한국으로 오시는 손님 잘 모시는 해’라고 하거나 ‘한국 초대의 해’라고 하거나 ‘한국 내방의 해’라고 해야 뜻이 통한다. ‘창원 방문의 해’라고 하기보다는 ‘창원 손님 잘 모시는 해’, ‘창원으로 초대하는 해’, ‘창원 내방의 해’라는 식으로 고쳐 부르는 게 맞다.

 

이미 널리 쓰고 있는 말을 지금 와서 고치라고 하는 건 좀 그렇다. 많은 분들은 ‘한국 방문의 해’, ‘창원 방문의 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말에 시비를 거는 게 엉뚱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곱씹어 보고 뒤집어 보고 해석해 보아도, 나는 ‘무슨무슨 방문의 해’가 웃기는 말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17.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