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새해 ‘달력’ 준비하셨나요?

by 이우기, yiwoogi 2017. 12. 15.

연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새해 달력을 챙긴다. 달력은 벽에 거는 것과 책상에 놓는 것 두 종류를 구해야 한다. 벽에 거는 달력은 농협 달력이 가장 마음에 든다. 농협 달력은 석 달을 한 면에 배치한다. 지난달과 다음달까지 한번에 보아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꽤 요긴하다. 반드시 필요한 음력도 표시해 놨다. 12월이 되면 농협 직원이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며 새해 달력 나왔습니다.”라고 한다. 반갑고 고맙다.


 

 

책상 달력은, 이전에는 우체국에서 만든 게 마음에 들었다. 자그마하게 만들어서 좁은 공간에 놓기에 좋았다. 뒷면 그림도 예뻤다. 우체국 책상 달력을 못 본 게 10년은 넘은 것 같다.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다른 대학이나 혁신도시 공기업에서 보내오는 달력 중 맞춤한 것을 사용한다. 사무실에서 돌아보면 달력 서너 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기장도 새로 장만한다. 일기장은 양복 윗주머니에 넣기 좋은 것으로 고른다. 요즘은 엠비시 방송국에서 제작한 것을 구해 쓴다. 1353일을 날짜별로 나누어 놓아 쓰기에 아주 좋다. 하루하루 중요한 행사와 약속을 적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스마트폰에다 자기 일정을 기록하던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반드시 볼펜으로 직접 써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빨간색, 검은색, 파란색 필기구를 번갈아가며 쓴다. 중요하다고 빨간색, 중요하지 않다고 검은색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중없이 이 색깔 저 색깔을 섞어 쓴다. 재미있으니까.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일기장을 집에 두고 출근하면 머릿속이 흰 종이가 된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다행이다. 집에서 출근할 때, 사무실에서 퇴근할 때 반드시 챙기는 것이 일기장이다. 술자리에서 무슨 약속을 정하면 그 자리에서 적어놔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약속은 술 깨면 다 까먹어 버린다. 일기장은 분신이라고 할 만하다.

 

새 달력과 일기장을 마련하고 나면 의식처럼 하는 일이 있다. 아버지 기일, 결혼기념일, 가족들 생일을 기록하는 일이다. 미리 동그라미를 해 놓지 않으면 놓치고 지나갈 수 있다. 물론 아버지 기일이나 가족들 생일은 까먹지 않겠지만 그 밖에 자잘한 일들은 부지불식간에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지나간 일기장을 보면 학교 주요 행사와 보도자료 일정, 공식적인 약속, 개인 약속, 경조사 챙긴 일 들이 빼곡하다. 바쁘게 살았고 즐겁게 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나간 일기장을 죄다 모아 보면 인생이 보일 듯하다. 비록 간단간단히 적바림만 한 것이긴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리위태, 이상민, 구태회 이런 이름들이 생각난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이 사람들은 해마다 잊지 않고 달력을 보내 왔다. 국회의원이거나 국회의원에 나서려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한 장짜리 달력을 만들었다. 한가운데 자기 얼굴을 커다랗게 박아 넣고 양쪽에 세로로 여섯 달씩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 달력을 시골집 안방과 마룻벽에 붙였다. 해마다 같은 장소에 붙이는 바람에 그 부분은 두꺼운 마분지처럼 되어 있었다. 리위태는 결국 국회의원을 한 번도 못해 먹었고, 이상민, 구태회는 한두 번씩 의원 노릇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멋진 홍보수단은 없는 듯하다. 1년 열두 달 내내 집집마다 안방 벽에 붙어 있으니 미워도 고와도 날마다 수십 번씩 쳐다보게 된다. 세뇌가 될 듯하다. 그러니 찍어주게 된다. 그런 달력 날짜 밑에 음력이 있었는지, 맨 아래에 국회의원 연락처가 있었는지 하는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달력을 카렌다라고들 한다. 들머리 사이트 다음에서 카렌다로 검색하면 이것을 찾으시나요? 달력이렇게 나온다. 달력을 영어로 말하려면 캘린더라고 해야 한다. 실제 생활에서는 카렌다라고 더 많이 쓰는 것 같은데 표기법은 영 엉뚱하다. 글자 꼬라지를 보면 이해할 만하다. 영어로는 ‘calendar’ 이렇게 쓴다. 외래어 표기법 같은 걸 조금 배운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말을 할 때는 꼭 카렌다라고 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날살이에서 쓰는 것을 유심히 들어보면 달력카렌다가 거의 반반씩인 것 같다. 정확히 세어볼 수는 없다. 농협 직원이 달력을 갖다 줄 때는 새해 달력 나왔습니다라고 했는데, 며칠 뒤 만난 다른 농협 직원은 카렌다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달력에서 은 순 우리말이고 은 한자말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간혹 월력이라는 말도 쓴다. ‘로 바꿔 부르는 것이다. 월력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고 현재는 달력과 카렌다가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누가 이길까. ‘캘린더라는 표기는 카렌다로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이 카렌다라고 하면 틀린 것이니 캘린더라고 하자고 생각하게 될까. 지켜볼 만한 재미있는 일이다.

 

일기장은 다이어리라고들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기장과 다이어리를 다른 것으로 생각할 것만 같다. 일기장은 학창 시절 선생님이 시켜서 억지로 쓰는 방학 일기장이나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비밀 일기장 같은 게 먼저 떠오른다. 가족 일기, 금연 일기, 신혼 일기, 육아 일기 같은 말이 있다. 사전 뜻풀이대로 하면 날마다 겪은 일이나 느낌 등을 적는 공책이다.

 

다이어리라고 하면 날마다 겪은 일이나 느낌을 적은 공책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첫 번째 뜻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날짜별로 간단한 메모를 할 수 있도로 종이를 묶어놓은 것을 말한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흔히 사무용으로 이용한다는 보충설명도 붙여 놨다. 두 번째 뜻으로 일기장이라고 한다. 두 번째 뜻으로 쓸 때는 일기장또는 비망록으로 순화하여 쓰자고 한다. ‘테이블 다이어리탁상 일기라고 쓰자고 한다. 글쎄다. 일기장과 다이어리는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기에 어렵게 되어 버렸다.

 

2017.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