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가면 ‘알라딘굿즈’라는 데가 있다. 거기 들어가면 ‘문구, 데스크/오피스, 리빙/키친, 에코백/파우치, 악세서리/잡화, 디지털’로 나뉘어 있다. 이 가운데 ‘문구’에 들어가면 엽서+우표 세트, 북마크, 북엔드, 불렛저널, 자석노트, 양장노트, 독서대, 클립보드, 연필 세트, 마스킹 테이프, 메모패드, 트윈링 노트, 스티키 노트 세트, 캘린더, 드로잉북, 파일 홀더 세트, 펜 케이스, 북커버, 레이블 노트, 사파리 만년필, 스케쥴러, 페이퍼 북, 포스트잇 플래그, 네임펜, 딱풀 따위 문구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 어떤 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고 어떤 건 모르겠고 어떤 건 이름을 저렇게 붙여 쓰는가 싶어 혀를 끌끌 차고 싶다. (악세서리는 액세서리라고 적는 게 맞다.)
하나하나 시비 걸 시간도 없고 생각도 없다. 다만, ‘굿즈’가 무슨 뜻인지는 곰곰 생각해 봐야겠다. 몇 해 전부터 유난히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굿즈’다. 얼핏 영어 ‘goods’가 떠올랐다.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good’은 ‘좋은’이라는 뜻이고 ‘goods’는 ‘상품’이라는 뜻이라는 건 안다. 그래서 ‘굿즈’는 곧 ‘상품’이라는 말의 영어라고 생각해 왔다. 그냥 ‘상품’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영어를 쓰는지 딱하다는 생각도 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내려받음>
지난해 연말 즈음이었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올린 어떤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가장 찜하고 싶은 평창 굿즈는?’이라는 제목이었다. 그 밑에는 호랑이, 곰 그림이 있었다. ‘댓글을 남기면 추첨을 통해 평창 텀블러를 드려요!’라는 글귀도 보였다. 이른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굿즈 이벤트’라는 것이었다.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아무튼 이때 ‘굿즈’는 상품이라고 하기보다는 ‘선물’, ‘기념품’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니굿즈'의 하나라는 청와대 달력-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음>
며칠 전에는 또 엉뚱한 글을 만났다. ‘이니굿즈’라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경우는 정확하게는 아닐지라도 대강 그 뜻을 알아보았지만, ‘이니굿즈’는 참 낯설었다. 이런 경우 대개 ‘내가 외계인인가? 아니면 저 말이 외계어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니굿즈라... 이 말의 뜻을 찾아가다가 기어이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문재인 아이템, 문템, 이니템, 문재인굿즈’라는 말들을 한묶음으로 만난 것이다. 순간, ‘참 가지가지한다’ 싶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이니’라고 한다는 건 어디에서 들은 듯한데 ‘이니템’, ‘이니굿즈’라는 말까지 쓸 줄이야! ‘이니굿즈’는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한 이런저런 기념품, 상품, 선물 따위를 두루 이르는 말인가 보다.
‘굿즈’라는 말은 나날살이에서 아주 자주 보인다. 아무 생각없이 지낼 때는 잘 몰랐는데,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굿즈’라는 말이 풍년이다. 그러니 신문의 보도기사 제목에도 등장했겠지. 물론 ‘이니굿즈’라는 말도 나온다.
⚫ 청와대 달력, 모바일용 다운받고 ‘이니굿즈’ 소장하기...누리꾼 “일 잘한다~”(서울경제)
⚫ 온라인 서점도 이니굿즈 열풍 (독서신문)
⚫ 이니굿즈 ·평창굿즈·아이돌굿즈…굿즈 열풍 이면엔 (중앙일보)
⚫ 여자친구 굿즈 논란…달라진 팬덤문화 (뉴시스)
⚫ 새로운 소비 트렌드 ‘굿즈’가 대세다 (금강일보)
⚫ 100만원은 우습다?!…新 등골브레이커 ‘아이돌 굿즈’ (한국경제)
그러다가 작정을 하고 이 말의 뜻을 찾아보았다. 먼저 들머리 사이트 ‘다음’에서 검색해 봤다. “굿즈(goods)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상품을 일컫는다. 셔츠나 가방, 머그컵, 인형, 식품, 가전제품 등 갖가지 상품의 형태로 기획ㆍ판매되며 머천다이즈(merchandise)라고도 부른다.”라고 나온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팬’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머천다이즈’라고도 한다는 게 새롭다. 대통령도 연예인급인가 싶지만 그건 그것대로 뜻이 통한다.
‘나무위키’에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일반적으로는 상품, 제품, 물품을 뜻하며, 경제학에서 재(財)의 의미로도 쓴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좀 다른 뜻으로 쓰는 것 같다.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 특정한 인물,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나오는 파생 상품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일본 이외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상품들을 굿즈라고 부르지 않고 ‘머천다이즈(Merchandise)’라고 한다.” 또한 나무위키에서는 “우리나라 역시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굿즈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콘서트나 공식 파생상품 판매 사이트, 언론사와 같이 어법에 맞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원칙으로 하는 곳에서는 머천다이즈 또는 ‘캐릭터 상품’, ‘관련 상품’ 등으로 부른다.”고 해 놓았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무척 고맙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팬 상품’으로 순화하여 쓸 것을 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경우에는 ‘팬 상품’이 어느 정도 맞겠는데 ‘알라딘굿즈’에서는 바꿔 쓰기에 적당하지 않는 듯하다. 어색하다. 그렇다고 ‘머천다이즈’라고 하기에도 꺼림칙하다. ‘goods’를 한글로 적을 때 ‘굿즈’라고 쓰기도 하지만 ‘구즈’라고도 쓴다는 것도 배웠다.
아무튼 이 정도 찾아보고 나니 좀 알 듯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①‘굿즈’의 원래 뜻은 상품, 제품, 물품이다. ②대중문화에서는 특정한 인물,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나오는 파생 상품을 가리킨다. ③‘굿즈’는 일본에서 주로 쓰는 말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머천다이즈’라고 쓴다. ④우리나라 언론 등에서는 주로 ‘캐릭터 상품’, ‘관련 상품’으로 쓴다. ⑤우리가 대중문화에서 쓰는 ‘굿즈’는 미국말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에서 바로 들어온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날살이에서 바로 쓰기엔 적당하지 않은 말이다. ⑥이 말은 팬 상품, 캐릭터 상품, 관련 상품, 선물, 기념품 등으로 적당하게 바꿔 쓰면 좋겠다. ⑦마지막으로, 이 말이 살아남을지, 뜻이 다르게 번져갈지, 이 말 때문에 잘 안 쓰게 되는 우리말에는 무엇이 있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도록 한다.
2018.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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