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해에 등장하는 인사말 가운데 ‘천양운집’(千洋雲集)이라는 게 있다. ‘근하신년’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새로 개업한 가게에서도 ‘천양운집’이라는 말을 액자에 넣어 걸어놓곤 한다. 양띠해이던 2015년에는 더욱 많이 썼다. 마치 양띠해와 맞춤형 인사라도 되는 양.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누군가 들머리 사이트 ‘다음’에서 물었다. “‘천양운집’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누군가 대답했다. “천 가지 좋은 일들이 구름이 모이듯 몰려온다는 뜻입니다.”라고. 그는 이어 친절하게 한자풀이까지 덧붙였다. “千(일천 천), 洋(큰바다 양), 雲(구름 운), 集(모을 집)” 이렇게.
어떤 이는 “천 가지의 좋은 일들이 구름처럼 머물며 항상 함께하여 몸도 건강하고, 하는 일도 번창하여, 가정도 사업장도 평안함에 우리 모두 기쁨을 함께 나누었으면...”이라고 써 놓기도 했다. 천 가지 좋은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항상 함께하기, 건강, 사업 번창, 가정 평안, 기쁨 함께 누리기 같은 것을 올려 놓았다.
참 이상하다. ‘큰바다 양’이 어떻게 하여 ‘좋은 일’이라는 뜻이 된 것일까.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천양운집’이라는 말로 검색해 보면, 아주 다양하게 쏟아져 나온다. 액자로 만들어 찍은 사진도 나온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나 보다.
그런데 들머리 사이트에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해 놨다. “상서로울 ‘상’을 넣어 천상운집이 맞습니다. 바다 ‘양’이 들어가면 ‘천 개의 바다가 밀려온다’로 말이 안 됩니다. 굳이 의역하자면 온갖 고난이 밀려온다는 뜻이 되어 ‘천상운집’ 반대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이게 정답이다.
천 개의 바다가 마치 지진해일(쓰나미)처럼 밀려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생각하고 상상해도 천 개의 바다, 그것도 큰바다가 밀려오는 상황은 상서롭지 못하다. 비극적이다. 어마무시하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뜻이 그러한 줄 알면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잘 몰라서 그러할 것이다.
‘천상운집’(千祥雲集), 즉 ‘천 가지 상서로움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는 말에서 누군가 ‘祥’을 ‘洋’으로 잘못 보고 쓰기 시작한 게 널리 퍼진 것이다. 참 우스운 일이다. 잘못 쓴 말을 어떤 이는 액자에, 어떤 이는 연하장에, 어떤 이는 자기 개인 누리방에 써 온 것이다. 아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여겨질 텐데, 대부분 사람들이 무심코 써온 것 같다.
굳이 어려운 한자 또는 한자어로 쓰려니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보통 식당이나 사무실 같은 데 가 보면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글귀를 본다. “모든 이에게 평화”라는 말도 본 듯하다. 어떤 종교적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얼마나 좋은 말인가. 새해에 보내는 인사말이라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하면 얼마나 깔끔한가.
새로 가게 문을 연 사람이 꼭 한자로 멋진 액자를 걸고 싶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천객만래’(千客萬來)라는 말을 본 듯하다. 천 명의 손님이 만 번씩 오라는 뜻이다. ‘천객운집’(千客雲集)이라는 말도 흔히 쓴다. 문전성시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좋다.
오늘 결론은 이렇다. ‘천양운집’은 틀렸다. ‘천상운집’이 맞다. 새해 인사라면 '근하신년', 새 가게를 연다면 ‘천객만래’, ‘천객운집’, ‘문전성시’ 같은 말도 쓸 수 있겠다. 굳이 한자로 쓸 필요가 뭐 있나.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오’, ‘모든 이에게 평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처럼 쉬운 우리말 인사를 찾아 쓰면 더 좋겠다.
2018.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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