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공휴일이다. 기독교를 믿든 믿지 않든 모든 국민들은 이 날을 기린다. 심지어 불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축하한다. 아기 예수가 인류를 구원했는지, 할 것인지, 어떤지 상관없이 이날은 축제 날이다.(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면 이렇게 인류를 고통 속에 빠뜨릴 까닭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더구나 성탄절은 12월 25일이어서 더욱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연말이기 때문이다. 연말이라면, 성탄절이 아니라도 누구든 한해 동안 살아오면서 고마운 사람, 정이 깊게 든 사람, 아쉽게 헤어진 사람을 떠올리게 돼 있다. 은혜에 감사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빌고 더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내년부터는 더 신경쓰자고 다짐하고 그런 다짐을 상대방에게 전하기도 한다.
그런 것을 더욱 분위기 있게 하기 위해 가정의 거실이나 공공장소에 크고 작은 나무를 세워 놓고 초롱초롱 예쁜 촛불이나 전등을 켠다. 숭고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도 있고 화려하고 흥분되는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다들 모여서 노래를 부른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대중가요나 흘러간 옛 노래 또는 흔히 부르는 팝송들이 아니다. 아이돌 가수의 빠른 박자의 노래도 아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이날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는 흰 수염 빨간 옷 할아버지의 노고를 위로하거나 그 할아버지가 탄 썰매를 끄느라 코끝이 빨갛게 익은 사슴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 할아버지와 사람은 곧 한 해 동안 힘들게 때론 즐겁게 한 가정을 이끌어온 어버이를 가리킨다. 성탄절은 전 세계 공통의 축제날이고 기념일이다.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아니, 반대로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에서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성탄절이라고 부른다. ‘성탄절’(聖誕節)은 성인이 탄생한 날이라는 말이다. 흔히 공자, 예수, 석가, 마호메트를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한다(마호메트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날을 성탄절이라고 하고 석가가 태어난 날을 석탄일이라고 한다. 석탄일은 사월초파일이라고들 부른다. 4월 8일이라는 뜻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가장 마음에 든다. 얼마나 좋은가. 성탄절도 ‘아기예수 오신 날’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 이런 이름이 널러 퍼졌으면 한다.
아무튼 성탄절이라고 하면 될 것을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성인이 탄생한 날이라면 부처님 오신 날도 성탄절이라고 할 만한데 이를 구분하여 부르는 건 좀 의아하다. 하지만 이해할 만하다. 세계적인 언어라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엑스마스(X-Mas)라고도 줄여 부르는데 그 까닭은 잘 모르겠다.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성탄절을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하는데,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Christ’와 ‘절(節)’ ‘축일(祝日)’을 뜻하는 ‘mas’가 결합한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줄여 ‘X-mas’라고도 하는데, ‘X’는 ‘그리스도’를 그리스어로 표기한 ‘흐리스투스(Χριστός)의 첫 글자이다.”
그 전날 밤을 ‘전야’라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이브’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이브’(eve)는 무엇인가. 순간, 어릴 적 씹던 껌 이름이 ‘이브’였다고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담과 이브’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브는 그냥 ‘축제나 기념일 등의 전날 밤’을 가리키는 영어다. 그런 영어를 성탄전날 밤에만 쓰고 있는 셈이다. 꼭 영어를 쓸 것이라면, 설날 이브, 추석 이브라는 말을 쓰지 못할 까닭이 없는데 그러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모든 기념일 앞날에다 이브를 붙인다면, 정말 아담의 짝이던 이브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지 않겠는가.
성탄절에 켜는 촛불은 ‘캔들’이라고 한다. 캔들(candle)은 무엇인가. 초다. 초는 무엇인가.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수천만 국민이 서울 광화문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치켜 들었던 그것이 초에 불을 붙인 촛불이다. 횃불을 든 사람도 제법 있었지만. 아무튼 이 촛불시위를 캔들시위라고 했더라면 어쨌을까. 하지만 우리 국민은 캔들이라는 말을 버리고 촛불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위대한 촛불혁명을 이루어냈다. 만약 ‘캔들혁명’이라고 했더라면 어찌 됐을까. 그렇게 부르지 못할 까닭은 없지만 싱겁고 버석거려서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초를 캔들이라고 부르는 건 널리 퍼져 있다. 캔들나라, 캔들박스, 캔들하우스, 캔들워머, 아로마 캔들, 예쁜 캔들, 양키 캔들, 캔들파이어, 캔들 홀더…. 여기서 ‘캔들파이어’가 정확하게 ‘촛불’을 가리킨다. 성탄절 전날 밤 캔들파이어 놀이하면서 보낸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냥 촛불이라고 하고, 촛불잔치라고 해도 될 듯하다. 촛불놀이, 촛불의식이라고 해도 될는지….
성탄절에 부르는 노래를 ‘캐럴’이라고 한다. 캐럴(carol)은 ‘성탄절이나 부활절 때에 부르는 민요풍의 종교적 가곡’이다. 사전에서는 ‘성탄절이나 부활절 때에 부르는 민요풍의 종교적 가곡. 15세기 영국의 종교 가곡의 한 형식으로서 생겨나 발전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성탄절을 축하하는 노래 일반을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탄절 민요’, ‘성탄절 가곡’, '성가곡'이라고 해도 되었을 것을 굳이 ‘캐럴’이라고 한다.
성탄절에 집 거실에 꾸며놓은 나무를 ‘트리’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라고들 부른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대개 발삼 전나무나 미송을 사용한다고 한다. 상록 침엽수를 집안이나 야외 등에 설치하고는 전등과 장식품 등으로 꾸미는 것을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간단히 말하면 ‘성탄절 장식물’이다. 장식물 가운데 그것이 나무 또는 나무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성탄절 나무’가 되겠다. 성탄절 나무라고 하면 밋밋해 보이니까 ‘성탄절 나무 장식’이라고 해도 되겠다. ‘트리’(tree)가 나무니까.
그 성탄절을 축하하는 인사말은 ‘메리’다. 보통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메리(merry)는 ‘명랑한, 웃고 즐기는, 쾌활한, 얼근히 취한’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명랑하고 즐거운 성탄절입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다. ‘즐거운 성탄일입니다’라는 인사말도 흔히 본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되지만 ‘즐거운 성탄일’, ‘명랑한 성탄일’이라는 인사말도 괜찮다. 영어로만 해 버릇해서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정겹고 멋지게 보이게 된다.
성탄절과 관련한 말을 몇 가지 살펴 보았다. 오랫동안 써온 크리스마스, 이브, 캐럴, 캔들, 트리, 메리 따위 말을 한번에 없애자고 하거나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혹시 앞으로라도 크리스마스라고 할 것을 성탄절이라고 하고, 이브라고 할 것을 전야 또는 전날밤이라고 하고, 캐럴이라고 할 것을 성탄절 민요라고 하고, 캔들이라고 할 것을 양초라고 하고, 트리라고 할 것을 성탄절 장식 나무라고 하고 메리라고 할 것을 즐거운, 명랑한이라고 해 주면 어떨까 해서 하는 말이다. 단 몇 명이라도 그렇게 해 주면 좋겠다. 이미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면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자료는 충분하다. 다행이다.
2017. 12. 25.
*사진은 뉴스1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경남도민일보> 정성인 부장께서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아 주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난 성탄'절'이라는 말에는 반댈세. '절'이라 함은 국가경축일(국경일)에 붙이는 말인데,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이 있지. 법률로 정해 놓은 것인데 여기에 '성탄절'은 없다네. 또 '성탄절'이란 말에 열받은(?) 불교도들이 '부처님 오신날'이라는 좋은 말 버리고 '불탄절'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서 쓰기도 하니 더더욱 '국경일'이 아닌 '예수 오신날'을 '성탄절'이라 부르는 건 안될 말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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