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12~14일 휴가를 갈 예정이었다. 예정은 미정이다. 12일 중요한 행사가 생겼다. 미정인 상태이던 12일 휴가는 취소했다. 13~14일 이틀 동안 휴가를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래도 토, 일요일까지 합하면 나흘이니 충분하지는 않지만(휴가는 아무리 길게 가도 늘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휴가라는 게 따로 며칠을 할당해 주는 게 아니라 연간 20일 남짓 되는 연차휴가를 쪼개어서 가야 하는 것이니 임시공휴일 덕분에 하루를 절약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인 17일을 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휴가를 절약하여 나중에 수당을 좀 더 받고자 하는 건 내 생각이지만, 수당을 줘야 하는 쪽에서는 되도록이면 휴가를 모두 사용하도록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으니, 월요일이나 화요일까지 휴가를 가도 된다. 나무랄 것 없는 선택이다. 나는 이렇게 개인적인 일만 요리조리 계산하며 미소를 띠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하고 있다.
2.
광복절 하루 전날인 8월 14일이 임시공휴일이라고 해도 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원래 이날은 쉬는 날이어서 굳이 임시공휴일을 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라에서 하는 말대로 쉬지 않던 하루를 더 쉬면서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괜찮은 생각일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생각해 보면 좀 웃기는 구석도 있다. 올해 광복절은 토요일이니 휴일이다. 주5일제를 시행하지 않는 회사도 광복절은 휴일이다. 그러면 이날 쉬면서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면 되는 것 아닌가. 모모한 인사들은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일반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중계해주는 기념식을 보면서 광복절을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디를 놀러가더라도 토, 일요일 연휴이니 국내에선 웬만한 곳을 다녀올 수 있겠고, 가는 길 오는 길에서 광복의 의미를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영화를 보면서 또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아, 오늘이 광복절이구나’하는 생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굳이 그 앞날 금요일을 휴일로 지정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 좀 생뚱맞다. 나중에 80주년, 90주년에도 광복절 앞날이나 뒷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것인지 기대해 볼까.
3.
‘메르스’ 때문에 경기가 얼어붙었다고 한다. 어딜 가더라도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던 지난 두어 달 동안 관광지는 물론이고 도시에 있는 재래시장과 상가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내수경기진작’(나는 이런 낱말 조합에서 유신의 찌꺼기를 느낀다)을 위하여 이러저러한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일단은 그럴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임시공휴일을 지정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안 받기로 하는 것 등의 조치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런데 휴일이 길어지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안 받는다고 하여 내수경기가 진작될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국민들이 주머니를 잘 열지 않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 아닐까 싶은 것이다.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르고(어쩌다가 총수들의 다툼으로 인해 망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멀쩡하던 몸이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데 세상모르고 돈을 쓰고 다닐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휴일이고 휴가라면 어쨌든 짜장면이나 통닭 한 마리라도 시켜먹을 수 있고, 가까운 유원지를 갔다 올 수도 있으며,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 한 편 감상하며 더위를 식힐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을 내수경기진작이라는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 시간당 5580원의 나라에서,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나라에서, 청년실업률(15~29세)이 전체실업률 3.9%보다 훨씬 높은 10.2%, 체감실업률 20%인 나라에서, 내수경기진작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 휘황찬란한 관광지에서 사흘 연휴를 즐길 때 폭염과 싸우며 일하는 사람들, 방콕하며 텔레비전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오늘도 내일도 구인정보 사이트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2015.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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