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진주중학교 2학년이던 1981년 미술시간에 탈 만들기 실습을 했다. 바가지를 엎어 놓고 종이찰흙을 덕지덕지 붙이고 말린 뒤 대충 색칠을 하는 과정을 몇 주 동안 했다. 처음에는 그것을 가지고 뭘 할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천예술제 가장행렬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2학년 6반 김언희 선생님 반 학생들이 가장행렬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척 보기에 턱이 삐죽한 놈이 나다.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진주중학교에서 출발하여 공설운동장으로 갔는지 그 반대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우리는 개천예술제에 참가한다는 보람, 영광, 기쁨보다는 그저 하루 공부 안 하고 논다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각자 만든 탈을 뒤집어쓰고 시내를 지나는 동안 길 양옆에 모인 구경꾼들은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고는 더욱 신이 나서 괴상한 춤(이라기보다는 몸동작)을 추면서 행진을 했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사진에 찍힌 날짜를 보니 81년 11월 1일이다. 그땐 개천예술제를 지금보다 한 달 늦은 11월초에 했다. 농민들은 가을걷이를 그럭저럭 끝내고 주머니에 목돈 좀 넣어가지고 구경을 나오곤 했다. 지금은 가을걷이가 한창인 10월 초에 한다. '역사를 상고해 보니', 10월 10일을 진주시민의 날로 하는 게 맞고, 그러니 그날을 앞뒤로 하여 개천예술제를 하게 된 것이고, 진주남강유등축제도 기간을 맞춰 하게 된 것이다. 다른 건 내버려두고라도 11월에 할 때만큼 춥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진-2, 3]
지금처럼 진주남강유등축제라는 게 없을 때 개천예술제에 딸린 행사의 하나로 남강에 유등을 띄웠다. 유등축제의 모태라고 할까. 대개 진주 시내 고등학교들이 하나씩 띄웠다. 대아고등학교의 한반도 태극기 유등과 동명고등학교의 용 유등이 유명했다. 학교 이름으로 등을 띄우기는 했지만 전교생이 동참하는 것은 아니고 대개 미술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 몇 분, 또는 학생 몇몇이 참여하여 등을 만들고 띄웠다. 대아고 오영오 선생님의 혼과 열정이 담긴 한반도 태극기 유등을, 우리는 진주교를 지나면서 내려다보고는 자랑스러워했다. 울릉도 독도도 분명히 보인다. 해마다 유등을 띄웠던 것 같기도 하고 한번 하고 말았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직접 찍은 사진을 학생들에게 인화비만 받고 파셨는데, 추억을 간직하기 위하여 석 장 산 게 지금까지 사진첩에 꽂혀 있다.
고등학교 때도 가장행렬에 참가한 적이 있다. 몇 학년 때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동기 중 산청 단성 출신 한 명이 진짜 거지같이 분장을 하여 관람객들을 요절폭도하게 했다. 그 뒤로 그 친구 별명은 ‘걸베이’가 되었다. 나는 그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행진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개천예술제가 우리나라 종합 예술제의 효시로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며, 진주남강유등축제를 특화해 내는 등 변화하고 발전하여 온 데는 진주지역 중고등학교와 학생들의 참여도 작으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2014.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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