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인가 보다. 망경동 둔치에 대학 홍보부스를 차려 놓고 있었다. 즐길 만한 것인가 하는 잣대로 보나 내 호주머니에 뭔가 들어오는 것인가 하는 기준으로 보나 대학의 홍보부스는 그다지 재미 없게 마련이다. 수험생 있는 학부모나, 타향에 살다가 오랜만에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 구경하러 온 동문들 말고는 눈길을 사로잡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부스 안에서는 ‘혈액형 맞춤 DNA 팔찌 만들기 체험’이라는 아이디어로 ‘호객’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부스 바깥에서 지나가는 분들을 붙들고 홍보 리플릿을 나눠주면서 정말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너덧 시쯤이면 해가 서쪽으로 살짝 넘어갈 만한 시간이다. 저기 멀리서 안면 있는 노부부 두 분이 나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 그분들은 안간국민학교 시절 우리 반 여자애 재경의 부모님이셨다. 한 동네에 살며 “아지매, 아제”라고 부르는 사이다. 나는 “아이고, 아제, 아지매, 예술제 구경 왔십니꺼?”라고 고함을 질렀고 “니, 우기 아이가?”라며 반색을 했다. 이 두 분은 진주에서 열리는 개천예술제,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오신 것이 분명했다.
연세 일흔 남짓은 되셨을 두 분이 유등축제나 개천예술제에서 즐기고 추억에 남길 만한 것이 무엇 있을까. 복잡한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니기엔 기력이 부칠 것이고, 그렇다고 주막에 들어앉아 술타령을 하실 계제도 아닌 게 분명했다. 자녀가 다섯이나 되는데도 이날은 단 두 분이 외출하신 것 같았다. 노부부가 축제를 즐기기 위해 버스를 타고 진주까지 나온 것, 그것은 이 분들의 삶에 정서의 물결이 있고 좋은 것에 대해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술을 안다는 것이다. 나는 내 부모 같은 이 분에게 작은 추억을 선물하기로 했다.
사진을 찍어드리기로 한 것이다. 두 분을 진주교를 배경으로 서시게 한 다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 시간엔 그 방향으로 서야 얼굴이 잘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사진 꼭 보내드릴께예!”라고 한 약속을 나는 지켰다. 어른께 jpg 파일을 보낼 수 있겠나. 인화하여 가장 잘 나온 사진은 크리스털 액자에 넣고, 나머지는 자녀들에게 한두 장씩 줄 수 있도록 추가 인화하여 우편으로 안간 댁에 보내드렸다. 액자는 텔레비전 옆이나 문갑 위에 올려두면 좋겠거니 싶었다. 그러고 나는 그 일을 까먹었다.
한참 뒤에 창원에 사는 재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기야, 고맙다. 우리 옴마가 네 맛있는 거 한번 사주라 카더라.”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는 수십 년 전 어릴 적 추억과 함께 대학 시절 나누던 우정이 생각났다. 아마 사진 액자를 받고는 나와 동기인 딸에게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예술제 구경을 갔는데도 사진 한 장 없었는데, 우기 덕분에 올해는 좋은 선물을 받았다.” 뭐, 이런 말씀을 하신 모양이다. 나는 다른 것보다 사진을 찍어 보내드린 게 정말 잘한 일 같아 마음이 참 좋았다. 괜히 내가 눈물이 나려고 해서 긴 이야기를 못하고 전화를 빨리 끊어야 했다. 그런 개천예술제,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추억이 아련히 생각난다. 올해는 어떤 추억이.......
사진 파일을 뒤져 보니 그때 사진이 아직 있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한 장 올려놓는다. 참, 그러고 보니 밥은 아직 안 얻어 먹었네. 대신 시골 가면 전에보다 더 반갑게 나를 대하여 주시는 친구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빈다.
2014.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