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라는 말에는 인정이 묻어난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 비싼 음식이 아니기에 쉽게 권할 수 있고 또 누구든 맛있게 먹는 음식이다. 바쁜 사람은 바빠서 후루룩 마시듯 먹고 가고, 안 바쁜 사람은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국수는 누구나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국수를 알맞도록 삶는 것도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육수와 고명들을 제대로 해서 먹으려면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엄두 내기 어렵다. 그래서 “국수 한 그릇 대접하겠다”고 쉽게 말할 수는 있어도 집에서 직접 맛있게 해서 대접하기란 쉽지 않다.
어머니 국수 솜씨는 그다지 훌륭한 편이 아니셨다. 일단, 육수를 낼 때 멸치를 엄청 많이 넣어 진하게 우려낸다. 배춧속이나 시금치, 실파, 부추 같은 것을 데쳐 참기름 또는 들기름에 무쳐 내기도 하고 김장김치를 잘게 썰어 볶아 내기도 한다. 호박이 곁들여질 때도 간혹 있다. 마지막에 김 가루나 참깨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 달걀 홍백지단을 예쁘게 얹어주기도 한다. 다진 홍합을 간하여 넣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걸 아주 좋아한다. 어머니 국수엔 잔손이 많이 간 듯해 보이지만 “아주 맛있다”에는 못 미친다. 다만,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40년 넘도록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고 또 고마워서 후루룩 쩝쩝 잘도 먹는다. 참, 어머니 전공은 콩국수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진주시내에 국숫집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시내 한가운데에도 버젓한 국숫집이 있고 변두리에는 골목을 돌 때마다 국숫집 하나씩을 만나게 된다.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단골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이곳저곳을 번갈아가며 맛평을 하기도 한다. 양도 보고 때깔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주인의 웃음이나 인심도 보겠지. 물론 값도 확인할 것이다. 거기서 거기일 뿐인 국수이지만 이래저래 재어보면 차이가 보이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된다.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 꿈으로 개업한 곳도 있겠고, 나이 많은 친정어머니와 함께 국숫집을 차려 호구지책을 마련하기도 하고 자녀 교육도 하는, 눈시울 시큰할 사연을 가진 곳도 있으리라. 국수 한 그릇에 인정이 묻어나는 것은, 값싸고 소박해 보이는 이 음식이 가진 뜻밖의 사연 덕분일 수도 있겠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땡초파전이 먼저 입안을 깔끔하게 해 주었다. 지름이 길지 않은 이 파전은 얇게 구워져 바삭함 전단계의 입맛을 선사한다. 가게 구석에서 구수한 냄새를 피우고 있는 어묵을 먹어봤다. 파전을 찍어먹는 장이나 어묵을 찍어먹는 장이나 같은 것인데, 많이 짜지 않고 달고 고소한 맛이 뒤따른다. 양파ㆍ땡초 조각이 젓가락과 술래잡기를 한다. 내친 김에 칼국수와 비빔국수, 그리고 유부김밥을 시켜보았다. 제각기 고유한 맛과 멋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빔국수를 더 좋아하는데 양념에서 범상치 않은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양은, 손님 위의 크기에 따라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하는데 값은 같단다. 저녁에 갔으면 돼지고기 볶음과 파전에다 막걸리 한잔 하면 딱일 것 같았다. 어머니 솜씨와 견주려면 잔치국수를 먹어봐야겠는데, 그건 다음으로 미뤘다.
-진주시 가좌동 개양지구대 뒤 <25시 학천국수>에서
201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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