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8년

by 이우기, yiwoogi 2014. 9. 28.

8년 전, 그러니까 2006년에 대학 홍보대사이던 학생, 지금은 외환은행 다니는 민혜가 오늘 결혼했다. 동기 결혼 축하하기 위하여 다섯 녀석이 나타났다. 그때 1~3학년이던 녀석들 나이가 달걀 한 판을 넘어서고 있단다. 저희들은 그만큼 어른이 된 것이고 우리는 그만큼 젊어진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 같지만, 오늘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날이다.

3년 전에 결혼한 영호는 8개월짜리 쌍둥이 아빠가 되어 있는데 그새 창원에서 조그마한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단다. 부인과 팔짱끼고 나타난 찬주는 내년에 애기 아빠가 될 거라며 웃는다. 내년에 부산대 박사가 될 수연은 공부하는 재미, 실험하는 즐거움, 논문 쓰는 희열에 묻혀 사는 것 같다. 부산대 석사가 될 민지는 내년 봄에 웨딩마치를 울릴 거란다. 역시 실험실, 강의실이 아늑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용성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새 명함을 내민다. 듣자 하니, 혜령은 11월의 신부인데 오늘은 야외 촬영하는 날이어서 못 왔단다.

제 몫의 삶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고맙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난다. 그동안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이 있었겠는데, 그때 그 웃음 그 목소리 그 다정한 눈빛들이 하나도 변함이 없다. 우리는 다만 녀석들이 졸업을 하여 어디서 무엇을 하든 늘 건강하고 스스로 행복하기를 빌었을 뿐인데, 그 시절 일들이 저마다 가슴 속에서 계속 발효하고 있는지 할 말이 무척 많은 표정이다. 풋풋하기도 하고 열정적이기도 했던 대학시절의 아슴아슴한 추억, 그 추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홍보실이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제 할 일들이 있는, 있어야 할 나이들인지라 사진 한 장 찍고 헤어지면서 11월 혜령 결혼식 때 또 만날 걸 약속한다. 용성, 수연, 민지는 학교로 가서 홍보실에서 커피를 타 마셔본다. 나는 그때 아침마다 이 커피를 얻어 마셨다. 물 양과 고소함이 꼭 그대로다. 차를 타고 느릿느릿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았다. 새로 생긴 건물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길과 길 사이에 선 나무들도 반가운가 보다. 남녀 학생 서넛이 가방 메고 가는 사이에 자기가 서 있는 듯한 착각에 잠기는가 보다.

2004년부터 홍보대사를 뽑고 가르치고 함께 일해 왔다. 한 해에 열서넛씩이니 다 합하면 130명은 족히 넘는다. 어떤 녀석은 이름도 얼굴도 대번에 정확하게 기억난다. 그와 얽힌 일화도 떠오른다. 어떤 녀석은 이름을 말해주니 좀 있다 생각난다. 그러나 누가 몇 년도에 우리와 인연을 맺었는지까지 순서대로 다 기억할 수는 없다. 우리는 내 자식도 저들처럼 몸도 마음도 정신도 반듯하게 자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8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타난 나의 오랜 벗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2014. 9. 27.  


'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천예술제의 추억  (0) 2014.09.28
보다  (0) 2014.09.28
국수  (0) 2014.09.28
조금 좀스럽게  (0) 2014.09.28
폭력ㆍ2  (0) 201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