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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제삿날의 짧은 생각

by 이우기, yiwoogi 2022. 8. 24.

아버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됐다. 처음 몇 해는 제삿날 다가오면 우울하였다. ‘이제 좀 괜찮네’ 하는 마음이 생길 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슬픔과 그리움은 연장되었다.

 

제삿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며 제수 준비를 했다. 전 부치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은 조카가 사는 옥봉 본가 처마 밑에 전을 펼친다. 두부, 새우, 산적, 동태살 따위를 굽는다. 곁에서 형수가 거들어 준다. 주방에서는 아내가 재료를 미리 다듬어 준다. 손발이 척척 잘도 맞다. 술안주 겸 간식으로 부추전도 부친다. 올해는 양을 많이 줄였다. 간 보느라 부추전을 뜯어 먹다가 소주, 맥주를 마신다. 퍼질러 앉은 다리가 저리고 발가락에 쥐가 난다.

 

 

낮 동안 벌어질 온갖 가지 자질구레한 일이 걱정될 형제들을 위해 전 굽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단체 카톡방에 올린다. 작은형이 위로 겸 농담조로 이행시를 보내온다. ‘우: 우짜든지 수고한다, 기: 기술이 주방장급이다. 찌짐 굽는 솜씨가.’ 그래서 웃는다.

 

점심 먹고 한숨 잤다. 마음은 바빠도 어차피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큰형수는 거실에서 코를 골고 큰조카는 안방 침대에서 코를 골고 나는 거실에 나동그라졌다. 텔레비전 보는가 싶던 아내도 이내 코를 곤다. 에어컨 바람과 선풍기 바람이 서늘하여 좋았다.

 

오후에는 나물을 데쳤다. 숙주, 콩나물, 도라지, 열무, 고사리 등을 순서대로 끓는 물에 넣었다가 건져냈다. 거실 에어컨 밑에 나물 바구니를 나란히 벌여 놓는 건 날씨 때문에 나물이 시어버릴까 걱정된 때문이다. 몇 해 전 나물이 쉬어서 낭패를 겪은 적 있다.

 

나물 다음에는 생선을 찐다. 어물전에서 사온 생선을 커다란 찜솥에 펼친 뒤 불에 올린다. 형수는 정확하게 30분 지난 뒤 불을 끄라고 했다. 다음은 돼지고기 수육 삶은 일이 기다린다. 돼지고기는 제상에도 올려야 하지만 우리가 안주로 먹어야 한다. 커다란 찜솥에 대파와 양파를 깔고 그 위에 고깃덩이를 올린다. 낮은 불로 1시간 이상 끓인다. 대파, 양파에서 채수가 나와 고기를 익힌다. 고기 맛은 그만이다.

 

일을 다했는가 싶었지만 여자들은 주방에서 아직 할 일이 많다. 탕국에 들어갈 두부와 무를 썬다. 나물도 종류별로 나누어 무칠 것은 무치고 볶을 것은 볶는다. 과일도 씻어 놓는다. 혹시 빠뜨린 게 없는가 싶어 냉장고를 몇 번씩 더 열어본다.

 

본격적으로 일 시작하기 전에 막 쪄온 떡 먹으며 소주 한 잔, 부추전 구우며 맥주 두 잔, 점심 먹으며 열무김치와 멸치볶음 안주 삼아 소주 서너 잔, 돼지고기 먹으며 소주 너덧 잔씩 마신다. 큰형님 왔다고 한 잔, 동생 왔다고 한 잔, 작은형님 왔다고 한 잔씩 곁들인다. 제사 마친 뒤에는 음복으로 동동주 서너 잔까지 알뜰히 챙겨 마신다.

 

덕분에 제사 순서도 조금 헷갈린다. 수십 년 해오던 순서가 우리 집안에서는 나름대로 원칙이겠지만 그 원칙이라는 것도 이젠 조금 바꿀 때가 되었다. 제사상 차리는 일에서부터 남녀가 따로 없고 위아래가 따로 없이 된 마당에 절하는 순서나 잔 올리는 순서를 수십 년 전의 기준에 굳이 맞출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돌아가신 분과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고 어른들이 우리에게 강조하여 나무란 것들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바르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이상의 정성은 없으리라고 본다. 정성이 참되고 지극하면 그것으로 제사 지내는 자식의 도리는 얼추 다 한 것 아닌가 싶다.

 

 

그래도 제사상 차린 모양이 올해 다르고 내년 다르면 볼품없겠다고 생각한다. 과일과 고기와 나물과 떡의 위치를 대충이라도 정해 두는 것이다.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두동미서니 하는 재미없는 한자말을 조카들에게 들려주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또한 몇 해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제사 또는 차례라는 풍속이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데다 조카들에게, 그 조카의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진다 한들 지금처럼 하루 종일 음식 장만하느라 진땀을 빼는 문화는 없어지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지방(紙榜)은 우리말로 쓴다. ‘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말은 우리 세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아래 세대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몇 해 전부터 ‘그리운 아버지 ○○○ 님 신위’ 또는 ‘사랑하는 어머니 ○○○ 님 신위’ 이렇게 쓴다. 좀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동의한다.

 

구름과 비 덕분에 그다지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제사 준비를 10년째 하다 보니 손발이 잘 맞는 것도 다행이다. 조카들까지 모든 식구가 다 모이지는 못하였어도 하하 호호 웃으며 우울할 뻔한 제삿날을 잔칫날로 만든 것도 무척 다행이다.

 

마치고 집에 오니 11시가 되어 간다.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양도 줄였는데도 이것저것 푸짐하게 싸 왔다. 전, 탕국, 돼지고기, 떡, 나물들, 생선, 과일 따위 음식들을 살뜰히도 쌌다. 이 음식 다 먹는 날까지를 제사 기간이라 할 만하다.

 

좁아터진 본가 마당과 거실과 안방과 주방을 수없이 뛰어다니며 모든 음식을 순서에 따라 종류에 따라 빈틈없이 챙겨주신 큰형수님의 공이 가장 컸다. 미리 장 본 것까지 합하면 그 수고로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나와 아내는 그저 시키는 것을 시키는 대로만 하였을 뿐인데도 이렇게 피곤한 걸 보면, 점심 먹은 뒤 곯아떨어진 큰형수님의 코골이가 백 번 이해되고도 남는다.

 

아버지, 어머니 계실 적 명절 차례상 차리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는 총감독이셨고 아들과 며느리들이 너나없이 앞장서 심부름을 했다. 아버지는 음식이 싱겁다, 짜다라고 평가했고 특히 돼지고기는 덜 삶았다, 더 삶았다고 타박했다. 명절 앞날과 명절 당일 오 부자가 마주 앉으면 소주 여남은 병은 일 같잖게 비워내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다. 이제 큰형님이 아버지이고 큰형수가 어머니이다. 집안의 어른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으면 동생들이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저세상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언제나 화목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랄 것이다. 혹여 아픈 형제가 있으면 서로 보살피고, 혹시 힘들어하는 가족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누구의 아들이든 딸이든 멋진 일을 해내는 녀석이 있으면 마치 내 자식인 양 축하하고 격려해 주는 그런 형제들이기를 바랄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것이란, 그런 장면을 잠시 보여드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2022. 8. 24.(수)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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