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극단 큰들이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마당극 상설공연을 시작한다는데 안 가 볼 수 있나? 동의보감촌에서 올해 3년째 상설공연을 하는데, 그동안은 산청군 지원으로 공연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2019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단다. 즉 지방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정성을 들이던 마당극 공연을 중앙정부에서도 그 실력과 의미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 보지 않을 수 있나? 손뼉을 더 많이 더 세게 쳐주고 싶었고 환호소리도 더 신나고 크게 질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 5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 연휴여서 몸도 마음도 한결 여유로웠다. 4일 토요일엔 큰형과 함께 갔다. 큰형은 지난해 이맘때 어머니와 <오작교 아리랑>을 함께 관람한 적 있다. 그동안 시간 맞으면 함께 한번 가자고 하시던 것이, 마침 이날이 그날이 된 것이다. 아내는 저녁에 가족들을 우리 집으로 초청해 둔 터라 이것저것 장만하느라 차를 몰고 나갔고 나는 형님 차를 몰았다. 감기기운이 약간 있던 큰형과 나는 산청과 함양의 경계에 있는 ‘주암식당’으로 가서 메기매운탕을 먹었다. 생초에서 어머니와 먹은 메기탕과 약간 다른 맛이었는데 정말 정신없이 먹었다. 옷에 국물이 튀는 줄도 몰랐고 콧잔등에 땀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참이슬 예닐곱 잔 마셨다. 형은 운전을 해야 해서 안 마셨고. 사진기도 휴대폰도 두고 가는 바람에 사진을 못 찍었다.
더욱 산뜻해진 분위기, 더욱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서 공연을 즐겼다. 날씨는, 공연하는 배우들은 조금 더웠겠지만 관람하는 우리들은 시원한 차양 아래에서 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잽싸게 진주로 돌아왔다. 형님은 형님 가족과 동생 가족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올 것이다. 나는 ‘산청돼지국밥’에 수육을 주문하고 평거동 어느 횟집에 회를 주문했다. 그러고선 어머니 모시러 본가에 갔다. 마침 봉래초등학교에서 열린 경로잔치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취기가 분명했다. 강아지 목욕시키다가 손등을 물려 피도 흘렸다. “야이놈아, 할매를 물때면 되나 카면서 점잖게 멀캤다.”라고 하셨지만 나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참았다.
저녁 6시부터 집들이가 시작됐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건 아니었다. 창원 사는 작은형님 가족은 아무도 오지 못했다. 큰형님의 둘째아들도 근무 중이라 불참이다. 제수씨도 친정 여형제들끼리 마침 어디 놀러가는 바람에 안 왔다. 그래도 10명이 길게 둘러앉았다. 회도 먹고 수육도 먹고 아내가 직접 요리한 닭볶음탕도 먹었다. 피자는 이마트에서 산 걸 데워 먹었고 나중엔 닭튀김도 한 마리 주문했다. 홍합국물도 들이켰다. 들이켠 건 소주, 맥주, 소맥, 흑무도(큰들 전민규 형이 일본에서 사오신), 음료수 들이었다. 밥과 근대국도 먹고 과일도 먹었다. 말 그대로 먹고 마시고 놀았다. 나는 취하였다. 억수로 취했다. 대리운전기사와 택시를 불러 가족들을 모두 떠나 보낸 뒤 거실에 아내와 마주앉아 흑무도 서너 잔과 맥주 한 잔을 더 마셨다. 평소 주량보다 많이 넘쳤다.
기쁘고 슬픈 밤이었던 것이다. ‘반도병원’ 간호사로 취업한 큰조카가 할머니께 용돈을 드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다시 손자들 용돈을 주셨다. 어린이날이라는 것이다. 나도 어머니 앞에서는 어린이이니 용돈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니는 안준다” 단호한 어머니시다. 나도 조카들에게 용돈을 좀 주었다. 그래야 이런 가족모임에도 스스럼없이 참석할 것 아닌가. 그래야 우리 조카들이 어딜 가든 제 먹고 싶은 것 사먹고 친구들에게도 사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나저나 좀 많이 취한 밤이었다. 이 자리에 꼭 있었으면 좋겠는, 그 모습이 어떠하더라도 함께 앉아있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는 아버지 생각이 자꾸만 나기에, 눈물이 좀 흐른 그런 밤이었다.
5월 5일 일요일은 푸르고 맑았지만, 내 머릿속과 뱃속은 난리가 났다. 아침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지끈지끈 어질어질한 머릿속은 좀체 정돈되지 않았다. 아내는 곤하게 자고 있다. 혼자 부시럭거리며 라면을 끓여 해장했다. 다시 잠들었다. 문득 깨어 텔레비전을 보다 다시 잤다. 11시 넘어서는, 다시 가리라던 동의보감촌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아내는 그때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더니 어디든 나가자고 채근한다. 아무래도 그래야만 몸이 좀 회복되겠다 싶어 주섬주섬 씻고 옷 입고 길을 나섰다.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열리는 마당극 상설공연을 또 보러가기로 한 것이다.
도로에 차가 많았다. 어린이날이라 아이들 데리고, 곧 어버이날이라 부모님 모시고 어디로들 그렇게 달려가는 것이다. 햇빛은 환했고 나무들은 푸르렀고 하늘은 맑았다. 공기는 약간 뿌옇기도 하고 노랗기도 했다. 꽃가루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송홧가루도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멀리 산들은 연무에 갇혀 버렸다. 그래도 달렸다. 아침을 굶은 아내는 동의보감촌 식당에서 소고기 전골을 먹자고 했다. 몇 번 가 본 적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곧 돌아나오고 말았다. 이 식당 저 식당 모두 단체 손님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는데다 식당 앞에도 줄을 선 가족들이 너무 많았다.
극단 큰들 마당극 공연장 바로 뒤에 있는 국숫집으로 갔다. 이 집은 한번은 가 보자 하던 것인데 오늘이 또 그날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도 빈 자리가 없다. 몇몇 손님이 들어갔다 돌아나오는 틈에 용케 자리가 났다. 4명이 앉을 자리를 우리 둘이 차지하고 앉았다. 소고기 전골 대신 비빔밥을 시켜 놓고 두리번 두리면, ‘이 집도 장사가 잘되는구나’ 하고 있는데 중년 부부가 들어온다. 역시 앉을 자리가 없다. 얼핏 들으니 전라도 말투다. 우리는 4명이 앉을 자리에 2명만 앉았으니 그 두 중년 부부와 합석하기로 했다. 이 부부는 찌짐에 막걸리와 국수를 시킨다. 나도 막걸리 좋아하는데, 엊저녁 집들이 때 너무너무 많이 마신 탓에 덧정이 없었던 터라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이윽고 술이 나오자 나에게도 잔을 건넨다. 사양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잔을 잡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됐다. 한 병으로는 모자라 한 병 더 시켰다. 비빔밥 안주 삼아 서너 잔을 먹었다. 전주에서 출발하여 황매산 철쭉을 보러 가다가 차가 너무 막혀서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동의보감촌 주차장 부근 식당에 고기 먹으러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막걸리나 한잔하려고 이 집을 찾았다고 했다. 국숫집 앞에 한 사람이 국수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고 했다. 아들과 딸이 있는데 딸은 벌써 결혼하여 대여섯 된 아이가 하나 있다 하고 아들은 늦게 결혼했는데 며느리가 첫 아기를 낳을 예정이라고 했다. 원래 예정일은 어제였다고 했다. 부부는 주말마다 어디로든 돌아다니는 게 취미이고 나갔다 하면 보통 ‘일박이일’하는데 요즘은 며느리 출산 때문에 그러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나는 기바위에 가서 기를 좀 얻어가면 며느님께서 건강한 아기를 잘 낳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 이야기가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 식당에도 마당극 공연 일정이 붙어 있었고 자그마한 전단도 놓여 있었다. 나는 극단 큰들 마당극을 지난해에 서른 몇 번 봤는데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 오늘도 잠시 후 2시부터 <효자전>을 시작하는데 시간이 되면 꼭 보고 가시라고 권했다. 다음주엔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에서 소설 《토지》를 각색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공연한다고도 일러주었다. 동의보감촌에서 격주로 열리는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 공연 일정도 꼭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극단 큰들의 후원회원으로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공연 일정이나 내용을 알려주는 게 참 재미있다고도 말했다. 결국 그 두 분은 마당극을 보고 가기로 했다. 저녁에 전주에서 가족 식사 약속이 잡혀 있는데 마당극을 보고 3시쯤 출발하면 시간이 잘 맞겠다고 좋아했다. 완주시에 있는 어느 기업 전무이사인 이분은 65살이라고 했는데 겉으로 보기엔 60살도 안 된 줄 알았다. 두 가족의 점심과 막걸리 값은 내가 치렀다. 그는 다음에 전주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막걸리 골목에서 한잔 사겠다며 명함을 건네었다. 짧은 인연이 참 좋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5월 어느 날 점심을 한 밥상에서 먹었고 술잔을 권커니 잣거니 한 사이는 얼마만한 인연일까?
과연 어린이날답게 손님이 많았다. 꼬마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모들이 가장 많았고 나이 많은 부모님을 모시고 온 관람객도 많았다. 마당극은 2시에 시작하는데 1시 30분쯤 벌써 준비해 둔 의자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의자 앞에 돗자리를 깔아줄 것을 잘 아는 우리는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가 잽싸게 앞자리를 차지했다.
<효자전> 220번째 공연은 그렇게 보았다. 어린이날인데다 어버이날이 다가온다며 큰들은 모든 관객에게 사탕을 하나씩 선물했다. 달달한 사탕을 입에 넣으며 밝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큰들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마당극을 보고 가기로 한 전주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가버렸는가 보다’ 여기고 있는데 마당 오른쪽에 두 분이 나타났다. 공연 시작 1분 전쯤이었다. ‘딱 봉께’ 막걸리 한 잔 더 하고 나오신 모양이다.
올해들어 <효자전>은 세 번째이다. 4월 28일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과 생초 국제조각공원에서 한 번 보았고, 5월 4일 동의보감촌에서 큰형님과 한 번 보았다. 그래도 마당극은 늘 새롭다. 지난해부터 본 것을 다 합하면 14번이니 웬만한 대사는 외울 정도이다. 그래도 늘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배우들은 항상 새로운 모습이다. 똑같은 듯하면서도 날마다 다른 표정이고 목소리이다. 웃기는 장면과 울리는 장면은 어제 공연과 오늘 공연이 다르지 않은데도 처음 보는 듯 새롭고 재미있다. 마당극을 보면서, 순간순간 나의 어떤 추억이 겹쳐지는 일이 잦은데 그래서 새롭게 인식하는지도 모르겠다. 울지 않으리라 애써 다짐한 건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게 여러 번 봤으면 이제 눈물 흘리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 싶다가도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겠다. 공연 끝난 뒤 아내는 물었다. “아직도 공연 보면 눈물이 나요?” “그렇네.”
마당극을 잘 보았으니 이번에는 아버지 산소에 갈 차례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산소에 가서 쓸 호미와 낫 따위 장비를 챙겨 갔으므로 그 길로 바로 미천면 반지로 향했다. 바람이 푸짐했다. 아내는 솔순을 땄다. 나는 동의보감촌 대장간에서 새로 산 두 날 호미로 잡초를 뽑았다. 낫으로 잡초들을 베었다. 각기 제 이름이 있을 풀들은 꽃을 피우다가 말고 잡초라는 죄로 그 목숨을 다해버렸다. 잔디를 살리자니 어쩔 수 없다. 시골 살던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해본 낫질 솜씨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스스로 신기했다. 쓰지 않던 근육을 움직거리자니 금세 피로해졌지만 마음은 햇살이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몇 가지 계획을 짰다. 계획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지만 아무튼 다음 몇 가지이다. ‘특별할 것 없는 연휴 계획’이다. 첫째, 산청군 동의보감촌에서 주말상설공연을 시작하는 극단 큰들의 마당극 <효자전> 두 번 보러 가기. 둘째, 이사한 기념으로 가족들 초청하여 먹고 마시고 놀기. 셋째, 이사한 뒤 방치하고 있는 책과 짐들 정리하기. 넷째, 봄비 많이 온 뒤 못 가 본 아버지 산소 가 보기. 다섯째, 다솔사 가서 부처님오신날 축하 연등 잘 달렸는지 보고 오기. 여섯째, 밀린 잠 자고 밀린 글 쓰고 밀린 책 읽기가 그것이다. 이제 내일 월요일 다솔사 갔다 오면 연휴 계획의 웬만한 건 다 실천하는 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버지 산소 간 일이고 가장 잘한 일은 이사한 새 집에 가족을 초청한 일이고 가장 즐거웠던 일은 극단 큰들 마당극 두 번 본 순간이다. 좀 울었지만 즐거웠다.
2019. 5. 5.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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