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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384

묵은해와 새해 1991년 1월 전역할 때부터 1998년 6월 결혼할 때까지 살던 집, 아버지 어머니 뵈러 2020년 10월까지 거의 매주 달려가던 집, 마지막엔 조카가 살다가 결혼으로 떠나간 집, 2023년 11월 어머니 세 번째 제사를 지낸 집, 옥봉동 본가를 팔기로 했다. 큰형님이 집을 정리한다기에 12월 30일 하루 동안 집을 치웠다. 옥상에 올라가 시내를 둘러보았다. 수만 가지 생각과 기억이 동시에 나를 덮쳤다. 아버지 어머니의 눈길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고 녹아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추억과 이별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나도 제법 나이를 먹은 것이다. 12월 31일 아내와 목욕탕 다녀오는 길에 엠비씨네로 갔다. 를 보았다. 죽은 어머니가 생전 화해하지 못한 딸을 만나러 3일 휴가를 얻어 지상으로 왔다. 미국.. 2024. 1. 2.
노량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전쟁에서 져 도망가는 왜적을 한 명도 살려서 보낼 수 없었다. 앞선 명량전쟁, 한산도전쟁뿐만 아니라 스물 몇 차례 전쟁에서 번번이 이긴 이순신은 노량에서도 이겼다. 하지만 그는 전사했다. "내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마라"라고 했다고 배웠다. 적들에게가 아니라 아군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배운 것도 같다. 영화 를 보았다.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가 이순신 이미지를 가렸다. 앞선 에서 최민식, 에서 박해일은 배우의 이미지가 이순신의 이미지를 가리지는 않았다. 2시간 30분은 지루했다. 긴장감이 생기지 않았다. 박진감도 넘치지 않았다. 에서 느낀 울분이나 에서 느낀 쾌감도 적었다. '이순신의 죽음'을 나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는 것 말고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 2023. 12. 22.
2023년에 나에게 일어난 일 몇 가지 2023년에 나에게 일어난 일 몇 가지 2023년이 저물어 간다. 새해 시작할 때는 설렘, 기대 같은 게 없지 않았는데 한 해를 다 보내고 보니 덧없기만 하다. 조용필은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라고 노래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더라도 후회할 것 없고 아쉬울 것 없는 인생이다. 바람도 이슬도 각기 제 몫이 있고 역할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든 게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했다. 우리네 선조들은 ‘행운유수’와 ‘안빈낙도’라는 말을 즐겨 썼다. 광대무변한 대우주 속에서 ‘먼지가 되어’ 날아간들 무엇이 안타깝겠는가. 그래도 먼 훗날 2023년을 돌아볼 때 무엇인가 삶의 흔적의 찌꺼기라도 잡히지 않는다면 조금 섭섭하기는 할 것 같다. 해마다 이맘때 한 해를 돌아보며 몇 가지 추.. 2023. 12. 22.
아침 5시 30분쯤 깼다.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왔다. 월급이 들어왔다는 신호다. 아들에게 용돈을 보냈다. 후원 단체에도 조금 보냈다. 월급은 한 달을 살아갈 밑천이자 에너지다. 밑천은 얇고 에너지는 빈약하다. 씁쓸하게 웃는다. 부스스 일어나 면도하고 세수한다. 옷 갈아입고 밥 먹는다. 이 닦고 출근한다. 사무실 도착하면 6시 40분이다. 아침에 해야 할 일은 중요하다. 라디오 들으며 컴퓨터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본다. 손가락은 쉴 새 없다. 찬 물 한 잔 마시면서 아린 눈을 끔벅인다. 문득 고개를 돌려볼 때, 멀리 선학산에 햇살이 비치는 게 일상이다. 오늘은 안개비가 뿌옇다. 오리무중이다.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할지 막연하다. 이렇게라도 살 수 있을지 막막하다. 대안도 대책도 없이 무작정 떠나고 싶다. 며.. 2023. 12. 18.
오후 눈이든 비든 뭔가 올 듯한 오후였다. 농산물도매시장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소주 두 병과 육포, 쥐포를 사 들고 미천면 반지 산으로 갔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란히 누워 계신 추운 곳이다. 잔디는 메말랐고 흙은 뒤집혀 있었다. 멧돼지 주둥이는 불도저다. 멧돼지를 물리칠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빵모자 벗고 두 번 절했다. 할 말은 없었다. 듣고 싶은 말도 없었다.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쉰여덟 바라보는 나이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부터라도 딱히 뭘 잘하겠다는 다짐도 없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희희낙락하며 인생을 낭비했다.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지난 날이 꿈 같고 구름 같고 안개 같아서 아플 뿐이다. 다시 시간이 주어진대도 잘할 자신이 없다. 에서.. 2023. 12. 18.
가요무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 대운동장에서 를 녹화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평거동 남강둔치에서 7-8년간 녹화했다는데, 한국방송공사(KBS) 측은 대학의 대운동장이 이런 대형 음악회를 하기에 여러모로 좋다고 한다. 관객 동선 관리하기도 좋고 주차하기에도 그나마 낫다고 본 것이다. 주변 민원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연례행사가 될 공산이 커졌다. 의자를 7000개가량 놓았다는데 다 채웠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가수 저 가수의 팬들뿐만 아니라 진주와 인근 시군에서 많은 분이 오셨다. 지난해 나 올해 4월의 보다는 관객이 적은 것 같았다. 그들은 진행요원의 고함과 손짓에 따라 매우 질서정연하게 입장했다. 입장하는 장면은 엄숙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KBS 측은 "아무리 공연이 중요해도 관객.. 2023.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