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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달라진 남명

by 이우기, yiwoogi 2024. 8. 4.

달라진 남명

 

 

극단 큰들은 7월 19일(금), 20일(토)과 8월 2일(금), 3일(토) 저녁 7시에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 주제관에서 마당극 <남명>을 잇따라 공연했다. ‘2024 산청 동의보감촌 마당극 상설공연’으로 마련한 것이다. ‘2024 상설 문화관광 프로그램’이다. 큰들은 이곳에서 올해 4작품(오작교 아리랑, 찔레꽃, 남명, 목화)을 모두 20회 공연하는데, 7-8월을 제외하고는 동의보감촌 잔디마당, 즉 야외에서 오후 2시에 공연한다. 더운 여름에만 저녁 7시에 실내에서 공연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8월에도 야외에서 공연했는데, 실내로 옮겨서 공연하도록 해준 산청군이 고맙다.

 

마당극 <남명>은 2018년 10월 한국선비문화축제 때 처음 공연한 작품으로 이번 8월 3일 공연은 82번째라고 한다. 큰들은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학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하고, 배운 것으로 사회적 정의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 조선시대 학자 남명 조식.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울림이 되는 경의사상(敬義思想)을 비롯하여 청렴, 실천, 배운 사람의 자세 등 남명 선생의 정신을 마당극적 상상력을 더해 표현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감독 전민규, 극작 임경희, 연출 김상문, 기획 진은주·김세림, 무대 박춘우, 의상 하은희, 음악 전찬율이다. 출연하는 배우는 김상문(남명), 이인근(돌이), 송병갑(김영감), 하은희(유생), 류연람(유생), 안정호(유생), 이규희(유생), 윤민서(유생), 홍수완(사또), 박춘우(이방), 김안순(형방) 씨이다.

 

만든 사람은 변함이 있을 수 없지만, 출연하는 배우는 고정적이지 않다. 현재 출연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도 이따금 바뀌고, 출연 배역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바뀐다. 나는 그런 변화를 줄줄이 외지는 못하지만 바뀌는 줄은 안다. 그걸 열심히 좇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어제 본 <남명>과 오늘 보는 <남명>을 같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곧 자부심의 다른 말이다.

 

마당극 <남명>은 아주 잘 만든 작품이다. 큰들은 어렵고 심오한 경의사상을 여러 방법으로 되풀이하여 풀어 설명해 준다. 처음 유생들이 부르는 노래에서부터 마지막 남명 선생이 사망하기 직전 성성자 방울과 경의검을 제자들에게 넘겨주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당시 조정의 상황과 백성들의 삶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1시간 마당극이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는 못하지만, 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게 해 준다. 한양의 힘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벼슬을 사고, 그러자니 지방 고을 수령이 한 해에 대여섯 번씩 바뀌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극을 시작할 때는 남명 조식 선생이 어떤 분인지 간략하게 들려준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남명 조식 선생을 잘 아는 분부터 처음 접하는 분까지 모두가 극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한다. 3명의 임금이 13번이나 벼슬을 내렸는데도 단 한 번도 나아가지 않은 실천 유학자임을 알려준다. 남명(南冥)이라는 호는 한자로도 써 준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했다.

 

마당극 <남명>을 보면서 역사를 배운다. 정신을 배운다. 앎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조선시대 수많은 유학자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가장 높게 우러르고 따라야 할 분이 남명 선생임을 배운다. 마당극 한 편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만난다.

 

그러한 가운데 극단 큰들은 마당극 <남명> 작품 여러 곳을 수정하여 선보였다. 이번 7-8월 ‘달라진 남명’을 보고 느낀 몇 가지를 적어 둔다.

 

 

 

첫째, 마당극 첫 시작 부분이 달라졌다. 관객들에게 남명 조식 선생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의 곡조에 맞춰 선비(김혜란), 조선시대 궁중 인물(류연람, 김안순)이 나와 극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에는 유생(이규희)과 마을 사람(송병갑, 이인근)이 나와 남명 선생을 소개한다. 곡조는 똑같다. ‘남명 조식’을 칠판에 쓸 때 ‘南冥’은 한자로 쓰고 ‘조식’은 한글로 쓰는 것도 똑같다.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게 하는 게 큰들의 특기이다.

 

둘째, 우물굿 장면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우물 앞에서 풍물을 치며 한 해 동안 가뭄이 없도록 비는 장면이 우물굿이다. 밥은 굶어도 물은 실컷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던 시절이다. 이 우물은 칠년대한 가뭄에도 한 번도 마른 적 없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때부터 마르지 않은 우물이다. 그래서 마을 노인은 이 우물을 가리켜 “우리의 젖줄이요 생명수요 목숨과도 같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우물굿 장면을 이제부터는 볼 수 없다.

 

우물굿이 없어진 건, 개인적으로 보기엔 많이 아쉽다. <남명>에서 물(우물)은 아주 중요한 소재이다. 마을 사람들의 목숨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못된 사또가 부임하여 우물 사용료를 내라고 한다. “나라 땅에 나라에서 세금을 내라고 하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나?”라는 게 이방의 변명이다. 결국 이 우물 때문에 김서방 노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물을 돈 내고 쓰라고 하는 건 그 시대 권력자들의 탐욕이 어디에까지 뻗쳤는지를 보여주면서도, 반대로 백성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건 물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극의 초반에 펼쳐 보여주는 우물굿은 물이 백성들에게 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우물을 지켜내야 한다. 극적 대비 효과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물굿이 없어졌다고 해서 물의 소중함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극적 대비 효과가 불투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쉽다. 

 

셋째, 극의 대사 몇 군데가 쉽게 바뀌었다. 남명에게 단성 현감 벼슬이 내려왔다. 승지로 보이는 배우가 “남명 조식을 단성 현감에 제수하노라.”라고 말하는 게 원래 대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대사가 “남명 조식을 단성 현감에 임명하노라.”로 바뀌었다. ‘제수’와 ‘임명’의 차이다. 제수는 ‘왕이 신하에게 벼슬을 내려 관리로 임명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별히 다른 관료들로부터 대상 인물들을 추천받아 그중에서 마땅한 자를 해당 관리직에 임명하는 절차인 천거를 거치지 않고, 왕이 직접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말을 일반 마당극 관객이 모두 알아차리리라고 기대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큰들은 ‘제수’라는 어려운 말 대신에 요즘 흔히 사용하는 ‘임명’으로 대사를 바꾼 것이다. 임명은 ‘일정한 직무나 직책을 맡김’이라는 말이니 조선시대의 제수가 요즘의 임명과 같은 말이라고 해도 됨 직하다. 완전히 똑같은 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마당극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임명’이 더 알맞은 것 같다.

 

단성 현감에 임명된 남명이 사직 상소를 올렸다. 남명의 상소(단성소, 을묘사직소)가 전국을 강타했다. 상소 하나로 선비의 목숨이 날아가던 시대에, 임금의 어머니 대비를 ‘과부’라 하고 임금을 ‘고아’라 하는 상소를 올렸으니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조선 선비들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남명은 화를 입지 않았다. 선비들은 말한다. “(이 상소는) 469년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걸세.”라고. 원래 이 대사는 “469년 후에도 회자될 걸세.”였다. ‘회자(膾炙)’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다’로 바꾼 것이다. ‘회자’라는 말은 어렵다. 언뜻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원래 회자는 ‘회와 구운 고기’라는 뜻으로, 널리 칭찬을 받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림을 뜻하는 말이다. 큰들은 이런 말에 익숙지 않은 관객을 위해 대사를 바꾸었다. 이처럼 큰들은 스쳐 지나가는 단어 하나도 바꾸고 수정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제수와 회자라는 말이 몇 번째 공연 때부터 사라졌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번 7-8월 4차례 공연에서는 대사가 바뀐 것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대사가 재미있게 바뀐 부분도 있다. 조식 선생의 이름이 아침밥을 뜻하는 조식(早食)과 발음이 같다 보니 아재개그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왜놈으로 분장한 김노인, 돌이가 유생들을 한바탕 훈련시킨 뒤 아침밥을 먹자고 말하는 대목에서 “조식 드시러 가시죠?”라는 대사가 나온다. 여기까지는 원래 있던 말이다. 남명이 돌이를 부르자 꾸지람 들을 것으로 지레짐작한 돌이가 “아침은 조식, 점심은 중식….”이라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 다음 대사가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 점심은 중식, 야식은 배달의 민족, 주문~!”이라는 대목에서 웃지 않을 관객은 없다. 원래 대사는  “… 점심은 중식, 저녁은 석식~!”이었다. 이는 아래에서 말할 ‘젊은 관객 배려’의 예고편이다.

 

넷째, 젊은 관객을 배려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남명의 지시에 따라 김노인과 돌이가 왜놈으로 분장하여 유생을 시험했다. 남명은 김노인이 고생했다고 조식(아침밥) 먹고 가라고 한다. 김치 반찬으로는 밥 먹기 싫다며 그냥 가려던 노인에게 돌이가 말한다. “마라탕도 있는데….”라고 말이다. 이전에는 “술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술에서 마라탕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시대에 마라탕이라니. 뿐만 아니다. 이 대사 뒤에는 ‘탕후루’가 등장한다. 김노인과 돌이가 탕후루와 관련한 몸동작과 노래를 쿵쿵짝짝 선보인다. 이걸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둘이서 연습을 엄청 많이 했음을 짐작할 만하다.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내 앞에 앉은 어떤 젊은 여성 관객은 뒤로 자빠질 뻔했다.

 

‘남명, 조식, 단성소, 임금, 조선시대, 임진왜란, 경의사상, 유학자, 성리학’ 이런 말이 나오는 마당극이 쉬울 리 없다. 웃기기도 어렵다. 마당극이 너무 진지하거나 어려우면 관객을 모을 수 없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힘겨울 것이다. 그래서 곳곳에 현재와 과거가 오고가는 대사와 동작을 심어놓는다. 마라탕과 탕후루는 극단 큰들의 ‘회심의 한판승’이라고 본다. 별안간 등장한 마라탕과 탕후루 춤에 웃지 않은 관객이 없다. 아차, 마라탕과 탕후루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분도 계셨을 수도 있겠구나. 

 

남명의 단성소가 선비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선비들은 실검 1위인 단성소를 더욱 널리 퍼뜨리자고들 한다. 샵(#)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한다. “샵 남명, 샵 단성소, 샵 찢었다.”와 같은 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소통의 채널로 주로 사용하는 젊은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하나이다. “샵 찢었다.”라는 대사가 나오자마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자기들 세계의 언어라는 뜻이다.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대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그것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게 된다는 것, 그것이 마당극의 묘미이자 특징이다. 

 

다섯째,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묘사한 대사도 있다. 고을 사또로 부임한 탐관오리가 아전들과 작당하여 백성들로부터 무엇을 뺏어 먹을지 궁리한다. 우물 사용료를 징수하기 위한 모의에 들어갈 즈음이다. 사또는 “단팥빵 사먹게 법인 카드를 주면 안 되나?”라고 말한다. 그 옆에 섰던 한 아전은 “와인도 사야쥬.”라고 아첨을 떤다. 최근 일어난 모종의 정치적 사안들을 마당극 마당으로 끌고 온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인물의 어떤 사건인지를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관객들은 다 알아본다. 못 알아보는 이도 있겠지. 못 알아보아도 극을 이해하는 데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원래 마당극은 현실 풍자적 요소가 강한 연희 양식이다.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현재 벌어지는 정치사회적 현상을 비틀어 꼬거나 뒤집어 보여준다. 아닌 척 너스레를 떨면서 결국은 국민(백성)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일삼는 정치인을 입도마에 올려놓기도 한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거리의 광대들이 양반이나 임금을 비꼬았는데, 하물여 오늘날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마당극의 특징을 큰들의 작품에서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여섯째, 배우들이 조금씩 바뀌었다. 2018년 처음 창작했을 때에 비하면 배우들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 지난해에 견주어도 배역이 바뀌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지난 4월 13일 진주성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남명> 공연과 비교해도 배우들이 몇 명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김노인과 돌이가 왜놈으로 분장하여 유생을 시험할 때 “인간의 본성은 본디 착하다 했으니 내가 화친을 맺어 보겠네.”라고 말하는 배우는 김혜란 씨에서 윤민서 씨로 바뀌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바뀐 줄 모른다. 대사나 몸동작이나 모든 게 완벽히 똑같다. 그러나 그 두 배우의 연기는 다르다. 그렇게 보인다. 

 

고을 사또가 취임하는 장면에서 이방, 형방, 공방이 등장하는데 그중 한 명이 바뀌었다. 김가람 씨는 여차저차한 이유로 현재 모든 배역에서 빠졌다. <남명>에서 그 자리는 김안순 씨가 맡았다. ‘5분사또’를 위해 말을 타고 등장하는 장면에서부터 대사와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어색함이나 헷갈림 없이 완벽하게 바뀌었다.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배우가 이래저래 바뀌었음을 눈치 채지 못한다. 물론,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이겠다.

 

큰들 마당극을 여러 차례 보고 또 본다.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본다. 가령 이번 <남명>의 경우 7-8월 금-토요일 저녁 7시에 마련된 공연을 모두 보았다. 네 차례 잇따라 본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처음인 듯 새롭게 마당극을 보는 이유는 큰들이 한번 제작한 작품을 그대로 두지 않고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낡은 필름을 수없이 되풀이하여 돌리듯 하지 않고 늘 새롭게, 늘 다르게, 더 웃기게, 더 감동적으로 만드는 큰들의 노력이 언뜻언뜻 눈에 띈다. 그걸 찾아보는 재미와, 그걸 나중에라도 알게 되는 즐거움은 큰들 마당극을 끊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이다.

 

 

금요일 저녁 7시, 토요일 저녁 7시의 동의보감촌은 조금 을씨년스럽다. 동의보감촌에 있는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다. 관광객은 간혹 한두 명 보일 뿐이다. 자동차도 이따금 한 대씩 지나갈 뿐, 관광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주차장은 널널하다. 큰들 배우들이 분장을 마친 뒤 6시 40분쯤 공연장 앞에서 풍물을 울린다. 관객을 불러모으기 위한 노력이다. 공연장에는 한 명씩 두 명씩 관객이 찾아온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사람, 나이 드신 부모님과 오는 사람, 연인끼리 팔짱 끼고 들어오는 사람, 우연히 공연을 만난 듯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 큰들 공연이 있는 줄 미리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 ‘관객’의 역할을 맡는다. 공연장소가 실외가 아니라 주제관이라는 실내인데도 잘도 찾아온다. 주제관도 마당극 공연 이외에는 다른 전시나 관람을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7시에 임박하여 줄지어 들어서는 관객은 도대체 그 시각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달려오는 것일까. 번번이 느끼는 것이지만, 큰들이 마당판을 벌여놓으면 관객은 제 스스로 알아서들 찾아온다. 공연시간이 되었을 시점에 관객이 서너 명만 있다고 하여도 안타까워하거나 염려할 필요는 없다. 보면 볼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신비롭고 신기한 큰들 마당극의 매력이다. 그런 큰들의 힘을 또 다시 느끼면서, 무더운 여름 저녁 시간을 즐겁고 유쾌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잘 보냈다. 그 고마움을 몇 자 적어 놓는다.

 

2024. 8. 4.(일)

이우기 씀

 

8월 2일(금) 공연 끝난 뒤 만난, 후배 부부가 기념 촬영할 때 곁다리로 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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