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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더운 날 추운 연기

by 이우기, yiwoogi 2024. 9. 28.

<더운 날 추운 연기>

 

 

극단 큰들은 산청한방약초축제 기간에 마당극을 다섯 번 공연한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에 공연한다.

즉, 9월 28일(토), 29일(일), 10월 3일(목·개천절), 5일(토), 6일(일)이다.

10월 1일 국군의 날은 임시공휴일이어서 공연하지 않는 듯하다.

시간은 오후 2시이고 장소는 산청 동의보감촌 곰광장이다.

곰광장은 지난해 산청 항노화 엑스포 할 때에도 공연한 곳이다.

10월 3일에는 <오작교 아리랑>을, 그 나머지는 <목화>를 공연한다.

 

 

9월 28일 축제 이튿날, 첫 공연하는 <목화>를 보러 갔다.

1시 30분쯤 갔는데 관객은 나 포함하여 여섯 명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나는 조금 걱정한다.

객석이 텅 비면 어쩌지. 하지만 그건 늘 기우에 불과하다.

큰들 배우들이 길놀이를 하고 돌아올 때쯤엔 의자가 꽉 찼다.

길놀이 따라온 관객, 지나가던 관객이 객석 뒤쪽을 둘러섰다.

앞줄 의자 앞에는 깔개를 깔았다. 손님들이 줄지어 앉았다.

아, 그러고 보니 깔개도 고급스럽게 바뀌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객석 주변에 새로운 고급 객석도 준비했다.

 

 

하늘엔 먹구름이 제법 포개져 있었으나 쏟아질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공연장에 도착할 즈음 빗방울이 한두 개 흩날렸지만...

마당극을 공연하기에도 관람하기에도 제법 더운 날씨였다.

배우가 “더운 날 추운 연기할 땐 박수를 더 크게 쳐달라”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벌써 마당극의 재미에 홀린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춥다”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박수가 터졌다.

그뿐만 아니다. 오늘 관객들은 마당극을 즐길 준비가 된 분들이다.

 

 

더운 여름날 추운 겨울을 연기하다 보니 웃지 못할 장면도 생긴다.

목화 덕분에 따뜻하게 무명옷을 입게 되어 따뜻해졌다.

그런데 실제 더운 데다 더 더운 옷을 입으니 얼마나 덥겠나.

대갓집 마나님들이 원나라에서 수입한 한정판 ‘장패딩’을 입었다.

“아이 덥다”라는 말은 실제로 너무 더워서 나오는 대사처럼 들린다.

배우들 등과 어깨가 촉촉히 젖은 것도 보인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수십 차례 의상을 갈아입으니 얼마나 덥겠나.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연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런 게 보인다.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더 크게 손뼉 친다.

오늘은 극 내용에 감동하여 눈물 흘린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하여 신명나게 공연하는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만...

 

 

배우들은 관객의 반응이 좋을 때 더 신명나게 연기할 것이다.

집중도가 높아지면 배우들 몸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나도 느낀다. 박수소리, 함성소리, 웃음소리가 저절로 측정된다.

관객 중 어떤 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아이들도 1시간 동안 집중한다. 학교 공부보다 재밌는 것 같다.

내 앞에 앉은 여자아이는 꽤 오랫동안 공연을 녹화한다.

그 옆 남자아이는 김밥을 먹으면서도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어떤 대사에서는 박장대소를 하며 뒤로 넘어지려 한다.

주말에다 축제 기간이라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연세 지긋하신 분도 맨앞에 앉아 시종일관 웃는다.

나는 공연을 보면서 이따금 관객 표정도 살펴본다. 재밌다.

 

 

공연이 절정에 다다랐다. 갈등이 해소되었다. 끝날 시간이다.

갑자기 천막 지붕에서 우드드 소리가 난다. 소나기다.

그러고 보니 먹장구름이 더 짙어졌다. 큰일이다.

2-3분 내리던 비가 뚝 그쳤다. 공연도 끝났다.

더운 날씨 속에서 비지땀 흘리며 고생한 배우를 위로하는 것 같다.

관객도 약간 움찔했으나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손뼉 치고 고함 질렀다.

야외에서 하는 공연은 의외성 때문에 더 재미있다.

<목화> 열여섯 번째 공연은 이래저래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아직 새싹 같은 <목화>가 100회, 200회 이어지도록 빌었다.

공연은 무료이지만 관람료라 생각하고 지갑에 있던

1만 원짜리 지폐 2장을 통에 넣었다. 그것밖에 없었다.

눈물이 흐르도록 공연해준 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마음이다.

공연장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사람이 제법 많다.

늦은 점심을 먹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축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축제가 제법 널리 소문났고, 소문보다 좋더라는 걸 다들 아는 모양이다.

 

2024. 9. 28.(토)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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