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웁다 큰들축제>
‘2024 큰들마당극마을 공연축제’가 열렸다. 축제 제목은 <즐거웁다 큰들축제>이다. 큰들은 몇 해 전부터 산청 마당극마을에서 여름 공연축제를 해왔다. 코로나19로 공연이 뜸할 때엔 ‘주말N마당극마을’이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주로 큰들 후원회원이 즐기러 간다. 그 후원회원과 같이 간 사람도 많다.
그때 마당극마을 공연축제를 본 사람은, 올해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것을 해마다 보긴 좀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건 큰들을 아직은 잘 모르는 분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비빔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과 정성
올해 <즐거웁다 큰들축제>는 7월 11일, 12일, 13일 사흘 연속 열린다. 첫날인 7월 11일엔 마당극마을에 새로 지은 <까망극장>을 개관했다. 개관식에 참가한 나는, 다음날에도 마당극마을에 갔다. 일을 마치자마자 5시에 출발하여 중간에 일행을 태우고 달렸다. 도착하니 5시 45분이다. 배가 그리 고픈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10시께까지 공연이 이어질 예정인데 미리 무엇을 먹어두어야 했다.
마당극 마을식당으로 갔다. 비빔밥, 소고기국밥이 7000원이다. 막걸리는 한 잔에 2000원이다. 비빔밥을 주문했다. 큰 그릇에 비빔밥 재료인 나물을 여러 가지 가지런히 담아 놓았다. 밥은 먹을 만큼 직접 퍼도록 했다. 식판엔 떡과 토마토와 김치와 깻잎반찬이 있었다. 깔끔한 콩나물 국도 한 그릇 받았다. 모두 맛있었다. 직접 담근 고추장에 무엇 무엇을 넣었다는데 고소하고 달달하고 매콤했다. 간단한 비빔밥 한 그릇에도 정성과 사랑이 담긴 듯했다. 물론 요리 실력도 매우 출중한 듯했다. 비빔밥 한 그릇 먹고 나니, ‘이제 집으로 가도 아까울 건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맛있었다.
김상문 배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1인극
숟가락을 놓으니 6시 15분이다. 축제 첫 공연은 <까망극장>에서 6시 20분에 열린다. 일행과 나는 잰걸음을 놓았다. 배우가 극장 바깥에 나와 호객을 한다. 멀리서 봐도 안다. 한눈에 봐도 안다. <담배의 해로움에 대하여>라는 1인극을 할 김상문 배우이다. 이 1인극의 내용과 느낌을 나는 지난해 이맘때 자세히 쓴 적 있다. 이 1인극과 관련해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볼 때마다 내용이 다르다. 왜냐 하면 거의 대부분을 배우의 즉흥연기(애드리브)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관객과 대화하면서 자기의 신세타령으로 이어진다. 듣다 보면 웃음이 터지고, 계속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희한한 작품이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왜 김상문 배우가 극단 큰들의 대표 배우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시중일관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의 연기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첫 공연이라 관객이 꽉꽉 차지는 않았지만, 무대 가운데 선 단 한 명의 배우를 향한 시선은 뜨겁고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손바닥은 화끈화끈했다. 맛난 비빔밥 먹고 대표 배우의 꽉 찬 연기를 봤으니, ‘이제 집으로 가도 아까울 건 없겠네’라는 생각이 들 만했다.
청춘버스킹 청춘들에게도 박수
첫 번째 공연 1인극이 끝나자마자 다시 식당 앞 청춘버스킹이 열리는 곳으로 달려간다. <까망극장> 앞을 가로질러 빠르게 걷는데, “어서 오시라”고 외치는 이가 있다. 청춘버스킹 연출을 맡은 이인근 씨다. 청춘버스킹은 목소리 짱 큰 큰들 청춘 손리현 씨와 목소리 짱 예쁜 서울 청춘 온혜원 씨의 소박한 포크 노래 공연이다. 청춘버스킹 <푸르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두 젊은 가수의 노래는 감미로운 선율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매우 조화로웠지만, 불혹과 지천명을 지난 지 꽤 오래된 나에겐 좀 어려웠다. 가사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달려가곤 했다.
하나는 분명했다. ‘한두 번만 더 들으면 따라 흥얼거릴 수는 있겠다’ 하는 마음이 생겼다. 모두 4곡을 부르고 나니 끝나버렸다. 여기저기서 “앨콜~!”을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릴레이로 이어지는 공연 시간 때문이었다. 맛난 비빔밥 먹고, 1인극 보면서 새로운 감동에 젖었고, 청춘들의 화음도 감상했으니, ‘이제 집으로 가도 본전은 하겠네’라는 생각이 들 만했다.
이인근 씨 부자의 잊지 못할 멋진 공연
두 번째 청춘버스킹이 끝나고 나서 풍물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제목은 <흥성흥성 동네 한 바퀴>이다. 큰들 단원과 진주큰들풍물단, 창원큰들풍물단 회원과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풍물을 치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마을을 돌면 좋은 게 여럿이다. 여기저기 예쁘게 피어난 꽃을 보게 된다. 여기저기 들어선 단원들의 집을 구경하게 된다. 대개 모양이 비슷하니 볼 게 없을 듯하지만,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집집마다 좁다란 마당을 아기자기 개성있게 잘 꾸며 놓은 걸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15분 정도밖에 안 되지만 마을을 걷는 건 운동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정말 백 년이 지나도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었다. 분위기를 돋우느라 이인근 씨가 버나놀이를 하는데 탈을 쓴 웬 남자 어른 한 분이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등장한 것이다. 이분은 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짓가랑이 하나는 무릎 위에까지 걷어 올렸다. 나는 알아보았다. 그분은 이인근 씨의 부친이셨다. 부자간의 그런 멋진 장면을 우리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몇 번이나 더 있을 것인가. 이인근 씨와 부친을 알아본 사람은 그래서 배꼽이 빠져라 웃었고 그런 사이를 모르는 분은 또 그대로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건담 앞에서 벌어진 금요일 저녁의 짧은 공연 장면은 두고두고 명장면이 될 것이었다.
한참 뒤에도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비빔밥 잘 먹었지, 며칠 뒤에도 생각나게 될 1인극 잘 보았지,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어 죽겠는 청춘버스킹도 즐겼지, 풍물패들의 신명나는 장단과 이인근 씨 부자의 뜻하지 않은 공연도 보았지, ‘이제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아까울 게 하나도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했다.
오히려 원망스러워진 아코디언과 기타 연주
나는 네 번째 공연이 열릴 카페물안실로 향했다. 일행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7시 30분부터는 카페물안실에서 물안실 음악회가 열린다. 제목은 <기타와 아코디언>이다. 제목만 들어도 설렌다. 출연자는 기타리스트 김동욱 씨와 큰들 배우이자 아코디언 연주자인 김정경 씨다. 이분들의 공연은 익히 잘 안다. 큰들 공간오늘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문화오늘>에서 몇 번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카페물안실은 다르다. 공간 구조를 설명하려면 어렵다. 딱 보면 안다. 카페가 있다. 가로 세로로 커다란 창문을 열면 바로 잔디마당과 연결된다. 잔디마당 가운데 공연자의 의자가 있다. 그 뒤로는 소나무가 푸르게 자라는 산이다. 산과 잔디마당 사이엔 계곡이다. 계곡에선 물소리가 들린다. 그런 곳이다. 관객은 카페 안에서도 보고 카페 바깥 잔디마딩에서도 공연을 본다.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아코디언 건반에 김정경 씨의 손가락이 스쳐 지나가자 날아가던 새도 기웃거리고 울어대던 매미도 소리를 멈추고 우당탕탕 흘러내리던 계곡수도 문득 뚝 멈추었더라고 하면 호들갑이 지나치다고 하겠지. 연주와 연기를 동시에 하는 김정경 연주자의 표정은 관객들이 숨을 쉬지 못하게 한다. 겨우 2곡만 연주한 것이 원망스럽다. <백만 송이 장미>, <낭만에 대하여> 선곡도 최고다.
기타리스트 김동욱 씨는 기타 줄을 갖고 놀았다. 3곡을 연주했는데, 각각 다른 맛이다. 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 봄바람처럼 보드랍다가 여름 폭우처럼 쏟아지다가 가을 낙엽처럼 처량하다가 겨울눈처럼 차갑고 따뜻했다. 눈을 감고 잠시 감상하노라니 인간계와 선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듯했다. 시간제한이 더없이 원망스러워졌다.
물안실카페엔 미술감독 겸 무대감독 겸 배우인 박춘우 씨의 수채화도 전시되고 있다. 아무튼, 비빔밥 먹었지, 1인극 보았지, 청춘버스킹 보았지, 풍물놀이 즐겼지, 기타와 아코디언까지 마음껏 누렸으니, ‘지금쯤 집으로 가도 이야깃거리는 충분해’라고 생각할 만했다.
<신난당> 젊은 배우들의 멋진 무대와 진지한 메시지
시간은 어느새 저녁 8시를 넘어가고 있다. 어둑어둑한 하늘엔 아직 달이나 별이 보이질 않는다. 멀리서 움직이는 사람도 알아볼 정도다. 축제의 절정을 느끼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다시 <까망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정병인류 북청사자놀음>과 힐링마당극 <찔레꽃>만 남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귀한 정보를 들었다. 사자놀음 앞에 특별한 공연을 하나 더 한다는 것이었다.
큰들의 20대 단원 5명이 <신난당>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공연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낯익은 청춘 배우들이 등장하여 노래 2곡을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미안하게도 가사를 모두 알아듣지는 못했다. 신나게 손뼉치고 중간중간 “잘한다”라고 고함 몇 번 질렀더니 어느새 끝나버렸다. 그 2곡을 손리현 씨가 작사, 작곡했다고 들었다. 끼와 재주가 넘쳐나는 젊은이들이다. 하나는 기억난다. “너는 약한 사람을 괴롭혔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강한 사람이라구!”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남았다. 당당하고 단단한 청춘의 외침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신났고 신바람났다. <신난당> 이름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 너희들 마음대로 놀아라’라는 마음이 언뜻 들었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들은 듯하여,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펄쩍펄쩍 뛰는 청춘들의 무대는 ‘아, 이제 남은 공연이 무엇이든 안 봐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더욱 부채질했다. 집에 와 본들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왜 처음부터 자꾸 귀소본능을 들먹이는 것일까.
극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사자놀음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정병인류 북청사자놀음>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두 번쯤은 본 듯한 북청사자놀음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그 무엇이 등장했다. 남자 두 명이 조를 이루어 사자모양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벌이는 이 놀이는, <까망극장> 안을 완전히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사자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관객의 가방을 물고 가고 휴대폰을 물고 간다.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 사탕이 나오고 과자가 나온다. 물병이 나오자 제 발로 걷어찬다. 관객의 머리를 집어삼키듯 베어 문다. 무대 가운데 발라당 드러누워 애교를 부리고 납작 엎드려 아양을 떤다. 무대를 전후좌우 뛰어다니며 온갖 가지 재주를 보여준다.
객석에서는 여태 질러본 적 없는 함성과 아직은 보여주지 못한 손뼉 소리가 울린다. 신바람 난 관객 한 분이 5만 원 지폐를 건네자 입으로 덥석 물어들이고는 납죽 엎드려 절을 한다. 가볍고 뛰고 빠르게 움직이고 날렵하게 구른다. 참으로 신나고 재밌고 우습고 즐겁고 또 웃기는 시간이다. 사자탈을 뒤집어쓴 배우 두 명이 얼굴을 드러냈다. 참 다부지고 장난스럽고 멋지게 생긴 배우가 나왔다. 힘들여 지어서 기껏 개관식을 한 <까망극장> 지붕이 찢어지도록 큰 함성이 퍼졌다.
함경남도 사자놀음을 바탕에 두고 재해석한 즐거운 사자놀이라고 한다. 에스비에스(SBS) 대하드라마 <대풍수>에 출연했고(2012), 엠비시(MBC) <무한도전 영동가요제>에도 출연했다(2015) 하고, 2022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명인(북청사자놀음 부문)에 선정된 분들이라고 한다. 참 고맙고 또 고맙다.
누가 뭐래도 마무리는 마당극 <찔레꽃>
몸과 마음과 정신에 끼어 있는 스트레스가 점점이 떨어져 나갔다. 일주일간, 한 달간, 일 년간 묵혀져 있던 온갖 잡념이 봄눈 녹듯이, 한여름 뙤약볕에 아이스크림 녹듯이 없어져 가는 듯했다. 큰들축제는 이러하다. 큰들축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났는가. 정말 이제 집에 가도 되는가. 이렇게 축제는 끝났는가. 하이라이트까지 보았으니 더 볼 것은 이제 없는가.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우리에게는 불멸의 마당극 <찔레꽃>이 남았다. 나는 이 작품을 수십 번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설레고 떨리고 흥분된다. 산청 큰들 마당극마을에 새롭게 들어선 멋진 공연장 <까망극장>에서 처음으로 <찔레꽃>을 보게 되는 이 순간을 나는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 배우에 그 대사에 그 춤과 노래에 그 주제에 그 스토리를 내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몇 번 이야기했지만, 오늘 보게 될 <찔레꽃>이 지난번 동의보감촌에서 본 그 작품과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없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 같은 마당극 작품은 없다. 특히 큰들 마당극은 더욱 그러하다.
<까망극장>에서 처음 본 <찔레꽃>
<까망극장>에서 열린 <찔레꽃>은 지금까지 본 작품과 완전히 달랐다. 그 다른 점의 가장 큰 부분은 조명과 음향이었다. 특히 조명의 역할은 눈부셨다. 조명을 관객 쪽으로 비출 때는 진짜 눈이 부셨다. 이날 공연에서 조명은 또 다른 배우라고 할지 또 다른 연출이라고 할지, 아무튼 작품의 흐름과 배우의 연기를 한층 더, 아니지, 여러 층 더 빛나게 해주었다.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을 켜거나 끄고, 내용의 흐름에 따라 파란불 빨간불을 켜고, 순간 암전효과도 주면서 완전히 다른 <찔레꽃>을 탄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였을까. <찔레꽃>을 여러 번 본 관람한 익숙한 관객에게는 낯선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가고, 처음 <찔레꽃>을 보는 관객에게는 보다 더 완벽한 작품을 선사하기 위해 큰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였을까.
극장 천장에 매달린 조명은 뜻밖에 엄청 복잡하고 어려운 물건이다. 어느 위치에 어떤 색깔로 빛을 쏘아줄 것인가 하는 연출을 실현해 내는 게 결코 만만찮은 작업이다. 그것을 어렴풋이 안다. 아무튼 이날 <찔레꽃>은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찔레꽃>과는 정말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그것은 첫 번째 조명 덕분이다.
짓궂은 관객들 덕분에 웃다가 결국은 눈물
두 번째, 간단히 말하자면, 이날 큰들을 찾은 많은 관객은 <찔레꽃>을 몇 번씩 본 분들이라서 순간순간 극중에 끼어들 준비가 된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은 뜻하지 않은 즉흥연기(애드리브)를 여러 번 하게 되었다. 그런 순간이 유난히 많았다. 그러니 전에 본 작품과 오늘 본 작품을 같다고 어찌 말하겠는가. 다르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극의 중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인다. 그 즈음 극장 안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영원히 바뀔 수 없는 이 작품의 대단한 특징이다. 웃기는 게 특기인 큰들이 관객 울리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다. 젊은 귀래와 나이 든 귀래의 연기가 우리의 멱살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한 인생의 깊이와 그 깊이의 무거움에 압도되는 것 같다.
곳곳이 공연장인 산청 큰들 마당극 마을
마당극마을에서 공연이 열리는 장소는 여러 곳이다. 이제 대표 공연장으로 우뚝 선 <까망극장>과 카페물안실, 식당 앞 좁다란 잔디밭, <까망극장> 앞 운동장 등 정말 여러 형식과 형태의 공연을 동시다발적으로, 때는 시간 순차적으로 펼쳐낼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여름축제 때 그 예행연습을 했다면, 올해 <즐거웁다 큰들축제>에서는 그 오래된 꿈을 거의 완벽하게 해내었다고 봐도 되겠다. ‘거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딴 데 있지 않다. 나는 100%라고 말하더라도 큰들은, 아무도 모르는 흠결을 찾아내고 그것을 더 훌륭하게 고쳐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즐거웁다, 즐거웁다, 정말 즐거웁다
<즐거웁다 큰들축제> 둘째날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셋째 날에도 또 즐기러 갈 것이기 때문에 나는 늦은 밤 이 글을 쓰면서 매우 행복하다.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에 다시 마당극마을을 가기 위해 새벽밥 먹고 사무실로 나가는 내 삶에도 나는 지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셋째 날 공연에는 첫날 없었던 공연이 몇 개 있다. 시극 <아내와 나 사이>와 축하공연(동해 삼오장춤, 영남 채상 설장구)가 그것이다. 기대된다. 혹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분, 놓치고 후회하지 마시라.
2024. 7. 12.~13.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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