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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동식이

by 이우기, yiwoogi 2024. 9. 29.

<동식이>

 

‘온 세상을 데운 따뜻한 씨앗’이라는 부제를 붙인 마당극 <목화>를 또 보았다. 열일곱 번째 공연인데 거의 절반은 본 듯하다. 이제 대사를 줄줄 외지는 못 하지만 이번 장면 다음엔 어떤 내용이 나올지 대강 알겠다. 웃기는 장면도 알고 감동을 주는 장면도 안다. 배우가 어떤 옷을 입고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알겠다. 배우의 어떤 대사와 어떤 몸짓에 관객이 반응하는지도 얼추 안다. 관객 반응은 사실은 예측하기 어렵다. 어른이 많은 날, 어린이가 많은 날, 날씨가 맑은 날, 날씨가 흐린 날, 주변이 조용한 날, 주변이 소란스러운 날 각각 다르다. 야외에서 할 때와 실내에서 할 때도 크게 다르다. 그래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고 그 짐작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목화>에 ‘동식이’라는 배역이 있다. 문익점 선생을 모시고 원나라까지 다녀온다. 문익점 선생 댁 머슴이나 하인이라고 부름 직하다. 나이는 스무 살 남짓이라고 보면 될까. 서른은 안 되었을 것 같다. 한데 이 동식이 웃긴다. 그것도 예측할 수 없게 웃긴다. 마당극을 보는 어버이를 따라온 아이들이나 연인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이십, 삼십 대들에게 더 인기가 많아 보인다. 왜 그럴까. 글로써 몇백 줄을 써도 직접 한 번 보는 것만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몇 자 적어본다. 나는 마당극 보고 돌아온 뒤 책상에 앉아 공연 장면을 떠올리며 이런 글을 쓰는 순간이 참 행복하다.

 

고려시대 청년인 동식이의 머리 스타일은 영락없이 레게 스타일이다. 그 시절 머리를 꼬불꼬불 펌을 한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곱슬머리였을까. 뒤통수와 옆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꼬불꼬불 치렁치렁 늘였다. 14세기 고려시대가 아니라 21세기 서양 어느 나라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재미있게 놀자고 하는 마당극을 정색으로 관람하는 어른들은 “고려시대에 무슨 저런 머리가 있노?” 하시겠지만 아이들, 청년들은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문익점 선생과 동식이 등장할 때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굳이 나누자면, 어른들은 문익점을 맡은 배우의 이목구비부터 보는 듯하고, 아이들은 동식에게 눈길을 주는 듯하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원나라에서 목화씨 10개를 구하고선 국경을 넘는데 경비가 몹시 삼엄하다. 반출 금지 품목만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탐지견이 지키고 섰다. 검문관은 반출 금지 물품을 갖고 넘어가다 걸리면 죽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개작두에 모가지가 달랑달랑”이라는 말이 무섭다. 동식이 검문관에게 다가가 수작을 건다. 요근래 유행하던 ‘탕후루’ 춤을 춘다. 고려시대에 탕후루라니. 놀라운 발상 아닌가. 그것도 아차 잘못 걸리면 모가지가 날아갈 만큼 엄중한 상황에서 말이다. 동식이 탕후루 춤을 추자 즉각 객석에서 반응이 온다. 함성과 손뼉이 터진다. 검문관이 눈알을 부라리며 “뭐야!”라며 호통치자 금세 개 꼬리 감추듯 달아난다. “탕후루를 안 좋아하는 것 같다.”라면서 말이다.

 

박 행수가 있다. 고려와 원나라를 갔다 왔다 하며 사업하는 장사치다. 돈을 제법 벌었던 모양이다. 국경에서 곤경에 빠진 문익점을 구해준다. 검문관을 돈으로 구워삶은 것이다. 언제든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으스댄다. 그러면서 목을 뒤로 젖히면서 “깍깍깍”인지 “하하하”인지 구별되지 않는 웃음을 터뜨린다. 박 행수는 <목화> 공연 내내 이 이상야릇한 웃음을 몇 번이나 떠뜨릴까. 아무튼 그 웃음을 들은 동식이가 “오데서 까마귀가 우노?”라며 면박을 준다. 감히 하인, 머슴 주제에 말이다.

 

 

박 행수가 아주 고약한 심술을 부렸다. 문익점에게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일거에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은 것이다. 단성 땅에 하얗게 피어나던 목화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심지어 목화씨가 있던 창고도 불태웠다. 마침 문익점 선생 심부름으로 지리산에 갔던 동식이 돌아온다. 동식은 문익점 선생이 시킨 일을 아주 성공적으로 수행한 모양이다.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흔히 마당극에서 보고 듣는 노래와 사뭇 다르다. “헤이, 요~! 동식이 왔어요. 예~!” 이런 식이다. 랩 가사를 읊는 듯하다. 그 머리카락에 맞춘 레게음악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노래와 손동작, 몸동작이 딱 21세기 풍이다. 그래서 웃긴다. 새카맣게 불타고 만 목화밭과 목화씨 창고를 보고서는 박 행수가 저지른 짓인 줄 대번에 알아챈다. “박 행수, 이 까마귀 새끼를 내가 진작에 기름에 튀겨먹었어야 했는데!”라고 탄식한다. 당차고 대담한 하인이다.

 

여차저차하여 박 행수의 방해를 극복하고 다시 목화꽃을 피웠다. 문익점 선생은 기쁨에 겨워 있다. 문익점 선생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고 하자 동식은 하늘에 구멍을 내고 솟아오르는 장면을 연기하고, 문익점 선생이 “천지신명님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하자 동식은 이번에는 그 말을 동작으로 표현한다. 북두칠성을 언급하자 하늘에 점을 일곱 개 찍는다.

 

 

그러다가 동식이 한마디 한다. “나으리, 너무 혼자서만 다하신 것처럼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목화는 제가 심었는데예~.”라고 한다. 무엇이든 공(功)은 상전에게 올리고 과(過)는 아랫사람이 책임지던 시대에 동식은 달랐다. 자기가 한 역할을 알아달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물론 문익점 선생도 그 정도의 인품은 되는지라 대번에 “그래 동식아 수고했다.”라고 말해 준다. 이때 동식이와 문익점 선생이 추는 춤을 보는 관객들은 대책 없이 웃게 된다. 근엄하게 무게 잡는 게 주특기인 양반이 동식과 함께 기쁨에 겨워 춤추는 장면은 이 마당극에서 명장면 중 하나다. 큰들 젊은 배우들이 ‘일을 냈구나’ 싶다.

 

동식은 <목화>에서 ‘주요 조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냥 ‘감초’라고만 하기엔 그의 비중이 너무 크다. 문익점 선생, 문익점의 장인, 박 행수 다음으로 비중이 커 보이는데, 실제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적으로 많이 받는 배우 같다. 특히 어린이와 청년 관객의 마음과 눈길을 사로잡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기 세대와 가장 가까운 세대로 보는 것이다. 마당극은 대부분 시대적 배경이 고려, 조선시대이기 십상이다. 현대라고 하더라도 음악이나 의상이 아주 현대적이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 가운데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마당극의 주요 배역 한 명이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 현재와 소통하는 것 같다. 대범한 발상이고 대단한 연기력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목화>를 여남은 번쯤 보고 나니 이제 이런 세세한 것도 눈에 띈다. 배우들이 여러 배역을 맡아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면서도 혼동하거나 헷갈려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 마당판에서 그런 장면을 눈여겨보노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금방 박 행수의 하인이었는데, 잠시 후 마을 아낙이 되어 있고, 다시 박 행수의 하인으로 옮겨가 있는 배우가 많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 무명옷을 짜듯 가로세로가 잘 얽혀 있으면서도 서로 뒤엉기지 않도록 하는 힘이 보인다. 웃고 울고 손뼉 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한 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다.

 

2024. 9. 29.(일)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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