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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또 <찔레꽃>이다

by 이우기, yiwoogi 2024. 5. 16.

또 <찔레꽃>이다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마당극 <찔레꽃>을 보았습니다. '2024년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으로 열린 것이랍니다. 큰들이 이 공연을 안내하자마자 재빨리 예약했습니다. 오늘은 4명이 맨 앞줄에 앉아 함께 보았습니다. "잠시만 멈춰서 귀 기울여봐요. 몸과 마음이 하는 말"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의 이 적막과 긴장이 저는 참 견디기 힘듭니다. 그래도 요즘은 적잖이 적응한 듯합니다. 곧 공연을 시작합니다.

 

오늘 느낀 건 세 가지입니다. 둘째 아들 영철의 외침이 가슴에 꽂힙니다. 대기업에서 사표를 냈지요. 그 좋은 데를 왜 사표를 냈느냐는 어머니에게 영철은 "죽을 것 같았다. 사표를 내고 나니 숨도 좀 쉬어지고 살 것 같다"라고 울부짖습니다. 고향 마을에 작은 집을 짓고 찔레꽃동산을 만들었습니다. 인도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할 스카프를 선물로 부칩니다. 정말 부러웠습니다. 사표를 내지도 못하고, 선물 부칠 어머니도 계시지 않는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맨 앞자리에서 보니 배우들의 표정이 아주 잘 보입니다. 실내에서 조명을 쏘아가며 공연하는데,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잘 보입니다. 병원 침대에 드러누운 어머니가, 둘째 아들이 대기업에 사표를 냈다고 하자 "뭐라꼬? 영철이가 사표를 내?!"라며 두 눈을 부릅뜨는 장면을, 저는 처음으로 눈앞에서 본 듯합니다. 흰자가 다 보이도록 눈동자를 크게 홉뜨는 장면은, 그 어머니의 충격과 상심과 분노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공연 끝난 뒤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몇몇 배우는 후원회원 가입 받고 손님 인사하느라 빠졌어요. 저는 이럴 때 조금 아쉬워요. 하지만 귀래가 있으며 꽉 차 보이네요. 을수와 화자가 있으니 큰들 단원이 다 모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장면 말고도 오장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이런저런 장면에서, 관객의 시선은 무대 중앙의 귀래를 보고 있지만, 구석에 찌그러져서도 최선을 다하여 연기하는 장면을 오늘따라 더 자세히 사실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눈 연기와 입술 연기와 안면 근육 연기가 아주 잘 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그런 날입니다.

 

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모르는 분은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찔레꽃> 배우 가운데 한 명이 오늘부터 바뀌었습니다. 여차저차 하여 셋째 아들 금철 역할을 하는 배우가 바뀐 겁니다. 갑작스러운 교체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어서 많은 준비를 하였을 테지요. 그래도 처음 등장하는 배우는 긴장하여 실수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본 범위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 없었습니다. 그 전에 연기하던 배우와 오늘 연기한 배우가 데칼코마니처럼 딱 맞아떨어진 겁니다. 모자 하나의 힘도 대단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실 큰들 마당극을 보면 배역이 바뀌는 일이 가끔 일어나는데, 그 과정과 결과를 속속들이 잘은 모르지만, 어느 누구도 배역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완벽하게 똑같이, 다르더라도 더 완벽해게 연기해 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은 또 다른 각도에서 연구해 볼 만한 큰들만의 비법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오늘 처음 등장한 배우는, 사실 2006년에 큰들에 입단한 관록이 단단한 대단한 배우이지요. 

 

새로운 고급 정보도 하나 얻어왔습니다. 6월 13일(목) 저녁 7시에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효자전>을 공연합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예약을 하려다가 누구랑 갈지 좀 생각하기 위해 오늘은 그냥 돌아왔습니다. 저는 반드시 갑니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알려진 큰들의 마당극 공연 일정에는 <효자전>이 없었는데, 드디어 올해 처음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설렐 수밖에요.

 

<효자전>에서도 배우가 또 바뀌겠군요. 한 달 뒤에 직접 보기까지 물어보지 않아야겠어요. 궁금함은 나의 힘이니까요. 짐작은 하지만.

 

5월 중순 치고는 날씨가 좀 쌀쌀했습니다. 지리산 부근이라 바람이 찼습니다. 마당극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인생도 반추했습니다. 너무 몰랐던, 어머니의 삶의 뒷면을 간접적으로 보았습니다. 가슴이 시리고 슬펐지만, 눈물 흘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찔레꽃>을 보고 또 보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 무조건 관람을 권합니다.

 

<찔레꽃>은 5월 18일(토), 19일(일) 오후 2시 산청군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잇따라 공연합니다. 현재 나와 있는 공연 일정을 보자면, 이 두 번 공연이 올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길 바라지만. 저는 두 번 다 보러 가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실내로 옮겨 공연합니다. 그러니 하늘을 살필 필요 없이 달려가면 됩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요.

 

2024. 5. 16.(목)

이우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