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회>
극단 큰들은 6월 13일 저녁 7시 산청 문화예술회관에서 마당극 <효자전>을 공연했다. 이날 공연은 ‘2024 산청문화예술회관 공연장 상주단체 기획공연’으로 마련됐다. <효자전>은 전국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달리 설명할 말이 필요 없다.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아쉬워 몇 마디 보탠다.
지리산 약초골에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귀남, 갑동 형제가 있다. 귀남은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조정의 내의원이 되기 위해 한양으로 시험 치르러 떠난다. 노잣돈이 없어서 어머니는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 준다. 귀남이 좋아하는 산청 곶감도 바리바리 싸준다. 이웃 한의사는 그에게 지리산 약초로 만든 총명탕을 건넨다.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것이다. 귀남이 내의원이 되려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이다. 그는 내의원 시험에 합격할까. 그리하여 집안을 일으킬 수 있을까. 갑동이는 어머니 돈을 훔쳐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논다. 어머니의 골칫거리다. 친구들과 경호강에서 뱃놀이하면서 이웃 어른이 낚은 쏘가리를 낚아채 달아난다. 갑동이는 언제쯤 철들까.
2010년 5월 8일 처음 공연한 <효자전>은 인기가 아주 많다. 올 6월에만 해도 5일 진주 촉석초등학교에서 공연했고, 15일에는 울산 태화강 마두희 축제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5월 3일 서울 갈산초등학교, 21일 사천 삼성초등학교에서 공연했다. <효자전>은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10년 넘게 상설 공연해 왔는데 요즘은 각 학교, 특히 초등학교에서 많이 초청하는가 보다. 하긴, 이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초등학교 교장, 교감, 교사가 계신다면 자기 학교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교육장이 보셨다면 관내 모든 학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동의보감촌 상설공연 작품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사이 큰들이 새로운 작품을 많이 만들었고 새 작품도 만만찮기 때문이겠다. 올해 <효자전>을 처음 보게 된 사연이다. (2024년 동의보감촌 상설공연 작품은 오작교 아리랑, 찔레꽃, 남명, 목화 네 작품이다. 모두 합하여 20회 공연한다.)
6월 13일 <효자전> 공연은 320회째라고 한다. <효자전>은 2018년 7월 21일 200회째 공연했고 2023년 9월 22일 300회째 공연했다. 14년여 만에 320회 공연했다면 한 해 평균 22-23회 공연했다는 뜻이다. 오래된 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최근 기록만 보자면, <효자전>은 2020년 경남 우수예술단체 찾아가는 문화활동 참여,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 신나는 예술여행 참여, 2023년 부산 을숙도문화예술회관 기획공연 참여, 2024년 학교로 찾아가는 문화예술 전문가 사업 선정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100여 곳을 찾아간 지역 순회공연작이다(공연 전단 참조). 대단하지 아니한가.
이날 공연에서 큰들은 ‘작은 문화 놀이터’도 운영했다. 오후 5시부터 2층 공연장 입구 로비에서 박춘우 미술감독의 그림을 전시했다. 박춘우 화백의 작품은 따뜻하다. 겨울 그림인데도 따뜻하다. 1층 로비에서는 돌 그림 그리기 체험을 마련했다. 회관 바깥에서는 관객을 대상으로 풍물놀이 악기 체험, 사진 찍기 등을 벌였다. 6시 30분부터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풍물 길놀이 공연도 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겐 떡, 수정과, 과일 등을 대접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서로 다짐했다. <효자전> 앞부분에서는 보통 때는 하지 않는 버나놀이로 흥을 돋우어 주었다. 산청 사람들은 좋겠네.
나는 <효자전>을 2018년 5월 18일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처음 보았다. 재미난 이야기와 빼어난 연기 덕분에 마당극에 홀딱 반했다. 그날 처음 본 <효자전>에 대한 느낌을 후기로 써서 누리방(블로그)에 올렸다. 그 후로 <효자전>과 관련한 글을 수십 편 썼다.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되풀이해도 지겹지 않았고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효자전>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두루 익히게 되었다.
2018년부터 6년쯤 흐르는 사이 갑동이 역할을 하는 배우가 바뀌어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배우가 갑동이 역할을 맡았다. 귀남이도 한동안 다른 배우가 맡았다. 귀남과 갑동이가 바뀐 사연은 두 주연 배우의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야기해도 되겠지. 이웃 한의사(임뻥아재)의 조수로 나오는 배우도 두어 번 바뀌었다. 배우의 군입대 때문이었다. 갑동이 친구들, 한양 기생집 기생들도 몇 차례 배우가 바뀌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효자전>을 보는 동안 바뀌지 않은 배우도 있다. 귀남 갑동의 어머니, 임뻥아재, 임뻥아재의 어머니, 한양 내의원의 어의 나리, 무덤 속 귀신 등이다. 320회 공연을 이어오는 동안,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배우가 한두 번씩은 바뀌었을 것이다. 일전에 듣기로는, 임뻥아재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임뻥아재 역을 맡은 송병갑 씨에게 경의를 표한다. 실로 대단하지 아니한가.
6월 13일 320회 공연에서는 2018년 5월 처음 공연을 볼 때의 귀남이, 갑동이, 어머니, 임뻥아재, 임뻥아재 어머니가 모두 그대로 나왔다. 주연급 배우 4명이 다시 모인 것이다. 무척이나 반갑고 고맙다. 갑동이 친구와 한양 내의원, 그 외 단역들은 오래전과는 다르고 얼마 전과는 같더라. 이런 사실을 이리저리 알아보는 게 재미있다.
6월 13일 저녁 <효자전> 공연이 320회를 맞이한 게 대단한 기록이라면, 대단한 기록은 또 하나 더 있다. 극단 큰들의 또 하나의 명작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은 6월 9일 하동 최참판댁에서 역사적인 320회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큰들을 대표하는 두 마당극이 비슷한 시기에 32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정말 놀랍고 대단하고 신비롭고 엄청난 일 아닌가.
<오작교 아리랑>도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니 몇 마디 보탠다. <오작교 아리랑>은 2015년 5월 2일 처음 공연했다. 2021년 5월 9일 200회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고, 2023년 10월 26일 300회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새 20회 더 공연한 것이다. 작품 내용은 간단하다.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는데 양가 부모들이 한사코 반대한다.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까치가 놓아주는 오작교로 사랑을 이어가듯, 남돌이와 꽃분이의 사랑을 이어주는 오작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남돌이와 꽃분이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기록을 잠시 더듬어 본다. 2016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민간예술 우수공연 프로그램 선정, 2017년 경남도민예술단 선정, 2017년 유월 민주화운동 30년 서울지역 초청 순회공연, 2017년 일본 7개 도시 초청 순회공연(도쿄, 고베, 히메지, 사가, 도코로자와, 가와코에, 츠루),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소외계층 문화나눔 순회사업 선정, 2018년 경남도민예술단 시군 순회공연 선정, 2018·2019년 문화가 있는 날 직장문화배달 사업 선정, 2019 (재)경남문화예술진흥원 우수예술단체 찾아가는 문화활동 선정(큰들문화예술센터 누리집 참조) 등이 그것이다. 2020년 이후의 기록은 왜 없을까.
<오작교 아리랑>이 큰들의 다른 마당극 작품과 차이 나는 점은 관객의 참여를 아주 적극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 남명>에서도 관객을 마당판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오작교 아리랑>만큼은 아니라고 본다. 이 작품에서는 관객 1명이 아랫마을 남돌이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마당판으로 불려나간다.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지는 보면 안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도 비슷하다. 하지만 전혀 다르다. 아무튼 관객은 이 마당극을 이끌어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 관객들끼리 때아니게 응원전 승부도 겨룬다. 다른 마당극 작품에서도 관객의 있고 없음, 많고 적음, 적극적인 관객과 소극적인 관객의 차이는 엄청나지만, 관객의 영향이 가장 큰 작품은 <오작교 아리랑>이라고 본다. 그런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다 보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내가 마당극을 본격적으로 보러 다니기 시작하던 2018년의 <오작교 아리랑>은 현재 공연하는 <오작교 아리랑>과 같은 작품이기도 하고 다른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극단 큰들은 코로나19로 공연을 할 수 없던 2020년 극단2팀을 창단하였고, 지금은 이 극단2팀이 <오작교 아리랑>을 도맡아 공연하기 때문이다. 극단2팀은 그 전까지는 사무국 직원 등 배우가 아니던 분이 절반가량 되고 나머지는 배우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쉬던 분들이다. 요즘은 원래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하던 극단1팀은 이 작품을 공연하지 않는다. 극단2팀은 이 작품만 공연한다. 그러니 같은 작품이라고도 하고 다른 작품이라고도 할 수밖에. 극단2팀의 첫 공식 공연 날짜는 2020년 5월 30일이다.
그런 영향으로 2018~2019년에 보던 <오작교 아리랑>의 배우와 지금의 배우는 많이 다르다. 이전의 <오작교 아리랑>에서 꽃분이 아버지, 어머니로 나오던 배우가 각각 건강과 출산을 이유로 마당판을 잠시 떠났다가 극단2팀의 꽃분이 아버지, 어머니로 재회한 것은 기록해 둘 만하다. 나는 이 과정을 눈여겨보면서, 극단 큰들의 배우 운영의 묘미랄까 특징이랄까 아니면 순발력이랄까, 그런 것을 제대로 느낀 적 있다.
또한 <오작교 아리랑>은 2024년 올해 작품은 2020~2023년의 작품과도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5월 하동에서 이 작품을 보고 다음과 같이 쓴 적 있다.
“큰들은 올해부터는 <오작교 아리랑>에 큰 변화를 주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변화를 꾀하고 그 변화에 대한 반응을 유심히 살펴서는 또 다른 변화를 가한다. 이것이 큰들이다. 오늘 내가 보는 <오작교 아리랑>은 어제 본 그것과 같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애매하고, 내일 보게 될 <오작교 아리랑>은 오늘 본 작품과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올해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마당극 전체를 유튜브 ‘채널 오작교’의 콘텐츠로 상정하여 진행한다는 것이다. 젊은 배우 두 명(박정현, 손리현)이 나와서 유튜브 채널 오작교를 진행한다. 요즘은 옥황상제가 하늘나라에 다리를 놓아주는 바람에 까마귀와 까치가 굳이 칠월칠석에 오작교를 이어주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까마귀, 가치가 할 일이 없어진 건 아니다. 견우, 직녀처럼 사랑을 이루고 싶은 남녀의 사연을 신청받아 까마귀와 까치가 이어주게 하고, 그것을 채널 오작교에서 중계한다는 설정이다. 직접 보면 간단하고 쉬운데 글로써 설명하려니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엔 채널 오작교에서 사랑을 이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임을 잊지 않도록 몇 번이나 환기해 준다. 남돌이와 꽃분이가 혼례를 올릴 때엔, 이전에는 임기원 배우가 주례를 맡았는데, 이번에는 박정현 배우가 사회 겸 주례를 맡는다. 조금 전 꽃분이 이모로 나오던 배우가 어느새 주례가 되었다. 안경 하나 끼고 손에 명품백 하나 걸쳤는데도 완전 딴 사람이다. 딴 사람이 된 줄 착각하게 만드는 건 목소리와 말투다. 그런 노력과 배려가 돋보이는 수작(秀作) 마당극이다.
현재 극단 큰들이 공연하는 마당극 작품(레퍼토리)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효자전>, <오작교 오리랑>을 비롯해 최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찔레꽃>, <마당극 남명>, <마당극 목화>, <영웅의 부활 정기룡>, <최참판댁 경사 났네> 등이다. 큰들 사람들 가운데 배우로 활약하는 사람은 24명이다. 이들이 이 작품 저 작품 오가며 이런 역할 저런 연기를 해낸다.
오늘은 <효자전>의 어머니였다가 내일은 <찔레꽃>의 화자가 된다. 같은 사람인지를 모르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어제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일본군 장교로 활약하다가 내일은 <마당극 남명>에서 김 노인 역할을 한다. <마당극 남명>에서 ‘단성소’를 외우던 배우가 <마당극 목화>에서 사위 문익점과 엉덩이를 맞부딪히고 있다. <마당극 목화>에서 원나라 수입 제품 판촉에 열을 올리며 신명나게 춤추던 배우가 <찔레꽃>에 가서는 어린 귀래를 맡아 관객의 눈물을 쏙 빼는 연기를 선보인다. 처음 <마당극 남명>을 본 관객이 분명 남자라고 생각한 배우는 <찔레꽃>에서는 주인공 귀래가 되어 우리 어머니, 우리 이웃 아주머니를 꼭 빼닮아 있다.
배우 24명이 7개 작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좀 헷갈리기도 할 것이고 대사를 잠시 까먹기도 할 터인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연출가도 어느 배우를 어디에 출연시켜야 할지 조금은 고민될 터인데, 고민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품이라는 결과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군더더기 같은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큰들은 그러하다.
극단 큰들의 대표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과 <효자전>의 동시 320회 공연을 축하하고 그 의미를 기리기 위해 쓰잘 데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지난해 5월 1일 200회를 넘어선 <최참판댁 경사 났네>도 다시 하동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게 되기를 기원하고, 올해 6월 9일 56회째 공연한 <찔레꽃>도 100회, 200회, 300회 쭉 이어가기를 바란다. 아, 물론 나머지 다른 작품도 마당극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공연을 초청해 주는 기관·단체가 많이 생겨나야 하고, 그에 맞춰 관객의 관심과 관람, 호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튼 거의 동시에 320회 공연을 달성한 <효자전>과 <오작교 아리랑>이 서로 경쟁하듯 400회, 500회를 이어가기를 바라고, 또한 이제 겨우 207회를 넘어가는 나의 마당극 관람 행진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기 적어 놓는다.
2024. 6. 14.(금)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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