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나에게 일어난 일 몇 가지
2023년이 저물어 간다. 새해 시작할 때는 설렘, 기대 같은 게 없지 않았는데 한 해를 다 보내고 보니 덧없기만 하다. 조용필은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라고 노래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더라도 후회할 것 없고 아쉬울 것 없는 인생이다. 바람도 이슬도 각기 제 몫이 있고 역할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든 게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했다. 우리네 선조들은 ‘행운유수’와 ‘안빈낙도’라는 말을 즐겨 썼다. 광대무변한 대우주 속에서 ‘먼지가 되어’ 날아간들 무엇이 안타깝겠는가.
그래도 먼 훗날 2023년을 돌아볼 때 무엇인가 삶의 흔적의 찌꺼기라도 잡히지 않는다면 조금 섭섭하기는 할 것 같다. 해마다 이맘때 한 해를 돌아보며 몇 가지 추억거리를 적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기억의 세포가 낡아 어떤 일이 일어난 게 몇 년도였는지 가물가물해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혹시 나 죽어 없어진 뒤,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단 한 명이라도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질 때 이 기록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2023년은 최근 몇 년을 비교해 볼 때 가장 밋밋하고 건조한 해였던 것 같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많았지만 딱히 기록으로 남길 만한, 그럼으로써 한 해를 반추할 만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의 기록은 예년에 견주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적다. 내용도 짧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기록은 해 놓는다.
1.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37번 보았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일년 내내 내가 웃으며 살아가는 데 가족 다음으로 큰 원동력이자 즐거움이다. 행복의 원천이다. 한 번 본 마당극을 또 보고 또 보는 데는 그만큼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새로 만든 마당극이 한 편 있다. <이상해 지구, 뜨거워 지구>는 제목 그대로 환경 파괴로 인한 이상 기후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손오공과 사오정, 삼장법사가 나오는 것은 어린이 관객을 위한 설정 같은데, 어른들에게도 매우 큰 교훈을 준다.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8월 15일, 17일 두 번 공연했는데 나는 두 번 모두 관람했다. 운도 좋지. 몹시 무더운 여름날 뜨거워진 지구 이야기를 대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지난해 연말 창작한 <목화>도 올해 비로소 여러 번 볼 기회가 생겼다.
아무튼 2023년 나는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37번 보았는데, 2018년부터 셈하자면 193번을 본 것으로 집계된다. 올해는 <찔레꽃>을 8번, <효자전>과 <목화>를 6번씩, <남명>과 <오작교 아리랑>을 5번씩,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4번, <이상해 지구, 뜨거워 지구>를 2번, <정기룡>을 1번 보았다. 2019년 39번 이후 가장 많이 본 해이다. 내년에는 지구 종말이 오지 않는 한 200번을 돌파할 것 같다. 산청 아니면 하동에서 나의 마당극 관람 200회를 스스로 기념하고 싶다. 웃고 싶다.
2. 이를 하나 뽑았다.
부실한 치아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 여러 곳에서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아픈 건 참지 말고 즉시 치과에 가라고 마치 치과홍보대사처럼 떠들었다. 아래위 어금니를 모두 임플란트로 수술한 게 2018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그러고서 5년이 지났다. 오른쪽 윗니 가운데쯤 임플란트 한 바로 옆의 이가 말썽을 피웠다. 사실 말하자면 이전부터 제 구실을 잘 못하던 것이다. 어찌 보면 5년을 버틴 게 용하다고 할 것이다. 10월 초부터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11월 말 치과에서 과감하게 뽑았다. 어떻게 하든 치아의 구실을 못하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앓던 이가 빠지는 건 매우 시원한 일이다. 그런 한편으로 나의 경우에는 매우 섭섭하고 안타깝고 속상하는 일이다. 임플란트 10개 대공사를 하면서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기어이 아까운 이 하나를 더 보내버린다는 게 몹시 씁쓸하고 쓸쓸하게 만든 것이다. 우울해졌다. 올해 가을부터 왠지 우울해지고 쓸쓸해지는 기분을 많이 느꼈는데 ‘발치의 추억’도 우울함을 높이는 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3. 아내와 여행을 몇 번 갔다.
결혼 이후 아내와 단 둘이 여행을 간 경험이 많지 않다. 전혀 가지 아니한 건 아니지만, 올해는 결혼 25주년이라 좀 신경을 썼다. 6월 4-6일에 전라도로 갔다. 나비 축제를 하는 함평으로 갔다가 장흥으로 갔다가 강진으로 갔다. 함평에서는 나비 축제장의 온갖 꽃들을 보았다. 장흥에서는 ‘보림사’를 돌아보고 그 절 뒷산의 비자림도 걸어보았다.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았는데 함평에서는 바닷가 한옥촌마을에서 하루 잤다. 좋았다. 특히 석양이 좋았다. 다음날엔 강진에서 다산초당 아래 어느 민박집에서 잤다. 오래된 기와집과 잘 가꾼 잔디밭이 유난히 멋져 보인 집이다. 우리는 어딜 갈 때 웬만하면 잘 곳을 미리 정하지 않는다. 먹을 곳도 정하지 않는다. 행운유수의 철학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아니다. 아무튼, 다음날 아침 다산초당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곧장 청자박물관 쪽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 바닷가 짜장면 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손님이 많았다.
함양군 창원마을 김석봉 형님이 운영하는 민박집에도 하루 다녀왔다. 8월 15일 광복절이라 원래는 문을 열지 않는 날인데, 무작정 전화드리고 찾아갔다. 형수님 생일을 맞아 가족 모임을 하려던 것을 우리 때문에 포기한 듯했다. 미안했다. 저녁 잘 먹고, 미리 사갖고 간 막걸리 잘 비우고, 떠들다가 잤다. 아침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조금 우왕좌왕했다. 그래도 아침밥 잘 먹고 돌아왔다. 언제든 마음대로 오라고 하는 형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 날이다.
8월 말에는 남해섬에 갔다. 바닷가가 아닌 한적한 시골마을에 자리잡은 펜션에서 하루 묵었다. 다음날엔 바람흔적미술관(이 이름이 맞나?)에 갔다가 남해읍에서 놀았다.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해읍 시장과 그 주변을 장똘뱅이처럼 걸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검색해서 찾아간 밥집엔 재료가 떨어졌다 해서 다시 하염없이 걸어 낙지볶음밥을 먹었다. 먹을 만했다.
제주도도 갔다. 11월 29-12월 1일 수-금요일 공식 출장이 잡혔다. 해마다 한번은 가는 제주도다. 금요일엔 부리나케 돌아오곤 했는데 올해는 금요일 오전에 아내를 제주로 오게 했다. 일요일까지 2박 3일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4.3 평화공원엘 제일 먼저 갔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까마귀가 유난히 많았다. 서귀포월드컵경기장 옆 리조트에서 잤다. 다음날엔 송악산, 생각의 정원, 오셜록 등지를 돌아보았다. 마지막 날엔 빛의 벙커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세잔, 프로방스의 빛’과 이왈종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내 눈에는 이왈종 작가가 훨씬 나았다. 제주는 한 달 살아도 모자라고 1년 살아도 모자랄 것 같다. 온 사방이 관광지이고 추억의 명소가 될 만했다. 다음에 또 가자고 했다. 렌터카를 예약하고, 값싸고 좋은 방을 구하는 건 아내가 맡았다. 나는 운전만 열심히 했다. 그래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12월 22일 현재 아직 끝나지 않았다.
4. 아내가 ○○교육지원청에 취업했다.
아내는 1998년 결혼 후 25년 동안 아주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나는 그것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아내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데는 임시직으로, 어떤 데는 계약직으로, 어떤 데는 아르바이트로, 어떤 데는 정규직으로 일했다. 한 해에 하나씩 직업이 바뀐 것 같았다. 미안했고 무안했다. 내 잘못 같았다. 아내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열심히 준비했고 마침내 따냈다. 청소년상담사, 직업상담사 자격증도 준비했는데 결국 취득했는지 못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만큼 아내의 삶은 제법 복잡했다.
그러고선 올해 9월 1일 ○○교육지원청의 교육복지사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교육복지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가정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에게 이런저런 나라의 혜택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내가 얼마나 성실하고 착한지. 타인을 배려하고 동료 간에 우애 있게 지내며 맡은 일에 정성과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 취업 이후 아내는 진주에서 ○○까지 왕복 120km 정도를 출퇴근한다. 왕복 2시간 거리다. 고속도로도 이용한다. 따라서 아내가 전기차를 이용하게 됐다. 새로 시작한 일에 얼른 익숙해지기를 바라고 오가는 길 무조건 안전하기를 나는 날마다, 매시간 빈다.
아내는 취업 이후 출장과 야근도 잦다. 당일치기 출장도 있고 1박2일 출장도 자주 간다. 퇴근 시간은 6시일 때보다 그보다 늦을 때가 더 많다. 직장인들은 다들 그렇게 산다. 가정과 일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50대 50으로 양단할 수도 없다. 기우뚱 기우뚱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릴 수 있으면 된다. 그렇기를 바란다.
5. 자존감이 크게 짜부라진 해였다.
잘 웃는 편이지만 항상 즐겁고 행복한 건 아니다. 직장에서 맡은 일이 워낙 무겁고 큰지라 매사 조심하고 성실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잘 안 된다. 모든 것을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나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실수가 잦고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하며 상황판단을 그르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나의 존재감, 무게감, 자신감이 형편없이 짜부라진 해라고 기억한다. 자존감이 추락했다. 4월에는 ‘열린음악회’라는 큰 행사를 치렀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깨달았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눈앞에 두고 허둥대거나 헛발질하다가 시간을 허비했다. 그 순간에는 뼈아프게 반성했지만 뚜렷한 대책도 없다. 영민한 동료들 아니었으면 대형 사고를 낼 뻔했다.
9월에는 프로야구단 단체관람이라는 행사를 치렀다. 야구장에 단 두 번 가본 사람이 무엇을 알겠는가.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으로 잘 치러낸 행사였다. 많은 동료들이 헌신적으로 일한 덕분이다. 나는 아는 것이 없었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일을 해내려면 평소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새로 배우고 깨닫기에는 이미 늦었고, 그럴 만한 시간과 여유를 나는 갖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고 존재감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업무에서도 번번이 구멍을 낸다. 지시 받은 것을 까먹었다가 뒤늦게 ‘아차’ 할 때도 있고 잘 한다고 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을 산 일도 있다. 일일이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아마 없어지고 말 것이다.
상상력은 메말랐고 추진력은 바닥났다. 그런 것을 절실히 깨달은 한 해였다.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다. 깜냥 안 되는 사람이 아주 큰 조직에서 너무 큰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그 짐을 더 튼튼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20년가량 한 자리에 있었다고 전문가로 대접하고 만능이라고 인정하는 그 눈빛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사실 십년은 된 것 같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이런 생각이 더 진해진 것일 뿐이다.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상황의 한 증거일 뿐이다. 여기에라도 반성문처럼 써 놓아야 할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릅쓴다. 웃는다고 다 웃는 게 아니라는 말을 여실히 느낀다.
6. 그 밖에 나와 관련한 이러저러한 일들
- 큰형님은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했다. 존경하고 자랑스럽고, 그리고 부럽다.
- 큰형님의 큰아들, 그러니까 장조카가 결혼을 했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빈다.
- 아버지, 어머니 제사를 아버지 제사로 한 번에 모시기로 했다. 어머니 3년상 치른 후의 결정이고, 어머니 생전에 미리 말씀드리고 허락받은 일이다. 형제들의 우애가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
- 음력 설과 추석 쇠기를 바꾸기로 했다. 차례는 산소에 가서 올리기로 했다. 제삿날처럼 차리는 음식보다는 우리가 나눠먹을 음식 위주로 준비하여 함께 재미있게 놀기로 했다. 잘한 결정이다.
-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는 <노량: 죽음의 바다>, <서울의 봄>, <어른 김장하>,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3일간의 휴가> 등이다. 봄에 본 영화는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