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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마당극 목화>를 보고

by 이우기, yiwoogi 2023. 11. 5.

<마당극 목화>를 보고

(이 글은 고치고 더하고 기워 나가는 중입니다)

 

“피었네 피었네 목화꽃이 피었네. 내 나라 고려 땅에 목화꽃이 피었네. 씨앗 하나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어, 온 나라 고려 땅에 하얀 꽃이 피었네. 목화꽃이 피었네.”

 

극단 큰들의 새 마당극 <목화>를 보았다. ‘새’ 마당극인데, 지난해 12월에 처음 공식 뚜껑을 열었으니 ‘헌’ 마당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1월 5일 공연은 열두 번째이다. 새싹 같은 작품이다. <효자전>, <오작교 아리랑>을 300회 이상 공연한 것과 견주면 새싹임에 틀림없다. 열두 번 공연 가운데 나는 여섯 번 보았다. 아주 운이 좋았다. 2022년 12월 창작발표회에서 처음 본 뒤 올해 산청 세계엑스포, 산청 한방약초축제 때 몇 번 보았다. 그러고 공연 장면 찍은 영상을 열 번 넘게 보았다. 주제곡 “피었네~ 피었네~”라는 곡조가 귓가에 맴돈다. 입안에서도 제 스스로 달다. 가사는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아주 깊다. ‘씨앗 하나가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는’ 단순 명쾌한 진리 앞에 고개 숙여진다.

 

<마당극 목화>는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목화씨 10개를 얻어 붓 뚜껑에 숨겨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보다 먼저, 보부상 셋이 나와서 무명이 무엇인지부터 일러준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보부상이 서로 ‘잘 났네, 못 났네’ 자랑하다가 관객들에게 무명이 바로 면티, 면바지, 면빤쓰에 쓰이는 재료, 즉 임을 이야기해 준다. 어리거나 아니거나 간에 혹시라도 오늘 이 마당극의 소재인 ‘목화’가 무엇인지, ‘무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무튼 세 보부상이 문익점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극을 시작한다. 세류에 맞게, 복잡하고 긴 이야기는 분위기와 시간을 고려하여 과감하게 생략하고서는 핵심만 간추려 이야기해 주겠노라고 한다. 요즘은 드라마도 ‘몰아보기’가 유행이고 영상도 ‘숏츠’가 유행이라고 하니 말이다. 1329년 고려 충숙왕 때 문익점 선생이 태어난 때부터 다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공민왕 12년 원나라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 선생이 여차저차해서 어렵게 목화씨 10개를 가지고 국경을 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은 마당극 내내 밑바탕 정서로 흐른다.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문익점 선생의 장인인 정천익에 따르면, 목화씨를 가져와 무명을 얻기로 마음먹은 문익점은 자다가도 “목화”라고 외치며 일어나고 노래를 불러도 “목화~” 노래만 불렀다. 추위에 떠는 백성을 위한 마음에 문익점 선생의 가슴과 머리에 ‘목화’만 가득했던 것이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3년 만에 돌아오는데 국경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보초를 서는 병사를 만난다. 얼어 죽을 것 같던 병사들에게 자기 옷을 벗어준다. “나는 몸에 열이 많아 춥지 않아!”라고 외치면서.

 

국경에서 만난 박행수가 고려 땅은 원나라와 기후와 토질이 달라 목화를 피울 수 없다고 말하자 굴하지 않고 “고려 땅에서 목화 싹을 틔워 백성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히고 싶다.”라고 선언한다.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은 “공기와 물과 같이 백성들이 목화로 옷을 짜서 따뜻하게 입게 하는 것”이라는 그의 꿈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누구는 삼베옷 입고 누구는 비단옷 입는 불공평한 세상을 고쳐보려는 문익점 선생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악당인 박행수의 소행으로 목화밭이 불에 타 버리자 백성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히지 못하게 된 것을 가장 괴로워한다. 문익점 선생은 그러한 분이다.

 

이보다 더 춥게 보일 수 없다

 

<마당극 목화>가 중국에서 목화씨를 어렵게 구해 와서 백성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히고자 한 문익점 선생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와 반대 지점에는 그만한 추위가 있어야 한다. 고려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하늘은 사람을 만들고서 왜 추위를 만들었나?”라고 하늘을 원망하는 병사들은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들의 복장에서부터 말투에까지 추위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보고만 있어도 정말 춥다.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에게조차 따뜻한 군복을 입힐 수 없는 세상, 일반 백성들은 오죽하였을까.

 

하지만 일부 대갓집 마나님들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귀부인들은 박행수 상단이 원나라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온 나라에 단 열 벌밖에 없는 ‘장패딩’을 사 입고서는 오히려 덥다고 난리다. 궁궐에도 보내기 전에 선진국에서 물 건너 온 귀한 옷을 입으며 온갖 자랑질을 하는 이들은 국경 수비대의 병사들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국경 병사들 장면 바로 뒤에 귀부인들이 등장하는 건 적절한 대비 효과를 노린 것 아닐까. 

 

목화씨 10개 가운데 하나가 우여곡절 끝에 싹을 틔웠다. 단성 땅에 목화꽃이 지천으로 퍼졌다. 하지만 박행수의 음모에 의하여 모두 불에 탄다. 따뜻한 옷을 지어 입으려던 꿈은 산산조각 났다. 백성들은 다시금 추위에 떤다. 까마귀가 울어댄다. 길에서 얼어 죽은 사람을 뜯어먹으려고 하늘을 빙빙 돈다.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는 더욱 처량하다. 추위는, 물과 공기가 없는 세상과 다를 바 없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따뜻한 옷과 이불을 만들 수 있는 목화의 가치는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계속 바뀌어 등장하는 동물 연기도 놓칠 수 없다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 국경을 벗어나려 한다. 당연히 검문검색이 삼엄하다. 검문관은 검문장비를 들고 서서는 반품 금지 품목을 갖고 나가다가 걸리면 “개작두에 모가지 달랑달랑”이라며 죽는다고 겁박한다. 당연히 특수 훈련을 받은 탐지견도 등장한다. 탐지견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영락없는 개다. 유황을 숨겨 가려는 상인도 잡아내고, 물소 뿔을 훔쳐 국경을 넘으려는 박행수도 잡아낸다. 박행수는 평소 뇌물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인지라 요행히 잘 통과한다.

 

탐지견 역할을 한 배우는 닭으로도 나온다. 같은 사람이 다른 동물로 나오는 것을 본 관객들은 크게 웃는다. 닭의 역할은 막중하다. “꼬끼오~” 한번으로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기도 하고 목화씨 여럿 가운데 하나가 기어이 싹을 틔우게 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이 대목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다. 문학적 상상력이 매우 빼어나게 발휘된다. 문익점 선생을 찾아온 박행수가 사업 제안을 하는데, 이를 물리칠 때 닭이 등장한다. 머리에 붉은 볏을 쓴 닭 한 마리는 이 마당극에서 매우 중요하다.

 

닭으로 나온 이 배우는 나중에 까마귀로도 등장한다. <마당극 목화>에서 나오는 동물은 한 배우가 다 맡았다. 까마귀는 기다란 날개를 휘저으며 추위와 굶주림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백성들을 위협한다. 검정색깔과 커다란 날개는 움츠리고 웅크린 백성들을 모두 덮을 만큼 어둡고 크다. 숨통을 조일 듯하다. 여차하면 낚아 채 저 먼 나라로 끌고 갈 것처럼 보인다. 대비의 효과가 잘 드러난다. 개 짖는 소리, 닭 홰치는 소리, 까마귀 우는 소리가 한 배우의 빼어난 연기로 모두 잘 드러났다. 닭이 사람 말을 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웃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한다.

 

21세기 놀이처럼 연기하는 장면들

 

<마당극 목화>의 시간 배경은 고려시대이다. 하지만 고려시대처럼 연기하지 않는다. 21세기 현대적 연출 요소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지루하지 않게 한 것은 물론이고 10대, 20대 청년들도 이 작품에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문익점 선생과 장인 정천익이 3년 만에 상봉하여 손바닥 장단을 치고 엉덩이를 맞부딪는 장면은 예고편이다. 이 장면은 나중에 한 번 더 나온다.

 

박행수 상단의 종업원이 고려 귀족들에게 신상품을 팔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장면은 아찔할 정도로 재미있다. 숨 가쁘게 재잘대는 대사도 대사이려니와 춤동작도 요즘 엠지(MZ) 세대에 어울릴 만하다. “이 얼 싼 쓰~”라는 대목에서 박행수, 귀부인과 함께 춤추는 장면도 경쾌하고 아찔하다. ‘패션쇼’라고 하자니 그보다 더 가볍고 ‘춤’이라고 하자니 그와 다른 의미가 엿보인다. 젊은 배우와 중견 배우의 호흡이 그야말로 환상이다. (이 작품에서는 젊은 배우들의 역할이 크다. 그것을 받쳐주고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중견 배우들의 역할이, 내 눈에는 보인다. 큰들이 여러 작품을 동시에 여러 곳에서 공연할 수 있는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박행수가 문익점 선생을 찾아가 목화를 가지고 사업을 하자며 제안하는 장면도 두고두고 명장면이다. 시청각 자료를 준비하여 설명하는데,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에 탄복하게 된다. 큰들 마당극에서는 항상 소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꿈을 파는 기업 드림 셀러’가 문익점 선생을 꼬드기기 위해 제안하는 장면은 요즘말로 하면 ‘프레젠테이션’인 셈이다. 21세기 관객을 위한 눈요깃거리로서는 최고의 순간이다.

 

갈등이 해소되고 문익점 선생과 하인 동식이 서로 수고했다며 춤추는 장면도 재미있다. 두 젊은 남자 배우가 대사에 맞춰 몸동작을 하는 장면은 아주 우습다. 웃기면서도 따뜻하다. 특히 유학자이자 애민정신의 화신으로서 점잖고 묵직할 것만 같던 문익점 선생이 하인 동식과 함께 브레이크 댄스 비슷한 몸동작을 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리 목석 같은 관객이라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여섯 번 공연을 보면서 이 장면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더랬다. 아, 기다린 장면은 앞서 말한 ‘한정판 리미티드 상품의 호객 행위’를 할 때를 비롯해 아주 많다.

 

천을 이용한 상황 묘사의 귀재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보면 공통적인 소재를 발견할 수 있다. 천이다. 큰들은 천으로 무엇을 하는가. 마당극에서 연출하기 어려운 꿈, 회상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영화에서는 자주 등장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장면을 처리하지만 마당극에서는 그렇지 않다. 마당극 <남명>에서는 조식 선생이 꿈을 꾸는 장면에 하얀 천이 등장한다. 을사사화 때 죽어간 선비들이 꿈에 나타나 남명을 꾸짖는다. 하얀 천이 걷혀지면 현실로 돌아온다. <남명>에서 파란색 천도 나온다. 우물가에서 마을 사람들이 물놀이하는 장면이다. 원래 장소는 우물가인데 지나치게 물을 낭비한다는 설정이므로 바다처럼 표현한다. 그러자니 바닷색 천이 필요했다.

 

<찔레꽃>에서도 바다 장면이 있다. 주인공 귀래의 남편 김우재가 장모에게 돈을 빌려 새 배를 샀다. 그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난다. 이때 파란색 천이 나온다. 이 천은 바다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기도 하지만 나이 든 귀래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약간 몽환적으로 보여주는 연출 기법이기도 하다. 이 파란색 천이 출렁이면 그것은 거친 풍랑이 된다. 파란색 천이 무대 뒤로 사라지면 현실로 돌아온다.

 

<마당극 목화>에서는 붉은색 천이 마당을 휘감는다. 붉은 색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그렇다. 불이 났다. 불은 목화밭을 태우고 목화 창고도 태운다. 마을 사람들이 문익점 선생을 찾아가 울고불고 난리다. 문익점 선생도 자다가 일어나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달려 나온다. 그런 문익점 선생을 붉은 천, 곧 화마가 휘감는다. 붉은 천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연기하는 배우들은 마귀 같은 탈을 썼다. 긴박한 음악과 마을 사람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무섭고 고통스럽다.

 

큰들의 마당극을 보노라면, 작가의 상상력으로 대본을 썼는데 그것을 마당에서 직접 순식간에 드러내 보이려면 어떻게 할까 하는 궁금증이 늘 생기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는다. 큰들은 적절한 소품을 알맞은 시간과 장소에 사용함으로써 그런 의문이나 걱정을 말끔하게 해소해 준다. <마당극 목화>에서 불타는 목화밭 장면은 큰들의 연출기법을 여러 번 보아온 관객이라면 ‘아, 그렇구나’ 하겠고, 처음 이런 장면을 보는 관객이라면 ‘앗! 이럴 수가!’ 할 것이다. 대단한 연출기법이다.

 

동화 같은 장면에 어린아이들도 좋아할 것

 

<마당극 목화>의 주 관객은 어른들일 것이다. 적어도 문익점 선생에 대해 알거나, 적어도 무명에 대해 알 만한 나이의 관객들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지라 미취학 아동들도 마당극장을 찾는다.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마당극 목화>에서는 동화 같은 장면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띈다.

 

목화씨 10개를 갖고 왔다. 그중 다섯 개는 문익점 선생이, 다섯 개는 장인 정천익이 심는다. 이런 장면은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것을 따지면서 마당극을 보면 안 된다. 아무튼 정천익이 목화씨 다섯 개를 심는 장면에서부터 그 목화씨 가운데 네 개가 죽어버리는 장면은, 다른 장면에 견주어 다분히 동화적이다. 내용의 설정도 그러하려니와 배우들이 갖고 나오는 소품도 동화적으로 보인다.

 

다섯 씨앗 중 하나가 들고 나오는 주전자 주둥이는 연꽃의 씨방이다. 주전자 생긴 꼴은 ‘피터팬’에나 나올 듯한 모양이다. 씨앗들이 정천익의 구령에 맞춰 한 줄로 서서 등장하는 것부터가 만화나 동화에서 봄 직한 장면이다. 비를 피하기 위해 쓰는 우산은 빛깔이나 모양이 너무 앙증맞고 아름다워서 하나 달라고 할 뻔했다. 닭이 씨앗 하나를 물고 가는 장면은,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저런 장면을 글로써 나타내려면 어떤 표현이 필요할지 한참 생각해야 한다.

 

드디어 목화씨 하나가 싹을 틔웠다. 팡파르가 울린다. 거의 모든 배우가 동시에 튀어나와 각자 자기 재능으로 축하연을 연다. 저글링을 하는 배우, 징을 울리는 배우, 종이 꽃가루를 뿌리는 배우, 나팔을 부는 배우가 동시에 등장하여 한바탕 난리 같은 잔치를 벌인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이 장면 또한 다분히 어린이를 위한 장면 같다. 그렇다고 어른들은 재미없어 할 것 같은가. 절대 아니다. 거기에 묘한 매력이 있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장난 같은 장면들

 

마당극은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웃길 때는 웃고 울릴 때는 울어줘야 한다. 억지로 그러라는 건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웃고 울도록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손뼉을 치라고 할 때도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어도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칠 때도 많다. 어떤 때는, 내용의 흐름으로 봐서는 손뼉을 칠 때가 아닌데 함성과 손뼉이 나올 때도 있다. 마당극을 자주 보다 보면 그런 상황을 종종 목격한다.

 

<마당극 목화>에서 탐지견이 관객에게 접근한다. 탐지견은 원나라에서 반출 금지된 물건을 갖고 나가는 사람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특수훈련견이지 않은가. 탐지견이 관객 쪽으로 다가가 여성 관객 한 명을 가리킨다. 무엇인가 숨겼다는 뜻이다. 검문관이 무엇을 숨겼는지 가까이 다가간다. 탐지견이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말할까. 순간 관객들은 “와~”하고 웃는다. 극 초반에 배치된 이런 장면으로 인하여 다소 긴장해 있던 관객들이 허리띠 풀 듯 긴장을 늦추게 된다. 지목당한 여성 관객은 탐지견으로부터 선물도 받는다. 무슨 선물일까.

 

이에 앞서 관객의 호흡을 끌어들이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무명장수’들이 모여 춤을 추면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장면이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랩을 끌어들여 재미있고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극을 시작하자마자 그만둘 뻔했는데 관객의 적극적인 호응 덕분에 마당극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어쩐 장면일까. 궁금하겠다.

 

문익점 선생의 장인 정천익은 관객을 반반으로 나눈다. 이때 관객은 정천익이 기르는 채소들이다. 그 채소를 반반 나눈 뒤 한쪽은 ‘칭찬반’이라 하고 한쪽은 ‘안 칭찬반’이라고 이름을 붙여 준다. 얼떨결에 칭찬반이 된 관객들은 웃는다. 좋을 수밖에. 그래서 칭찬을 받는다. 안 칭찬반은 기분 나빠야 한다. 왜 칭찬받지 못할 반이 되었겠는가. 하지만 관객들 반응은 의외다. 정천익은 칭찬반과 안 칭찬반에 각각의 대사를 준비했을 터인데, 실제로 공연 현장에서는 날마다 다른 대사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거기서 거기이지만 즉흥에서 대사를 해야 하는 장면이다. 이때 관객들은 더욱 깊이 극 속으로 빠져든다. 관객도 마당극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요소, 어쩌면 하나의 배우라고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런 장면을 통하여 관객들은 자기가 하나의 배역을 맡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웃고 또 웃다가 마침내 흐르는 눈물

 

<마당극 목화>는 익히 아는 줄거리인지라 극적 재미가 적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문익점 선생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붓 뚜껑에 목화씨를 숨겨서 돌아와 고향인 산청군 단성에서 목화 싹을 틔우고 그것으로 백성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따라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할 만한 극적 반전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자칫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부여하고 배역을 짜고 소품을 집어넣어 매우 훌륭한 마당극을 만들어냈다. 이야기 흐름은 간혹 조금 긴장하게는 하지만 슬프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효자전>에서 어머니가 죽거나,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임이가 끌려가는 장면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애써 키워놓은 목화밭이 불에 타는 장면은 안타깝고 화나게는 할지언정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1시간 내내 웃음 지으며 여유롭게 마당극을 즐길 수 있다. 대신에 웃기는 장면은 수없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모든 갈등이 풀리고 극이 마무리될 즈음에 왠지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온다. 마음의 깊은 웅덩이에서 샘물이 솟아나듯 눈물이 나온다. 그 어렵던 시절을 견뎌낸 선조에게 감사하는 눈물이 나온다. 그 어려움을 뚫고 마침내 목화를 키워내고 무명을 짜내던 그 시절의 선조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흐른다. 박행수 같은 사람이 어찌 없었을까. 모함과 박해와 음모가 있었는지까지는 모르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지금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오로지 자신의 신념만으로 극복해낸 문익점 선생의 거룩한 애민정신에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하다.

 

<마당극 목화>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다. 다 할 수 없다. 올해 여섯 번만 보고 모든 걸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이해했다고도 할 수 없다. 내년에 몇 번 더 보며 웃고 울고 해 봐야 더 깊이 느낄 듯하다. 여러 배우들이 새로운 배역을 맡아 혼신의 연기를 했다, 갖가지 기기묘묘한 소품이 등장한다,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이 잘 드러났다 등등 한 줄로 정리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보인다. 그중 주제가를 비롯한 여러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아무튼 그러하다.

 

10월 26일 쓴 <마당극 목화>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 놓는다. 

 

<목화>는 참 재미있다. 고려시대가 배경이지만 21세기적 요소가 아주 많아서 억수로 웃긴다. 신파조로 울리려고 하지 않는데도 1시간 지날 즈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참 희한한 작품이다. 


<목화>는 볼 게 많다. 등장인물도 그러하고 각종 소품들의 향연은 눈을 매우 즐겁게 해준다. 인물 아닌 그 무엇도 등장하는데 이 또한 볼거리이자 재미이다. 큰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맘껏 감상할 수 있는, 무척 훌륭한 작품이다. 


<목화>는 흥겹다. 극중에 들어간 노래와 춤이 기존 마당극 작품과 조금 다르다. 젊은 감각이 매우 돋보인다. 관객의 박수소리와 함성이 저절로 나오고 점점 커지게 되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목화>의 부제 '세상을 데운 따뜻한 씨앗'이라는 말이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지는 이맘때 보기에 딱 좋은, 따뜻한 마당극이다. 


이번주와 다음주에 산청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잇따라 4번 공연한다. 물론, 입장료 같은 건 없다. 알록달록 예쁘게 채색되어 가는 가을을 즐기기에 최고의 주말이 될 것이다. 관람을 권해드린다. 

 

2023. 11. 5.(일)

이우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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