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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효자전(302회)을 보고

by 이우기, yiwoogi 2023. 9. 24.

극단 큰들의 마당극 <효자전> 302회를 보고

 

보건복지부, 경상남도, 산청군이 주최하고 엑스포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2023 산청 세계 전통 의약 항노화 엑스포’가 9월 15일부터 10월 19일까지 35일간 산청군 동의보감촌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 기간에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금, 토, 일요일과 공휴일(개천절, 한글날) 오후 1시에 동의보감촌 곰광장무대에서 열린다. 9월 15일이 금요일이었으니 16일에 처음 공연하기 시작하여 10월 15일 일요일에 끝난다. 그럴 계획이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15일과 16일엔 비가 와서 공연을 18일과 20일로 미루었다. 18일엔 멋진 가을 하늘 아래에서 훌륭하게 공연하였고 20일엔 빗속 공연을 하다가 중단한 모양이다. 안타깝고 아쉽다.

 

엑스포 기간에 큰들은 마당극 <찔레꽃> 5회, <효자전> 3회, <남명> 3회, <오작교 아리랑> 3회, <목화> 3회 합하여 모두 17회 공연한다. 9월 24일 현재 5회 공연을 마쳤으니 이제 12회 남았다. 그중 <효자전>은 9월 22일 금요일 누적 300회 공연을 했다. 2010년 5월 8일 처음 공연을 시작하여 이날 300회 공연을 한 것이다. 정말 큰 기록이다.

 

엑스포 입장권을 미리 여러 장 구해 놓고 공연날짜만 기다렸다. 16일, 17일은 비 때문에 공쳤고 18일, 20일은 평일이어서 놓쳤다. 22일 금요일 공연도, 예년 같으면 휴가를 내어서라도 달려갔을 터인데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다음 날인 23일 토요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마당극이 아무리 좋아도 직장일이나 집안일마저 뿌리치고 가지는 않는다. 직장이 있어서 돈을 벌어야 큰들 후원금을 낼 수 있는 것이고 집안이 있어서 내 삶의 뿌리가 평안해야 비로소 여유를 찾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하다.

 

9월 24일 일요일 새벽같이 일터로 나갔다. 앞날 있었던 행사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보내는 일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내 밥값이다. 몸의 깊이와 눈꺼풀의 무게로 치자면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집안에서 방바닥에 붙어 있어야 했다. 어제 걸은 걸음 숫자로 따지면 나는 오늘 발바닥과 발목과 무릎 관절과 고관절과 허리에 휴가를 주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강력한 피로해소제는 마당극 아니던가. 7시 10분부터 9시 10분까지 두 가지 일을 후다닥 해냈다. 아내와 길을 나섰다.

 

하늘을 보았다. 흰 구름 뭉게구름 양털구름 새털구름이 곱게도 떠다녔다. 멈춘 듯 움직이고 달리는 듯 멈추어 서서 때로는 햇빛을 반사하고 간혹 햇빛을 가려가면서 가을을 가을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이런 날씨를 일러, “마당극 공연하기에도, 마당극 관람하기에도 가장 좋은 날씨다.”라고 한다. 엑스포 초기 궂은 날씨 때문에 마음 졸였을 큰들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겐 귀한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아니, 어쩌면 예정에 없이 궂은 날씨 덕분에 하루 쉬는 게 선물일 수도 있겠다.

 

한 해에 여남은 번씩 가는 동의보감촌이 낯설었다. 차를 대는 것부터 어려웠다. 동의보감촌 주변에 새롭게 조성한 널따란 주차장엔 차가 제법 많았다. 차들은 질서정연한 듯하면서도 줄은 맞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서 그렇게 보인 것이다. 주차를 하고 길을 걸었다.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오픈 런’이라도 하는 듯이 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달려가야 할 그 어떤 공연이 있다는 듯이 종종걸음을 놓았다.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리도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허리와 고관절과 허벅지와 무릎과 장딴지와 발목과 발바닥과 발가락에 각각 다른 느낌의 통증이 신호를 보냈다. 통증은 엄살이다. 전기가 전해져 왔다고 할까. 이 말도 꾀병 같다. 아무튼 평소와 다른 느낌이 있었다. 전날 무리함의 결과라고 치부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밥부터 먹었다. 단골집이라고 해도 될 ‘한수금’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국수를 먹고 싶었는데 엑스포 기간에는 국수를 하지 않는단다. 섭섭. 주문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각 테이블 귀퉁이에 붙은 전자식 주문기계를 꾹꾹 눌러야 한다. ‘키 오스크’라고 하는 기계다. 굳이 주문하라면 할 수는 있지만, 나는 이런 기계를 마주하면 마음이 토라진다. 종업원이 달려와서 웃는 얼굴로 “뭘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반갑고 고마운 얼굴로 “네, 비빔밥 맛있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정감어린 대화나 미소는 이제 점점 사라진다. 내색하지 않았고 내색할 필요조차 없었지만, 정나미가 좀 떨어진 건 사실이다. 마당극을 보면서 웃고 울고 손뼉 치며 스트레스를 풀고 뭔가를 배우기도 하는 ‘정서’와 키 오스크 기계에다 내가 먹을 음식을 주문하는 ‘기능’은 천양지차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그러하다.

 

‘산엔청 청정골 명품관’으로 갔다. 이전엔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가는 길에 예전에 마당극을 하던 잔디광장에 설치된 메인무대에서 무슨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마당극 공연 시작 시각을 맞춰야 했으므로 여기 저기 다 둘러볼 수 없었다. 아무튼 명품관을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산청군민들이 내놓은 이것저것을 좀 샀다. 송이표고버섯을 샀고 된장을 샀고 둥굴레를 샀다. 홍로 사과 14개가 든 작은 사과상자도 하나 샀다. 사과는 큰들 배우들께 줄 요량이었다. 배낭이 빽빽하게 들어찼고 무게도 제법 나갔다. 첫 방문에서 이만하면 괜찮은 편이다. 명품관을 도는데 산청군 지리산 골짝 골짝에서 나온 농부님네들이 어찌나 뭘 자꾸 맛보라고 권하던지 부끄럽고 미안해서 걸음을 옮기기 힘들었다. 산청 사람들의 인정이라고 여긴다.

 

 

마당극장은 한적한 곳에 차려져 있었다. 곰광장이 어디인지 익히 아는지라 미리 짐작은 했다. 무대는 엑스포 기간 동안 공연할 모든 마당극 작품에도 어울리고 마당극 공연 이외의 각종 공연을 하는 출연자들에게도 잘 어울릴 만하게 만들어 놓았다. 세로로 세워 놓은 병풍 모양의 걸개그림은 새로 만든 것 같다. 깔끔하고 깨끗하다. 객석도 아담하고 단단하게 잘 차려 놓았다. 200명 정도 앉을 만한 좌석을 만들어 놓았는데 햇빛이 따가울까 봐 천장엔 천을 가려놓았다. 관객을 배려하는 건 큰들의 기본 성정이다. 커다란 곰이 내려다보는 마당극장은 새롭고 좋았다. 관광객이 제법 지나가는 길이었으므로 관객을 모으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이다.

 

큰들은 마당극 공연 전에 아코디언 연주를 선물했다. 김정경 배우가 몇 곡 연주했는데 정말 좋다. 아코디언이 내뿜는 선율은 심장의 끝을 가느다랗게 건드리거나 추억의 중심에 풍덩 돌을 던지거나, 그렇지, 아버지가 틀어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옛 노래를 끄집어내어 주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김정경 배우의 표정을 열심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넉넉한 선물이 된다. 보지 않은 사람은, 듣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아무튼 그러하다.

 

<효자전>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신파다. 울리기만 하면 어느 관객이 한 시간 동안 앉아 있겠는가. 쉴 새 없이 웃긴다. 심지어 관객의 심장을 졸깃하게 하면서 곧 울음을 터뜨려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웃음 요소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는 속설을 들어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거나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허방을 곳곳에 파 놓았다. ‘아홉 번 웃기고 한 번 울린다’는 큰들의 마당극 철학은 항상 들어맞는다. 웃기는 건 허허 웃거나 하하 웃거나 큭큭 웃거나 호호 웃거나 거기서 거기다. 너털웃음도 있다. 하지만 울음은 그 울음소리가 있거나 없거나 크거나 작거나 간에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효자전>을 보다가 눈물 흘리는 이들의 울음 이면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추억과 회한이 서려 있게 마련이다.

 

앞자리에 앉은 두 여인네가 마당극에 푹 빠졌다. 아마 큰들의 마당극을 처음 보는 듯했다. 둘이서 뭐라 뭐라 속삭이기도 하다가 각자 손뼉을 크게 치다가 기어이 눈가로 손을 가져간다. 한양으로 찾아간 어머니와 동생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에선 탄식을 한다. 갑동이가 산삼을 들어 올리자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좋아하며 손뼉을 쳐댄다. 공연 끝난 뒤 두 사람의 표정을 흘깃 보았다. 사뭇 진지하다. 남매였는지 친구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만치 가다가 부모님께 전화를 하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

 

뒤에 앉은 꼬맹이가 또한 마당극에 빠졌다. 열 살도 되지 않았을 이 어린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하 호호 웃는다. 까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가 귓가에서 즐겁다. 이 여자 아이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을까.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배우들이 뒹굴고 자빠지는 대목이 그렇게 재미있었나 보다. 그렇게 마당극이라는 연희 양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 아닐까. 효도가 무엇인지도 조금 배우지 않았을까.

 

공연이 끝난 뒤 사진을 찍었다. 한 여성이 말한다. “다음 주에 또 올게요.” 배우들이 답한다. “예,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연 다 본 뒤 재빨리 일어나 걸어 나가는 사람,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 여운을 즐기는 사람, 줄서서 기다리다가 배우들과 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 모두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 마음을 뺏긴 게 분명하다. 물론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배우들과 “산청 최고~!”, “큰들 최고~!”라며 사진을 찍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집에서 나설 때 손수건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효자전>은 어림잡아 쉰 번쯤 보았는데도, 그래서 극의 흐름과 대사와 배우의 몸짓까지 거의 외우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내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말썽쟁이 갑동은 영락없이 어린 시절 내 모습이었고, 어릴 적뿐만 아니라 명색 대학을 다닐 때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어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눈물이 핑 돈다. “자식은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느냐?”라는 저승사자의 외침은 내 심장에 콱 박힌다. 가슴이 아프다. 아픈 가슴을 눈물로 씻는다. 손수건을 무릎에 얹어놓고 쥐었다 놓았다 반복한다. 곁에 앉은 아내도 손수건을 슬그머니 쥔다. <효자전>은 항상 이러하다. 항상 그러하다. 도망갈 수가 없다.

 

큰들 배우가 된 지 1년도 되지 않는 젊은 배우가 나온다. 허대원 배우는 일취월장 성장하는 것 같다. <목화>에서도 보았고 <이상해 지구 뜨거워 지구>에서도 보았다. <효자전>에서도 두어 번 보았다. 단역 배우이므로 눈에 크게 띄지는 않는다. 오늘은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왔다. 물론 주연이 아니었으므로 대사가 많지는 않다. 몸동작도 많지 않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웠다. 침대 머리맡에 조롱박 링거를 꽂는다. 그러고선 한의사 임뻥아재에게 침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 순간 약간의 코미디가 등장한다. 갑동에게 떠밀린 임뻥아재가 귀퉁이로 가서 쓰러지는데 그걸 조수인 허대원 배우가 받아야 한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장면이다. 이 젊은 배우는 제 연기에 푹 빠졌다. 그 전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던 것을 어찌 그리 열심히 따라 배웠을까. 웃느라 혼났다. 그보다 1년가량 일찍 등장한 윤민서 배우가, 귀남이 집 기둥을 연기하면서 갑동이 엉덩이를 후려친 뒤 “흥~!”, “메롱~!” 하는 표정을 지을 때가 생각났다. 큰들의 젊은 배우들은 선배들의 연기를 열심히 따라하면서도 자신만의 연기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 같다. 그렇게 여긴다. 아무튼 그러하다.

 

갑동이는 어머니 병환을 고치기 위해 임뻥아재의 도움을 받아가며 지리산으로 산삼을 구하러 간다. 산삼 할매를 비롯하여 산신령들이 갑동을 시험한다. 저 녀석의 효심은 어느 정도인지, 제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들도 공경할 줄 아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래야만 산삼을 점지해 줄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갑동은 그 시험을 통과할까. 산신령들이 제출하는 문제는 고난이도일까, 아닐까. 갑동이는 결국 산삼을 구해낸다. 그러면 어머니는 산삼을 먹고 병이 나을까. 그렇게 병이 나으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산삼을 구하고 “심봤다~!”라고 외치는 갑동을 보고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관객들은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어쩌지 못하는 표정이다. 과연, 한양 내의원에서 병에 걸린 세자를 구하기 위해 산삼을 구해오겠노라고 큰소리친 귀남이 등장한다. 어머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산삼을 구해온 갑동이와 벼슬을 위해 산삼이 반드시 필요했던 귀남의 대결은 피할 수 있을까. 대결을 피할 수 없다면 어머니는 누구 편을 들까.

 

한 시간 동안 마당극을 보면 앞 장면이 하나의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그다음 장면이 또 다른 궁금증을 낳는다.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쉴 새 없이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와 걱정과 설렘이 이어진다. 이 마당극이 도대체 어떻게 끝날 것인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심정으로 관객들은 몰입한다. 웃음, 손뼉, 때로는 숨죽인 긴장까지 완벽한 한 시간이 흘렀다. <효자전>은 잘 쓴 단편소설처럼 구성이 탄탄하고 복선이 훌륭하게 깔려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도 일관성 있다. 그 성격이 여러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잘 변화, 발전해 나간다. 그런 작품이다. 제법 따갑게 내리쬐던 가을 햇살도 잊은 채 한 시간을 투자한 200명 관객은 가슴에 묵직한 주제 덩어리 하나씩 안고 갈 수 있었다. 쉰 번 가까이 <효자전>을 보아온 나는 아직도 이 주제를 풀어나가지 못한다. 아무튼 그러하다.

 

큰들이 운영하는 음식트럭(푸드트럭) ‘청이네’로 올라갔다. 가파른 계단을 부지런히 걸었다. 관광객은 제법 많았다. 엑스포 시작한 뒤 처음 맞이하는 쾌청한 휴일인 덕분이겠다. 청이네에는 손님이 줄을 섰다. 근처 주차장에도 푸드트럭이 제법 많았다. 저마다 손님이 줄을 이었다. 시원한 그 무엇이 심하게 당기는 그런 날이었기 때문이겠다. 시원한 냉커피 한잔 들이켜고 시원한 바람 좀 쐬다가 내려왔다. 산청군수께서 현장을 일일이 돌아보고 있었다. 곳곳에 전시, 홍보, 판매 부스가 있었으나 오늘은 산엔청 명품관과 두어 군데만 돌아보고 왔다. 다음 주에 또 갈 것이므로 서두를 이유가 없다.

 

추석 쇠고 10월에 가면 구절초를 비롯하여 더 많은 종류의 가을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열두 번 남은 공연 가운데 최소한 다섯 번은 더 보러가는 게 목표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올해는 유난히 내 앞길을 가로막는 재미적은 일들이 많아서이다. 그럼, 그건 그것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그러하다. 오후에 마신 커피 덕분에 재미없는 글을 이렇게 써 본다.

 

2023. 9. 24.(일)

이우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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