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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국수 이야기

by 이우기, yiwoogi 2023. 7. 31.

국수 이야기

 

국수를 한 그릇 먹는다. ‘마셨다’라고 하거나 ‘삼켰다’라고 하는 게 어떨까 골똘히 생각한다. 적지 않은 양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루룩 삭제한다. 국수 면만 먹은 게 아니라 국물까지 싹 다 비운다. 젓가락 들고부터 마지막 대접 놓을 때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매운 고추 두어 개도 된장에 찍어 먹고 깍두기도 제법 여러 번 집어 먹는데도 국수 먹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국수 먹으러 가고 오는 시간 20분이 넘고 주차하느라 주변을 돌아다니는 시간도 5분씩은 되는데, 그에 비하면 실제 먹는 것은 참 간단하고 가볍고 단순한 것 같다. 먹는 것의 허망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여고국수

‘여고국수’에는 장마가 한창이던 7월 7일 점심시간에 셋이 갔다. 첫인상은 뿌연 국물이 눈에 띄었다. 숙주, 부추, 호박이 익어 있었고 고춧가루가 좀 많았다. 무엇보다 참깨가 정말 많았다. 참깨는 윗니와 아랫니가 적당하게 잘 씹어주면 아주 고소하지만 널널해진 이 사이에 끼어 버리면 낑낑거리며 빼야 한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뿌연 국물과 점점이 뿌려진 참깨라고 해야할 것 같다. 달걀 노른자 몇 가닥은 장식품처럼 보인다. 고개를 처박고 그릇 바닥이 보이도록 젓가락질에 집중했다. 닭이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듯 국수 한 젓갈 입에 물고 고개 한 번 쳐들며 동시에 깍두기를 씹어먹었다. 주인 할머니가 몇 번 온 손님과 처음 온 손님을 알아내는 게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다. 진주고 학생들이 자주 간다는 말을 들었다. 익히 알고 사흘에 한 번씩 가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처음 그 맛을 보고서는 그동안 헛다리 짚은 국수 인생을 후회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술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오복국수

‘오복국수’에는 7월 20일 점심시간에 혼자 갔다. 멸치 맛국에 호박, 숙주, 부추가 들었고 고춧가루와 참깨도 적당히 들었다. 멸치 냄새는 진하지도 않고 연하지도 않다. 평균적인 입맛에 맞춘 듯하다. 그러니까 굳이 비교하자면 가장 일반적인 국수이다. 이 집 국수는 차분하다. 어느 재료 하나 들뜨지 않고 어느 재료 하나 샛길로 빠지지 않는다. 애당초 그런 일탈의 즐거움을 모르는 재료들이 하얀 면발 위에 살포시 앉은 느낌을 준다. 매운 고추, 깍두기와 곁들여 잠시 딴생각하며 젓가락질하다 보면 어느새 그릇이 싹 비워져 있다. 점심시간에 걸어서 갔다가 천천히 걸어오면 딱 알맞은 거리에 있어서 가끔 간다. 파전과 막걸리도 있다. 이 집 비빔국수는 제법 맵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는 분이라면 조심하는 게 좋겠다.

 

동방국수

‘동방국수’에는 7월 31일 점심시간에 넷이 갔다. 국수 그릇이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맨 위에 올려진 야릇한 고명이다. 야릇하다고 한 건 다른 국숫집에서는 보기 어렵다는 뜻이지 이상하거나 요상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 고명은 매운 고추와 조갯살을 잘게 다진 것 같다. 조개인지 홍합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물어보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비슷한 질감과 맛이다. 아무튼 이 고명이 이 집 국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나머지 호박, 숙주, 고춧가루, 참깨 등속은 비슷하다. 국물은 역시 멸치다. 젓가락질 몇 번 만에 면발은 다 사라졌다. 가라앉은 고명을 숟가락으로 건져 먹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릇째 들고 들이마셨다. 맨 아래 깔린 빨간 고춧가루 몇 조각만 제하면 정말 한 그릇을 오로지 비웠다. 나도 모르게 ‘으허...’하는 감탄사가 목울대를 울렸다. 이 집은 직접 배달도 한다. 파전과 막걸리는 물론이거니와 비빔국수도 차림표에는 없다. 손님들 가운데 콩국수를 시키는 사람이 많았다.

 

국숫집을 제법 가 보았다. ‘여고국수’, ‘동방국수’는 이제 한 번씩 가 보았다. ‘오복국수’는 여러 번 갔다. 석갑산 입구 ‘숙자네’는 한때 단골이었다. 집을 이사한 뒤로는 거의 못 갔다. 이현동 ‘숙이네’는 국수 먹으러 갔다가 막걸리 안주를 여럿 비우게 된다. ‘촌국수’는 단골이었는데 주인이 바뀐 뒤로는 좀 뜸해졌다. 역시 술안주가 싸고 맛있어서 국수만 먹고 오는 날은 거의 없다. 칠암동 ‘엄마국수’는 갈 때마다 줄을 섰다. 어떤 날은 재료가 없어서 못 판다고도 했다. 여러 해 전이다. 상봉서동 ‘신호국수’는 딱 한 번 갔다. 가족 여남은 명이 갔는데 모두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해서 기억에 남았다. 가좌동 ‘국수타임’은 친구가 하는 가게다. 객관적으로 말하기 어려운데, 동네 주민이나 학생들이 꾸준히 찾는 것으로 봐서는 평균 이상은 된다고 봐야 한다. 얇고 고소한 파전이나 메밀콩국수도 인기 메뉴다. 그 뒤에 있는 ‘반천촌국수’는 꽤나 유명하다. 보통 2명 가면 각자 국수 한 그릇과 김밥 한 줄을 시켜 먹는다.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은 식당이다. 겨울 다슬기 수제비도 일품이다. 장대동 ‘지영국수’는 요즘도 문을 여는지 자신이 없다. 망경동 ‘153국수’도 여러 차례 갔는데 벌써 몇 해 전이다. 특별히 기억 나는 건 없다. 가게 이름이 왜 153인지 들었는데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중앙시장 안 중앙국수도 유명하다. 자리도 넓다. 국수의 한가운데라고 믿어줌 직하다. 평거동 지리산찹쌀동동주집은 동동주집이라고 아는 사람이 많을 텐데, 가 보면 국수가 맛있는 집’이라고 씌어 있다. 실제 어른남자들은 술 마시러, 여자들은 대개 국수 먹으러 간다. 그 근처 어울림’도 국수 맛으로는 둘째 가라면 화낼 만한 집이다. 막걸리 두 병을 주전자에 부어 놓고 땡초전 하나쯤 먹어주면 더 좋다. 깐돌이’에는 국수 먹으러 갔다기보다는 해물 모듬 안주 먹으러 갔다. 일단 그랬다. 그런데 국수를 안 먹고 나온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비빔국수, 물국수 죄다 맛나다. 비좁아서 더 맛있게 느껴진 것도 같다. 문산에 있는 문산국수’는 식당 이름보다 잼국수로 더 유명하다.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잼처럼 생긴 양념을 비비고 그 위에 열무김치 한두 조각 얹어서 씹어 먹어보면 세상에 이런 국수도 있구나 알게 된다. 잼국수 할머니는 연로하셔서 가게를 접었고 그 근처에서 젊은 사람이 그 맛을 살려가면서 국수를 삶는다 한다. 

 

문산읍 쨈국수

 

국수가 제아무리 맛있어도 매운 고추나 깍두기, 간혹 아삭한 겉절이가 없으면 손님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숫집에는 멸치 냄새와 참기름 냄새, 그리고 주인의 인정이 좍 배어 있음도 알게 된다. 국숫집은 대개 좁다. 4명 앉는 테이블이 적게는 네다섯 개, 많아 봤자 예닐곱 개가 전부다. 국수 먹고 있는데 손님이 들이닥치다가 빈자리가 없으면 문 앞에 줄을 선다. 이 때문에 손님은 젓가락 놓자마자 일어서야 한다. 회전율이 높아진다. 값이 싼 국수를 팔면서도 호구지책이 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이다. 국수 한 그릇은 5000원 안팎이다. 비빔국수는 물국수보다 500원쯤 더 받는데 그 까닭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멸치 맛국이 고추장 양념보다 싸다는 전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아랫부분은 2014년 9월에 쓴 글을 다시 옮겨 놓음)

 

‘국수’라는 말에는 인정이 묻어난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 비싼 음식이 아니기에 쉽게 권할 수 있고 또 누구든 맛있게 먹는 음식이다. 바쁜 사람은 바빠서 후루룩 마시듯 먹고 가고, 안 바쁜 사람은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국수는 누구나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국수를 알맞도록 삶는 것도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육수와 고명들을 제대로 해서 먹으려면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엄두 내기 어렵다. 그래서 “국수 한 그릇 대접하겠다”고 쉽게 말할 수는 있어도 집에서 직접 맛있게 해서 대접하기란 쉽지 않다.

 

진주시내에 국숫집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시내 한가운데에도 버젓한 국숫집이 있고 변두리에는 골목을 돌 때마다 국숫집 하나씩을 만나게 된다.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단골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이곳저곳을 번갈아가며 맛평을 하기도 한다. 양도 보고 때깔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주인의 웃음이나 인심도 보겠지. 물론 값도 확인할 것이다. 거기서 거기일 뿐인 국수이지만 이래저래 재어보면 차이가 보이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된다.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 꿈으로 개업한 곳도 있겠고, 나이 많은 친정어머니와 함께 국숫집을 차려 호구지책을 마련하기도 하고 자녀 교육도 하는, 눈시울 시큰할 사연을 가진 곳도 있으리라. 국수 한 그릇에 인정이 묻어나는 것은, 값 싸고 소박해 보이는 이 음식이 가진 뜻밖의 사연 덕분일 수도 있겠다.

 

어머니 국수 솜씨는 그다지 훌륭한 편이 아니셨다. 일단, 육수를 낼 때 멸치를 엄청 많이 넣어 진하게 우려낸다. 배춧속이나 시금치, 실파, 부추 같은 것을 데쳐 참기름 또는 들기름에 무쳐 내기도 하고 김장김치를 잘게 썰어 볶아 내기도 한다. 호박이 곁들여질 때도 간혹 있다. 마지막에 김 가루나 참깨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 달걀 홍백지단을 예쁘게 얹어주기도 한다. 다진 홍합을 간하여 넣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걸 아주 좋아한다. 어머니 국수엔 잔손이 많이 간 듯해 보이지만 “아주 맛있다”에는 못 미친다. 다만,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40년 넘도록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고 또 고마워서 후루룩 쩝쩝 잘도 먹는다. 참, 어머니 전공은 콩국수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어머니는 2020년 돌아가셨다).

 

2023. 7. 31.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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