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송년회>
12월 24일 저녁에 큰형님 집에서 가족 송년회를 했다. 네 형제 가운데 창원에 사는 작은형은 오지 못했다. 큰형님과 형수님은, 아무리 맏이라도 그렇지, 번번이 자기 집에서 이런저런 술자리를 펼치는 데 단 한 번도 싫거나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삼겹살을 굽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동생들이 좋아할 만한 안주를 사기 위해 새벽장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마울 뿐이다.
내년 10월쯤 결혼할 큰조카가 예비신부와 함께 왔다. 생각이 깊은 예비신부는 꽃바구니와 케이크를 갖고 왔다. 꽃바구니는 저희들끼리 프로포즈할 때 썼던 것이라고 하고 케이크는 경남에프시에 입단하는 예비 사촌 시동생을 축하하기 위해 일부러 샀단다. 진주시내 어느 병원 간호사 부부가 될 이들이 썩 잘 어울린다.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이 예비 조카며느리의 마음씀씀이가 늘 내 마음에도 든다. 어머니 제사 때 청주 됫병을 사와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12월 18일 양가 집안의 상견례가 열렸다. 큰형님과 형수님은 사돈 될 집안의 품격과 배려를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아들이 듬직하게 전체 분위기를 잘 이끌더라는 이야기도 자랑스럽게 했다. 어른이 될 준비가 다 되어 간다는 뜻이다. 태어날 때부터 대여섯 살까지 내가 키우다시피 데리고 놀던 큰조카가 내년이면 어른이 된다고 하니 마음이 한없이 기쁘고 설렜다.
경남에프시에 입단한 조카가 왔다. 서울 대학생 선수 생활을 잠시 미뤄두고 새해부터는 경남에프시에서 뛰게 되었다. 벌써 경남도내 일간 신문마다 큼지막하게 보도됐다. 이날 아침 동생은 용인까지 가서 아들을 태우고 곧장 송년회 집으로 왔다. 왕복 700킬로미터를 달렸단다. 그래서 술이 더 달았겠지. 조카는 축구로 인생을 일으켜세우려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제 3분의 1은 일어선 듯하다. 지금까지는 제 부모가 손을 잡아 주었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 일어나 뛰어야 할 것이다. 이날 밤 나는 조카에게서 그런 믿음을 보았다. 나도 술이 달았다.
돼지고기가 맛있었다. 물에 빠뜨리지 않고 야채수로 찌듯이 익혀냈다. 큰형은 돼지고기 삶는 데는 얼추 도사급이다. 과메기는 고소했다. 김과 해초와 파와 마늘이 조화로웠다. 굴은 큼직하고 싱싱한 게 통영 굴 같았다. 안주가 푸졌다. 배가 터지려는데 생태탕을 끓여 냈다. 나도 모르게 “하~~” 하는 소리가 터졌다. 이 집 저 집 김장김치와 형수님이 마련한 밑반찬 등속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대단한 진수성찬이었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이제 우리 가족은 설날에나 만나게 될 것 같다. 죽이 잘 맞는 형제들과 가족들의 건강한 연말연시를 빈다.
2022. 12. 26.(월)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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