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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은하이용원

by 이우기, yiwoogi 2023. 1. 5.

은하이용원

 

 

한 달에 한 번씩 머리 깎으러 간다. 깎을 것도 별로 없지만. 군대 전역하던 1991년 2월부터 결혼하던 1998년 6월까지 다닌 이발소이다. 결혼하는 날 아침 이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나름대로 단정하게 깎았다. "저 오늘 결혼합니다."라고 하니 "아이고, 종식이 삼촌 축하합니다."라며 기뻐해 준 곳이다. 결혼 후 살던 동네 이발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찾아갔다. 간 김에 부모님 댁에 들르고, 부모님 댁 들른 김에 이발했다. 대충 세어보니 32년째 단골이다.

 

아버지 술 취해 자전거 힘겹게 끌고 지나간 이야기, 어머니 허리 구부정하도록 무겁게 장 보러 다닌 이야기, 큰조카 머리카락이 뻣뻣한 이야기, 큰형님이 이리로 저리로 이사간 이야기 들을 대충 안다.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신 이야기도 알고, 어머니 살던 집에 큰조카가 사는 것도 안다. 당연히, 내년에 결혼할 큰조카가 여자친구랑 지나다니는 것도 창밖으로 보았을 것이다.

 

나도 안다. 외손자 사진을 거울에 붙여 놓은 마음도 알고 아들은 아직 미혼이라는 것도 안다. 아저씨는 정수리 가운데 머리카락이 없고 나는 앞머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오래전 허리가 아파 꽤 고생한 것까지 안다. 반장, 통장 따위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지나다니는 옥봉동 사람들 면면을 뚜르르 꿰고 있다. 동네 지킴이다. 부부가 손발이 잘 맞아 손님이 좀 밀려도 걱정이 없다. 머리 깎고 면도하고 감기고 말리는 일을 척척 잘도 해낸다. 염색하는 손님도 자주 보인다. 손님은 대부분 형님 아니면 동생이다.

 

또한 나는 안다. 요즘 이발소 손님이 많이 줄었다. 젊은이들은 대개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는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발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아 머지않아 동네 이발소가 하나둘씩 없어지리라는 것도 안다. 한때 미장원과 이발소가 밥그릇 싸움을 제법 했는데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다. 다음에 가면 물어봐야겠다.

 

이현동에서 옥봉동까지는 일부러 이발하러 가기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안 계신 마당에 굳이 옥봉동을 가지 않아도 될 터이다. 그렇지만, 이현동이나 신안동에 맞춤한 이발소를 찾으면 모를까 그 전에는 아무리 심리적으로 멀다 해도 나는 은하이용원을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며칠 전 머리 깎으러 갔는데 요금표 액자가 바뀌었다. 자세히 보니 요금이 조금씩 올랐다. 얼마만에 올리는 것인지 모른다. 머리만 깎고 면도를 하지 않는 나는 요금이 8000원인가 할 때부터 1만 원을 드렸다. 조발과 면도까지 합하여 1만 2000원 할 때도 1만 원을 드렸다. 그리고 요금이 더 오른 지금도 나는 1만 원만 드린다. 굳이 그만큼만 받겠다고 하신다.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른 이발소가 있는지 찾을 마음이 아직은 없다.

 

나는 빈다. 두 분이 언제까지나 건강하여 언제까지나 내 머리를 만져주기를 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앉기만 하면 처녀귀신 산발처럼 뒤엉긴 내 머리카락을 알아서 착착 단정하게 해주는 솜씨가 언제까지 영원하기를 빈다. 짐짓 잠든 척하고 있을라치면, 어머니 아버지 살던 동네, 내 청춘의 한 시절이 물들어 있는 동네의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를 귀동냥할 수 있는 이 이발소가 나는 좋다.

 

2023. 1. 5.(목)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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