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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형우제공

by 이우기, yiwoogi 2022. 11. 10.

형우제공

 

인삼이 아주 실하고 튼튼하여 겨울 내도록 먹겠다.
인삼 백숙이 푸짐하고 넉넉하여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인삼은 저 국물 속에서 향기로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마치 형님들의 사랑처럼...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 명산대천을 주유하시는 작은형님이 어쩌다가 인삼랜드에 들르게 되었고 거기서 튼튼실실한 오년근 인삼을 만난 것은 우연이라 치고, 네 형제가 금산 땅기운 제대로 받아 추운 겨울 따뜻하고 건강하게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애라고 치고, 큰형님 집으로 삼 형제분 인삼을 보내되 반드시 한 날 한 시에 모여 기분 좋게 한잔씩들 하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타고난 성정이요 깊은 배려가 아닐 수 없는지라, 진주 사는 형제 셋이 부부동반 모이게 된 것은 그저 그런 것처럼 보이겠는데, 형제들 모임의 장소를 제공하는 큰형님은 평소 자애롭고 우애롭고 용의주도하기가 하늘에 닿고 형수님조차 넉넉하고 널널하고 푸근하기가 땅 끝에 닿는지라 그저 그렇게 저녁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것까지는 평소 보아온 바에 따라 충분히 이해하고 기대할 만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인삼을 기준으로 삼아 닭과 전복과 문어와 대추와 밤과 버섯을 알뜰살뜰히 쟁여넣어 익히고 끓이는 정성은 감히 상상도 못한 것이었고, 그에 맞춰 갖가지 겉절이 반찬을 준비하고 쌀을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해 하는 촌놈들의 뱃속까지 훤히 꿰뚫어 달착지근 구수한 죽까지 내어놓으니, 동짓달 밤이 짧고 참이슬 도수가 오히려 낮은데다 내 뱃구레는 속절없이 좁은지라, 그 깊은 사랑과 높은 우애와 넓은 배려를 그저 가슴과 머리에만 담아온 것이 죄송하고 미안할 뿐이어서 나는 하릴없이 이 개념 없는 누리방에나마 이날을 기록하여 아주 긴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아니 나 죽고 난 뒤에라도 형제간은 이렇게 의리가 있었더라고 누군가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고, 사진 속 인삼은 이미 그 모습을 완전히 잃었고 오징어는 날개를 달았으며 전복마저 온데간데없어도, 우리들의 사랑과 우정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런 다정하고 멋지고 고마운 장면을 아버지 어머니는 하늘에서라도 기쁘게 보아 주십사 비는 마음 또한 간절할 뿐이다.

 

*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해야 한다는 말로, 형제간에 서로 우애를 다함을 뜻함

 

2022. 11. 10.(목)

이우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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