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예술공동체 큰들이 사는 곳 산청마당극마을을 오랜만에 다녀왔다. 산청마당극마을에는 토요일마다 아주 재미있는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즐길거리가 많다. 그 가운데 마당극 공연은 당연히 가장 중심 되는 놀이이다. 그동안 마당극마을에서는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정기룡> 등의 작품을 공연해 왔다. 그리고 6월 25일부터는 새 마당극 <찔레꽃>을 공연하고 있다. <주말N산청마당극마을>이 이 프로그램 제목이다.
마당극마을에 놀러가고 싶어 좀이 쑤시는 이유는 새 마당극 <찔레꽃>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완성한 작품이다. 작품을 처음 공연하기 위하여 날짜를 잡았는데(12월 2일로 기억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배우들이야 연습을 한두 번이라도 더 할 기회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이 작품을 몹시 애타게 기다려온 관객은 더욱 애가 타던 것이다.
드디어 올해 6월 25일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 프로그램의 공연 작품으로 <찔레꽃>을 올리게 됐다. 당장 달려갈 수 있었으나 그러하지 못했다. 이날은 단체관람객이 예약되어 있어서 일반 관객은 갈 수 없었다. 나는 일반 관객이다. 지나고 보니 그날은 큰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날이었다. 다음 주인 7월 2일에는 내가 충남 태안에 가야 해서 마당극마을을 갈 수 없었다. 이렇게 <찔레꽃> 공연 두 번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늘 기회가 온 것이다.
<찔레꽃>은 주인공 정귀래와 귀래의 오남매가 들려주는 ≪동의보감≫ 속 삶의 지혜와 철학 이야기이다.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내 몸도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큰들은 동의보감촌 상설공연 안내 전단에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았다. “세상이 정해 놓은 잣대와 기준을 따라가느라 잠시 잊었던 그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공연은 1시간 정도로 진행됐다. 하도 정신없이 웃겼다가 울렸다가 하는 바람에 이야기 줄거리를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젊을 적 남편을 잃고 오남매를 키우는 어머니가 있다. 그 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있었으나 몇 년째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남매를 키우느라 어머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다. 마침내 큰 병을 얻는다. 어머니 몸속의 장기들인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들은 끊임없어 어머니에게 고통의 신음을 들려주었으나 끝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다섯 자식을 건사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어머니.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 속에서,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 소리가 일러주는 대로 살아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찔레꽃>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어쩌면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살아내는 모습에서 누구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는가 보다. 공연이 중반을 지날 즈음부터는 여기저기서 콧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다섯 아이를 키워내야 했던 귀래가 난생처음 생선 장사를 시작하는 대목에서는, 아들 넷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진주 중앙시장에서 배추장사를 해야 했던 우리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귀래가 자신의 친정어머니를 찾아가는 대목에서는, 어머니는 살아생전 어떤 마음으로 외할머니를 찾아갔던 것인지,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본다고 하여 알 수 없는 것이건만, 마당극을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은 하염없이, 끊임없이, 속절없이 우리 어머니에게 향하는 것이었다.
가수 장사익이 부르는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라고 부른다(가수 장사익이 해마다 산청에 노래하러 오는데 이 마당극을 볼 날이 있을 듯하다). 가수 이연실이 부르는 <찔레꽃>도 있다(제목을 ‘가을밤’이라고도 한다). 가사는 대강 이렇다.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중간 생략)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 시골집 뒷산길이 어두워질 때 /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노래에 나오는 ‘찔레꽃’과 마당극 <찔레꽃>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밑에 흐르는 정한(情恨)은 닿는 데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말해지는 순간 그것은 또다른 그 무엇이 되어 있을 것 같기만 하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이 마당극에서 배우가 아코디언으로 직접 연주하는 ‘찔레꽃’은 또 다른 노래이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 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라는 노래이다. 이 노랫속 찔레꽃은 장미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게 그것이다.
‘어머니’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꼬아놓아도 눈물샘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렇게 공연 내내 울리기만 한다면 같은 작품을 두 번 세 번 보기 어려울 것이다. 큰들은 이 눈물 나는 신파조 마당극을 신명나고 유쾌하게 볼 수 있게끔 곳곳에 웃음이라는 함정을 파 놓았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아무리 신통방통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찔레꽃>의 다음 장면에서 어떻게 웃겨줄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배우는 여러 배역으로 쉴 새 없이 등장하는데, 몇 번 지나자 이제는 등장하는 것 자체가 웃긴다. 배우 10명이 수없이 많은 배역을 순간순간 바꿔가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한 오라기 실처럼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것 또한 신기하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수많은 대사들이 단 한 순간이라도 빈틈을 용납하지 않게 찰떡궁합을 보여주는 것 또한 폭소를 자아낸다.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까지 대사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단 1초라도 딴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는 실력도 신통하다.
물론, 큰들 마당극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신기함과 신통함은 이 작품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아무튼 큰들의 장기인 깔끔하고 매끈한 연기와 착착 달라붙는 대사와 변화무쌍한 춤과 노래들이 아주 잘 어우러지고 버무러진 감동적인 작품이 또 탄생했다(이제서야 3회째 공연을 처음으로 보고 이렇게 너스레를 떨어본다).
극단 큰들의 새 마당극 <찔레꽃>을 만든 사람은 다음과 같다. 감독 전민규, 상임연출 송병갑, 연출 류연람, 극작 김안순, 무대 박춘우, 의상 하은희, 안무 안정호, 주제음악 윤설. 이 마당극에 출연하는 배우는 다음과 같다. 하은희(정귀래), 윤민서(젊은 귀래), 이인근(첫째 기철/간장/김우재), 조익준(둘째 영철/폐장), 류연람(셋째 영실/비장), 김가람(넷째 금철/심장), 김정경(막내 영미/신장), 김안순(귀래 엄마), 송병갑(을수 외), 김혜란(화자 외). (산청 동의보감촌 상설공연을 위해 만든 전단과 마당극마을에서 실제 본 작품 사이에 배우가 조금 바뀐 것 같다. 위 이름은 실제 공연에서 본 대로 적은 것이다.)
큰들은 7-8월 토요일 저녁 7시에 산청마당극마을에서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7월 16일에도 <찔레꽃>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게 좋다. 이 프로그램은 공짜가 아니다. 7월 23일, 7월 30일, 8월 6일은 사전 단체예약과 행사 관계로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 프로그램을 예약하거나 이용할 수가 없다고 한다. 7월 16일을 놓치면 안 되겠다. 그럼 8월 13일까지 거의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니까...
2022. 7. 9.(토)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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