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들 창립 38주년 & 산청마당극마을 3주년 정기공연을 보고
극단 큰들(예술감독 전민규, 대표 이규희)은 8월 27일 오후 7시 산청군 산청읍 물안실로 ‘큰들 산청마당극마을’에서 극단 창립 38주년과 산청마당극마을 3주년을 기념하는 정기공연을 열었다. 정기공연은 9월 3일(토)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1회 더 열릴 예정이다. (2회 공연은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열지 못했다.)
큰들의 정기공연은 전국 경향각지는 물론 해외에까지 퍼져 있는 큰들 후원회원들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대형 선물이다. 후원회원 아닌 사람들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멋진 공연이다. 큰들은 진주시 칠암동에 있는 경남문화예술회관이나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정기공연을 해왔는데, 산청마당극마을에 옮겨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이곳에서 정기공연을 한다. 정기공연 말고도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이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큰들은 정기공연 때는, 당시 공연되고 있는 마당극 작품 가운데 한 편을 선정하여 정기공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색하고 조명과 음향, 특별출연 등을 가미하여 무대에 올린다. 산청 동의보감촌이나 하동 최참판댁 등지에서 상설공연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정기공연 때는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올해 정기공연에 올린 작품은 2021년 창작하여 2022년 처음 공개한 새 마당극 <찔레꽃>이다. 큰들은 이 작품을 ‘우리 인체의 오장(심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과 주인공 정귀래, 그리고 귀래의 오남매가 들려주는 동의보감 삶의 지혜와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정기공연에서는 마당놀이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연극·드라마 배우, 대학 교수로 활동 중인 김성녀 교수가 우정출연하여 무대를 빛냈다. 70살 김성녀 교수는 나이를 예측할 수 없는 외모와 목소리, 춤사위로 무대를 휘어잡았다.
또한 정기공연에서는 미리 말해버리면 안 되는, 산청마당극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큰들의 특별 공연도 펼쳐졌다. 가로등 불빛, 무대 조명 불빛을 모두 끄고 마이크, 스피커 소리 등 음향도 모두 없애고 오직 자연의 빛과 소리, 사람 목소리만으로 진행되는 특별 공연이다. 이 특별 공연에는 큰들 모든 단원과 진주큰들풍물단, 창원큰들풍물단, 그리고 중앙대학교 연희예술학과 판소리전공 전지원 학생과 퓨전 플라멩코 옴팡 대표인 김동욱 씨가 특별 출연했다.
정기공연이 열리는 산청마당극마을에는 오후 4시경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가까이서 삼삼오오 차를 타고 환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큰들은 진정성 가득한 마음으로 맞이하였다. 먼저 도착한 관객은 마당극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곳곳에 피어난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들을 사진에 담았다. 관객들은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싱그럽고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면서 하늘과 구름과 멀리 천왕봉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듯했다.
할 이야기가 많은 관객들은 큰들이 개장한 카페에서 차를 사서 ‘동락정’이라는 이름의 정자에 올라앉거나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을 즐겼다. 그들의 눈에는 큰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가지 동물과 곤충의 조형물이 들어왔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멋진 경험을 한 것이다.
바쁜 일상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관객들은 산청마당극마을에 와서야 비로소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고 그동안 만나기 어려웠던 지인들과 마주 서서 손을 맞잡고 웃음을 나누었다. 이런 장면은 큰들 공연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도시의 술집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겠다. 큰들 공연장을 만남의 광장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객 입장 시간이 얼른 오기를 기다리는 그 마음을 아는지 큰들 식구들은 쉴 새 없이 오가며 손님을 챙기고 무대를 점검하였다. 찾아오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하는 그들에게서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그 밑에 흐르는 사명감 같은 감정이 물씬물씬 묻어났다. 배우들은 분장을 마치고 한 명 한 명 마치 출근하듯이, 마치 출전하듯이, 아니 마치 놀러가듯이 마을에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단원, 속속 도착하는 차량들 주차 안내하는 단원, 화장실 청소하는 단원들까지 모두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참 넉넉하게 해내고 있었다.
공연은 7시 정각에 시작했다. 일본에서 이번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과 산청마당극마을의 오늘이 있게 한 산청군수, 산청군의회 의장을 소개했다. 그러고선 곧바로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 내내 관객은 수도 없이 웃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손뼉을 쳤으며 이따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훔쳐냈다. 산바람은 제법 서늘하였지만 손뼉과 함성 열기를 이기지는 못했다.
마당판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열심히 정기공연을 즐기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석양이 아름다움을 연출했고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별들과 열구름이 공연을 구경했다. 구경꾼은 더 있었다. 마당극마을에서 큰들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수만 마리 풀벌레와 새들이 저녁 내내 자기만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풀벌레 소리는 마당판에서 배우가 대사를 하거나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시간에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배우들의 연기 중간 중간 짬짬이 틈틈이 풀벌레들 소리가 들려왔을 뿐이다.
관객들은 불 꺼지고 소리 죽은 객석에서 하늘을 문득 올려다보았다. ‘쏟아질 듯하다’는 말을 실감하는 가운데 “별이 참 많네.”, “저기가 북두칠성 아니가?”, “옅게 흐르는 구름이 은하수인가?”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언제인지를 가늠해 보았다. 웬만한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는 어둠 속의 밤하늘을 눈동자에 담고 가슴에 새기며 마음으로 추억하는 관객들은 오로지 산청마당극마을에서만, 그것도 정기공연을 하는 밤에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광경을 만끽했다.
새 마당극 <찔레꽃>이 던지는 질문
귀래(하은희)는 젊을 적 바닷가로 시집갔다. 남편(이인근)은 귀래에게 모든 걸 바쳤다. 바닷가에 살면서도 생선 다듬는 것조차 해보지 않았다. 부부 금슬이 좋아 삼남 이녀 다섯의 아이를 두었다. 남편은 장모에게 돈을 빌려 조금 큰 배를 샀다. 어느 날 만선의 꿈을 이루어 돌아오던 남편은 폭풍우를 만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귀래는 억척같이 다섯 자식을 키웠다. 죽지 못해 살아낸 것이라고 할 만하다. 평생 자기를 위해 병원 한 번 가 본 적이 없다. 첫째 아들 사업자금 대는 것에서부터 아직 취업을 못한 막내의 용돈까지 알뜰히 챙겨준다.
마침내 귀래에게 병이 생겼다. 아플 여유조차 없이 자식만 바라보고 달려온 귀래는 자기 몸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심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은 끊임없이 귀래에게 신호를 보내었지만 귀래는 듣지 않았고 쉬지 않았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못했다. 난생 처음 한의원에 간 것도 사실은 큰아들 보약을 지어주기 위해서였다. 몸에 이상신호를 느꼈지만 큰딸네에 김치를 담가주기 위해 쉬지 않았다.
“나는 쉬면 더 아프다.”라는 게 귀래의 인생철학이었다. 모처럼 삼겹살을 먹다가도 “아차, 김치 담가야지!”라며 달려간다. 시장 상인들이 등산을 가자고 해도 함께 가지 않은 것은 당연하거니와 세상에 꽃이 피는지 새가 우는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살았다. 몸이 아프고 나서는 “자식들에게 짐 되기는 죽기보다 싫다.”라면서 귀래는 드디어 그 어디로 찾아간다. “사는 기 바빠서 못 가고 못 가다 본께 안 가고 안 가다 본께 미안해서 못 가던” 곳으로 간다. 거기는 어디일까.
마당극 <찔레꽃>은 먼저 우리네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하여 무한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시골에 살 때는 고된 농사일로 손가락이 갈라졌고 허리는 굽어졌다. 아들 넷이 학교에 다녔다. 진주로 이사 와서는 중앙시장에서 배추 장사를 하면서 귓불에 동상이 걸렸다. 상봉동, 천전동, 도동까지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배추를 팔았다. 그러고서도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5개를 쌌다. 앞만 바라보고 달렸다.
아들들이 장성하고 나서도 철마다 반찬을 해주었다. 고들빼기김치, 파김치, 열무김치는 기본이고 김장도 해마다 빼놓지 않았다. 장엇국이나 뼈다구해장국도 커다란 솥에 한가득 끓였다. 동네 친구들과 멀리 여행을 갔는데 돌아온 가방에는 자식들 줄 인삼이나 젓갈이나 상황버섯이 들어 있었다. <찔레꽃> 속의 귀래는 우리 어머니와 똑같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외치는 고통의 비명을 듣지 않았을까. 듣고도 모른 척했을까.
귀래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해마다 건강검진이 다가오면 두려워진다. 심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 어딘가에서 이상한 그 무엇이 발견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할 터인데 그 두려움과 무서움이 시일을 늦추게 한다. 의사가 당장 입원하라고 하면, 당장 수술하자고 하면 나는 어찌되는가 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우리 가족은 어찌 될 것인가, 내가 하는 일은 어찌 될 것인가 하는 걱정에서 놓여난 적이 없다. 결국 건강검진을 하고 의사로부터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쉰다. 요통으로 큰 고생을 할 때는 이런저런 운동을 하다가 조금 나아지고 나니 예전 생활습관으로 돌아가 버린다.
건강검진할 때 의사에게 제출해야 하는 문진이 있다. 의사가 미리 물어보는 질문이다. 거기에 이런 게 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지만 내 몸에 뭔가 이상이 있다고 느끼는가?’ 대강 이런 질문이다.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는 시간이다. 마당극 <찔레꽃>은 그러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던지는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질문에서 비켜갈 수 없는, 비켜가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아내에게도 똑같이 들려주어야 한다. 아내와 나는 이 작품을 함께 보았다. 마냥 웃고 즐기면서 중간 중간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찔레꽃>을, 우리는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우리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을 나이가 되어 있다. 아내는 꽃다운 나이에 멀리 안산에서 진주까지 시집와서, 귀래처럼 아이를 여럿 낳지는 않았지만, 온갖 궂은일을 다해 가면서 우리 가정을 오늘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귀래처럼 평생 병원 한 번 안 가본 것은 아니지만, 50년 가까이 돌아가는 기계라면 어딘가에 마모가 생기고 어딘가에 나사가 빠질 법하지 않은가.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하고 재충전이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너무나 당연해서 말하기조차 싫을 이런 당연한 질문을 마당극 <찔레꽃>은 자꾸 나에게 던져준다.
이야기 구조와 연기가 더욱 빛나는 작품 <찔레꽃>
새 마당극 <찔레꽃>은 극단 큰들의 여러 작품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다. 최근 공연 중인 작품은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남명>, <정기룡> 등인데 시대적 배경이 조선시대~광복 전후이다. <오작교 아리랑>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어제나 오늘이라고 해도 될 듯한데 등장하는 주인공의 의상을 보면 사극에 가깝다. <찔레꽃>은 완전한 현대극이다. ‘현대극’과 ‘마당극’이라는 말은 얼핏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큰들의 새 마당극 <찔레꽃>이 다른 작품과 달리 현대극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배우들의 의상을 놓고서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대사와 춤에서도 기존 마당극 작품들과 확실히 구별된다. 그래서 마당극을 처음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큰들의 마당극을 여러 번 본 관객도 낯설고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어디에선가 꼭 한 번은 본 듯한 장면도 곳곳에 숨어 있다.
<찔레꽃>은 이야기 구조가 아주 빼어나다. 서사구조라고 할까.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 왔다 하는 이야기가 매끄럽고 단단하다. 연극이나 오페라처럼 무대에 막이 내리고 막이 오르는 것이 아닌데도 앞서 진행되던 이야기에서 뒤에 전개되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배우 한 명이 어른이었다가 아이였다가 오장 중 하나로 등장하는 등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도 전혀 헷갈리지 않는다. 귀래의 다섯 아이가 오장을 가리킨다는 것은 마당극 중반부쯤 가면 알게 된다.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건 신기하다. 주인공 귀래가 큰 병을 얻어 찾아가는 곳이 어디일지는 비밀이다. 그런데 그 비밀의 장소를 알고 나면 많은 의문이나 궁금증이 한꺼번에 풀어진다. 이야기 구조가 잘 짜인 덕분이다.
마당극 <찔레꽃>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와 춤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렇게 말하면 다른 작품에서는 배우들이 대충 대강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배우들은 한 명이 여러 가지 캐릭터를 소화한다. 그에 걸맞게 의상이나 머리 모양을 순간순간 바꾸어서 등장한다. 관객들은 이 사람이 곧 그 사람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보지만, 그 배역의 연결고리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음을 알기에 어색해 하거나 낯설어 하지는 않는다.
가령 을수(송병갑)와 화자(김혜경)는 시장 상인으로 나왔다가 한의사와 간호사로 나왔다가 응급의료센터 의사와 간호사로 나온다. 시장 상인으로는 한번만 나오는 게 아니다. 다른 하나는 말하지 않으련다. 그런데 그때마다 배우들은 정확하고도 정밀하게, 그러면서도 나는 조금 전 그 사람이 아니라는 듯 능청스럽게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나중에는 이 배우들의 등장만으로도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릴 정도다. 흔히 하는 말로 씬 스틸러이다.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웠는지, 정말 헷갈리지 않는지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주인공 귀래의 연기 변신도 눈여겨볼 만하다. 귀래를 연기하는 하은희 배우는 영락없는 우리 이웃 아주머니다. 아니, 우리 어머니다. 자식들 위해 희생 헌신하는 모습을, 마치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처럼 연기한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온몸을 사리지 않는 춤 동작으로 관객을 요절복통에 빠뜨린다. 눈빛과 목소리와 몸짓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이 배우가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어른 서희를 연기하던 그 사람이라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대사와 춤과 노래와 몸동작이 엄청 많은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심히 연기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럼, 다른 배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런 질문은 큰들 마당극을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라고.
젊을적 귀래(윤민서)도 등장한다. 남편 잃고 다섯 남매를 키워야 하는 억척스러운 연기를 잘 했다. 공연 끝난 뒤 너도나도 젊은 귀래를 이야기한다. 그 배우가 큰들에 들어온 지 몇 해쯤 되었는지 알게 되면 더 놀랄 것이다. 생선 비늘 한번 벗겨보지 못한 귀래가 다섯 남매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오이소!, 사이소!”라고 외치는 대목에서는 여러 관객이 눈물을 훔친다. 눈물을 훔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깊은 숨을 내쉰다. 자신 또는 부모의 어떤 신산한 삶과 겹치는 부분을 엿보고 만 것이다.
들리시나요 새들의 노래
극단 큰들의 새 마당극 <찔레꽃>은 우리 부모세대가 살아온 삶을 살펴볼 것을 넌지시 이야기해 준다. 이 마당극은 바로 우리들에게도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라고 강하게 권유한다. 특히 먹고살기 위해,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몸과 마음 어디가 망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한다. 이 마당극의 주제곡(제목: 들리시나요) 가사는 이렇다.
느껴지나요 시원한 바람 / 들리시나요 새들의 노래 / 살아가는 게 마음 같지 않을 땐 / 내 몸이 마음처럼 쉽지 않을 땐 / 잠시 서서 귀 기울여봐요 / 몸과 마음이 하는 말 / 큰 소리로 함께 웃어봐 / 춤을 추고 소리 질러봐~!
살아가면서 시원한 바람을 제대로 느껴 볼 날이 얼마나 될까. 새들의 노랫소리, 강 가 조약돌이 굴러가는 소리, 가을 풀벌레가 날개 부딪는 소리, 누런 황소가 하품하는 소리, 처마 끝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정처 없이 지향 없이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이나 강물이나 바람을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면서 한동안 바라본 것은 얼마나 될까. 그런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속에서 보내는 가느다란 신호라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좀더 건강하게, 좀더 재미있게, 좀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산청마당극마을에서 펼쳐지는 극단 큰들의 정기공연 작품 <찔레꽃>은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복잡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을 보는 것 그것 자체가 곧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이라는 점이다. 일상의 복잡한 일을 잠시 밀쳐두고 산청 정수산 아래 마당극마을로 향하는 것이 곧 힐링이기 때문이다.
객석에 앉아 배우들이 하라는 대로 손뼉치고, 배우들이 웃기면 웃고 울리면 울면서 잠시 아무 생각 없이 마당극 속으로 풍덩 빠져보는 것, 그것이 곧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이다. 마당극마을에 가서 여기저기 예쁘게 피어 있는 꽃들 구경하고 마을 뒷산도 바라보고 앞산도 바라보고 천왕봉도 바라보면서 크게 심호흡 한번 해 보는 것, 그것이 곧 내 몸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찔레꽃>을 보는 것은,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내 몸도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당연한 진리’(큰들 공연 전단에서 인용)를 찾아가는 길이다.
‘동의보감 힐링 마당극’이라는 부제를 붙인 <찔레꽃>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사업인 산청군 농촌신활력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큰들은 농촌신활력사업으로 <마당극 허준>(2008년), <효자전>(2010년) 등 3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중 <효자전>은 이미 2018년 7월에 200회 공연을 달성했고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다.
극단 큰들은 현재 마당극 여섯 작품을 절찬리에 공연하고 있다. <남명>,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찔레꽃>, <영웅의 불활-정기룡>이 그것이다. 큰들은 늘 “언제든지 불러만 주세요! 어디든지 달려갑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공연과 관련하여 이규희 대표는 “올해 들어 큰들은 그동안 움츠렸던 날개를 펴고 다시금 공연을 재개하고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라면서 “마당판에 선 배우들은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고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행복해 보였다. ‘아, 정말 좋구나’ 이 생각만 계속 들었다.”라고 했다. 200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어려웠던 큰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 준다.
또한 이규희 대표는 “어둠 속에 빛이 있듯이 힘들고 어려웠던 이 시기에 큰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큰들을 아껴주고 응원해주고 도와주는 전국에 계신 후원회원님들 덕분이다.”라고 말하고 “오늘 저희의 공연과 저희의 노랫소리와 저희가 든 희망의 불빛이 전국에 계신 후원회원님과 벗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공연 안내 팸플릿에서).
전민규 예술감독은 “2년 후 창립 40주년에는 경남문화예술회관과 창원 성산아트홀 등 큰 공연장에서 더 많은 관객분들 모시고 재미있는 마당극 작품과 ‘130명 풍물놀이’ 공연으로 찾아뵙겠다.”라고 약속했다(공연 안내 팸플릿에서). 벌써 2년 후를 기다리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일까.
2022. 8. 28.(일)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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