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 체험 후기
주말이 다가온다. 아내는 안산과 대전에서 찾아온 친구와 일주일째 남해 나들이 중이다. 아들은 금, 토요일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는 토요일 오후와 저녁을 어떻게 보내면 잘 보냈다고 소문날지, 스스로 즐겁고 기쁘게 소문낼 수 있을지 궁리했다. 나의 궁리는, 사실 미리 답을 정해놓은 궁리이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지 미리 그 정답을 정해놓고서는 어떤 핑계를 대어 가족들에게 설명할 것인지를 궁리하는 것이라고 해야 사실에 가깝겠다.
산청 마당극마을에서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이라는 재미있고 유쾌한 프로그램을 주말마다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나는 이미 두 차례나 다녀왔다. 예약을 하는 게 마땅하지만 나는 예약 없이 그냥 달려갔다. 처음에는 오후 2시쯤 달려가서 이리저리 노닥거리다가 마당극 <정기룡>을 보고 돌아왔다. 2020년 가을 하동에서 본 <정기룡>은 환골탈태 다른 작품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40분 길이 작품을 60분 짜리로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두 번째는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마당극 <효자전>을 본 뒤 그 길로 마당극마을로 달려가서 극단 2팀의 <오작교 아리랑>을 관람했다. 하루에 각각 다른 작품을 다른 곳에서 보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 프로그램은 마당극 한 편을 관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알맹이이지만 그것만으로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을 오로지 설명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당극마을에선 화덕피자 만들기, 돌 그림 그리기, 투호놀이, 연날리기를 비롯해 주막운영 등 갖가지 놀 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가 가득하다. 나는 마당극만 관람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특히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과 함께하는 주막은 나에겐 하루속히 달성해야 할 목표의 하나였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6월 11일 주말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주말에 나에게는 다른 일이 없었다. 아내도 없고 아들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모두 함께 가면 가장 좋았겠고, 가장 크게 바라는 바이지만, 어쨌든 다른 방해 요소 없이 홀가분하게 달려갈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6월 8일쯤 남해 어느 길을 걷고 있을 아내에게 기별했다. 토요일 오후에 마당극마을에 가면 일요일 점심시간에나 집으로 올 것이니, 남해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없더라도 이해하라고 했다. 아들에게도 이러저러하여 집을 비울 것이니 혼자 일어나서 밥 차려 먹으라고 일렀다.
그런데 웬걸. 아내는 토요일 점심 무렵 집으로 왔다가 함께 여행 중인 친구 한 명과 함께 산청마당극마을로 가자고 한다. 불감청고소원이라. 잘됐지 뭔가. 심심하지 않게 말벗도 되어주고, 내가 아는 큰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주며, 밤늦은 시간 내가 취하더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게 생겼으니 얼마나 좋아. 나는 3명이 잘 수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큰들 마당극마을에는 숙박 손님을 위하여 이른바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놓았는데 이것이 명물이다. 우리가 흔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민박이나 펜션, 호텔과는 사뭇 다르다. 언뜻 보면 컨테이너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완전한 살림집처럼 갖춰 놓았다. 컨테이너를 2층으로 쌓은 것도 있고 가로로 길게 이어붙인 것도 있는데, 안에는 화장실과 주방과 침실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다. 거실에는 식탁이 있고 의자도 붙어 있다. 신발장도 있다. 화장실에는 비누와 치약, 수건 같은 기본적인 물건이 깔끔하게 구비돼 있다. 주방에는 수저와 접시, 그릇, 냄비, 컵 따위는 물론이고 간단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도록 인덕션과 버너도 갖춰 놓았다.
2층 숙소는 실내 계단이 설치돼 있는데 비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라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2층 옷장에는 이불과 베개가 들었다. 베개는 손님들의 편안하고 건강한 잠자리를 위하여 단원들이 직접 머리를 대어 베 보고 샀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층으로 된 컨테이너는 2층에 있는 물건들이 옆으로 길게 붙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마당극마을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세상에 몇 없을 숙소가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1층형이 3개 동, 2층형이 3개 동이다. 일반 펜션처럼 생긴 숙소도 있다.
이 컨테이너 숙소는 2명이 자는데 10만 원이고 1명이 늘어나면 1만 5000원을 더 받는단다. 다른 숙소는 가격이 조금씩 올라간다. 그만큼 편의시설이 잘돼 있겠지. 후원회원은 20%를 깎아 준다. 만약 단둘이 간다면 8만 원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유명 관광지의 펜션보다는 싸고 시골마을 민박집보다는 좀 비싼 편이다. 그런 민박집에는 이런 살림살이가 모조리 갖춰져 있는 게 아니어서 직접 가격으로 견줄 수는 없겠다.
토요일이 되었다. 아내는 친구와 함께 남해에서 진주로 와서 한의원에 들렀단다. 많이 걸어다닌 탓에 몸이 찌뿌드드한 모양이다. 그 시간에 나는 동네 가게에 들러 무엇을 사려고 했는데, 웬걸 마땅히 살 게 없다. 음료수 2개와 토마토, 참외를 사고 나니 끝이다. 집에 있는 햇반과 반찬 3가지도 챙겼다. 저녁은 막걸리로 때우고 아침은 라면으로 해장해도 충분하니까 이것저것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라고나 할까. 오후 2시 10분경 아내와 아내의 친구를 태우고 새로 산 전기자동차 '니로 플러스'를 몰았다.
산청으로 향하는 길은 늘 행복하다. 거기에 가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이미 잘 아는 까닭에 더 행복하다. 최근 얼마 동안 마당극 공연만 보고 진주로 돌아온 기억 위에 오늘은 1박을 하면서 놀 수 있다는 설렘 덕분에 더 행복하다. 함께 가는 일행 중에 마당극마을을 잘 모르는 분께는 신나게 설명해주고 즐겁게 웃겨주느라 더 행복하다. 행복함은 세 배로 증폭된다. 가는 길 30분이 짧다.
마당극마을에 도착하니 박정민 씨와 윤정순 씨가 반긴다. 차를 탄 채로 숙소로 올라가 짐부터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큰들에 주려고 사온 토마토 한 상자와 아내가 남해에서 사온 유자청을 부려놓고 차를 주차장에 댔다. 손님맞이하는 두 분께 인사하고 주말 프로그램에 활용할 마을화폐를 받았다. 주머니 하나에 열다섯 냥과 마당극관람권이 들었다. 우리는 세 명이므로 주머니도 셋이다. 마을화폐는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을 체험하는 데 필요한 화폐다. 참가비는 한 사람에 3만 원인데 후원회원은 역시 20% 깎아준다.
다시 숙소로 올라갔다. 다시 보니 숙소 1층 식탁 위에 손님을 맞이하는 큰들의 정성스러운 편지와 간단한 다과가 보인다. 시간 맞춰 오느라 허겁지겁 바빴을 손님을 위해 따뜻한 차 한 잔 끓여 먹을 준비를 미리 해 준 것이다. 냉장고를 여니 맥주 깡통 두 개와 생수 두 병이 보인다. 이 또한 손님을 위한 배려이겠다.
2층으로 올라가 마을을 조망해 보았다. 멀리 지리산의 아슬아슬한 능선과 가까이 박춘우 무대미술감독님의 작업 공간까지 한눈에 넣었다가 여러 번 나누어 분할하여 보았다. 마을 한 가운데 공연장에는 천막이 하얗게 쳐져 있고 큰들 단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손님맞이에 설레어하는 그들의 환한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옷가지 등 짐을 대충 정리한 우리는 산책길에 나섰다. 마당극마을 뒷산은 정수산이다. 정수산 허리에는 마을 사람과 손님들이 산책을 하도록 길을 내어 놓았다. 이 길은 다른 특별한 공연 때는 더욱 훌륭한 기능을 하지만, 그건 다음에 이야기한다. 우리는 마을을 지나가면서 곳곳에 놓인 동물과 곤충 조형물을 살폈다. 우람하고 멋진, 꽃을 든 건담도 우러러 보았다. 나는 이미 몇 번 본 장면이지만 아내와 친구는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듯했다. 뜻하지 않게 동심의 세계로 접어든 듯하다가 다시 뜻하지 않게 전설의 고향으로 간 듯한 그런 기분인 것 같았다. 곳곳에 피어난 꽃들은 우리를 정말 기분 좋게 했다.
꽃들은 산책길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그중 엉겅퀴는 정말 지천으로 늘렸다. 바늘처럼 가느다란 꽃잎도 있고 이미 하얗게 날개를 단 꽃잎도 보인다. 산책길에는 일부러 심어 놓은 머위도 있고 자생하는 취나물도 보인다. 장사익이 너무 슬프다고 노래한 하얀 찔레꽃도 늘렸다. 햇살이 아주 조금 따가웠으나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혀 주기에 충분했다. 산책거리는 600m쯤 되는데 느릿느릿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모자라다 싶으면 두 바퀴쯤 걸어주면 충분하겠다.
산책길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아니다, 가까운 곳은 수채화 같지만 멀리 보이는 경치는 수묵화 같다. 이런 풍경을 한눈에 담아보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두고 온 집 생각도, 월요일이면 출근해야 할 직장도, 아웅다웅하는 세상 사람들도 모두 잊어버리게 만드는 선경이 따로 없다. 마당극마을에 마당극 관람하고 주말 프로그램 체험하러 왔다가 무릉도원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보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마당극마을의 진면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마을로 어슬렁어슬렁 내려왔다. 비슷하지만 각각 다르게 생긴 마을 사람들의 집을 구경하면서, 집집마다 마당에 만들어 놓은 작은 화단을 신기한 듯 구경하면서 우리는 이방인이자 주민이 되어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이고 또 꽃이다. 이름도 다 알 수 없다. 봄을 아쉬워하는 꽃이 있는가 하면 여름을 반기는 꽃도 있다. 빨간 꽃도 있고 하얀 꽃도 있고 분홍 꽃도 있다. 검은 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꽃은 알록달록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이제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을 본격적으로 즐겨볼 차례다. 우리는 카페로 들어가 목을 축였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과일주스를 시켜 놓고 카페에 전시된 박춘우 화백의 그림을 구경했다. 마침 박 감독님이 직접 그림을 설명해 주었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작품 세계에 잠시라도 몰입해 볼 수 있었다. 담뱃굴이 있는 풍경, 어머니가 나물을 뜯는 시골의 봄 풍경, 자작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어느 산속 풍경 등은 우리의 눈길을 꽤 오랫동안 붙들었다. 아메리카노 차가운 것은 4냥, 뜨거운 것은 3냥이고 생과일주스는 5냥이다.
화덕피자를 만들어 볼 차례다. 나는 왔다 갔다 하며 큰들 단원들과 노닥거렸고 아내와 친구는 피자 한 판을 만들기로 했다. 피자 만드는 데는 15냥이 필요하다. 이미 만들어 놓은 반죽을 넓고 얇게 편다. 그 위에 케첩과 과일들을 흩어 얹고 치즈를 덮었다. 그러고 나면, 곁에서 열심히 장작불을 때던 정태국 씨가 피자를 알맞게 구워준다. 10분 정도 걸린다. 돌 그림 그리기 체험을 하려던 우리는 그새 피자가 익었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시식을 한다. 여섯 조각으로 나뉜 피자를 2조각씩 나눠 먹었다. 따끈따끈하고 고소하고 미끌미끌한 것이 그만이었다. 금방 구워낸 피자 맛이 일품이었다. 장작 냄새가 밴 듯, 아내와 친구의 손맛이 밴 듯, 피자는 시내에서 파는 잡다한 체인점의 피자와 비교할 수 없었다. 이 피자는 6시에 마당극 공연을 볼 사람에게는 시간적으로나 양으로나 요기하기에 ‘딱 알맞음’이었다.
우리가 그러는 동안 공연장 주변에서는 어린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이 연을 날리고 딱지를 치고 투호놀이를 하면서 아주 신바람이 났다. 아스팔트 바닥에 색색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아이도 있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왁자한데, 여느 시골 장터 분위기가 살살 살아난다. 곧이어 시작할 마당극의 배우들은 배우 복장으로 갈아입고 분장까지 한 채 마을에서 아이들과 다른 손님들과 논다. 참 이색적이다. 갑자기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한 상태다. 마을은 혼돈스러우면서도 너무나 가지런하여 현기증이 날 정도다.
무로하라 쿠미 씨가 맡고 있는 돌 그림 그리기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꼬마나 어른이나 누구나 거기 앉으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화가가 된다. 화가가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철학자가 될 것이다. 작은 돌멩이에 자기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바라는 그 무엇을 나타내 보이려면 철학자가 되지 않고는 안 될 것이고 화가가 되지 않고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나는 역시 왔다 갔다 하며 아내와 친구를 찍고 그들이 그리는 그림을 찍었다. 돌 그림은 두 사람이 각각 하나씩 그렸다. 그녀들은 남해 바닷가의 추억을 산속으로 옮겨 놓았다. 돌 그림을 그리려면 10냥이 있어야 한다. 다 그린 그림은 나무판자에 액자처럼 붙여 준다.
이쯤 되면 우리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마을화폐가 동난다. 나는 카페로 들어가 화폐를 추가로 구입했다. 왜냐 하면 마당극을 관람한 뒤에 이어질 주막 파티를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맑디맑은 하늘, 햇살이 제법 따갑던 날씨였는데 어느새 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앗,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행히 지나가는 비다. 소나기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시작하는 듯하다가 멈추었다. 배우들이 긴급하게 스피커에 씌워놓은 비닐을 벗긴다. 드디어 공연을 시작한다.
마당극 <정기룡>은 2020년 7월 첫 공연한 뒤 9-10월 너덧 차례 공연했다. 그때는 40분짜리 작품이었다. 2021년 하동에서 공연이 열리지 않는 기간에 큰들은 이 <정기룡>을 60분짜리로 만들어 놓았다. 관객과 배우들이 웃고 손뼉 치며 함성 지르는 동안 시간이 다 흘러가 버렸다. 원주, 곡성, 광주, 대전, 서울, 진주에서 온 관객들이 하나같이 환호하고 손뼉을 쳤다. 대단한 작품이 대단히 짧은 시간에 휙 지나가버렸다. 윤민서 배우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등 가족이 왔더랬는데, 아버지가 동네 민방위대장에 낙점되어 큰 역할을 했다.
사실은 마당극 공연이 가장 중요하다. 마당극을 보려면 하동 최참판댁, 산청 동의보감촌 같은 상설공연장에서 열리는 정기공연을 기다려야 한다. 또는 다른 지역에서 초청공연을 언제 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 일정과 내 개인 일정이 맞아야 한다. 상설공연장에서 정기공연을 하지 않는 날이면 공연을 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토요일마다 아무 생각없이 마당극마을로 가면 어떤 작품이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현재는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정기룡>을 공연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찔레꽃> 같은 새 작품도 공연하리라 믿는다. 주말에 아무 계획없이 달려가기만 하면 공연을 함께할 수 있고, 더불어 이런저런 놀이도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게 없다. 산청 큰들마당극마을이 앞으로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고 관광지가 되고 휴식공간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평소 상설공연장에서는 무료로 공연을 관람한다. 무료 공연 관람에 고마움을 느끼거나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느낀 관객이라면 마당극마을에 가서 ‘돈 내고’ 마당극 한 편을 재미있게 관람하면 더욱 좋을 일이다.
공연이 끝나니 비로소 허기가 몰려왔다. 이 허기는 뱃속의 허기이기도 하고 기억의 허기이기도 하려니와 사람과 사람이 마주앉아 잔을 부딪쳐야만 채워지는 인정의 허기이기도 하다. 공연장 한쪽에 마련된 주막으로 이동했다. 삼삼오오 가족끼리, 일행끼리 모여앉아 막걸리를 주문하고 도토리묵과 파전을 시켰다. 막걸리는 1병에 4냥이고 도토리묵과 파전은 10냥이다. 김밥도 있었는데, 이건 몇 냥인지 까먹었다. 배고픈 사람은 김밥부터, 목마른 사람은 막걸리부터 찾았다.
주막에 불이 났다. 밀려드는 주문에 주모와 일꾼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마당극 배우들도 손님들 속에 스며들어 술잔을 주고받는다. 공연장에서 넘치는 열정을 발산하던 배우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 손님들과 술잔을 주고받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장면은 참 멋지고 훌륭하다. 그 배우에게 그 마당극 대사를 물어보고 궁금하던 것도 물어보고 해주고 싶은 말도 해주고, 참 좋다. 그런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참 좋다. 조선시대 장군들 옷 입은 사람과 술자리를 하니 꼭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 같다. 참 좋다.
그렇게 밤늦도록 술과 안주만 축내게 하면 큰들이 아니다. 큰들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준비해 놓고 있다. 김정경 단원이 아코디언을 들고 등장한다. <봄날은 간다>, <눈물 젖은 두만강> 같은 옛 노래를 연주하자니, 아까 공연 때 동네 민방위대장을 하던 윤민서 배우의 아버지가 목청을 뽑는다. 와~ 하는 함성과 4분의 4박자 손뼉이 구성지다. 부산에서 온 한 여성분은 즉석에서 판소리 한 대목을 들려준다. 듣고 보니 김원중 가수의 노래 가사인데 <직녀에게>인가 보다. <정기룡>의 주인공 정기룡 역의 김상문 배우가 기타를 들고 등장한다. 그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미롭다. 수염 달린 장군이 부는 하모니카 소리는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주전자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파전은 몇 판이 나왔다가 없어지고, 도토리묵도 마파람에 게눈 감춰지듯 사라진다. 얼큰해졌다. 꼭 그만큼 얼큰해졌다 싶을 즈음 주막 장사가 막을 내린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달도 아니고 보름달도 아닌 상현달이 떴다. 그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 솔숲에서 우는 새 소리, 마을 어귀에서 우는 새 소리가 스테레오 입체 음향으로 연주를 한다. 마당극마을 잔치가 끝났으니 각자 숙소로 돌아가라고 노래한다. 너무 취하면 다음날 문제가 생기니 이제 그만하라고 나에게 일러주듯 노래한다. 마을사람들은 재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취한 사람은 취한 대로, 덜 취한 사람은 덜 취한 대로 각자 자기 숙소로 흩어졌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나는 문득, 어린 시절 시골에서 정월 대보름날 달집태우기 놀이 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밤이 이슥하도록 동네 형들과 쥐불놀이를 하다가도 ‘이제 집에 가자’고 누가 말하면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고 형들은 밤새 달집을 지키며 술추렴을 하곤 했다. 그런 장면이 왜 떠올랐을까.
눈을 뜨니 새벽 2시다. 목이 칼칼하다. 생각해 보니 숙소로 돌아와 양치질만 대충 하고 2층으로 올라가 그대로 쓰러졌다. 생각해 보니 주막을 파한 뒤 숙소 근처에서 몇몇 사람이 둘러앉아 몇 잔 더 마셨다. 어린 시절에는 곱게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른이 된 나는 한두 잔 더 걸쳐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큰들 배우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노래를 한 곡 불러준 듯한데 기억이 너무 희미하다. 그들은 다음날 오후 거제에서 열리는 공연 때문에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어 아쉬워하며 돌아간 듯한데, 그런 자세한 것은 아주 나중에 하나씩 생각났다.
다시 눈을 뜨니 아침 7시다. 김상문 씨가 마을을 거닐며 운동을 하고 있다. 조금 더 있으니 파란색 옷을 입은 박춘우 감독이 보인다. 아내와 친구가 깨어 다시 산책길로 나섰다. 나는 2층에 드러누워 심호흡을 하고 다리를 치켜들며 허리 운동을 했다. 입에서는 막걸리 냄새가 진동했고 머릿속에는 막걸리 찌꺼기가 배출되지 않은 채 사고 작용을 막고 있다. 어찌어찌 대충 해장을 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숙소를 나섰다. 큰들도 거제 공연을 위해 출동 준비를 거의 마친 듯했다. 그들에게 손 흔들며 인사한 뒤 우리는 동의보감촌으로 갔다.
목이 마른 우리는 큰들이 운영하는 <청이네>로 가서 마실 것을 한잔씩 주문하여 홀짝홀짝 잘 비우고선 기바위와 출렁다리를 돌아보았다. 기력이 부족해진 데다 배탈마저 나버린 나는 기바위에서 돌아와 청이네 옆 쉼터에 앉아 있었다. 아내와 친구가 주제관과 박물관을 구경할 때도 나는 풍차 가게 아래 쉼터에서 드러누워 있었다. 허리에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마음은 밝은 햇살이었고 기분은 두둥실 구름이었다. 안산에서 온 아내의 친구도 최고의 공연과 추억이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다른 친구들과의 모임도 마당극마을에서 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제 나는 만족한다. 드디어 주말엔산청마당극마을을 온전히 즐기고 느꼈다.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체험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사진을 찍어주면서 그런 기분과 감성을 충분히 느꼈다.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정말 마당극마을에서 이렇게 한잔하는 날도 오는구나’라고 느꼈다. 큰들은, 늘 그러했듯이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정말 정성껏 하는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꼈다. 주말마다 이런 체험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이라도 이렇게 놀고 마시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언젠가 큰들 전민규 예술감독님은 말씀하셨다. “주말마다 마당극마을에서 공연을 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술도 한잔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 꿈이 바야흐로 야무지게 여물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그 달콤하여 매혹적인 열매를 그저 따 먹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2022. 6. 13.(월)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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