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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마당극 끝나니 갈 데가 집밖에 없구나

by 이우기, yiwoogi 2022. 5. 7.

<오작교 아리랑> 222회

 

어린이도 없고 어버이도 안 계시니 5월 첫 주가 좀 쓸쓸하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진주교대 운동장, 경남도문화예술회관 앞, 반성수목원, 진주성 이런 데를 데리고 다닐 때가 좋았지 싶다. 어버이 모시고 집현 응석사, 성불사, 하동 칠불사, 진주 연화사, 청곡사를 갈 때도 좋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 날이 붙어 있는 5월 첫 주는, 나에겐 좀 그렇다.

 

토요일 아침 일찍 밥을 챙겨 먹었다.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 앞 복사점으로 가서 맡겨 놓은 인쇄물을 찾아 삼천포로 달려갔다. 친구의 장인어른이 책 발간하는 일을 좀 도와드리기로 했는데 오늘은 가편집본이 완성됐기에 이를 직접 전해드렸다. 월요일 우편으로 보내어도 되었겠지만 어쩐지 직접 갖다드려야 할 것 같았다.

 

문제는 복사점에서 11시에 출발하여 삼천포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근처까지 갔다가 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오후 2시까지 산청군 동의보감촌에 갈 일이 있었으니까. 삼천포 가는 길은 예상보다 많이 차가 밀렸다. 아마 어린이날, 어버이날, 초파일에다 주말을 핑계 삼아 바닷가 바람이라도 쐬러 가는 차들이겠지. 어버이를 모시고 회라도 한 점 드시러 가는 길이겠지.

 

다시 진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연락했다. 서진주나들목 근처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고속도로로 지나다가 아내를 태워 산청으로 가려는 작전이다. 점심은 동의보감촌 잔디마당 옆에 붙어 있는 ‘한수금’에서 비빔국수를 먹고 싶었다. 이 집 국수와 비빔밥과 돈가스가 제법 맛있고 막걸리라도 한잔 곁들이면 더없이 좋다는 것을 오랜 마당극 관람 경험으로 잘 안다. 비빔국수를 떠올리자 입 안에 침부터 고였다.

 

진주에서 산청 방향으로 올라가는 차도 많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속 100km로 달렸다. 조금 한산할 때는 가속기를 지그시 밟았다. 배가 고프던 것이다. 배도 고팠거니와 점심을 정말 마음에 점 하나만 찍는다 하더라도 여차 하면 마당극 객석 맨 뒷자리에 앉아야 할지 몰랐던 때문이다.

 

‘한수금’은, 그러나 손님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비빔국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할 수 없이 ‘산청각’으로 갔다. 이 집도 여러 번 갔다. 전골이 맛있는 집이다. 오늘은 육회비빔밥을 주문했다. 손님이 많기로는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였다. 시계를 자꾸 바라보았다. 손님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육회비빔밥이 맛있다. 육회가 싱싱했을뿐더러 나물도 제법 맛있었다. 고추장을 넣어 슥슥 비벼먹으니 꿀맛이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숟가락을 놓으니 1시 40분이다. 이제 자리를 잡으러 갈 시간이다.

 

무료로 보는 마당극일지라도 한 편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준비와 의식이 필요하다. 최소한 공연 30분 전에는 식사를 마치면 좋다. 공연 20분 전에는 객석 자리를 정해야 한다. 지정석이 아니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앉으면 된다. 20분 전까지는 도착해야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공연 10분 전에는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온다. 중간에 갔다 온 일도 제법 있다.

 

큰들은 5월 햇살을 가려줄 천막을 미리 쳐 놓았다. 관객들에게 나눠줄 깨끗하고 깔끔한 전단(리플릿)도 새로 만들었다.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마지막 분장을 하고 스태프들은 음향기기 주변에서 장비를 만진다. 아는 관객이 오면 인사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오늘은 산청군 문화체육과장으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기를 만났다. 몇 해째 산청 공연을 보러 다니는 데도 직접 얼굴 본 것은 처음이다. 공보실에서 일하는 전직 경남일보 기자 후배도 만났다. 반갑다. 나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후배도 만났다. 역시 큰들은 만남의 광장이다.

 

산청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극단 큰들의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222회 공연을 아내와 함께 보았다. 오늘 공연은 올해 첫 공연이다. 큰들은 오늘부터 11월까지 이 자리에서 마당극을 20회 공연할 예정이다. 작품은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찔레꽃> 세 작품인데 번갈아가며 공연한다. 보통 토, 일요일 오후 2시에 공연한다. 7-8월에는 금, 토요일 저녁 7시에 시작한다. 지난해까지 공연하던 <남명>이 빠지고 <찔레꽃>이 새로 등장한 게 눈에 띈다. <찔레꽃> 첫 공연은 6월 중에 한다고 들은 듯한데 까먹었다. 

 

오늘 공연은 또 다른 의미에서 기억에 남을 공연이다. 2020년 3월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처음으로 객석 앞쪽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동안 큰들은 객석에 의자 50개만 놓고 공연한 적도 있고 80개만 놓고 공연한 적도 있다. 그럴 때는 객석 주변에 줄을 쳐 놓고 아무나 쉽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안으로 들어가 앉지 못하는 관객은 멀찍이 서서 팔짱을 낀 채 구경해야 했다. 들어갈 때는 손소독을 하고 연락처를 적어야 했다. 코로나가 가장 심할 때에는 잔디마당에 무대를 차려 공연을 하는데 객석에는 정말 마당극 공연에 필수적인 관객 20명만 초대하여 공연하면서 이를 유튜브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제 그런 시기는 과거가 되고 있다.

 

천막 아래 모여 앉은 관객 말고 앞쪽과 뒤쪽에 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조금 늦었으면 서서 볼 뻔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조치가 크게 완화된 이후 마당극 공연도 관람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여 매우 흡족한 시간이었다. 뒤늦게 당도한 관객은 극 중간에 객석 앞 돗자리로 이동하기도 했다. 

 

오늘 공연하는 배우들은 극단2팀이다. 큰들은 코로나로 공연이 거의 없던 시절에 기존 사무국 직원과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무대에 서지 않던 배우들을 모아 2팀을 만들었다. 큰들은 2개의 극단이 동시에 각각 다른 장소에서 각각 다른 작품, 또는 같은 작품을 공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내가 알기로 2팀은 <오작교 아리랑>을 주로 산청에서 공연해 왔다.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 발전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내일 일요일에는 1팀은 하동 최참판댁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 202회 공연을 하고, 2팀은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오작교 아리랑> 223회 공연을 하게 된다.

 

배우들이 어느 작품에 어떤 배역으로 나오는지를 요리조리 따라가면서 챙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떤 사정으로 한 배우가 나오지 못하게 되면 그 배역을 누가 대신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 ‘사정’이라는 게 기쁘지 아니한 일일 경우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한가득 안기도 한다.

 

가령 2팀의 <오작교 아리랑>에 꽃분이 아버지로 나오는 오진우 씨는 1팀의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조준구로 나온다. 이 두 배역은 없어서는 절대 안 될 배역이다. 그런데 5월 8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오작교 아리랑>과 <최참판댁 경사 났네>가 동시에 공연될 예정이다. 나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평소 자주 가는 다솔사에 갔다가 바로 하동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조준구를 누가 하게 될지 궁금함을 내일 오후 2시까지는 붙들고 있어야겠다.

 

하늘을 보나 산을 보나 잔디를 보나 내 옆을 보나 마당극 공연하기에도, 마당극 관람하기에도 가장 좋은 5월이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햇살을 가려줄 천막이 있고, 이제는 조금 밟아도 괜찮을 만큼 잔디도 자랐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묘하게 바뀌는 것은 공연 시작 전에 항상 겪는 심리적, 육체적 반응이다. 이런 작은 떨림을 즐기기 위해 나는 늘 마당극 공연장을 얼씬거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앉은 바로 왼쪽 두 아주머니는 마당극에 푹 빠졌다. 시종 웃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함을 파는 대목에서 커다란 횟감을 볼 때 웃음보가 터지더니 남돌이 아버지 어머니가 등장하자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그분은 그 장면이 가장 웃기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다음 꽃분이 아버지 어머니가 등장하자 숨을 못 쉴 정도로 웃는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몸속에 쌓여만 가던 온갖 스트레스와 잡념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옆에서 곁눈질로 살펴보니 얼굴이 뻘게지도록 웃는다. 손뼉 칠 때는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친다. 이분 다음에도 공연 보러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왼쪽 뒤편에 선 어느 남자는 “야, 진짜 잘하네. 프로다, 프로!”라고 외친다. 이분도 큰들 마당극을 처음 본 게 틀림없다. 실제 객석에 앉아 이런저런 반응을 보면, 큰들 공연이 아마추어들의 장난이 아닐까 생각하는 분이 가끔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공연 보는 중간에 혼잣말로, 아니면 공연 끝난 뒤에 동료들에게 반드시 말한다. “정말 잘하네! 진짜 재미있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배우도 아니고 큰들 식구도 아닌데 괜스레 기분 좋아진다. 오늘이 꼭 그런 날이다.

 

뒤에 서서 보던 관객 여럿이 앞쪽 돗자리로 자리를 이동한다. ‘이렇게 재미난 것을 뒤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것이겠다. 처음 시작할 때 큰들에서 “사실 마당극 관람할 때 가장 좋은 자리는 맨 앞 돗자리입니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분들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다음에 오면 반드시 앞자리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나는 2018-2019년에는 무조건 맨 앞줄 가운데 앉았다. 그 자리가 명당이요, 로열석이라는 것이 불변의 진리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공연이 끝났다. 아내가 말한다. “오늘은 관객들 호응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배우들도 더 신명나게 공연하는 것 같다.” 100% 공감되는 감상평이다. 관객은 흩어졌다. 배우들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어떤 아이가 엄마 손을 이끌고 뒤편으로 쭈뼛쭈뼛 다가간다. 배우들과 사진을 찍고 싶었던가 보다. 그렇게 동심 한 자락에 알록달록한 추억 한 장을 새겨 넣는다. 다른 관객들도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요즘은 공연 끝난 뒤 기념사진 찍는 게 공식 일정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부탁을 하면 사진 촬영에 응해주기는 하는가 보다.

 

공연 중간에 아내가 귓속말을 한다. 남돌이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버나를 돌리기 직전에 멈춤 동작으로 서 있을 때다. “저분 눈썹 봤느냐?”라고 묻는다. 미동도 하지 않으며 기다림의 미학과 느림의 미학을 시전할 그 순간 남돌이 아버지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마음속 버나를 돌리는 것이다. 그 장면을 아내가 오늘 처음 본 것이다. 꽃분이 어머니가 남돌이 아버지 턱 밑으로 파고 들어가 “들어오라우~!” 할 때 “와~” 웃던 관객들이 ‘아, 큰들에게 졌다’라며 항복선언을 할 즈음이다.

 

무대의 왼쪽 대각선에 앉아서 보았다. 정면에서 관람하는 게 가장 좋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가령 마당극을 한 번만 보고 말 것이라면 맨 앞줄 가운데가 명당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은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면서 본다(공연 중간에 돌아다닌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다 보면 왼쪽, 오른쪽으로 향한 배우들의 기기묘묘한 표정을 놓치지 않게 된다. 무대 뒤쪽에 앉은 악사들도 그냥 장단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손짓으로 열심히 연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것을 한꺼번에 뚜르르 꿰뚫는 게 아니라 한번에 한 가지씩 천천히 알아가고 배워가는 게 참 즐겁기만 하다.

 

마당극 끝나면 3시다. 이전에는 집으로 오는 길에 곧장 어머니 댁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나물거리나 생선을 사기도 했다. 그런 날은 어머니께서 해 놓은 열무김치를 갖고 오기도 했다. 어머니와 함께 저녁 먹으며 그다음 주엔 같이 공연 보러 가자고 약속을 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경로당 친구분들까지 모시고 여기저기 공연 보러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집 말고는 갈 데가 없다. 허전하고 허허롭다. 벌써 1년 반이나 지났다. 다다음주 21, 22일엔 <효자전>을 공연한다는데, 이 작품을 눈물 없이 볼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다.

 

냉장고에 부추전 구울 재료가 있으므로 나는 동네 가게에 막걸리를 사러 나간다. 홍합과 쪽파도 좀 사야겠다. 외출 나간 아들이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다리면서 아내와 마주 앉아 5월 첫 주말을 얼큰하게 취해 보고 싶어진다.

 

2022. 5. 7.(토)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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