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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외출

by 이우기, yiwoogi 2022. 4. 17.

<외출>

 

아침을 대충 먹고 목욕탕에 갔다 왔다. 물방울 마사지를 많이 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뻑적지근했다. 12시에 집을 나섰다. 조금 비정상이지만 걸을 수 있다. 처음 차에 탈 때 힘든 것만 빼면 운전은 자신 있다. 1시간 정도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출발하는 것이다. 망설이지 않은 건 아니다. 화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길을 나섰다.

 

하동으로 향했다. 국도 양옆으로 펼쳐지는 연둣빛과 초록의 향연에 매료됐다. 평사리 마을 풍경은 숨을 멎게 했다. 이 장면을 보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최참판댁 마을을 오르는 길은 다정했다. 그곳에서 그 장사치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바람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새들도 반가웠다.

 

 

마당극을 보았다. 잘 아는 배우들이 익숙한 장면을 연기했다. 다른 점이 많았다. 마을 배우들이 보이지 않았다. “예쁘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예?! 흥!” 하는 대사는 없었다. 어린 최서희를 처음 연기한 박해나는 묵직했다. “내 집에서 당장 나가시오.” 하는 말에 내가 벌떡 일어날 뻔했다. 언니 채린에 이어 서희를 맡았다. 그럴 만했다.

 

임이가 바뀌었다. 아직은 신인이라고 할 민서 배우가 임이를 맡았고 원래 임이를 맡던 정민 배우는 나오지 않았다. 일본군에게 끌려가면서, 그리고 광복 후 귀향하면서 “엄마~!!”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지난 3월 1일 길상을 맡게 된 이규희 대표는 능청스러움이 한 겹 두꺼워졌다. 배우나 배역이 바뀌면 덩달아 바뀌는 내용이 조금씩 생긴다. 그런 걸 알뜰히 챙겨 본다. 색다른 맛이다. 변하지 않아서 좋은 듯하고 사실은 조금씩 달라지는 마당극이어서 더 좋다.

 

모처럼 아이폰으로 전체 공연을 촬영했다. 두고두고 집에서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30분쯤 넘어갈 때 갑자기 전화기가 꺼졌다. 앞에 찍던 영상은 사라졌다. 다시 촬영했다. 15분짜리가 하나 찍혔고 15초짜리가 남았고 1분 12초짜리를 하나 건졌다. 파일이 붙어 있지 않아 참 그렇다. 이런 날도 있다. 2018년 8월에 산 아이폰에 처음 찍은 사진은 산청 동의보감촌 공연장이었다. 이 기계로 올해 마지막 영상을 찍을지 모르겠다. 만나고 헤어지는 건 인공의 한 조각이기도 하니까.

 

공연장 뒤에 선 모과나무에 파란 싹이 제법 자랐다. 객석 머리 위 나무에서는 초록이 그늘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이 흩날리기도 했다. 먼데 구제봉에서는 헹글라이드를 즐기는 봄꾼들이 하늘을 배회했다. 그 멀리서 마당극을 보기라도 하는 듯이.

 

<최참판댁 경사 났네> 198회 공연이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배우들에게, 아는 관객들에게 인사할 새도 없이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다. 뒷짐 진 양반 모양이지만 실은 허리를 보호하는 자세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카카오톡에 신호가 자꾸 울린다. 큰들 배우들이 안부를 전해 온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데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이다.

 

5월 1일 일요일엔 <최참판댁 경사 났네> 200회 공연을 하게 된다. 벌써부터 설렌다. 200회를 이어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땀방울이 흘렀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관객이 울고 웃었을까. 200회 가운데 나는 몇 번이나 보았을까. 앞으로 이 마당극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이런 저런 생각의 모자이크를 붙여 나가다 보면 허리 아픈 줄도 모르게 된다. 명약이다.

 

2022. 4. 17.(일)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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