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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참 기분 좋다

by 이우기, yiwoogi 2021. 12. 21.

<참 기분 좋다>

 

극단 큰들이 2021년 한 해 동안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eun.deul)에 올린 사진을 모조리 내려 받았다. 내 마음대로 어디로 퍼 나를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돈 벌 것도 아니어서 뭐라고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 정도 믿음은 있다. 352장이다. 평균으로 치면 설, 추석 연휴 빼고 거의 하루에 1장 꼴이다. 큰들은 그만큼 그들의 소식을 열심히 알려 주었다. 궁금한 사람에게는 궁금증을 풀어주고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그 사진을 모아서 작은 사진첩을 만들었다. 100쪽이다. 처음에는 이럴 생각이 없었다. 그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까 궁리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달력은 지난해에 한 번 만들어 봤으니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보자 싶은 것이다. 큰들 탄생에서부터 최근까지 사진을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아서 초대형 사진첩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으나 그건 역부족이었다. 먼저 손에 들어온 사진을 사진 찍은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문제가 있었다. ‘퍼블로그’(https://www.publog.co.kr)라고 하는 아주 괜찮은 회사에서 미리 마련해 놓은 빵틀에 사진을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날짜순으로 편집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100쪽 짜리 사진첩의 3분의 1쯤 진행하다가 생각을 단순하게 하기로 했다. 어디 팔 것도 아니고 전시회할 것도 아니잖은가. 크게 한 달 단위로 묶고 그 안에 들어가는 사진은 크기에 따라 대강 나누어 묶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일에 속도가 붙었다. 마음먹은 게 금요일 저녁이고 편집 완료한 게 토요일 저녁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사진첩에 들어간 200장 가운데 화질이 괜찮은 사진은 서너 장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솔직하게 말하면 페이스북에서 내려받은 사진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몇 장이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갖고 있던 사진 몇 장은 꼭 넣어야 했다. 화질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얼굴을 알아볼 정도면 되지 않겠나 여기기로 했다. 이때도 어김없이 이렇게 생각했다. ‘팔 것도 아니고 전시회할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검사받을 것도 아니다.’

 

토요일 저녁 11시 넘어 편집을 완성한 뒤 주문까지 완료했다. 컴퓨터 끄고 불 끄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불 끄고 드러누우니 다시금 놓친 부분이 생각났다. 주문 취소하고 카드결제 취소한 뒤 다시 수정했다. 수정한 파일을 저장했다. 표지는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바뀐 것이다. 나의 유난스러움을 아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요일 맑은 정신으로 한 번 더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에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오후 늦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 그런데 여기저기 생각지도 못한 허점이 너무 많이 드러나 보였다. 스스로 실망했다. 애초에 꿈에 그리던 그림이 아니었다. 꼭 들어가야 할 사진을 놓친 것 같았다. 망설였다. 처음부터 다시 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포기할 것인가. 한참 고민하다가 그대로 가기로 했다. 다시 한들 더 잘할 자신이 없었고, 포기하자니 지금까지 이뤄놓은 게 아까웠다. ‘내년에 더 잘하지 뭐’ 이런 생각도 했다. 때로는 단순한 게 일을 저지르는 지름길이다.

 

그동안 큰들 페이스북에는 이런 소식이 올라왔다.

첫째 공연 연습하는 장면이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꼬박꼬박 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나가는 바람에 그때마다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호흡을 맞춰 보는 것이다. 공연장에 가서 다시 연습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찔레꽃>이라는 새 작품은 아주 오랫동안 연습한 듯했다. 12월 2일 저녁에 동의보감촌 주제관 실내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다. 이 작품은 언제 처음 공연할지 몰라 두고두고 연습을 이어가야 할 작품이다. 궁금해 죽겠다.

 

둘째 가족들 기념일 잔치하며 웃는 얼굴이다. 어른 단원은 35명이다. 큰들은 멀리, 가까이 공연을 다니는 바쁜 중에도 단원들 생일은 꼭 챙긴다. 단원들 입단 기념일도 챙긴다. 누가 언제 들어왔는지 기억했다가 다함께 축하하는 것이다. 평균으로 치면 한 달에 여섯 번씩 기념일이 다가온다. 조촐하면서도 의미 있고 풍성하게 잔치를 벌인다. 큰들은 가족의 기념일을 함께하며 사랑과 기쁨을 부풀리고 그렇게 커진 희망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건너가는 것 같다. 큰들 페이스북만 열심히 따라가면 누가 언제 입단했고 언제 생일인지 대충 알 수 있다.

 

셋째 큰들 마당극 마을에서 함께 사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다. 부모와 함께 마당극 마을에서 사는 아이도 있고 엄마 직장 따라 놀러오는 아이도 있는데 대략 여남은 명이다. 누가 누구의 아이인지 몇 번 이야기 들은 적 있는데 잘 외워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에게는 모두가 삼촌이고 이모이다. 온 마을 사람이 함께 아이를 맑고 밝고 씩씩하게 키운다. 공동육아에서는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다.

 

표지 사진은,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장면이다. 산불 난 건 아니다.

 

넷째 마당극 마을 꾸미며 일하는 단원들이다. 마당극 마을 가꾸는 일에는 모두 나선다. 공연이 없는 날일 터이다.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지심을 메고 오이를 키우고 방울토마토를 따고 알밤을 줍는 단원들 표정이 밝다. 어디에선가 기증한 국화 모종 수천 그루를 심은 날도 있다. 애써 심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는 일도 있다. 그러면 다시 심는다(유튜브 참조). 이럴 때 큰들 가족들 표정을 보면 참 즐겁고 유쾌하고 신난다. 보는 사람이 덩달아 행복해진다. 신기한 일도 다 있지. 일하면서 즐겁다니.

 

다섯째 농사짓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큰들은 마당극 마을 어귀에서 벼농사를 짓는다. 거기서 생산하는 쌀만으로는 그 많은 식구가 한 해 먹고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쌀은 후원회원에게 한 줌씩 보내거나 술을 담가 가끔 방문하는 후원회원이나 손님들을 대접할 것이다. 농사 팀장과 듬직한 사무국 직원들이 농사짓는 그림은 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흐뭇하다.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간장, 매실을 담그고 딸기잼을 만들고 고추 부각을 만드는 것은 농사이기도 하고 후원회원을 위한 마음의 준비이기도 할 것이다. 김장도 농사에 포함된다고 할까.

 

맨 앞에 놓은 사진이다. 얼굴이 희미하지만 다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의 웃음을 느낄 수 있다. 건담 손에 꽃도 보인다.

 

여섯째 공연하러 갈 때의 설렘과 공연 마치고 돌아올 때의 보람도 가득하다. 큰들은 배우들이 공연하러 갈 때 단원들이 몰려나와 소품을 함께 실어주고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며 가는 길 오는 길 중간 중간 먹을 간식도 알뜰히 챙겨준다. 차 안에서 간식을 들고 찍은 사진이나, 떠나는 차 안에서 바깥에서 손 흔드는 단원을 찍은 사진을 자주 보게 된다. 언제 어디에 있든 튼튼한 밧줄 같은 텔레파시가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공동체에겐 매우 중요한 정신적 교감일 터이다.

 

일곱째 공연 마친 뒤 기념촬영도 곧잘 한다. 코로나 때문에 일반 관객과 함께 사진 찍는 일은 안 한다. 대신 그날 온 손님 가운데 꼭 사진 한 장 남겨야 할 분이 있으면 배우들이 분장을 지우기 전에 한두 장 찍는다. <오작교 아리랑> 200회를 공연한 날에도 사진을 찍었더라. 12월 17일 진주 관봉초등학교에서 올해 마지막으로 <효자전>을 공연한 날에도 멋지게 기념촬영했다. 그런 사진 속 배우들의 표정에는 만족감과 안도감이 가득하다. 보람과 긍지도 느낄 수 있다.

 

맨 마지막 사진이다. 한 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들의 기쁨과 즐거움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다.

여덟째 마당극 이외의 다른 공연장에 갔을 때에도 궁금한 사람들에게 소식 전하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배우로 분장할 때와는 사뭇 다른 복장(가령 농악복장)으로 환하게 웃으며 흰 이를 드러내는 단원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배우뿐만 아니라 사무국 직원들도 함께 한다. 사무국 직원들도 풍물놀이 같은 건 기본으로 익히고 있는가 보다.

 

아홉째 마당극 마을의 소중한 가족인 개와 고양이도 보여준다. 하양이, 까망이 같은 정겹고 쉬운 이름을 붙인 이 동물 가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떻게 키우는지, 손님이 가도 짖지 않는다. 멀리 있다가도 휘파람을 불면 달려온다. 배가 고프면 아양을 부리며 들러붙는다. 제 할 일이 있으면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 가는 고집도 있더라. 그런 동물 가족을 큰들 페이스북에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열째 마을의 수호신 같은 건담과 마을의 천사 같은 꽃사슴 사진이다. 건담은 완사 큰들 시절에 만든 것을 2019년 이사할 때 가져 간 것이다. 이듬해 모진 바람에 쓰러졌다. 그것을 고이 간직했다가 최근 몇 달 동안 모든 단원이 달라붙어 수리했다. 새로운 탄생이다. 전쟁 로봇 건담은 손에 꽃을 들었다. 이 꽃을 누구에게 주고 싶어 할까. 꽃사슴은 마당극 마을 식당건물 맞은편 언덕배기에 우뚝 서 있다. 먼데 하늘을 바라보는 꽃사슴 뿔을 보노라면 누구든 꿈을 꾸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은 꿈, 건강해지고 싶은 꿈, 내 곁에 있는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 우리 것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다짐 같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중간에 들어가는 사진은 크기가 대중없다. 어쩌다 보니 얼굴이 잘린 단원도 많다. 미안하다.

 

열한째 설과 추석이 다가오면 재정사업을 하는데 그런 이야기도 나온다. 멸치 선물 세트를 포장하는 단원들을 만난다. 하얀 모자를 쓰고 나란히 앉아 멸치 한 마리 한 마리 가지런히 재워넣는 단원을 보면 엄숙하고 진지하다. 아니다. 사진 속 그들은 즐겁게 노래하며 농담을 나누며 그렇게 일한다. 일도 놀이이고 공연도 놀이이다. 삶이 놀이이다. 즐겁고 행복한 놀이이다. 그런 놀이의 한 장면을 부끄럽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게 솔직하게 보여준다. 큰들은 그러하다.

 

큰들 페이스북에는 볼거리가 정말 미치도록 많다. 1년 동안 올린 사진이 350여 장이라고 해도 한 장 한 장에 담긴 의미와 추억은 수백, 수천 장이다. 그 속에 담긴 웃음소리는 수백만 번이다. 하나하나 더듬다 보면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석 달도 갈 것이다. 그렇다. 나는 석 달을 즐겁게 지나기 위해 이 작업을 스스로 했다. 공연 없는 겨울을 나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다. 그것을 해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사진첩을 받았다. 기쁘지 아니할 것인가. 참 기쁘다. 아내가 한마디한다. “이것 큰들도 줘야 하잖아요?” “네~!” 그래서 세상에 두 권뿐인 사진책이 되었다. 

 

2021. 12. 21.(화)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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