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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건담

by 이우기, yiwoogi 2021. 11. 20.

<건담>

 

큰들 산청 마당극마을을 다녀왔다. 다녀왔다는 말은 민망하다. 아주 잠깐 들렀다는 게 맞겠다. 새로 세운 건담을 보고 싶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린 그림도 궁금했다. 10분 정도 둘러보고 돌아왔다.

 

건담은 완사 큰들 시절에 만든 것을 산청 마당극마을로 갖고 왔는데 모진 태풍에 쓰러졌다. 최근 3개월 동안 여러 단원이 달라붙어 수리하고 색칠했다고 들었다.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예 폐기처분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큰들은 늘 내 생각과 상상 너머에 산다. 건담을 ‘손님의 집’(게스트하우스) 앞에 세웠다. 손님의 집은 ‘로온의 집’이다. 로온은 큰들을 4번이나 일본으로 초청하여 공연하게 해준 문화단체이다. 그 우정을 기리는 뜻이라고 한다.

 

오후 3시 30분쯤 마당극마을에 가니 해가 천왕봉에 걸렸다. 햇살을 등지고 선 건담은 멋졌다. 지붕보다 키가 크다. 칼이나 총을 들었을 법한 건담은, 뜻밖에도 꽃을 들었다. 건담이 지키고자 하는 건 아름다운 지구,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이다. 발상의 전환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건담을 보고 자라는 큰들 아이들이 무엇을 상상할지, 이 건담을 보면서 사는 어른들은 장차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만하다.

 

 

건담은 건너편 언덕에 있는 사슴을 지키고자 한다. 건담은 마을을 쏘다니는 개와 고양이를 지켜줄 것이다. 건담은 마을 뒷산에 사는 검은등뻐꾸기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마당극마을에서 오순도순 모여 사는 큰들 가족과 눈인사 나누며 꽃향기를 뿜어줄 것이다. 간혹 찾아가는 손님들의 밝은 웃음을 들으며 건담도 쑥쑥 키가 커질 것 같다.

 

 

큰들은 2021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이라는 재미있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평소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던 마당극마을 주민 몇 분이 박춘우 무대미술감독에게서 그림을 배운 것이다. 무로하라 쿠미, 윤민서, 최샛별, 윤설 씨가 그림을 내걸었다. 박춘우 감독의 작품도 여럿이다. 작품은 마당극마을 돌담에 붙이듯 걸어놓았다. 걸 듯 붙였다고 할까. 마을을 가볍게 한 바퀴 돌면서 잠깐씩 발걸음을 멈추어 보기에 딱 좋다.

 

마당극마을에는 가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넋 놓고 그림을 보다 보면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는 것인지 자연이 만든 그림을 보는 것인지 헷갈릴 것이다. ‘마을 길 따라 가을 한 바퀴’라고 붙인 제목도 정겹고 소박하다. 11월 21일 내일까지 이틀 동안 전시한다 하니 한번 둘러볼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지 말 일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그렇다고 무의미한 나들이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박춘우 감독이 그린 큰 작품 하나만 보고 와도 본전은 하고 남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4시 30분부터 ‘피어라 청춘! 놀자 콘서트’(피자 콘서트)를 특별 프로그램으로 마련했다고 하는데, 진주에서 약속이 있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는 4시 45분쯤에는 열심히 노래하고 손뼉 치며 웃고 있을 것이다.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열리는 상설 마당극도 보았다. 이제 올해 공연은 내일 한 번 남았다고 한다. <남명>이 기다리고 있다. 내일은 여러 일이 겹쳐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동의보감촌 상설 마당극 관람은 오늘로써 마침표를 찍는다.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갈 때마다 일지를 적은 게 아니어서 총정리할 기회는 없겠다. 코로나19의 엄중함 속에서도 열심히, 무사히 공연해 준 큰들이 무한정 고맙다. 그런 큰들을 믿고 공연을 주최해 준 산청군도 무척 고맙다. 덕분에 올 한해도 유쾌하고 즐겁게, 그래서 아주 행복하게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2번 국도에는 차가 많았다. 시속 80km로 달려오는데 억새들이 햇살 사이로 손짓한다. 조심히 가라고, 내년에 또 오라고. 나는 웃었다.

 

2021. 11. 20.(토)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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