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전>
극단 큰들의 마당극 <효자전>을 보았습니다. 이 작품을 100번쯤 보았는데, 오늘도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이 어머니의 첫 제삿날이어서일까, 마침 오늘 아들 면회를 다녀와서일까, 알 수 없습니다. 자꾸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좀 난감했습니다.
어머니가 갑동이를 잡으러 달려나오는 장면, 갑동이 머리통을 때리며 '지랄한다'라고 말하는 장면, 갑동이 코를 비틀며 '쥐어 뜯어버릴라'라고 말하는 장면, 귀남에게 기둥 뿌리를 뽑아주는 장면, 귀남의 편지를 받고는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 글을 깨치지 못하여 '좀 읽어 주이소'하는 장면, 귀남에게 돈을 주기 위해 '약초라도 캐야겠다'고 말하는 장면, 귀남에게 돈을 주러 한양길을 달려가는 장면, 귀남에게 외면당하고 그 걸음으로 천릿길을 다시 내려오게 된 장면, 끝내 병을 얻어 입원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정말 그 어느 장면 하나라도 우리 어머니의 삶과 겹치지 않는 게 없었습니다. 그 속에 못난 자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장면은 겹치지 않았습니다. <효자전>에서는 어머니가 저승사자의 실수로 환생하는데, 현실에서 저에게는 그런 상황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걸 바란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죽다가 살아났다'는 어머니의 외침은, 극 속에서는 대반전이자 행복한 결말이지만, 저에게는 더 큰 아픔이자 아쉬움이고, 끝내 이뤄지지 못할 고통이었습니다.
천방지축 제 마음대로 노는 갑동이는 어릴 적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름대로는 범생이처럼 얌전하고 착한 척도 했지만 어머니의 골치를 썩이는 데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으니까요. 애매한 공부로 대학을 가겠다고 나선 저나, 기둥 뿌리 뽑아 들고 내의원 시험 치러 가는 귀남이도 저와 닮았다고 할까요. 철들고 나니 어머니는 계시지 않네요. 아닙니다. 아직 철은 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우리 아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면회 가서 만난 아들은 의젓하고 늠름해 보였지만 늘 부족해 보이고 불안해 보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갑동이 어머니처럼 귀남이 어머니처럼 무조건적 사랑을 끝없이 줄 수도 없습니다. 한양 천릿길을 돈꿰미 싸 들고 달려가듯 할 수도 없네요. 어정쩡하고 무능력하고 우유부단한 애비가 흐릿한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느낌이 마당극을 보는 내내 제 눈가에 어른거렸습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고 아들에겐 미안하다는 생각이 하염없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효자전>은 보고 또 보게 됩니다. 끊임없이 샘솟아 오르는 후회와 미련과 죄스러움과 미안함을 되새기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또 반성하게 됩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부모자식 간의 올바른 삶의 지침서요 교과서요 참고서입니다. 55년 평생 잘 몰랐던 바람직한 삶의 나침반이라고나 할까요. 내일 또 보러 갈 만큼 시간 여유가 저에게 주어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 해 뜨기 전에 집을 나서서 일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참 많습니다. 내일은 일요일이라서 오히려 다행입니다.
2021. 11. 6.(토)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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