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년 만의 야근>
저녁에 사무실 남아서 일한 지 백만 년은 된 듯하다. 실제 백만 년이야 됐겠는가마는, 아무튼 정시 퇴근을 철칙으로 여겨온 건 꽤 오래됐다. 해야 할 일 성격상 아침 7시 이전에 출근한다. 퇴근은 오후 5시에 한다.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하지 않는 근무형태를 유연근무라고 하는데, 유연근무자는 출근과 퇴근 때 내부 사이트에 들어가 단추를 눌러야 한다. 나는 요즘 출근은 6시 45분쯤, 퇴근은 5시 15분쯤 누른다.
오늘 저녁은 어쩌다가 사무실에서 볶음밥을 시켜 먹게 됐다. 이런 날에는 '아, 내 업무 처리 능력이 빵점이구나.'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주어지면 무엇부터 처리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반나절은 걸린다. 걸려오는 전화와 찾아오는 손님 덕분에 제목만 써놓은 원고가 하루종일 화면에 비치기도 한다. 오늘 저녁엔 작정을 하고 진도를 좀 뺐다. 밥값을 한 셈이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창밖이 요란하다. 바야흐로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태양 열기가 후끈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석양의 아름다움을 사진기에 담아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이런 장면을 본 것은 과연 얼마만일까. 백만 년 만일까. 하여, 나도 잠시 컴퓨터 자판을 외면한 채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백만 년 만에 야근이라는 것을 해보는데 이 정도 선물은 오히려 약과 아닌가. 놀라운 것은 사진 찍고 돌아서니 금세 깜깜해졌다는 사실이다.
2021. 7. 20.(화)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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