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주머니가 달려온다. 그 뒤에 초등학생 아들이 따른다. 뭐가 그리 급한가. 급하지, 그럼. 한쪽에서 두세 명이 걸어가면서 맞은편으로 손짓한다. 얼른 달려오라는 손짓이다. 그들도 줄을 선다. 줄줄이 사탕, 비엔나 소시지처럼 사람들이 잇따른다. 오후 2시에 시작하는 마당극을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려면 입장 시각인 1시 40분에는 줄을 서는 게 당연하지.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의자를 80개만 펼쳐놨기에 앉아서 보려면 서둘러야 하고 줄을 서야 한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간단한 절차를 거친 뒤 사람들은, 이제 관객이라고 해야겠지, 관객들은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야, 화장실부터 가자.” “아냐, 자리부터 잡아놓고 화장실 갔다 오자” “그러자~!” “빨리 가서 줄 서자.” 이런 대화를 들으면서도 나는 느긋하다. 나는 맨 나중에 들어가서 맨 뒤에 앉아서 볼 것이므로.
극단 큰들의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201회째 공연을 보는 마음은 흐뭇하고 기쁘고 설렌다. 코로나라는 상황 속에서 날씨가 조금 애매한데도 이렇게 많은 관객 분들이 순식간에 자리를 다 채워주니 흐뭇할 수밖에. 왔다 갔다 하면서 관객들을 챙기고 공연을 준비하는 큰들 배우들과 연출진들의 몸놀림을 보면 기쁘다. 무엇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기 한량없다. 설레기도 한다. 왠가. 오늘은 또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 (수십 번 보아온 나 같은 관객을) 놀라게 할지, 오늘은 또 어떤 멋진 대사와 몸동작으로 (처음 마당극을 보는 관객들을) 즐겁게 할지 기대하는 것은 곧 커다란 설렘이다.
공연 2팀이 만드는 <오작교 아리랑>은 1팀의 작품과 달라서 재미있고 같아서 더 재미있다. 같은 작품을 살짝살짝 바꿔놓은 대목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고, 이전에는 사무국 직원으로서 연기라고는 아예 하지 않을 것 같은 단원들의 환골탈태 변신이 재미있다.
지난해 큰들에 들어온 윤민서 씨와 김태광 씨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2팀 첫 공연에서 신인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던 배우들인데 어디로 갔을까. (민서 씨는 같은 날 오후 5시에 거제에서 열린 1팀 공연 사진에서 ‘발견’했다. 2팀에서 1팀으로 전근했다.) 대신 1팀에서 활약하다가 사무국 일을 챙기느라 마당에서 보이지 않던 박정민 씨가 다시 등장했다. 그의 등장만으로 마당이 꽉 차는 느낌이다. 정민 씨는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며 살아 펄떡이던 커다란 물고기를 순식간에 횟감으로 만드는 신공을 보여준다. 이 장면 보고 또 봐도 웃기고 재미있다. 얼마 전 큰들 단원이 된 이정우 씨도 보인다. 첫 무대인 정우 씨가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보았다. 그는 분명 속으로는 긴장하고 조마조마하였을 터인데 겉으로는 태연자약하였다. 배우의 자질이란 이런 것 아닐까.
열심히 공연을 보는데 뒤통수가 좀 가렵다. 돌아보니 열댓 명 관객들이 객석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서서 공연을 보고 있다. 뒷짐을 진 사람, 팔짱을 낀 사람들이 소리 내어 웃다가 손뼉을 친다. 얼른 코로나 상황이 끝나서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서 환호성 지르며 마당극 관람할 날이 와야 할 텐데. 중간에 급하게 볼일을 보고 와서는 나도 객석 바깥에 서서 남은 장면을 보았다. 아, 천막이 있으니 버나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장면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그것은 천막 안에 앉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천막의 처마 끝이 버나를 볼 수 없게 만든다. 할 수 없지. 땡볕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서 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큰들 마당극을 여러 번 보는데, 볼 때마다 다른 게 있다. 바로 관객의 반응이다. 관객들은 스스로 찾아온 분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보다가 재미없거나 바쁘면 자리를 뜨고 잠시 동안만 보려고 앉았는데 재미있으면 그대로 눌러앉는다. 그런 관객이 보이는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큰들이 파 놓은 웃음의 함정과 눈물의 올가미에는 그대로 걸려든다. 웃고 손뼉 치다가 손등으로 눈시울을 훔치게 된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날 공연의 관객들은, 만약 관객의 자격(반응)을 점수로 매길 수 있다면, 100점이다. 어찌나 잘 웃던지, 손뼉도 어떻게나 열심히 치던지, 고함도 지르고, 중간 중간 킥킥거리며 공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걸 보고 느끼는 나도 덩달아 기쁘고 즐겁고 유쾌하였다. 손뼉을 얼마나 열심히 쳤던지 공연 끝난 뒤 손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 화장실 달려가서 찬물로 씻고 나서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관객들의 반응이 이와 같으면 분명 배우들도 더 신명나게 놀 것이다. 각본대로 움직이고 대사를 머릿속에서 암기하면서도 관객들의 반응에 저절로 신이 나서 더 재미있게 즉흥 대사, 즉흥 연기(애드리브)를 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도 전해진다. 그러면 관객들은 더 흥분하게 된다.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6월 12일 201회 <오작교 아리랑>은 그런 공연이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1. 6. 12.(토)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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