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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박 서방도 되고 이 서방도 되던

by 이우기, yiwoogi 2021. 7. 5.

<박 서방도 되고 이 서방도 되던>

 

“여러분, 코로나 시기에 어떻게 잘 지내셨십니까? 잘 지냈는가 보네요. 다행이네예. 예, 혹시나 코로나로 가슴이 답답하고 그랬다면은 오늘 저희들 공연 보시면서 시원~하게 한번 날려 보입시다. 어때요? 좋아요? 네. 오늘 공연을 더욱 더 재미있게 만들려고 저희들이 집도 한 채 짓고, 요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남았십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실랍니까? 여기가 천오백 명이 들어와서 꽉 차는 공연장인데 거리두기 규정상 삼백 분만 특별히 모싰십니다. 제 말은, 여기 오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섯 사람 몫을 해야 오늘 공연이 재미가 있겠십니다. 그래서 웃을 때도 다섯 배는 크고 길~게 웃어야 합니다. 박수를 칠 때도 다섯 배는 크고 길~게 쳐야 됩니다. 박수를 어떻게 친다고예?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도 이렇게 호흡이 잘 맞네예. 오늘 한 시간 동안 저희들과 신~나게 한 판 놀아봅시다.”

 

다섯 사람 몫을 해야 하는 관객들

 

2021년 7월 2일 저녁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극단 큰들의 <최참판댁 경사 났네> 공연 시작 전 김상문 배우가 관객들과 나눈 대화이다. 그 사이사이 관객들은 길고 큰 손뼉과 함성으로 화답했음은 물론이다. 이 대사가 귀에 쟁쟁거리고 그 장면 장면들이 눈에 아른거려 나는 오랜만에 길고 긴 마당극 관람 후기를 써 본다.

 

예술회관 같은 실내 공연을 보러 가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당연히 동영상 촬영도 못하게 한다. 공연하는 배우에게나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 방해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녹음을 한다. 녹음을 하면 좋은 점이 있다. 라디오 연속극 듣듯이 하면서 장면 장면들을 떠올리는 재미가 있다. 대사가 완전하게 기록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전체 흐름과 내용을 재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긴, 큰들의 마당극 대사들은 거의 대부분 기억하고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큰들은 부분 부분의 대사를 느닷없이 예고 없이 바꾸기 때문에 녹음이라도 해 놓으면 좋은 점이 아주 많다. 즉흥 연기도 심심찮게 나오니까 말이다. 

 

천재일우의 기회

 

6월말과 7월초에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실내에서 잇따라 볼 천재일우의 기회가 생겼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필설로 형언할 수 없다’라는 고색창연한 표현을 빌려올 수도 있다. 6월 29일 저녁 7시에는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위대한 스승, 다시 세상을 깨우다-마당극 남명>을 공연하게 됐다. 코로나19 탓에 100명 한정하여 볼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와 산청군이 주최하고, 큰들문화예술센터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공연이었다. 7월 2일 저녁 7시 30분에는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공연하게 됐다.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2021 여름공연예술축제 네 개의 시선’이라는 기획 초청 공연을 하게 됐는데 네 작품 가운데 큰들의 마당극이 포함된 것이다.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196번째 공연으로 올해 들어서는 첫 공연이었다. 해마다 3월이면 하동에서 시작하던 이 작품 공연이 올해는 어쩐 일인지 한 번도 없었다. 하동군에서 지원하여 열리는 공연인데 하동군에 무슨 사정이 생겼나 보다 싶었다. 예년처럼 3월이나 4월에 공연을 시작했다면 6월말이나 7월초이면 200회를 넘어갈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공연을 할지 궁금하고 걱정하고 기대하던 차에 이렇게 실내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랴. 더군다나 2018년부터 30회 가량 이 작품을 보아온 나이지만 실내 공연으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하던 작품 아닌가. 얼른 맨 앞자리를 예약했다.

 

기다리는 마음

 

산청에서 열리는 <남명>도 나에겐 큰 관심거리였다. 요즘 특히 남명과 관련한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던 차이다. ≪남명집≫을 정독할 수도 없고 다양한 종류의 남명 관련 자료를 일람하기에도 시간이 벅차던 터라 마당극으로라도 남명 존경하는 마음을 다잡아 보고자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나던 것이었다. 김영기 경상국립대 명예교수님께서 ‘남명사랑’을 창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시고, 때마침 에세이집을 펴내는 조구호 선배님의 글에서도 남명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고, 한동안 소식이 없던 남명학연구원의 <선비문화>(제37호)도 그사이에 배달돼 오지 않았던가. 산청군청에 전화를 걸어 우선 한 자리를 예약했다. 자리 배치는 현장에서 하게 될 것이었다.

 

이 두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을 나는 6월 24일자 페이스북에 적었다. 제목도 ‘기다리는 마음’이다. 글 내용은 이러하다. “6월 28일 부친다는 극단 큰들표 딸기잼과 박춘우 화백의 솜씨가 담긴 부채를 기다린다. 6월 29일 산청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마당극 <남명>을 기다린다. 7월 2일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기다린다. 이 마당극은 올해는 처음인 데다 실내 공연으로서도 처음이다. 이 공연 끝난 뒤 진주 큰들 ‘공간 오늘’에서 마련될 뒤풀이도 기다린다. 극단 큰들이 새로 만드는 마당극, 김안순 씨가 대본을 쓰고 류연람 씨가 연출을 맡은 작품을 기다린다(제목은 아직 미정). 기다리는 게 이렇게 많은 삶은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큰들 마당극을 기다리는 와중에 큰들에서 만들어 파는 딸기잼과 박춘우 감독님의 부채도 기다리게 된 것이었다. 새 작품에 대한 기대가 가득 부풀어 오른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도 보고 싶던 <남명>이건만

 

운명의 장난은 늘 얄궂다. ‘마당극 한 편 관람하는 것 가지고 운명의 장난을 논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누군가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일생일대의 그 무엇’이라고 말하기에는 뭣하지만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6월 29일과 7월 2일 저녁은 오로지 큰들의 마당극 공연에 맞추었던 것이다. 모든 약속을 폐기하고(실제로는 처음엔 아무 약속도 없었다. 밀려드는 약속을 모두 뿌리쳤으니까) 이날을 기다렸다. 운명의 장난은 6월 29일 점심시간에 꿈틀꿈틀 내 운명으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기어왔다고나 할까. 점심을 같이 먹던 4명이 저녁 술자리를 순간적으로 약속을 잡았고 흔히 이르는 “이 멤버 이대로”가 되어버렸다. 나는 저항했다. 선약이 있다, 그건 마당극 관람이다, 무려 예약도 했다 등등 갖가지 이유를 들이댔다. 하지만 나는 졌다. 저녁에 산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오후 3시쯤 산청군청으로 전화하여 예약을 취소했다. 몹시 쓰라렸다. 매우 슬펐다. 따라서 나는 저녁 시간에 술과 안주를 좀 심하게 달렸다. 달릴 때는 즐겁고 유쾌하게 달리는 게 내 특기 아니던가. 중간 중간 시계를 보면서 ‘지금쯤 우물굿을 하겠구나, 지금쯤 유생들이 노래를 부르겠구나, 지금쯤 5분 사또가 나왔겠구나, 지금쯤…’ 하다가 어느새 ‘지금쯤 끝났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쓰라리고 슬픈 감정을 다독이고 싶었다. 나에게 ‘마당극 그게 뭐라고?’라고 말하지는 마시라.

 

듣자 하니 이날 마당극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야외에서 보는 마당극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마당극 <남명>을 나는 2019년 9월 10일 사천문화예술회관에서 아들과 함께 본 적 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요, 특별출연한 무예시범단의 화려한 칼부림도 눈여겨본 적 있다. 조명이 켜졌다가 꺼졌다가 하는 도술도 느꼈고, 특히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뻘게지던 조명을 섬칫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날 공연은 그보다 한참 더 멋지고 의미 있었다는 후문을 나중에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뒤에라도 들으면 더 마음이 아프다. 어쩔 수 없다. 7월 2일을 더욱 간절하고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아들의 휴가

 

군대 가 있는 아들이 7월 1일 휴가를 나왔다. 군대에서 나오면 사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하루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그다음 날 저녁엔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 게 딱 좋다. 하지만 나에게는 7월 2일 금요일은 이미 저당잡힌 날이다. 아들과 아내에게 휴가 첫날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고 다행하게도, 천만 다행이게도 둘 다 좋다고 하였다. 우리는 ‘하연옥’으로 가서 맛있게 먹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진주 큰들의 ‘공간 오늘’에 갔다. 맥주 한 잔이 고프던 것이었다. 이웃사촌 겸 큰들 후원회원 한 분도 왔다. 넷이서 한 병만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다 있지. 큰들 단원들이 갑자기 우르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이게 웬일이야’ 생각하고 있는데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 설치하고 연습하다가 산청 가는 길에 들른 단원들이다.”라고 한다. 익히 우리 가족을 아는 단원들이 너도나도 인사를 건넨다. 예정에 없던 안주가 늘어나 한 병 더 마시고 일어섰다. 아홉 시 반은 되었을 것이다. 배부르고 기쁘고 즐겁던 밤이다. 아들마저 함께하니 더 아니 좋겠는가.

 

하루 종일 설레던 7월 2일

 

드디어 7월 2일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던 것인데, 혹시 봄 타는 것 같은, 아니 가을 타는 것 같은 내 마음이 누구에게라도 들킬세라 나는 말조심 입 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6월 29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잖은가. 하루 종일 최대한 집중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모름지기 밥벌이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시범보이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아내를 태우고 집에 갔다가 옷 갈아입고 다시 아내가 나를 태우고 예술회관으로 갔다. 저녁은 아내가 얻어온 샌드위치 반 조작으로 때웠다. 도착하니 6시 30분 지난 시각이다. 좌석표를 받아 대공연장 입구로 갔다. 벌써 몇몇 분들이 공연장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 큰들 단원인 이진관 씨, 정태국 씨, 정용철 씨와 함께 바깥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젊은 단원들도 바람을 쏘이러 나왔다. 빼꼼 열린 대공연장을 흘깃 바라보니 무대 위에 새로 지었다는 기와집이 보였다.

 

큰들은 7월 2일 저녁 7시 30분부터 1시간 남짓 공연하는 단 1회 공연을 위해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 하동 최참판댁에서 공연하던 작품인 만큼 ‘최참판댁’이라는 느낌을 선사하기 위해 무대 한쪽에 기와집을 지은 것이다. 물론 실제 집은 아니다. 무대 소품으로 만든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최참판댁’이라는 공간적 개념이 무척 중요하므로 큰 공을 들이고 품을 팔아서 집을 만든 것이다. 동네 골목길 느낌도 나도록 대나무도 세웠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고 했다. 큰들의 엄청난 노력들을 보노라면 그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공연을 준비하고 얼마나 최선을 다하여 관객을 맞이하는지 알 수 있다. 드디어 관객이 입장하는 시간이 되었다. YWCA 전 사무총장이신 박영선 님도 부군과 함께 오셨다. 공연장에서 뵌 것이 여러 번이다. 나와 만나기로 한 강경향 경상국립대 팀장님은 사정이 생겨서 못 오게 됐다.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회관 무대에 집을 한 채 짓고

 

큰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사전 예약은 매진되었다.”라고 안내했다. 현장 구입은 가능하다는 말에서 나는 묘하고 야릇한 ‘긍지’ 같은 것을 느꼈다. 그에 앞서 큰들은 7월 1일 오전 8시경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경남문화예술회관 무대 위에 기와집 한 채 지었습니다ㅎㅎ 누가요? 우리 박춘우 무대미술감독과 여러 배우들이 힘을 합쳐서요^^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앞마당에서 하는 것과 또 다른 무대~ 준비 단단히 해서 내일 뵐게요^^”라고 올렸었다. 관객을 유혹하는 글귀 하나하나에 자부심이 묻어난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선수다. 큰들은 공연을 앞두고 마당에서 또는 무대에서 연습하는 장면을 정말 감칠맛 날 정도로 올려주곤 한다. 나처럼 ‘안광이 지배를 철하는’ 사람이야 딱 보면 알지만 그렇지 아니한 분들은 정말 궁금증이 병이 될 정도로 해준다. 이런 것마저 큰들의 매력이다.

 

하동군 최참판댁은 진주에서 가자면 1시간 20분 걸린다. 좀 세게 달리면 1시간 안에도 갈 수 있으나 그러자면 영락없이 속도위반 딱지를 받게 된다. 나는 3년 동안 서른 번가량 갔다 왔다 하는 동안 딱지를 꼭 한 번 받았다. 하동은 이른바 ‘슬로시티’다. 이 느린 마을을 갈 때는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더 한 뒤에 출발해야 한다. 시속 80km로 달려도 될 만한 길을 60km로 묶어 놓았다. 심지어 2010년 이후에 새로 닦은 도로를 2차로로 해 놓았다. 느리게 천천히 조심조심 가자는 뜻 아닌가. 그런 하동을 3년 동안 서른 번쯤 갔다 왔다. 가는 길과 오는 길, 공연장과 그 주변을 훤히 꿰뚫을 만하다. 고샅고샅도 눈에 선하고 어떤 가게는 주인장과 그 부인 얼굴까지 기억난다. 하지만 올해는 단 한 번도 못 갔다. 공연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공적 사적 일이 바쁘기도 한 탓이다. 정감 막걸리 한 잔도 못 먹어보고 반년을 보낸 것이 참 이채롭기조차 하다.

 

최참판댁 안채와 바깥채, 행랑채를 비롯하여 마당극이 처음 시작되는 용이네까지 그대로 옮겨놓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여기가 소설 ≪토지≫의 무대이자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의 무대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김상문 배우가 뛰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친다. 관객 300명을 초대했단다. 300명이면 경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전체 객석의 5분의 1 수준이므로, 오늘 관객들은 한 사람이 다섯 사람의 몫만큼 웃고 손뼉을 치라고 부추긴다. 환호와 손뼉이 우레처럼 파도처럼 몰려왔다가 밀려간다. 공연을 다 본 것 같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끝났다.

 

기타 등등이 동시에 여러 명?

 

배우들은 무대 위를 종횡무진 달렸다. 자빠지고 쓰러지고 뒤집어졌다. 고함치고 울고 웃었다. 태극기를 흔들고 ‘신독립군가’를 불렀다. 관객 배우도 느닷없이 무대에 올라 큰 웃음을 안겨 주었다. 관객 배우가 올라올 때는 코로나19 백신 맞은 이야기가 잠시 언급되어 상황의 엄중함을 환기시켰다. 관객 배우는 처음에는 ‘기타 등등’이었다가 나중에는 최서희의 남편 역할이었다가 또 나중에는 다른 무엇이 된다. 맨 처음 ‘기타 등등’이었을 때 조준구가 묻는다. “등등아, 날도 더운데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어 놨느냐?” “….” 뭐라고 대답하는 것 같은데 잘 안 들린다. 조준구가 부탁한다. “대답은 잘 했다만, 소리가 좀 작다. 내가 질문을 하면 큰 소리로 대답하거라!” 그러자 기타 등등이 “옙!”이라고 대답한다. 조준구가 “지금 말고!”라고 자른다. 짧은 순간 티키타카가 이뤄진다. 다시 조준구가 묻는다. “등등아, 날도 더운데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어 놨느냐?” 어럽쇼. 그런데 이번에는 대답하는 소리가 여러 명이다. 기타 등등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저도 한 자리 끼고 싶었는지 합창으로 대답한다. 참 재미있는 관객분들이다.

 

박 서방이 곧 이 서방

 

그보다 앞서 김상문 배우와 이인근 배우가 버나놀이로 흥을 돋우고 이어 마을 사람들이 농악놀이로 일 년 농사를 시작한다. 바람둥이 임이네가 호리병에 막걸리를 갖고 와서는 객석을 향하여 “아이고, 박 서방. 어디 갔다 오는 가베요?”라고 묻는다. 관객과 접촉을 시도한다. 아, 그런데 임이네의 눈길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혹시 아닌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앉은 사람은 ‘나 말고 너~!’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코로나 때문에 술잔을 주고받는 장면까지 연출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졸지에 ‘박 서방’이 되었다. 물론 대사도 몸짓도 없는 ‘행인1’보다도 못한 순간적인 배역이었지만 말이다. 하동에서 공연 볼 때 박 서방으로 지목된 관객들은 빈 술잔으로 원샷을 하고 ‘캬~!’ 하면서 트림도 곧잘 했더랬다. 0.1초 만에 그런 장면을 떠올리고는 나도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하는가 싶었는데 그런 장면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마당극 진행에 0.01% 정도는 기여했다.

 

조준구가 등장했다. 최참판댁 그 많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객석에 가득 앉은 관객들은 최참판댁의 머슴들이다. 조준구가 머슴들을 점호한다. “여기, 김 서방, 이 서방, 박 서방…”라고 하면서 객석 왼쪽 구석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한 명 한 명 짚어 나간다. 나는 ‘이 서방’이 되었다. 조금 전까지 ‘박 서방’이었는데 이제는 ‘이 서방’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 서방이면 어떻고 박 서방이면 저떻고 할 게 뭔가. 공연 시작 전에 진관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때 “내 좌석 위치가 꼭 최참판댁 머슴들 가운데 이 서방 위치쯤 될 것 같다.”라고 농담으로 말한 게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재미있다.

 

집중 조명 받는, 포탄 맞은 홍씨 머리

 

실내 공연이다 보니 조명의 장난도 만만찮았다. 금광을 캐던 조준구와 그의 아내 홍씨가 산 하나를 포탄으로 터뜨려 버리다가 아차 실수를 하여 홍씨 머리에서 포탄이 터졌다. 단정하게 빗었던 머리에 포탄이 터졌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 장면을 예술회관 대공연장의 가장 밝고 강한 조명이 비춰준다. 홍씨가 주인공이 되었다. 아차, 그때 폭파된 금광에서 조준구가 억지로 무엇이라도 찾으려고 했던 게 있었는데, 하동 공연에서는 빈 깡통이라도 찾아내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그것마저 찾지 못했다. 그만큼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뜻일까. 그 깡통은 맨 나중에 공연 끝난 뒤 인사 나눌 때 들고 나온다. 깡통을 찬 알거지가 된 조준구와 홍씨도 관객의 박수를 받는다. 그만큼 악역을 잘 소화했다는 뜻이다.

 

안개 자욱하던 일제강점기

 

조명의 화려한 기술은 독립군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더 멋지게 발휘된다. 독립군이 위장술을 펼치던 장면, 태극기를 휘날리며 신독립군가를 부르던 장면, 등등동지가 일본군 병사를 맞히는 장면 등에서 조명의 역할은 크게 ‘조명된다’. 희뿌연 안개가 무대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면들도 기억할 만하다. 야외에서라면 바람에 흩날려가고 말았을 안개는 무대 위와 객석을 뿌옇게 만들어 줌으로써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불쌍한 국민들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 준다. 미처 다 걷히지 않은 안개는 태극기 휘날리며 만세를 부를 때에는 희망의 상징처럼 보인다. 실내 공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장면이다.

 

귀한 장면의 최고를 꼽자면 그것은 다른 데 있다. 독립군이 어렵게 어렵게 군자금을 모아 태극기를 갖고 왔다. 대한의 상징이다. 자, 하동 공연에서는 이 태극기를 관객들에게 나눠준다. 한 묶음씩 맨 앞에 앉은 관객에게 주면 뒤로 뒤로 전달 전달하여 순식간에 관객들 모두 태극기를 손에 쥔다. 그런데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객석은 그렇게 만만한 공간이 아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많은 관객들에게 태극기를 어떻게 나눠 줄 것인가?’라는 ‘쓸데없는’ 걱정에 휩싸였다. 배우들은 맨 앞줄에 앉은 관객에게만 태극기를 나눠주고 다시 무대로 올라가 버렸다. 그렇다면 맨 앞줄에 앉은 관객에게만 태극기를 나눠주고 공연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란 말인가?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

 

그 순간, 관객들은 자기 바로 옆 빈자리에 감춰져 있던 태극기를 발견한다. 거리두기 규정 때문에 객석 의자 하나에 관객이 앉고 그 옆 자리를 하나씩 비워두었는데 그 의자에 교묘하게 태극기를 감춰 두었던 것이다. 김상문 배우가 “천천히 나눠 주이소. 오늘은 우리 비밀 회합 장소가 너무 넓어서 독립군 두 명이 다 나눠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독립군들이 미리 와서 소독된 태극기를 옆 자리에 갖다 놨습니다. 잘 한 번 찾아 보이소.”라고 설명한다. 아! 불과 몇 초 만에 모든 관객이 저마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흔들기 시작한다.

 

맨 앞에 앉은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그 장면을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었다. 하나의 신명난 바람이었다. 하나의 분노한 파도였다. 그것은 큰들이 공들여 기획하고 마련한 관객과 배우의 합일의 경지였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렇게 늠름할 수 있을까. 이렇게 멋질 수가 있을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이 장면은 내가 꼽은 이번 공연의 최고 명장면이다. 객석 사이사이를 다니며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태극기를 꽂아 놓았을 단원들의 수고로움도 느껴졌다. 무대 쪽에서 객석을 향하여 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 두었더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만점 연기 박가온 어린이

 

어린 서희 역할을 하는 박가온 어린이의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린 서희는 대사가 그리 길지 않다. 어미 잃고 아비 잃어 천애의 고아가 된 서희 앞에 조준구와 홍씨가 나타나 재물을 가로채려고 계략을 꾸민다. 이때 “내 집에서 당장 나가시오!”라고 일갈하고, 조준구가 별채로 가려고 하자 “거긴 내 처소요!”라고 막아선다. 결국 조준구의 간계에 의하여 쫓겨가게 되었을 때는 “내 이 수모를 하나인들 잊을 줄 아느냐. 찢어죽이고 말려죽일 테다. 내 반드시 그리 할 게야!” 아주 표독스럽게 쏘아붙인다. 그러고서는 길상이 준비한 가마에 오른다. 이때 어린 서희는 어린 아이답지 않게 앙칼지고 표독스럽게 연기해야 한다. 부드럽고 여리게 연기하면 빵점이다. 그런 점에서 박가온 어린이의 이날 연기는 만점이다. 전혀 떨지 않고 마치 오랫동안 해 오던 연기를 무심히 하는 듯하게, 침착하게 잘 했다. 하동군 악양초등학교 5학년 박가온 어린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공연이 끝났다. 손뼉이 그치지 않았다. 나도 열심히 쳤다. 준비한 만큼, 아니 준비한 것보다 훨씬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공연해 준 큰들을 향하여 손에 불이 나도록 손뼉을 쳤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진심으로 자랑스러운 큰들을 향하여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감동의 손뼉을 쳤다. 단 한 번의 공연을 위하여 며칠 동안, 아니 그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정성을 다한 그들에게 감사의 손뼉을 보냈다.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절을 하고 손을 흔드는 그들에게 마주 손 흔들어 주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이번 공연은 경남도문화예술회관이 기획하여 초청한 공연이다. 그런데, 느낌은? 정기공연 못지않았다. 여기저기서 아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익히 잘 알던 사람처럼 스스럼없고 배우와 관객의 쿵짝이 잘 맞아돌아가는 걸 보면, 1년에 한번씩 봐오던 정기공연을 펼친 것 같다. 130명 풍물놀이와 그 외 찬조출연 특별공연이 없었을 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300명만 초청했을 뿐 그 내실과 의미와 감동은 정기공연과 진배없었던 것이다. 한 단원의 부모는 말씀하셨단다. "예술회관에서 공연한다며? 풍물놀이도 하나?" 그렇지.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예술회관에서 공연하면 그건 응당 정기공연이어야 했으니까. 정기공연에는 당연히 130명 풍물놀이가 함께했으니까. 

 

200회를 향하여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올해 200회를 넘길 수 있을까. 하지 않아도 될 걱정과 하면 할수록 좋을 기대를 가득 안게 됐다. 긴 장마에 햇살을 만나듯, 긴 가뭄에 단비를 만나듯, 그렇게 마당극 한 편의 공연이 지나간 뒤에 까닭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듯한 흥분과 설렘과 감동을 안고, 나는 이현동 ‘공간 오늘’로 갔다. 막걸리 세 병 마시고 헤롱헤롱하여 12시쯤 집에 왔다. 귀한 분들을 몇 분 뵈었는데, 큰들을 중심으로 넓혀져 가는 귀한 인연의 바다를 장차 어찌해야 할지 사뭇 걱정된다. 참 행복한 걱정이다. 

 

2021. 7. 5.(월)

이우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