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님 집 옥상에서 거제 장어를 구워 먹었다. 거제 장어는 통영 장어와 이웃사촌일 텐데, 그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거제 기아자동차에 근무하는 동생 가로되 “이 장어는 지가 아나콘다인 줄 아나 봐!” 장조카가 불을 피우고 큰형수가 고기를 구웠다. 야외용 식탁에는 상추, 깻잎, 양파, 마늘, 생강, 파·상추 졸임 같은 푸성귀를 비롯하여 소주, 맥주, 음료수 따위로 가득했다. 붓고 마시고 떠들고 마시고 다시 붓고 마셨다. 돼지고기 목살까지 합류하였으나 고기는 석 점만 먹었다. 큰형님의 넉넉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자상함이 우리를 이끌고 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는 말짱하고 속은 부글부글했다. 늘 이 모양이다. 6월 4일 건강진단에서 위와 대장에서 조직을 떼어내 검사했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석류동굴 종유석처럼 용종이 발견되어 그날로 입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위와 장에 큰 문제가 있어서 한 달 치 또는 두 달 치 약을 처방받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아무튼 그쪽은 괜찮다. 하지만 피검사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감마 지티피, 콜레스테롤, 또 무슨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을 많이 벗어난 것이다. 원인은 술과 안주다. 그런 통보를 받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알약 한 달 치를 처방받은 날 저녁 큰형님 댁 옥상에서 그런 시간을 만끽한 것이다. 비록 몸에는 조금 안 좋겠지만 즐겁게 유쾌하게 즐기고 놀면 그것이 곧 보약이라는 돼먹지 못한 철학을 신봉하는 까닭이다.
오전 내도록 화장실 들락거리는데 큰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당극 보러 같이 가잔다. 큰형님도 지난밤의 과음으로 낮잠으로 하루를 보내려 했는데 형수님이 들쑤신 것이다. 하여, 셋이서 함께 산청 동의보감촌으로 향했다. 내 차보다 너른 형님 차 조수석에 얌전하게 앉아 산청으로 향하는 마음은 곧 추억으로 향하는 길이다. 2018년 6월 어머니와 큰형님을 모시고 동의보감촌에서 <효자전>을 보았다. 2019년 4월 큰형님은 회사 동료와 함께 동의보감촌을 찾았는데 마침 비가 오는 바람에 박물관 실내 공연으로 <오작교 아리랑>을 본 적 있다. 나는 어머니와 경로당 친구 분들을 모시고 산청 생초로(<효자전>), 동의보감촌으로(<오작교 아리랑>), 하동 최참판댁으로(최참판댁 경사 났네>),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으로(<남명>) 다녔다.
공연장은 늘 비슷하다. 미리 준비된 무대와 마당, 천막과 의자, 그리고 그 주변을 경계 그은 밧줄, 코로나19 방역 안내문, 왔다 갔다 하는 배우와 스태프들. 큰형님 내외와 동의보감촌 잔디마당 끝으로 걸어가는데 분장 중이던 배우들이 멀찍이서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마주 흔든다. 늘 반갑고 고맙다. 이렇게 더운 초여름 날 검정색 마당판 위에서 뛰고 구르고 노래하고 춤출 그들을 보노라면 마음 한 구석은 따뜻해지고 다른 한 구석은 미안해지고 또 다른 한 구석에서는 서로서로의 삶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생겨난다. 그것은 믿음으로 이어지고 사랑으로 승화된다. 그런 감정을 늘 느낀다. 먼 곳에서 한눈에 알아봐주는 가족 같은 사람들. 형제 같고 조카 같고 아들딸 같은 존재들의 보이지 않는 힘 덕분에 내 하루하루도 비교적 건전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처럼.
201회 공연에서 처음 데뷔한 이정우 씨가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때 큰들에 잠시 머물렀고 군대 갔다 와서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왔다 했던가. 아직 말을 나누어 본 적 없고 술잔 부딪혀 본 적 없지만 나는 그에게서 무엇인가 알 것 같은 기운을 느낀다. 혼자만의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그는 머지않아 하동 최참판댁에서 일본군 병사로 등장할 것 같다. 늘 웃는 인상이지만 찡그리면 무서워질 것 같다. 그러다가 좀더 익숙해지면 조준구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아주 매력적인 덧니가 조준구라는 인물을 만나면 흡혈귀처럼 변할 것 같다. 배우에게는 이런 게 큰 복이다. 천의 얼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복일 것이다.
최샛별 씨를 유심히 본다. 어머니와 친구분들로부터 “아요, 와 그리 잘 떠요? 우찌 그리 잘 하요?”라는 말을 들은 배우다. 등장만으로 객석을 폭소 도가니로 몰아넣는 배역이다. 극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끝나고 나서 관객이 흩어진 뒤에도 자기 역에 심취해 있는 천생 배우다. 출산으로 인해 잠시 마당판을 떠났다가, 지난해 8월이던가, 극단 2팀에 합류했는데 그의 외연의 연기와 내면의 연기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농익었다. 그가 마당판에 나왔을 때 여러 장면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그가 모든 장면마다 모든 대사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알 것이다.(이런 말을 하면 ‘그러면 다른 배우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에게는 직접 공연을 한 번 보시라고 말해주면 된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하는 연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마당극을 한 번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배우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1시간 동안 열심히 공연했다.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자신을 불태웠다. 배우들은 마당판에 잠시 앉아 있는 동안에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검정색 바닥은 햇볕을 받아서 아주 뜨겁다. 나는 지난해 이맘때 그 검정색 천에 손을 대어본 적이 있는데, 날달걀을 풀면 금방 프라이가 될 것 같았다. 그런 데서 뛰고 구르고 주저앉는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새로 구성된 2팀이 어제는 최종연습(리허설)하듯이 공연을 했고 오늘은 진짜배기로 첫 공연을 한 것과 같다. 잘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1팀의 <오작교 아리랑>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색다른 맛의 마당극을 잘 관람하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1팀의 <오작교 아리랑>이 구수한 누룽지 같은 맛, 푹 고은 곰국 같은 맛이라면 2팀의 <오작교 아리랑>은 바삭한 쿠키 같은 맛, 새콤달콤한 샐러드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둘 다 술안주 감이다. 하나는 막걸리 안주고, 다른 하나는 수제 맥주 안주이다.
큰형님과 형수도 모처럼 나들이에서 흡족하게 공연을 즐긴 듯했다. 옆에 앉아서 곁눈질로 바라보니 내가 손뼉을 열 번 칠 때 큰형님은 네다섯 번 정도, 형수는 예닐곱 번 정도 손뼉을 쳤다. 나는 내가 좀 유난하다는 것을 안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일지라도 순간순간 웃음이 가득한 형님 내외의 얼굴을 보는 내 마음도 아주 흡족했다. 진주로 돌아와 이현동 장날소머리국밥에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형님도 형수도 다음에도 시간 되면 공연 보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마당극 팬이 되어가는 것이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은 2015년에 제작하였는데 6년 만에 203회 공연을 기록했다. 대단한 기록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재미만 있어도 안 된다. 내용도 좋다. 주제도 뚜렷하다. 감동도 준다. 우리 겨레의 전통 민속놀이 같은 게 등장한다. 교육적이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이다. 오늘도 그랬다. 초등학생을 데리고 온 부모,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온 젊은 부부들이 객석을 채웠다. 나 같은 고정팬도 있었다. 내 직장 동료 한 분도 객석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그는 공연이 끝나자 후원회원이 되었다. <오작교 아리랑>은 작품 자체적으로도 훌륭하고 여러 사람을 모으고 만나게 해주는 오작교로서도 구실을 톡톡히 하는 명작 마당극이다.
2021. 6. 13.(일)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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